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Ja_mxQCAGv8?si=3nm-rj2AtUk_35mf
Evgeny Svetlanov conducts Rachmaninoff Aleko - video 1989
라흐마니노프도 오페라를 몇 개 작곡했습니다. 그 가운데 이번에 소개할 것은 라흐의 초기 작품으로, 생전에 자신이 이 오페라를 작곡했다는 걸 무지 창피해 해서 작품번호 조차 부여하지 않았던,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라흐마니노프의 오페라 가운데 가장 널리 공연하는 <알레코>가 되겠습니다
<알레코>는 피 튀는 베리즈모입니다. 우리가 자주 듣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팔리아치> 그리고 집시족이 등장인물인 측면에서 <카르멘>을 섞어놓은 듯한 드라마인데, 그러니까 재미는 있습니다. 주제 역시 불륜이고요.
예전에 박완서 씨가 신문에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그중에서도 불륜은 더 재미있다."
이 이야기도 불륜입니다. 불륜으로 끝나면 재미가 좀 덜해서, 오페라에선 거의 언제나 복수가 뒤따르고 <알레코>도 여기서 예외는 아닙니다.
CD 한 장 짜리 짧은 오페라지만 있을 건 다 있습니다. 먼저 2분 반에 걸친 짧은 서곡이 끝나면, 집시들이 밥을 해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모여 이바구를 합니다. 그러다가 늙은 집시 주변에 여 오랜 세월을 산 늙은 집시의 지난 얘기를 듣는군요
"노래의 놀라운 힘이
지난 시절의 영상,
가물가물한 옛 기억을 살리는구나."
"얘기해주세요 영감님.
지나간 화려한 날들에 대해서요."
"거친 사막에서 조차 불행은
우리의 떠돌이 텐트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어.
죽음에 이르는 정열은 막을 수 없이
사방을 배회했지.
아, 내 청춘은 유성처럼
얼마나 빨리 스러져버렸나!
그러나 사랑의 나날들은
훨씬 더 빨리 지나가는 법. 겨우 1년 동안
마리울라의 사랑을 얻었지.
어느날, 카굴 호수 근처에
우리가 도착했을 때, 다른 캠프촌이 있었어.
집시들이 머물고 있던 거야.
산자락의 우리 텐트 바로 옆에.
이틀 밤을 그 사람들하고 같이 지냈지.
삼일째날 밤에 그들은 떠났어.
어린 딸을 두고
마리울라도 그들을 따라 간거야.
난 평화롭게 자고 있었어. 새벽까지.
깨보니까 내 사랑은 간 곳이 없었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 헤매도 흔적을 못 찾았어.
젬피라는 슬퍼서 울고
나도 울었어. 그때 부터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미치도록 싫어지더군.
여자들을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았어."
이때 알레코가 등장해서, 장인, 그래 그 연놈들을 그냥 살려뒀단 말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나 같으면 맹세코 칼로 푹 쑤셔 죽이든지, 산채로 꽁꽁 묶어 연못에다 빠뜨려 버렸을텐데요.
알레코의 아내이자, 늙은 집시의 딸인 젬피라는 오금이 저립니다. 아... 무서워요. 다른 집시들도 알레코의 험악한 얘길 듣고는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잘 준비를 합니다. 역시 집시들. 남자와 여자들이 자기 전에 춤을 한 바탕 추고 각자의 텐트로 기어들어 갑니다
집시들이 돌아간 다음입니다.
에그머니... 젬피라가 젊은 집시 총각을 만나고 있네요.
"한 번 만 더... 키스해줘.
길고 뜨거운 키스를."
"안돼. 빨리 돌아가.
남편이 오기 전에.
알레코는 잔인하고 힘도 세단 말야."
"한 번 만 더... 키스해줘.
길고 뜨거운 키스를...."
"안돼!"
"그럼 언제 만날까?"
"동산에 달이 덩그라니 뜨면
언덕 위 무덤가로 나갈께!"
젬피라는 벌써부터 젊은 집시와 눈이 맞고 배가 맞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늙은 집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알레코가 그걸 그냥 냅뒀어요? 나같으면 칼로 푹 쑤셔 죽였거나 산채로 꽁꽁 묶어 연못 속에 처박아버렸을 거유. 라고 이야기할 때 몸서리를 쳤던 것이지요.
하여간 둘은 그렇게 헤어지고, 젬피라는 알레코와 같이 사는 텐트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제 알레코와 자기의 아이를 재워야 합니다. 젬피라가 아이의 요람을 흔들면서 자장가 비스무리하게 노래합니다. (젬피라, 알레코의 요람 씬.)
늙은이야, 무서운 남자야.
날 찔러라. 불태워 죽여라.
나는 강해서 무섭지 않다.
칼도 불도 다...
당신이 싫어. 경멸해.
딴 사람을 사랑하고 있고, 사랑을 위해 죽을 거야."
(자장가치고 무지막지 합니다.)
"내 영혼은 비밀스런 슬픔에 눌려있네.
즐거움과 나날의 사랑은 어디로 갔나?"
"날 찔러라, 불태워 죽여라.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야.
늙은이야, 잔인한 남자야.
넌 내가 누굴 사랑하는지 모를거야."
"조용히 해! 그 노래가 지겨워!
그런 상스런 노래가 싫어!"
"싫어? 근데 왜 내가 당신 생각을 해야지?
난 그냥 노래하고 있는데.
그 사람은 봄보다 더 푸르고
여름 햇빛보다 뜨거워.
얼마나 젊고 용감한데.
또 얼마나 날 사랑하는데."
"조용히 해, 젬피라. 충분히...."
"내 노래를 알아 듣는 거야?"
"젬피라!"
"그럼 당신 마음대로 화를 내.
난 계속 노래할테니까.
밤의 적막 속에서 그를 생각하네.
우린 네 백발을 비웃었지.
그 남자는 봄보다 더 푸르고
여름 햇빛보다 뜨겁네.
얼마나 젊고 용감한데!
또 날 무지 사랑하거든.
밤의 적막 속에서 그를 생각하네.
우린 네 백발을 비웃었지."
여기까지 노래하고 젬피라가 퇴장합니다.
젬피라 : 마리아 굴레기나, 알레코 : 세르게이 라이페르쿠스
홀로 남은 알레코. 신세 따분합니다. 그래서 카바티나를 노래하는군요.
달빛은 집시들 텐트 위에서 교교한데, 자신의 팔자가 한심합니다. 원래 알레코는 집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집시들이 동네를 지나던 중, 젬피라와 정분이 나서 안정된 농부의 생활을 때려 치우고 집시들과 동행을 결심해서 아이도 하나 낳아 기르고 있습니다.
집시들의 불안정한 생활에 불평도 해본 적이 없이 그저 젬피라의 뜨거운 사랑 속에서 아리삼삼 꿈결 같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젬피라가 수상합니다. 그걸 내놓고 추궁할 수도 없고, 나날이 젬피라는 자신을 차갑게 대하고... 알레코는 미칠 것만 같습니다.
"근데 지금은! 지금 젬피라는 믿을 수 없어!
내 젬피라는 나날이 차가워만 가고 있구나."
세르게이 라이페르쿠스
알레코가 비탄에 젖어 카바티나를 노래하면 간주곡이 흐르고, 무대 위엔 달빛이 교교한데, 언덕 위엔 젊은 집시가 나타나 로망스를 노래하며 젬피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드디어 젬피라가 등장했습니다. 젬피라는 요새 남편 알레코의 눈치가 보통이 아니어서 불안해 죽을 지경입니다. 젊은 집시를 보자마자 빨리 달아나자고 서두르는군요.
"내 사랑. 지금은 빨리 토껴야 해. 시간이 없어!
벌써 늦었어. 날 파멸시킬거야?
안돼, 시간이 없어!"
"잠깐, 아직 기다려.
날이 밝기를 기다리자고.
당신의 사랑은 이렇게 소심해?
잠시만 더, 잠시만."
"남편이 깨면 내가 없어진줄 알거야."
이렇게 옥신각신 하는 사이에, 그만 벌써 알레코가 잠에서 깨 이들을 찾아냈습니다.
"네 남편은 벌써 깼어.
기다려. 어디로 가려고, 기다려!
이게 꿈인가 아닌가....
젬피라, 지금 당신의 사랑은 누구야?"
젬피라가 대답합니다.
"날 내버려둬. 당신한텐 미움 밖엔 없어.
절대로 과거를 되살릴 수 없을 거야."
"젬피라! 젬피라!
기억해 내 사랑!
난 내 모든 삶을 바쳐
당신하고 사랑하며 살기를 원했어.
그리고 자진해서 유랑의 삶을 택했지.
사랑은 꿈처럼 스쳐 지나가는구나."
하지만 생각 같지 않습니다. 알레코가 젊은 집시에게 복수의 칼을 들이대려는데, 젬피라가 젊은 집시한테 소리칩니다.
"도망가, 내 사랑! 도망가!! 아... 사랑해!"
하지만 알레코, 젊은 집시의 가슴에 단검을 깊숙히 박아 넣습니다.
젬피라가 죽어가는 젊은 집시의 품에 무너지며.... 알레코를 나무라는군요.
"오, 도대체 뭘 한 줄 알아?"
"아무것도 안했어.
사랑을 갈구해봐."
젬피라는 여전히 이미 죽은 젊은 집시 앞에 엎어져 말합니다.
"오, 내 사랑. 날 용서해줘.
널 죽인 건 내 사랑 때문이야.
오.... 내 사랑."
알레코, 뒤집어집니다. 남편을 앞에 두고 정부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철철 흘리는 아내를 보고.
"너 지금 우는 거야?"
"난 당신이 조금도 무섭지 않아.
협박하는 게 우스워.
당신이 저지른 살인을 저주하겠어."
알레코. 참지 못하고 젬피라의 말랑말랑한 가슴 속에 단검을 푹 찔러 넣어 버립니다.
알레코 역의 세르게이 라이페르쿠스
Sergei Leiferkus(baritone)
비명 소리를 들은 집시들, 모두 뛰쳐나와 경악합니다. 알레코는 사랑하는 젬피라가 죽은 것이 슬퍼 어쩔 줄 모르고.....
나이든 집시들이 정신을 차려 사태를 수습합니다. 늙은 집시가 말하는군요.
"우린 거칠고 법도 없이 사는 종자들이야.
우린 아무도 고문하거나 죽이지는 않아.
피를 흘리거나 슬퍼할 이유 없이 사는 것들이지.
하지만 살인자하고 같이 살 수는 없네.
네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우린 무서워 벌벌 떨거 같아.
우린 부드럽고 친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자넨 악하고 뻔뻔스러우니 우리에게서 떠나게.
우린 점잖은 종족들이야.
잘 가게. 자네한테 평화가 있기를 바라네."
집시들은 알레코 혼자 세상에 남겨두고 길을 떠납니다.
알레코는 세상에 홀로 떨어진 자신을 두려움에 젖어 울며 오페라는 막을 내립니다.
--옮겨옴--
피날레. 1,2의 가수들과 젊은 집시 일리야 레빈스키
글쓴이 : 미술관지기(정문규 미술관)
https://youtu.be/_vS1Yt5r5Co?si=uM9gy44G4_CokNIl
Опера "Алеко" С. В. Рахманинов. Филармонический музыкально-литературный лекторий. Казань. 18.10.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