2017/09/29 금요일
임 은미 (유니스) 목사 묵상
무엇을 매일 매일 배운다고 하는것..
그것도 하나님으로부터 배운다고 하는 것..
실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 이런 생각도 든다.
무엇을 배우면서 깨달아가는 재미는 참 솔솔하고 신기할 수도 있지만
같은 것을 계속 가르쳐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를때?
그때는 배움이 즐거움이 아니라..
갑갑함이 될수도 있겠고
배우기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도 함께 할 수 있겠구나...
그럴 때는 인내가 필요한 것 같다.
꼭 배우게 되리라!!
꼭 이렇게 배우는 것에 대한 습득이 있게 되리라
이 문제(?)를 자유하게 풀게 되는 날이 오리라.
누군가가 가르쳐 줄 때 가르침 받는 그 순간 금방 깨달으면서
"아!!~~" 와우!!!~~~~ 하는 것도 있지만
"도데체 이해가 안 가는데? 이게 뭐야?
왜 이 문제가 답이 이거여야 하는거야?
도데체??
이해가 가지 않는데?"
이런 경우도
배우는 과정에는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좋은 선생님은
같은 문제를 숫자만 달리 해서 또 가르쳐 주기도 한다.
1 + 4 = 5 이지만
4 + 1 = 5 이기도 하고
3 + 2 = 5 이기도 한것이다.
그것 뿐인가?
0 +5= 5 이기도 하고
2 + 3 = 5 이기도 한것이다
5 라는 숫자를 얻기 위하여 변수로 쓰여지는 여러문자들을 다 습득한다는 것이
처음 산수를 배우는 학생에게 그닥지 쉽게 이해 가지 않을 수 있다.
진득하니... 배워야 하는 수 밖에..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그것 금방 이해 안 된다고
뺑소니(?) 치거나
학교 매일같이 땡땡이(?) 치면
그 학생은
방정식 배우는 단계에 올라 갈 수 없고
미접분 ? 그런것은 꿈도 못 꾸는 공식들이 되고 말 것이다.
결국
수학하고는 담을 쌓는 학생이 될터인디..
하나님에 대하여 배우는 것도
다 이렇게 단계가 있는 것 같다.
꾸준하니.. 배우는 수 밖에!
모른다고
이해 안 된다고
뛰쳐 나가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좋으신 선생님!
우리가 알아 들을 때 까지 가르쳐 주신다.
인내해 주신다.
그리고 우리를 기다려 주신다.
어제는 집으로 와서
한세대까지 가는데 대중교통을 사용했다.
나름 이제는 대중교통을 잘 사용한다고 생각했는데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안양역에 내렸다.
겨우 25분? 가량 걸린다.
안양에서 당정역까지 1호선을 타면 10분이면 간다.
키야.. 내가 여기까지 거리를 계산(?)하는데
학기 시작하고 한달이 걸렸다. ㅋㅋ
그 전에는 수원역까지 기차를 타고 학교로 갔는데
가만 보니?? 어머 안양역이 더 가깝네!!
그래서 어제는 처음 안양역에 내려서
당정 역으로 가려고 했는데
내려서 첫번째 온 지하철이 "급행"인지 내가 알았으리요?
타고 보니 당정역을 거쳐서 수원역까지 간다 ㅋㅋ
그러니.. 나는 수원역까지 가서리.. 또 거슬러
지하철을 타고 오니...
생각보다 더 늦은 것 뿐 아니라
지하쳘 내려서 우리 캠 수원지부 연합예배 드리는 곳이
학교 정문에서 가장 먼 곳...
언덕 위에 있는 신학관!
주여!!!
올라가면서 땀이 저절로 나서리.. 좀 쉬었다가
그리고 에배 드리는 강의실 도착!!
캠어들도 반가왔지만
오랜만에 보는 간사님들이 캠어들 보다 솔직히 더 반가왔다 ㅋㅋㅋㅋ
어제는 여러가지를 배운 시간이었다.
바로 엊그제 저녁까지는 오성 호텔에 머물르면서
어른들 부흥집회 새벽 저녁으로
강사 모시러(?)오는 차를 타고
편안하게 집회장소까지 가고
어제는 대중교통에 이리 저리..
택시도 안 잡혀서 설교하는 곳 까지 걸어 올라가고
ㅋㅋ
이 인생살이 무엇인공?
"나그네 인생"이라는 하나님 말씀
피부에 팍 팍 와 닿으니 감사!
이렇게 하는 나의 하루 수고를
우리 캠 간사님들은 매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하시니 감사 !!
그리고 뭐든지
금방 내 눈 앞에 있다고
그것을 잡을(?) 것은 아니라는 것...
속도가 중요한거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 ㅋㅋ
지하철 잘 못 갈아 타면서도 생각이 많았던
어제였다 ㅋㅋ
사 무 엘 하 19 장
28 -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All my grandfather`s descendants deserved nothing but death from my lord the king, but you gave your servant a place among those who sat at your table. So what right do I have to make any more appeals to the king?"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의 고백이다.
그는 그의 종 시바에게 모함을 받았고
다윗에게 오해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도망갔던 다윗은 다시 왕궁으로 돌아오고
도망가던 다윗과 함께 하지 않고 궁에 머물러 있었던
므비보셋..
그는 분명 다윗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은 자였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그는 다윗을 배반한 사람의 입장이 되어있다.
그 때 다윗의 너는 왜 그렇게 했냐는 질문에
므비보셋이 답을 하는 것이
오늘 나의 묵상 구절이다.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이 말씀이 어느 말씀 보다도 마음에 와 닿는다.
받은 은혜가 너무 큰 것을 알기에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조차 왕께 부르짖을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
사망에서 생명을 선물 받았고
이 땅에서 죽어 없어지는 생명에서
영원까지 이어지는 영생을 선물 받았다.
지은 모든 죄 다 용서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생에
우리에게 작게는 조금 불편한 일에서 시작하여
크게는
정말 큰 고통들... 그런 일들을 겪을때
선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주님 왜 나에게 이러시는거죠?"
라는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이미 받은 크고 큰 은혜는 다 잊어 버린 사람처럼..
내가 과연 하나님 앞에서
내 세울 공로가 있는가?
"내가 이렇게 이렇게 했으니
하나님은 나에게 절대로 이런 일을 행할 수는 없습니다
선한 하나님이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면
누가 하나님을 선한 하나님이라고 말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 있는가 없는가?
므비보셋을 보면서
진정 자기가 받은 은혜가 얼마만큼 큰 것이가에 대한
깨달음이 있는 자들이
마땅히 하나님 앞에 해야 하는 고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된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하나님 저에게
주신 은혜가 너무 많습니다.
매 1 초 살아 숨쉬는 순간 순간이
주님의 크신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 어려운 일을 만납니다.
그 때마다 므비보셋같은 고백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우리를 품으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이요 감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므비보셋 같은 고백이 정답의 고백이라 할찌라도
그 정답이 아직 습득되지 않아서
혼동도 하고
답답해 하기도 하고
서글퍼 하기도 하고
외로워 하기도 하고
두려워 하기도 하는
우리들을 오늘도 긍휼한 마음으로
안아 주시고
기다려 주시고
그리고 가르쳐 주시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우리 하나님을 감사 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