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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남기를 자원하는 사람들 11:1~2
1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2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예루살렘에 남은유다와 베냐민 자손 11:3~9
3 이스라엘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신하들의 자손은 유다 여러 성읍에서 각각 자기 성읍 자기 기업에 거주하였느니라 예루살렘에 거주한 그 지방의 지도자들은 이러하니
4 예루살렘에 거주한 자는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몇 명이라 유다 자손 중에는 베레스 자손 아다야이니 그는 웃시야의 아들이요 스가랴의 손자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스바댜의 현손이요 마할랄렐의 오 대손이며
5 또 마아세야니 그는 바룩의 아들이요 골호세의 손자요 하사야의 증손이요 아다야의 현손이요 요야립의 오 대손이요 스가랴의 육 대손이요 실로 사람의 칠 대손이라
6 예루살렘에 거주한 베레스 자손은 모두 사백육십팔 명이니 다 용사였느니라
7 베냐민 자손은 살루이니 그는 므술람의 아들이요 요엣의 손자요 브다야의 증손이요 골라야의 현손이요 마아세야의 오 대손이요 이디엘의 육 대손이요 여사야의 칠 대손이며 8 그다음은 갑배와 살래 등이니 모두 구백이십팔 명이라
9 시그리의 아들 요엘이 그들의 감독이 되었고 핫스누아의 아들 유다는 버금이 되어 성읍을 다스렸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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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지도자들과 백성 중 제비 뽑힌 10분의 1은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로 하고, 백성이 그들을 위해 복을 빕니다. 그 밖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 솔로몬 신하들의 자손은 각각 유다 자기 성읍에 거주합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한 지도자 중 유다 자손, 베냐민 자손 명단이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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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남기를 자원하는 사람들 11:1~2
예루살렘이 성읍다운 성읍이 되려면 거주하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성벽을 완공한 후 백성이 자신의 기업(땅)으로 돌아가면 예루살렘성에는 적은 인원만 남습니다. 그렇게 되면 성을 관리하고 수비하는 데 문제가 생깁니다. 성벽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을 관리하고 지켜 내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고향과 기업을 버리고 예루살렘성에 정착하고자 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에 지도자들과 백성 일부를 예루살렘에 남기기로 하고, 제비뽑기를 통해 백성 중 10분의 1을 선택합니다. 제비뽑기로 선택된 이들은 하나님 뜻으로 여기고 기꺼이 예루살렘성에 남습니다. 백성의 헌신으로 예루살렘이 성읍답게 회복되어 갑니다.
● 더 깊은 묵상
성벽을 완공한 후에 사람들이 왜 예루살렘성에 남아 있어야 했나요?
내가 함께하며 좀 더 도와야 하는 소그룹 혹은 공동체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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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남은유다와 베냐민 자손 11:3~9
유다와 베냐민 자손 중 일부가 예루살렘에 남습니다. 그들 족보만 언급한 것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백성이 대부분 유다와 베냐민 지파에 속하는 남 왕국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이 이스라엘을 대표하게 됩니다. 유다 자손의 지도자 아다야 족보를 5대조까지, 마아세야 족보를 7대조까지 언급한 것은 그들이 혈통적으로 진정한 유다인임을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베냐민 자손의 지도자 살루 족보를 7대조까지 언급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혈통을 중요시한 것은 연약한 유다 공동체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함일 것입니다. 이들과 함께 남은 베레스의 자손은 모두 용사로(6절), 성을 수비하기에 적합한 인물들입니다. 예루살렘성은 관리 체계를 갖추며 진정한 평화(샬롬)의 성을 회복해 갑니다.
● 더 깊은 묵상
예루살렘에 남은 사람들은 주로 어느 지파 자손이었나요?
공동체를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내가 감당할 역할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공동체가 믿음으로 든든히 세워지길 구하면서도, 헌신하고 수고하는 일에는 머뭇거렸던 제 모습을 회개합니다. 저희 공동체가 하나님 뜻을 잘 분별하고 그 뜻에 순종하도록 도와주소서. 세상의 공격이 거세지만 다음 세대에게 전수할 신앙의 모범을 사수하게 하소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순종과 헌신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① 항상 겸손함을 잃지 말고, 더욱 더 낮은 마음으로 내 자리를 지켜 나가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주님을 더욱 더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자
② 어느 자리이든, 어느 곳이든 주님의 백성답게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어떠한 일을 맡겨 주시든 자원하는 마음으로, 온전히 순종하면서, 그분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③ 하나님께서 늘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항상 성실하게 맡겨 주신 일들을 성실히 감당해 나가고, 그 속에서 주님을 더 풍성히 경험할 수 있도록 하자
느헤미야 11:1~14 거룩한 성 헌신하는 사람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성전의 성벽을 재건하고
에스라를 통하여 율법을 다시 회복하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키기로 결단을 하고 성명서를 만들어 사인을 하고 헌신을 다짐했다.
그런데 거룩한 성 예루살렘성벽을 재건했는데
예루살렘에 산다는 것이 다른 민족의 침입을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 있고
또 거룩한 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 가운데는 예루살렘 성에 사는 것을 꺼리는 마음이 있고
자기 고향에서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에 살기를 결단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첫째는 백성의 지도자들이다(1)
둘째는 백성 중에서 10분의 1을 제비를 뽑아서 살게했다.(1)
세째는 예루살렘에 살기로 자원하는 백성이 있었다(2)
네째는 일부 이스라엘 사람과 제사장, 레위인, 성전 봉사자들, 그리고
솔로몬 성전을 섬기는 자들이 본성에 거하고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살았다(3~4)
유다 자손 중에는 아다야, 마아세아를 비롯한 468명이(4~6)
베냐민 지파에서는 살루나, 갑배와 살래등 928명이 (7~9)
제사장 중에서는 여다와 야긴 스라야인데 성전 임무를 수행하는 자 전체가 1,192명이다(10~14)
레위사람이 284명(18)
성문지기가 172명(19)이니
전체 예루살렘 성에 거주하는 자는 3,044명이다.
인구밀도가 꾀 높은 편이라 추측 된다. 약2,500년전 고대도시라고 한다면.
몇 가지 우선 생각되는 것이있는데
역시 지도자들의 솔선수범이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먼저 침입에 대한 위험 부담도 있고
거룩한 성을 지켜야 하는 책임감도 있고
삶의 정착터를 옮기는 불편함도 있지만 먼저 감수하고 나선다.
이런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두번째 특별한 10의 1을 본다.
십일조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물질의 십일조(헌금)인데
특별한 십일조를 본다.
인생에서 십일조의 원리는 어디에도 통하나 보다.
물질로 드려지는 십일조 뿐만이 아니라 삶으로 드리는 십일조
나도 삶의 영역에서 시간이나 물질의 십일조를 드려야겠다.
물론 물질의 주인도 아버지시요, 시간의 주인도 아버지임을 고백하며
뿐만아니라 나머지 십분의 구도 아버지 뜻되로 사용하길 원하면서
제비를 뽑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온전한 뜻에 순복하기를 원할 때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하는 소원을 가지고 행하는 제비뽑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는 제비
제비에 당첨된자 중에 불평하는 자는 하나도 없음을 본다.
불평하는 자는 아애 뽑히지도 않을려나?
세번째 자원하는 그룹이 있었다.
예루살렘성에 거하기를 싫어하는 분위기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가 있는 곳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영적인 의미가 있는 곳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와 영광의 장소인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
이스라엘 민족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과 같은 장소
하나님께서도 나의 영원한 쉴 곳이라(시132:14)고 지칭하신 곳 시온성
그곳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거하기를 소원하는 자들이 있었다.
하나님과 함께 살기로 작정한 자들 같다.
나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이들과 함께 영원한 성
예루살렘성 새 예루살렘에 영원히 거하길 소원하고 소망한다.
네째로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유다자손과 베냐민 자손 레위인과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들이다.
예수그리스도가 나오는 지파 유다지파.
성전에서 봉사했던 자들이 그 곳에 머물기로 작정했다.
어려움과 손해가 따르는 것을 알면서도
거룩한 일에 자신을 드리는 삶.
헌신(?)하는 삶, 값진 삶을 살고 싶다.
백성들은 이들을 칭찬하며 축복을 빌었다(2)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24절 성을 비우기도 하고 채우기도 하십니다. 예루살렘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한”(7장 4절) 채로 방치되었습니다. 성벽을 재건했지만 예루살렘은 여전히 생기를 찾지 못해 황량하고 처량합니다. 성벽 재건으로 안전을 확보했으니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로 성벽 안 예루살렘을 채울 차례입니다
.
성벽 재건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신 일인 것처럼, 예루살렘을 사람과 가축과 가옥으로 다시 채우실 분도 하나님입니다.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신”(예레미야 1장 10절) 하나님이 이제 다시 “건설하고 심으시는”(예레미야 1장 10절)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누가복음 14장 23절)는 주님의 말씀에 나는 어떻게 순종하겠습니까?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2절 예루살렘 이주자는 제비를 뽑아 결정했습니다. 정착한 성읍을 떠나 삶의 터를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군가 인위로 결정하면 반드시 불평불만이 생겨날 것입니다. 제비를 뽑는 것은, 이 일을 주도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러하기에 결과를 기꺼이 따를 수 있습니다.
한편 백성들 중에는 제비뽑기와 상관없이 자원하여 예루살렘에 거주하려는 사람도 있었고, 나머지 백성들은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주었습니다.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을 결정하고 따르며, 자원하는 마음을 존중하고 복을 빌어주는 태도가 참으로 귀합니다.
기도
공동체-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구경꾼이 아닌, 공동체의 일부로 참여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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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된 예루살렘 성벽 내부는 여전히 제대로 거주할 수 있는 거처가 마련되어 있지 않는 황량한 곳이었고, 그 성벽을 외부의 재침입으로 지켜내면서, 여러 가지 임무를 감당해야 하는 거주하기에 불편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자원해서 거주하게 되었고, 백성들도 10분의 1이 제비를 뽑아 살게 되었는데 그들은 예루살렘에 살기로 자원하는 사람들을 축복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제비를 뽑은 이유가 모두가 자원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먼저 그 거주자로 기록된 이들은 유다의 자손으로는 베레스의 자손이었던 아다야와 마아세야를 포함한 468명, 베냐민의 자손들로는 살루와 갑비와 살래를 비롯한 928명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들의 혈통은 남유다의 멸망 당시에 그곳에 거했던 이들의 후손임과 그들이 또한 용사들이었으므로 그 성을 능히 지켜낼 담대함과 자원함이 있었음을 알리기 위함일 것입니다.
제사장, 감독들의 이름보다 그 자리를 지키기를 자원했던 백성들을 먼저 기록해 놓은 것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한 명 한 명 이름을 거론하지 못하더라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신실하게 행하는 이들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들여다보게 해줍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오셨을 때 가장 대접받지 못하는 목동들과 아이들의 환영을 받게 하셨고, 가장 무지하고 어리석은 이들을 제자로 삼으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듯 세상의 선택과 눈에 보이는 것들에 의해 이뤄지지 않고, 오직 여호와를 찾는 가난한 마음과 애통함으로 구하는 자들의 것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지키고 확장해가는데 쓰임 받는 주님의 제자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1.예루살렘으로 옮겨온 사람들
예루살렘성에 사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예루살렘성에서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곳에서 살게 될 때 주어지는 불편함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거하는 사람들은 밖에 거하는 사람들과 달리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거룩한 성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경건한 삶이 요구되었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불편함이 따른다고 여겼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 바르게 살려고 할 때에도 동일한 원리를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룩함을 가지고 살려고 할 때에 세상적인 일에 대하여 불편함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것은 잠시 잠깐이면 지나갑니다. 세상에서 거룩함을 유지하며 천국에 복을 쌓을 때에 그 복은 영원한 것입니다. 성도들은 영적인 예루살렘에서 사는 자로서 절제되고 거룩함을 추구하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묵상하기
내가 선 삶의 위치는 영적인 곳인가?
2.자랑스런 헌신자들
성경은 여러 사람의 헌신자의 이름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복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생활을 기꺼이 헌신한 삶을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편안함을 쫓아서 예루살렘 밖에서 사는 것은 원하였지만 이들은 기꺼이 다른 선택을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자로 사는 것을 세상의 낙보다 더 기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들의 헌신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전 삶을 통하여 헌신자들을 도우십니다.
눈앞에 보이는 어려움보다 영원한 참 기쁨의 복을 생각하며 온전한 헌신자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까?
묵상하기
나는 하늘의 상급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가?
성벽을 재건했지만 거주민이 적어 제비를 뽑아 백성의 십분의 일은 예루살렘에 살도록 한다.
예루살렘의 성벽은 재건했지만 성전이 있는 수도로서 기능을 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사람들이 거주해야 했다.
그러나 이방의 위협이 여전하고 집도 제대로 없어 거주민이 적었기 때문에 우선 지도자들이 거주하기로 했고, 백성 중 십분의 일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제비뽑기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이주하게 된다.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로 한 사람들 명단이 나오고 이름이 등재되지 않았어도 자원하여 이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 교회 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외부적 여건도 중요하지만 주님의 일을 감당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예배와 기도자리, 전도 현장에도 함께 할 일꾼이 필요하다.
교회의 직분자들이 앞장서야 하고 자원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
사명이 의무가 아니라 자원하여 순종의 기회로 여긴다면 복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화 된 군대처럼 예루살렘을 지키는 역할까지 담당해야 했다.
교회도 하나님께 부름 받은 성도들이 모인 곳으로 성도는 구원받은 은혜에 머무르는 차원을 넘어 군사로서의 사명도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이 다른 나라에 포로로 끌려갔던 유다 백성을 다시 불러 모아 예루살렘을 지키는 용사로 삼으신 것처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을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물질적 부족이나 여의치 않은 상황 때문에 염려하는 것은 믿음의 태도가 아니며, 주님은 말씀에 순종하고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 공동체를 승리하게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진정한 평강을 누리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주님의 몸된 교회와 예배를 떠나 다른 곳에서는 평안을 찾을 수 없다.
예루살렘이 그들의 거처가 되듯이 예수님 안에 사는 것이 은혜요, 교회의 돌봄을 받는 것이 축복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성 중건 후 당면과제는 인구재배치였습니다 예루살렘 인구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은 주변 원수들의 잦은 침략 탓도 있지만, 1차 산업 중심 사회에서 예루살렘에 거주하면 경제활동이 극도로 제한된다는 점과 귀환한 인구 자체가 적었던 탓입니다 여기서 느혜미야의 지도력과 백성의 헌신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전망해 볼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지도자들은 무조건 예루살렘에 거주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는 뒤에 숨어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앞에 서서 적들과 싸우고 궂은 일을 하며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사45:2~3)
그러나 그래도 인구가 여전히 부족했기 때문에 나머지 백성 중에서 제비를 뽑아 십분의 일은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느11:1~2)
그런데 여기서 "자원"의 히브리적 이해는 통상적 이해와 결이 다릅니다 통상적으로 제비뽑기 전에 거주하겠다고 나섰을 때 자원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자원"은 히브리어로 "נדב"(나다브)인데, 제비뽑기의 결과를 기쁘게 수용할 때에 "נדב"(나다브)라고 합니다
이렇게 이해의 결이 다른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우리는 제비뽑기를 우연의 결과라고 보는 반면에 필연의 결과 곧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결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는 스스로의 결단이라고 보는 반면에 스스로의 결단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없고 부르심으로만 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셋째, 정주문화와 유목문화의 차이 때문입니다 정주문화권에서는 뽑힌 자가 오지 않으면 잡으러 갈 수 있는 반면에 양 떼를 몰고 어디론가 가 버리면 찾을 길이 없었기 때문에 제비뽑혀 왔더라도 그것을 헌신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들이 백성 중에서 즐거이 헌신(נדב)하였음이니"(삿5:9)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일을 앞서 행하시는 우리의 지도자 되시는 주님과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었지만 우연 같은 부르심을 필연으로 기쁘게 받아 따르는 성도의 연합체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솔자들이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삿5:2
오늘의 말씀요약
지도자들과 백성 중 제비 뽑힌 10분의 1과 자원자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이스라엘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느디님 사람들, 솔로몬 신하의 자손들은 각각 자기 성읍에 거주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한 지도자들 중 유다 자손, 베냐민 자손, 제사장의 명단이 소개됩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지도자와 자원하는 자들(11:1~9)
하나님의 성전을 가까이하며 섬기는 것이 성도의 기쁨이요 영광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이미 예루살렘에 거주했고, 남은 백성 가운데 제비를 뽑아 10분의 1을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합니다.
예루살렘은 거룩한 도성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 많은 백성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것을 기피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재건되었지만,
그곳에 주민은 적고 가옥들도 건축되지 않아 생활의 어려움과 안위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예루살렘 도성을 수호하기 위해 자원해서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은 축복을 받고
특별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어려워서 사람들이 기피하는 귀한 일에 희생과 봉사의 정신으로 참여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예루살렘에 거주하겠다고 자원한 이들은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요?
- 적용 질문: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이지만 뜻을 두고 섬겨야겠다고 생각 되는 일은 무엇인가요?
제사장 가문들(11:10~14)
믿음의 헌신과 섬김이 대를 따라 가문에 이어지는 것은 축복입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제사장들이 소개됩니다. 열악한 조건임을 알면서도 자원해서 예루살렘에 거하며
성전을 섬긴 사람들입니다. ‘요야립(여호야립), 여다야, 야긴’은 다윗 왕 때 제사장들로(대상 24:7, 17),
본문에서는 제사장 가문의 이름으로 언급됩니다. ‘전에서 일하는 그들의 형제’는 대제사장을 도와서 섬기던
제사장들을, ‘그 형제의 족장 된 자’는 제사장들의 우두머리를, ‘그들의 형제의 큰 용사들’은 위험과
맞서 싸울 군사적 능력을 소유한 제사장들을 의미합니다. 이들 제사장 가문은 대대로 하나님의 전에서
섬겨 왔습니다. 하나님은 대를 이어 믿음을 전수하고 헌신과 섬김의 본을 보이는 가문을 귀하게 쓰십니다.
- 묵상 질문: 제사장들이 자원해서 예루살렘에 머문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적용 질문: 우리 가정이 대대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이 되려면 지금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좁고 험한 길은 멀리하며, 넓고 편한 길로만 가려고 했던 믿음 없는 제 모습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이 가라 하시고,
하나님이 하라 하시면 머뭇거림 없이 어디든 가고 무슨 일이든 하는 순종의 사람 되게 하소서.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주님의 백성 삼으시고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일에 동참시켜주시고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기준과 풍조에 따라 흔들리는 인생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령의 사람 되게 하여 주시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오직 주님이 증거 되는 인생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위에 기름 부어 주시고,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의 사랑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