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인생 고비에서 부딪치는 질문이다. `내가 돈이 없지, 가오(얼굴의 일본말, 체면)가 없냐`는 식의 선택은 현실에서 쉽지 않다. 명줄보다 무서운 밥줄에 목줄을 걸고 살아야 하는 현실에 대한 갈등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가오`론의 원조는 중국 동진 시대 시인 도연명이다. 41세에 말단 벼슬자리를 얻었는데 부임한 지 얼마 안돼 상급기관의 신임 감찰관이 시찰왔다. 주위에서 신고식을 권하자 도연명은 "그깟 다섯 말 녹봉에 시골 촌뜨기 녀석에게 허리를 꺾고 살랴(我豈能爲五斗米折腰)"라며 사표를 던진다.
오두미란 현령의 녹봉, 즉 쥐꼬리 월급이다. 돈이 없으면 가오도 세우기 힘든 게 현실. 도연명은 `귀거래사(전원에 돌아갈지어다)`에서 `나는 자연인이다`를 호기롭게 선언한다. 한편으로 `걸식(밥을 구걸하며)`에선 밥을 구걸하러 가 입을 떼지 못하고 버벅대는 자신의 처지를 고백한다. 후세의 평도 갈린다. 왕유는 "작은 것을 지키느라 큰 것을 잊었으니 그 뒤의 누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소동파는 `맑고 높은` 절개로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출처진퇴(出處進退), 물러나고 나아감에 대한 판단은 인생의 궁극 지혜다. 맹자는 청렴(淸), 책임(任), 조화(和), 시의성(時)의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청렴은 부정과 타협할 줄 모르는 대쪽형이다. 책임형은 부정한 리더, 조직이라도 참여해 개혁하는 깃발형이다. 조화형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따지기보다 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자 한다. 맹자는 "선택은 달랐지만, 백성을 생각하는 인(仁)에선 같았다"고 평한다. 때(時)에 따라 유연성을 발휘한 공자가 가장 뛰어나다고 덧붙인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의 EVL이론과 통한다.
조직의 퇴보 징후 대응법은 이탈(Exit)과 항의(Voice), 충성(Loyalty)의 3가지가 있다. `가오`형 이탈은 강력하나 효력은 반반이다. 조직이 문제 개선에 힘쓰기보다 눈엣가시를 제거한 후 기존 체제 강화로 활용할 수 있다. 항의형은 당사자에게 조직 내 소외, 불이익 등 희생비용이 발생한다, 허시먼은 "어느 한 방법만이 정답은 아니다. 상황별 유연성을 발휘할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결론짓는다. `결국 타이밍(時)`이란 점에서 맹자의 조언과 통한다.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가오인가, 돈인가. 판단력을 높이려면 외부 판독용 레이더, 내면 성찰용 내비게이터 모두 필요하다. 레이더만 세운 삶은 비루하고, 내비게이터만 따르는 삶은 고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