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 선언’의 ‘초마이너’ 본문은 아이러니하게도 250년 후 미국 현과 놀라울 정도로 겹치는 내용이었다 / 7월 4일(토) / 커리에·자폰
독립 선언과 미국 헌법 Photo: toddtaulman / Getty Images
미국은 7월 4일, 독립 250주년이라는 큰 이정표를 맞이한다. 250년 전에 쓰여진 ‘독립 선언’은 초강대국이 된 미국에게 역사적 유산에 불과한가. 미국의 역사학자들이 그 대의 뒤에 숨은 실질적인 불만을 혼란스러운 현대 미국의 맥락에 겹쳐서 해석한다.
양피지에 급히 적힌 필기체 글자를 보면, 독립 선언은 마치 먼 과거의 유물과 같다. 마찬가지로, 본문에 열거된 영국 왕 조지 3세와 그의 정부, 영국 국민에 대한 27건의 고발도 현대 우리 생활과는 거의 무관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 1776년 정착자들이 제기한 구체적인 불만이 2026년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독립 선언에서 알아야 할 것은 자명한 진리와 행복의 추구, 그리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서두의 격조 높은 구절이 아닐까.
필자는 역사학 교수이며, 독립 선언에 대해 거의 25년 동안 연구해 왔다. 미국 건국을 주제로 집필한 4권의 저서, 특히 신작 『폭군과 악당들-독립 선언을 해석한다』(미번역)에서도 이 문서를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1776년 당시 혁명 지도자들을 가장 고민하게 만든 문제가 현대 미국인에게도 여전히 관심사로 남아 있다. 당파화된 사법, 임의적인 권력 행사, 유권자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 당국자, 자신들의 가족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에 발언권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민과 시민권을 둘러싼 정책까지, 공통된 과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고발 내용을 해석하면, 혁명이 이름 없는 사람들의 힘에 얼마나 의존했는지 알 수 있다. 그 정치적 분노와 봉기 참여가 없었다면 미국의 독립은 실현되지 않았을 것이다.
권위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실력이나 강제, 권력 행사는 어디까지 한계가 있는가. 공직자는 누구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가. 법치주의를 결정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러한 문제가 폭력으로, 혹은 내전까지 격화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들은 21세기의 문제이지만, 18세기부터 변함없이 존재해 온 문제이다.
◇ 정착민들의 ‘양보할 수 없는 경계’
독립 선언 서두의 문장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본문의 후반부에도 힘찬 서술이 있다. 이는 1776년 당시 정착민들이 어떻게든 용납할 수 없었던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정착민들이 문제 삼는 것은 ‘군대를 민간 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고 그 위에 두자’는 왕의 시도이다. 예를 들어, 밀수업자를 추적하던 영국 선박 가스피호가 로드아일랜드의 선박을 가차 없이 공격했을 때, 주민들이 항의했음에도 영국 해군은 식민지 정부의 주장을 일축했다.
사법에 대한 위협도 고발하고 있다. 왕이 “판사를 자신의 의사에만 복종시키자”고 주장하고, 영국 의회가 미국인들로부터 “배심원 재판의 이익을 빼앗았다”고 이주민들이 주장하고 있다.
영국 의회는 또한 “우리의 허가증을 박탈하고, 가장 중요한 법을 폐지하며, 정부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예를 들어 1774년, ‘보스턴 차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영국 의회는 매사추세츠에서 식민지 허가증을 박탈하고, 정부 체계를 개편해 그동안 선거로 선출되던 많은 직책을 임명제로 바꾸었다.
정착자들은 이러한 왕의 행위를 폭군의 증거로 여기고, 1776년에 혁명을 시작할 근거로 삼았다.
Robert Parkinson
アメリカ合衆国「独立宣言」の“超マイナー”な本文は皮肉にも250年後の米国の現状と驚くほど重なる内容だった
アメリカ合衆国「独立宣言」の“超マイナー”な本文は皮肉にも250年後の米国の現状と驚くほど重なる内容だった / 7/4(土) / クーリエ・ジャポン
独立宣言と米国憲法 Photo: toddtaulman / Getty Images
米国は7月4日、独立250周年という大きな節目を迎える。250年前に書かれた「独立宣言」は、超大国となった米国にとって歴史的な遺産でしかないのか。米国の歴史学者が、その大義の陰に隠れたリアルな不満を、混沌とする現代米国の文脈に重ね合わせて読み解く。
【画像】「独立宣言」の草稿を大陸会議に提出する面々
羊皮紙に走り書きされた筆記体の文字を見ると、独立宣言はまるで遠い過去の遺物のようだ。同様に、本文に列挙された英国王ジョージ3世とその政府、英国民に対する27の告発も、現代の私たちの生活とはほとんど関係がないように思えるかもしれない。
そもそも、1776年に入植者たちが訴えた具体的な不満が、2026年の私たちと何の関係があるというのか。独立宣言で知っておくべきは、自明の真理や幸福の追求、そして「すべての人間は平等に創られている」といった、冒頭の格調高い一節ではないのか。
筆者は歴史学の教授で、独立宣言についてほぼ四半世紀にわたり研究を続けてきた。米国建国をテーマに執筆した4冊の著書、とりわけ新著『暴君と悪党たち─独立宣言を読み解く』(未邦訳)でも、この文書を中心的に取り上げている。
筆者の見立てでは、1776年当時の革命指導者たちを最も悩ませた問題は、現代の米国人にとっても依然として関心事であり続けている。党派化した司法から、恣意的な権力行使、有権者に責任を負わない当局者、自分たちの家族に影響する意思決定に発言権を持てない人々、さらに移民や市民権をめぐる政策に至るまで、共通の課題が存在するからだ。
何より、告発の内容を読み解くと、革命が名もなき人々の力にいかに支えられていたかが見えてくる。その政治的な怒りと蜂起への参加がなければ、米国の独立は実現しなかっただろう。
権威はどこから生まれるのか。実力や強制、権力の行使にはどこまで限界があるのか。公職者は誰に対して責任を負うのか。法の支配を決めるのは誰なのか。こうした問題が暴力へ、あるいは内戦にまでエスカレートしたらどうなるのか。これらは21世紀の問題だが、18世紀から変わらずある問題なのだ。
入植者たちの「譲れぬ一線」
独立宣言の冒頭の文章は、歴史上で最も有名な一節に数えられる。だが、本文の後半にも力強い記述があるのだ。それは1776年当時の入植者たちがどうしても容認できなかったことを明らかにしている。
そこで入植者たちが問題にしているのは、「軍隊を文民権力から独立させ、その上に置こう」とする国王の試みだ。たとえば、密輸業者を追う英国船ガスピー号がロードアイランドの船を容赦なく攻撃した際、住民が抗議しても、英国海軍は植民地政府の訴えを一蹴した。
司法への脅威も告発している。国王が「裁判官を自らの意志のみに従属させよう」とし、英議会が米国人から「陪審裁判の利益を奪った」と入植者たちは主張している。
英議会はさらに、「われわれの勅許状を剥奪し、最も重要な法律を廃止し、政府の形態を根本的に変えた」とされる。たとえば1774年、「ボストン茶会事件」への対応として、英議会はマサチューセッツから植民地の勅許状を剥奪し、政府機構を作り変えて、それまで選挙で選ばれていた役職の多くを任命制に変更した。
入植者たちはこうした王の所業を暴君の証しとみなし、1776年、革命に踏み切る根拠としたのである。
Robert Parkin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