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을 하겠습니다. 그 당시 초기의 헬라철학은 다른 학문과 견주는 또 하나의 학문이 아니라, 진리 그 자체를 두고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경쟁하는 학문이 없는데, 즉 생각하는 모든 것은 철학 속에다 모두 집어넣으니 말이다. 그래서 철학을 한다는 것은 곧 진리를 공부하는 것이 되는데, 그러니 요즘과 같은 그런 체계를 잡기가 힘이 든다는 것이다.
이렇게 최초로 철학을 연구하는데는 엘레야 학파와 밀레토스 학파가 있었는데, 엘레야 학파는 로마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고, 또한 밀레토스 학파는 그리스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을 했다는 말이다. 여기서 밀레토스 학파는 구체적인 재료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고, 엘레야 학파는 추상적인 형상이나 존재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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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레아(Elea)학파 - 기원전 6세기 후반에 남부 이탈리아의 엘레아를 중심으로 활동한 학파. 감각적으로 지각되는 운동이나 다양성을 부정하고, 존재의 유일하고 영원불변함을 주장하였다. 크세노파네스에 이어 파르메니데스가 체계화하였다. -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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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토스 학파(Ionian School) - 밀레토스 학파는 기원전 6세기에 성립된 그리스 최초의 철학 학파이다. 아나톨리아의 에게 해 연안의 이오니아의 도시 밀레토스 출신의 탈레스가 창시했다. 아낙시만드로스와 아낙시메네스로 학풍이 이어졌다. 이들의 활약 시기는 소크라테스, 플라톤보다 백 년 이상 앞선다. 이들은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 지에 대해, 자연 현상을 전적으로 의인화된 신들의 의지에 의한 것으로 설명하는, 당시의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관점에 반하여 새로운 견해들을 제시했다. 이들은 밀레토스의 자연에 경탄했으며, 그 자연의 바탕에 있는 만물의 근원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래서 자연철학으로 분류된다. (이오니아 학파라고도 함)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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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 도발적인 질문 - '왜 있는가?'
처음에는 탈레스가 말하기를 "이 세상은 물로 되어있다" 라고 했는데, 그것은 아주 도발적인 발언이라는 것이다. 그 당시 철학에서는 이 세상은 그냥 있는 것이지, 그것을 가지고 "왜 있는가?" 라는 것을 따지는 것이 아주 시건방진 이야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자연인데, 이 자연 속에 인간이 있다는 말이다. 그 인간은 바람이 불면 피하고, 날씨가 추우면 난로를 피우면서 살아가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무슨 주도권을 쥐느냐는 말이다. 순응해서 살아가면 되는데 말이다.
◈ 밤은 왜 캄캄해야 하는가?
밤이 되면 캄캄한데, 그런데 왜 캄캄한지 여러분 중에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이 과연 있는지 모르겠는데, 즉 "왜 캄캄해야 하는가?" 라는 말이다. 그렇게 왜 캄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것과, 해가 떨어져서 캄캄하다는 것은 전혀 의미가 다르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해가 하늘에 떠 있을 때는 해에서 빛이 나와서 밝고, 또한 해가 지면 그 빛이 없기 때문에 어둡다고 하는 것은, 즉 그러한 사고방식은 "왜?" 라는 질문에 대해서 전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 질문 - 밝음에서 필요한 그 무엇이 있듯이, 어둠에 필요한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닌가요?
지금 제가 말하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닌데, 과학적 사고에서는 무엇인고 하니, 이렇게 '나' 라는 것이 있고, 그러한 '내'가 이 세상을 판단할 수가 있다는 자신만만함 속에서는, "태양이 지면 어둡고, 태양이 뜨면 밝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당시에는 '나' 라고 하는 것이 그 안에 그냥 포함이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 왜? 왜? 왜?
그러니 "왜?" 라고 하는 질문이 의미하는 것은, 만약에 신이 있다고 하면, "신은 왜 나의 허락도 받지 않고 태양이 지게 하는가?" 라는 것이다. 즉 자기가 뭔데 자기 마음대로 태양이 지도록 그렇게 하느냐는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말이다. 태양이 없어서 캄캄한 것은 좋은데,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달이 태양보다 빛이 약해서 어두운 것을 누가 모르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왜 그렇게 어두운 시간대가, 즉 그런 어두운 세계가 있어야만 하느냐는 말이다. 그것이 사실은 지금까지도 해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신이 만든 세계, 즉 이 자연세계에서 왜 인간의 허락을 받지 않느냐는 것이다. 날씨가 추운 것은 좋은데, 그런데 인간의 허락을 받고 추워도 추워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 자연이 인간에게 뭔가를 강요하지 않는가?
이것이 중요한데, 그런데 지금 현실은 어떠한가? 전혀 우리 인간의 허락을 받아내지 않고 해가 지고, 또한 날씨가 춥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원래 인간이 자연에게 의도한 바와는 달리, 오히려 자연이 인간에게 뭔가를 강요하는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자연의 의도를 모른다고 하면 인간은 헛살았다는 말이다.
다시 이야기하면, 인간이 자연세계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세계가 요구하는 대로 인간은 거기에 적응하고 순응할 뿐인데, 그러니 주도권은 누가 쥐고 있는가? 당연히 자연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연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런 자연에게 인간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인간 자신이 당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 왜 죽이는가? : 왜 죽는가?
그러한 것 중에서 하나가 죽음인데, 그러니 과학적으로 세포가 노화되어서 죽는다는 것은 여기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고대 철학자들이 하는 질문은 "그렇게 왜 죽이는가?" 라는 것이고, 현대과학은 "왜 죽는가?" 라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도 요즘 과학자들이 자존심은 남아 있어서, "죽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이렇게 되어서 죽는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세포가 노화되어서 말이다.
◈ 들뢰즈 - 인간은 욕망을 생산하는 기계 !!
들뢰즈의 경우에는 이런 세포를 하나의 기계로 본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고 하니까, 공장에서 기계는 무슨 역할을 하는가? 생산을 하는데, 이 들뢰즈가 인간을 기계로 보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즉 "인간은 욕망을 생산하는 기계이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그렇게 생각하지를 않고, 인간에게는 이미 욕망이 들어있는데, 물론 그 어떤 종류의 욕망이 왜 들어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들어있는 욕망을 절제하며 조절하면서 살아간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착하게 살려고 노력해야하고, 그렇게 하면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들뢰즈의 철학은 그것이 아니라, 이 욕망은 자기가 자제한다고 될 문제가 전혀 아니라, 그렇게 하면 오히려 위선자가 될 뿐이고 말이다. 그러니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 기계는, 아예 외부의 사건에 의해서 우리 속에 없는 욕망도 계속해서 생산이 된다는 것이다. 즉 지난달에 3개를 생산했다면, 이번 달에는 5개를 생산하고, 다음달에는 8개를 생산하고 말이다. 그렇게 목표치가 계속해서 올라가는데, 욕망을 그렇게 생산한다는 말이다.
◈ '기계'에게는, 옳고 그름이 없어 !!
이렇게 인간이 욕망을 생산하는 기계라고 하면, 그렇다면 옳고 그름이 형성이 되겠는가? 그런 것은 없다는 말이다. 생산하는 기계이니 말이다. 인간은 그냥 욕망을 생산할 뿐이지, 옳고 그름에 관해서는 그 욕망을 스스로 절제하고 자제가 가능할 때 하는 이야기라는 말이다. 기계에게 무슨 그런 능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들뢰즈는 욕망을 보이지 않는 생(?)으로 보았나요?
그것은 옛날 사고방식인데, 들뢰즈는 그 욕망이 외부에서 주어진 사건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나중에 플라톤을 할 때 하겠지만, 이 '국가' 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감각적인 행동을 절제하고 자제하는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말이다. 그래서 국가가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철학이 잘못되어서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 교재에는 플라톤에 대해서 그 국가론은 거의 없고 형이상학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러나 원래 플라톤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이 '국가론' 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 국가론이 등장하게 되었는고 하니, 소크라테스 이후에 민주주의가 그만 개판이 되고 말았는데, 마치 요즘의 정치처럼 말이다.
◈ 왜 플라톤의 '국가론'이 등장했는가?
그렇게 힘이 있는 자가 법을 자기 마음대로 만들고, 그래서 그런 힘과 법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마구 횡포와 압박을 가하니, 거기에 대해서 플라톤이 엄청나게 화가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정말 국가가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해서, 새로운 국가관을 제시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 질문 - 외부에서 주어지는 사건에 의해서 욕망이 생겨난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그런 경향이 많다고 볼 수 있지 않나요?
스피노자나 들뢰즈가 그런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인고 하니, 개인적인 것이 강해지면서, 모든 것이 그렇게 사적이고 개인적으로 해결이 될 때, 비로소 사람들은 자기 욕망을 충족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개인적 것에서 욕망이 나오니,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개인적인, 즉 "내 욕망에 합당한 철학이 없을까?" 라고 찾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곧 들뢰즈의 철학이라는 말이다. 자기 욕망을 거슬리지 않고 충족시켜주는 철학을 말이다.
* 질문 - 제가 의도한 질문은, "사건을 통해서 과연 이런 욕망이 조절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즉 원인이 부여되는 것이 외부적 환경에 의한 사건이라고 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니 사건을 조절하면 욕망도 조절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더 큰 욕망을 위해서 작은 욕망은 잠시동안 미루어야만 하는데, 물론 사건을 조절하면 욕망도 또한 조절이 되고 말이다. 왜냐하면, 자가 선택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그것이 앞으로 플라톤을 공부하다가 보면 또 나온다는 것이다.
* 질문 - 목사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는 것인가요?
그것은 아니고,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제 생각이 아니고, 그들의 주장을 여러분들이 알아 듣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마치 제가 제삼자가 아닌 당사자인 것처럼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뿐이고 말이다. 저는 오직 복음만이 진리라고 여기는데, 이들은 전혀 그런 복음을 모른다는 말이다.
아무튼 이 플라톤은 주장하기를, 그의 '교육론'을 살펴보면, 절제, 지혜, 용기, 덕과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덕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국가를 위한 교육이라는 것이다. 철저히 국가를 위한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가만히 보면, 목사님은 이렇게 가면 저는 저렇게 가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궁금하니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런 현상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가 있는데, 우리 모두가 다 이런 것에 대해서 궁금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도 이런 것을 공부하고 했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이 선과 악을 아는 열매를 따먹어서 나타나는 결과이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야 하고, 그것이 또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기도 하니 말이다. 우리도 선악과를 맛있게(?) 먹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창세기 3장 15절에 나오는 그 약속과, 이렇게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로서 나타나는 결과들이 어떻게 서로 대비가 되는지 살펴보아야 성경이 뚫리지 않느냐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5절만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 그냥, 자연을 이용만 하면 되지 않는가?
다시 해보면, 그 당시에는 그렇게 자연에 대해서 감당을 하지 못했는데,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즉 "해가 왜 있고, 또 지는가?" 라고 한다면, 그것은 모르는데, 다만 거기까지는 가지를 말고, 지금은 그것을 이용만 하자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묻지 말고 말이다.
아무튼 자연이 어떻게 하든지 간에, 우리는 우리가 챙길 것만 챙기자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의 욕망을 위해서 이용만 하면 되는 것이지, 그렇게 자연의 근본까지는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답변이라는 말이다. 왜 저렇게 하늘에 해가 있고, 또 그 해가 지는지 말이다. 여기서 '해' 라는 것은 존재인데, 그 해가 왜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태양열 발전소를 만들든지 해서 이용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저기 해가 왜 있지? 나는 저 해가 너무 싫어. 달이 좋아" 라고, 사실은 그렇게 요구하고 싶어도 뭔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즉 이런 자연에 대해서 재배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우리 인간에게 없다는 것은 우리 인간들이 안다는 말이다. 즉 인간이 신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인간은 그런 신은 아니지만, 신이 만들었든지 누가 만들었든지 간에, 이 자연세계를 제대로 이용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을 두고 진리라고 쳐주자는 말이다. 즉 존재하는 진리는 모르지만, 그러나 그렇게 존재케 하는 법칙이 있어서, 그 법칙을 캐내면 진리 중의 일부를 캐내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 탱큐, 뉴턴 형님 !!
그렇게 존재와 존재 사이에서 왜 존재하는지는 묻지 않지만, 그러나 존재와 존재 사이에서 작용하고 있는 법칙은 뉴턴이 발견했는데, 즉 "중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질량의 곱에 비례한다" 라고 말이다. 이러한 법칙이 태양과 지구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 다 적용이 되는데, 심지어는 우리 몸의 세포에게까지 이 만유인력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것에 아인쉬타인에 의하면 굴곡에 의한 에너지 장(場)으로서 형성이 되고 말이다.
이러한 것들이 다 무엇인고 하니, "왜 그런가?" 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법칙으로 그렇게 있는 것인지, 그 법칙을 밝혀내게 되면 왜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대체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왜 있는지, 그것은 굳이 묻지 않아도 자기에게 이익만 챙기면 된다는 말이다.
◈ 그러면 '죽음'의 문제는 어떻게?
하지만 그렇게 이익을 챙겨도 문제가 무엇인고 하니, 결국은 '죽음'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죽음의 문제는 종교에 맡기자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과학과 종교분야가 나누어지는데, 즉 과학은 눈뜨고 살아있을 때 이야기이고, 그 이후로는 종교에 맡겨두자는 말이다.
◈ 제군들이여, 귀환하라 !!
그 종교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흔히 말하는 자연종교로서, 구약에 보면 이런 것이 다 나오는데, 소위 '우상' 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한 이방종교의 특징은 무엇인고 하니, 귀환한다는 것인데, 즉 자연에서 왔기 때문에 자연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연으로 다시 흡수통합이 되면, 그것으로 죽음이후의 내세의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이 되는 것으로 여기자는 말이다. 물론 불교도 그렇고, 모두가 다 그렇게 귀환을 한다는 것이다. 왕도 귀환을 하고(?), 다 귀환을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납득이 되는데, 즉 작은 존재인 '나'가 큰 존재인 자연세계에 묻혀버리면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수제비를 만들고 나서 남았다고 하면, 그 작은 조각을 큰 덩어리에 다시 합쳐버리면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이 된다는 것이다.
◈ 학생들이여, 상기하라 !!
지금 플라톤의 이야기를 잠시 해보면, 이 플라톤에 있어서 교육론의 근본은 '상기론(想起論)' 이라고 하는데, 즉 다시 기억을 끄집어낸다는 것이다. '상기시키다' 라고 말이다. 이 상기론의 핵심은 무엇인고 하니, 그게 '메논' 이라는 책에 보면 나오는데 말이다.
그것이 무슨 내용인고 하니, 선생님이 학생에게 가르칠 때는 외부적인 것을 가르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만 그 학생이 알고 있는 것을 외부에서 자극을 주게 되면, "아하 선생님, 그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라고, 즉 그 학생이 잊고 있던 것을 깨우쳐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미 그 잠재능력 속에 들어있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만약에 새로운 것을 가르치게 되면, 사실은 새로운 것을 가르칠 수도 없는데, 왜냐하면 새로운 것을 줘봐야 그 새로운 것과 만날 수 있는 잠재능력이 없다고 하면, 가르쳐봐야 알 수 없기 때문에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무엇을 새삼스럽게 가르친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가르친다고 하면 그 학생의 잠재능력을 무시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어차피 이렇게 해도 가르칠 수 없고, 저렇게 해도 가르칠 수가 없는데, 다만 기억만 나오도록, 즉 "너는 이렇게 알고 있지? 그러니 이렇게 하기만 하면 돼" 라고, 그렇게 상기시키는 것이 바로 교육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존 듀이의 교육론과도 비슷한데 말이다.
◈ 그러니 영혼은 선재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러한 상기론이 성립하려고 하면 '영혼 불멸설'이 먼저 성립되어야 하는데, 즉 인간의 원판은 이데아의 세계에 있고, 지금 이렇게 세상에 있는 것은, 잠시동안 육체에 갇혀 있다가 다시 이데아의 세계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사실 이 영혼 불멸설은 그 뿌리가 '영혼 선재설'에 있는데, 그러니 영혼 불멸설이라고 하기보다는 영혼 선재설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가 죽어도 영혼이 계속해서 살아있다고 하면, 이렇게 영혼 덩어리가 있는데, 그러니 지금 우리의 이 몸뚱이라는 잠시 물질을, 즉 질료를 잠시 채용했다가 보내고 다시 또 채용을 하고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영혼은 그 이전부터 선재(先在)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영혼이 선재한다고 하면, 교육에 있어서 플라톤의 이 상기론이 성립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영혼이 먼저 있다고 한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육체는 어떠한가? 그것은 지난 번의 영혼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혼이 가는 세계를 '이데아의 세계' 라고 하는데, 즉 '감각의 세계' 라고 한다는 말이다.
◈ 집을 한 채 지어도 !!
이러한 것을 강하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다음과 같은 것인데, 예를 들어서, 집을 짓는다고 했을 때, 수학과 논리학 있어야 하는데, 즉 설계도가 있어야 집을 지을 수 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물은 어떻게 해야 잘 빠지고, 그래서 배관은 어떻게 연결을 하고, 그런 것들이 다 논리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집이 온통 물바다가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므로 집이 있기 위해서, 만약에 먼저 집을 만드는 형상이 먼저 없다고 하면, 수학이나 논리학과 같은 것은 다 사기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밀레토스 학파의 경우에 구체적인 재료가 우선하기에, 물질이 없는 것은 다 사기라고 했는데, 그런 것은 다 지어낸 것이기에 무시하자는 말이다.
하지만 플라톤은 뭐라고 하는가? "그러면 당신이 집을 지을 때 어떻게 짓는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수학이 어디 물질이 있는가? 수학은 물질이 없는데, 하지만 물질이 없다고 해서 어디 없어야 하는가? 그것은 말도 안 되는데, 특히 수학학원을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말이다. (ㅋㅋ)
뭔가를 할 때는 순서가 있어야 하는데, 그냥 대충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쇠조각을 조립한다고 해서 자동차가 나오고 비행기가 나오는가? 모든 것이 다 논리적으로 순서에 맞게 제대로 조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물질은 후차적인 문제라는 말이다. 논리가 앞서서, 그러한 논리대로 물질을 끼워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 그러니 '영혼'이 있지 아니한가?
그러니 이 '논리' 라는 것은 물질에 속하는 것이 아닌데, 그러면 어디에 속하는가? 정신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신을 관장하는 것은 손도 아니고 머리도 아니고 무엇인가? 그것은 곧 우리 속에 있는 '이성' 인데, 바로 그것을 '영혼'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정신의 영혼(?)' 이라고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지난번에 플로티누스를 강의할 때는 영혼보다 정신이 더 핵심이었는데요?
그것은 각 학파마다 주장하는 것이 다르니 그런 것이고, 지금도 이런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특히 과학자들은 여기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것을 다시 이야기하면 정리가 제대로 안 되니, 플라톤을 계속해서 좀 더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 드디어 신화의 세계가 마무리되는데 !!
이 플라톤에 있어서 무엇이 정리가 되는고 하니, 그 이전에 내려오던 신화가 드디어 정리가 된다는 것이다. 즉 신화에서 플라톤의 철학이 나오는데,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이 신화의 세계에서는 "왜 밤이 있는가?" 라는 것 등을 마구잡이로 물었는데, 지금 사람들은 무서워서(?) 묻지 않는데 말이다.
그렇게 태양이 왜 있고, 밤이 왜 있는지를 물을 때, 그런데 이렇게 묻는다는 것은, 이미 자기가 정리를 해놓고 부족한 부분을 묻는 것인데, 그런데 사람이 움직이는 것은 자기가 정리할 수 없는 혼돈과 감정적인 요소도 마구 들끓는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어려워요?
예를 들어서, 자기가 내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어떻게 하는데, 그런데 낮에 2시부터 3시까지 시간이 빈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에서 전화를 해서 그 빈 시간을 채워 넣는데, 그런데 그만 낮 12시에 교통사고가 나버리면, 그 뒤 스케줄은 모두 깨어져버린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원한 것이 아닌 다른 스케줄이 되고 마는데, 즉 다른 사건이 개입해서 그만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 에이, 재수가 없어 ??
바로 이것을 그들은 신들의 작용으로 보았는데, 물론 현대인들은 건방져서 그것을 신이 그렇게 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냥 "에이, 재수가 없네" 라고 해버리지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재수가 없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생기면 필연으로 보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그것은 논리가 되는데, 그러한 논리를 그 당시 사람들은 신화로 보았다는 것이다.
제가 이전에 강의를 하면서, 신화는 인간 속에 있는 자기가 어떻게 주체할 수 없는 감정적인 것들이라고 했는데, 그런데 사실은 이런 감정적인 것이 우리를 더 좌우한다는 것이다. 즉 "정신차려. 오늘은 이것부터 해야 돼" 라는 것보다도, 오히려 감정적인 것이 더 크게 작용을 한다는 말이다.
◈ 이승엽도 그날 컨디션에 따라서 !!
예를 들어서, 야구를 잘 하려면 배트로 공만 잘 맞추면 되는데, 그런데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해보면 그것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야구를 잘 하려고 하면, 먼저 야구가 좋아야 되고, 아니 야구에 미쳐야 되고, 또한 그렇게 야구선수에 뽑혀야 되고, 그리고 프로야구에 가면 살아남아야 하고 말이다.
바로 그렇게 해서 이승엽이 뽑히고 뽑혔고, 또한 살아남고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야말로 끊임없는 부단한 훈련과 훈련을 통해서 공을 치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 타율이 마구 왔다갔다한다는 것이다. 그날 컨디션에 의해서 말이다.
그러니 완전히 로고스적인데, 자기는 이만큼 훈련을 하고 수련을 쌓았기 때문에 완벽하다고 여겼는데, 하지만 상대방 투수가 그날 따라 너무 컨디션이 좋다고 하면, 자기는 도저히 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실투를 해야 홈런이 나오던지 하지 말이다.
◈ 철학자라면 다 해명을 해주어야 !!
이러한 것들을 다 설명을 해주어야 하는데, 그냥 그렇게 "뭐, 그럴 수도 있지" 라고 하면서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면 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 당시에는 인간의 '주체' 라는 것이 아직 정립되지 않고, 그 주체가 여전히 자연에 묻혀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해명해주지 않으면, 그렇게 인간은 묻혀있으면서도 뭐라고 이야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더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이것을 다 끄집어내어서 과학을 집어놓았기 때문에, 즉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간에 이용만 하면 그만이다" 라고 자신만만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자연 속의 '나'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해명해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제대로 풀리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 질문 -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화적 삶을 살지 않나요? 몇 놈만 그렇게 설치지 말입니다.
◈ 신화가 아닌, 교육에 둘러 쌓여서 !!
물론 그러한데, 나중에 이것이 플라톤의 '국가론'에 보면 나오는데, 현대철학도 역시 그러하고 말이다. 이렇게 개인적인 것이 교육을 많이 받게 되면, 교육에 의해서 둘러 쌓이게 되는데, 과거에는 신화에 의해서 둘러 쌓였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플라톤 이후에는 신화가 아닌 교육인데, 즉 이것이 플라톤에 의하면 로고스와 노모스에 의해서, 즉 이성과 법과 질서에 의해서 새로운 옷이 입혀진다는 것이다.
◈ 이제는 교회도 소용이 없어 !!
그렇게 되면 점점 신화는 달아나 버리고, 동시에 교회에도 다니지 않게 되는데, 왜냐하면 교회도 일종의 신화이니 말이다. 즉 교회도 신의 세계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것은 다 없어져버리고, 거기에는 이성과 법과 자기가 구축한 질서 속에서 공통적 소통이 되는 사람들끼리 따로 모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깨어지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아주 어려운 말인데, '형식구조' 라고 해서, 그렇게 되려고 하면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깨어지기는 깨어지는데, 힘을 찾아서 깨어진다는 것이다. 좀 어렵지요?
◈ 힘을 따라서 깨어지는 인간들 !!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까, 지금 외국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있는데, 그런데 그들이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다 퍼져있다는 것이다. 필리핀 사람들이 이라크로 가고(?), 멕시코 사람들이 미국으로 가고, 알제리 사람들이 프랑스로 가고, 그래서 각 나라에서는 그러한 이주민들을 막으려고 하고 말이다.
과거에 중국 사람들이 일본으로 많이 갔는데, 지금은 한국으로 마구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들이 처음 이주할 때는 밥만 먹여주면 고맙다고 했는데, 그런데 나중에는 어떻게 되는가? 어느 회사에서 월급을 많이 주는지, 그래서 우리나라 안에서도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이주를 한다는 것이다.
◈ 제발, '나'를 감시해주세요 !!
그런데 그렇게 이동을 하게 되면, 이동을 할 때마다 자기 세계를 위한 형식구조가 바뀌는데, 그것이 개인적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모순인데, 무슨 말인고 하니, 그러한 사적인 것이 사적인 것을 만나면 공격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그것을 공적인 치안, 즉 경찰에게 부탁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치안질서를 유지하려고 하면, 곳곳에다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모순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사적인 것을 지키기 위해서 공적인 치안에 요구하는데, 그러니 그것이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지켜달라고 하는데, 그런데 막상 자기도 그들에게 검문을 당한다는 말이다. 즉 "당신도 말썽꾸러기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라는 것이다.
* 질문 - 저도 항상 궁금한 것이,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하는데, 왜 국가가 '나'의 죽음을 담보로 해서 '나'의 돈을 빼앗느냐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치안비용이라는 것인데, 그런데 집사님이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아직까지 철학적인 감정이 남아있기 그러한데, 현대의 법은 그런 철학적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그러한 것에 의해서 발생되는 비용이 경제발전에 저해가 되는지 되지 않는지, 바로 그 한계선까지 올라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벌금이 너무 많아서 경제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하면 그 벌금은 해제가 된다는 것이다. 환경 부담금과 같은 경우에도, 물론 환경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러나 그것이 경제 발전에 큰 부담을 준다면 없애버린다는 말이다.
◈ 세금이 아니면, 공장이전 !!
그렇게 자본주의에서는 그 방법이, 국민에게 세금을 거두는 방법과 외국에다 공장을 세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앞의 것을 내적인 방법이라고 하고 뒤의 것을 외적인 방법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참 어려운 이야기인데 말이다. 그러니 환경에 부담을 많이 주는 공장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하다가 하다가 안 되면 외국에 공장을 세운다는 것이다. 중국에 방직기계를 수출하고, 또한 공장을 세우는 것이 그런 예인데 말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제 아무리 환경적으로 문제가 되고, 또한 자기 몸에 해롭다고 해도, 일단 자기를 비롯해서 가족들이 밥을 먹고서 살아가야 하고, 아이들에게 공부도 시켜야 하니까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중금속이 줄줄 흘러나와도 유치할 수밖에는 없고, 사람들은 거기서 일을 할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 60, 70년대에 우리나라도 역시 그러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 가정에 누나가 있으면, 자기는 학교도 가지 않고 서울에 올라가서 미싱공장에서, 그렇게 하루에 18시간이나 일을 해서라도 자기 남동생만은 대학에 보내곤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가문' 이라는 형식구조, 즉 자기 가정을 지킨다는 형식구조인데, 지금은 이런 형식구조가 깨어지면서 개인적으로 그것으로 흐르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누나가 있어도, 돈을 벌어서 자기가 배낭여행을 가지 남동생의 학비를 대어주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결혼도 가지 않으려고 하는데, 결혼을 하면 '결혼' 이란 형식논리에 얽매이니 말이다. 즉 결혼도 자기가 선택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그런 형식구조를 강요하면서 부모에게 매달리지 않나요?
자식은 부모를 이용하는데, 그것은 아까 말했는데, 옛날에 자연은 말 그대로 자연세계였는데, 그런데 지금의 자연은 자기를 빼고는 다 자연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도 이제는 자연의 일부인데, 자기는 거기에서 독립된 주체이고 말이다. 그러니 주체를 제외한, 그렇게 경계를 지어서 나머지 객체는 모두 자연이라는 것이다.
◈ 결혼도 일종의 선택사항 !!
그렇게 되면 엄마가 왜 있는지 묻지 않는데, 그냥 이용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엄마는 곧 자연이니 말이다. 이것이 점점 더 범위가 넓어져서 결혼도 일종의 선택사항이 되는데, 즉 자기의 형식논리에 힘이 된다 싶으면 같이 살고, 힘이 없어진다 싶으면 헤어지고 말이다.
요즘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세계에 있으니까, 그런 옛날의 형식논리를 가지고 진리라고 우겨대려고 하면, 그것은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혼도 하나의 선택사항으로, 그러다가 힘이 없으면 서로가 돌아서고 마는데 말이다.
* 질문 - 그래도 신화의 세계를 가지고 이성적인 논리세계를 더 강화시키지 않나요?
아무튼 국가관이 형성되면서 신화의 세계가 쇠퇴하고, 그러니 그러한 신화의 세계가 이제 올림푸스 신화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올림푸스 신과 비교가 되는 것이 디오니소스 신인데, 이 디오니소스가 로마신화에서는 '박카스' 라고 하는데, '박카스 축제' 라고 말이다.
◈ 박카스 종교축제에 대해서 !!
그것은 일종의 컬트인데, 여기서 '컬트' 라는 것은 약간의 신비가 가미된 종교단체라는 것이다. 조금은 변태적인 집단이라는 말이다. 그들은 술을 마구 쳐 먹어서 인간의 모든 내면적이고 정신적 고통을 뛰어넘는데, 즉 불안과 걱정과 근심이 있는 이 선을 뛰어넘는데, 그렇게 뛰어넘게 될 때 신이 자기 속에 들어온 것을 '카타르시스' 라고 하는데, '정화' 라고 할까? 아무튼 그렇다는 말이다. 이것은 불교로 말하면 그야말로 해탈과 동일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술을 마시지만, 그러나 박카스 축제에 참석한 그들은 신을 마신다는 것이다. 박카스 신을 말이다. 박카스 드링크를 마시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제약에서 만든 상표치고는 참으로 기가 막히는데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자기들의 신을 마시니, 그들은 아주 진지한 가운데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남자에게는, '여자' 라는 드링크가 ??
그런데 사람이 이렇게 고통으로 벗어나는 것이 어디 술뿐이겠는가? 남자에게는 '여자' 라는 기가 막힌, 절정에 이르게 하는 술이(?) 있는데, 그래서 그러한 여자들이 이방신전마다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을 바로 여사제들인데, 그러한 짓을 구약성경에서는 '음란' 이라고 했다는 말이다. 그것은 다산의 상징인데, 즉 출산드라(?) 라고 말이다.
그러니 다산의 상징이 지금 이렇게 보면 상당히 음란하고 세속적이고 추잡해 보이지만, 그러나 그들은 거룩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여사제들은 거룩한 '성녀(聖女)' 라고 부르는데, 요즘 같으면 수녀들과 같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디오니소스를 통해서 에피쿠로스 학파로 넘어가는가요?
그것하고는 상관이 없는데, 지난번에 이야기를 했는데, 이 디오니소스 종교가 뒤에는 오르페우스 종교로 바뀌었고, 그것을 개혁한 것이 피타고라스 종교라고 말이다. 그 이후에 소크라테스가 나오고, 또 플라톤이 나오고, 그 이후에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가 같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런데 디오니소스와 에피쿠로스 학파가 비슷하지 않나요?
시대적으로도 다르지만, 먼저 디오니소스는 종교이고, 뒤에 에피쿠로스 학파는 철학이기 때문에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쾌락을 추구한다는 면은 같지만, 그러나 디오니소스는 종교의식이기 때문에 아주 진지하다는 것이다. 신과 결합이 될 때만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는 말이다.
디오니소스 축제는 마치 교회의 부흥회와 같다고 할까요? 교회에서는 박수를 치고 때리면서 그렇게 하는데, 디오니소스는 술을 마시면서 진지하게 했다는 것이다. 가수 조영남의 주장도 이와 비슷한데, 술과 여자와 즐기는 것을 더럽다고 하지 않고 정신건강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말이다.
디오니소스는 이렇게 감정적으로 나가는데, 이러한 감정을 이성과 합친 것이 오르페우스 종교이고 말이다. 여기서 피타고라스 종교가 나왔고 말이다. 이들은 다 종교의 교주인데, 철학자라기보다 말이다. 이 디오니소스와 대립이 되어서 국가관에서 나온 올림푸스 종교이고 말이다.
◈ 올림푸스 종교는 땅과 관련이 !!
이 올림푸스 종교는 땅과 관련이 있다고 했는데, 그 땅을 분배한 것을 법이라고 하고 말이다. 그러니 "국가의 법을 지켜야 돼" 라고 하는 것은, "니가 수고한 만큼만 땅을 가져. 더 가지면 안 돼. 더 이상 가지려고 하면 국가에서 가만히 있지 않겠어"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지금은 상공인들이 있고 사업체가 있어서 그렇지, 과거에는 땅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 할 일이 무엇인가? 결국은 땅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요즘도 땅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농경시대에는 땅이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데, 땅이 없는 것은 죽은목숨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 목사도 교회에서 쫓겨나면 '노숙자' !!
그래서 성경에도 보면 "고아와 나그네와 과부를 불쌍히 여겨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들의 공통점은 땅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레위인들도 땅이 없었고 말이다. 그래서 사사기에 그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땅도 집도 없는 목사 신세도 그렇지만 말이다. 교회에서 쫓겨나면 바로 '노숙자' 신세라는 것이다.
그래도 땅이 있다고 하면 자기가 노력만 하면 굶어죽지는 않는데, 세금을 내도 자기 먹을 것은 챙겨놓고 내는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땅이 없으면 그렇게 일을 할 기회조차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땅 때문에 온 나라가 얼마나 난리인가? 땅을 관리하고 지켜야 될 공무원들이 먼저 땅 투기에 앞장서고 말이다.
◈ 착하게 살아서, 점점 하늘나라로 !!
다시 정리하면, 디오니소스 종교에서 그 다음에는 오르페우스 종교로 넘어가고, 그 다음으로 넘어간 것이 바로 피타고라스 종교라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오르페우스 종교에서 피타고라스 종교로 넘어가면서, 여기에서 그들의 종교를 로고스적으로, 즉 이성적으로 정리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감정적인 단계였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리를 했는고 하니, 신과 합일을 해야 하는데, 그 이전에서는 술과 여자로 합일을 했는데, 여기에서는 금욕을 통해서 욕심을 버리면서, 즉 쉽게 말해서 "착하게 살아서, 점차 점차 하늘나라로 가자" 라는 것이다.
◈ 선분의 비유 ??
이것을 '선분의 비유(?)' 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 말하는고 하니, 이 선분의 제일 끝에 신이 있고, 또한 제일 밑바닥에 돌맹이가 있다면, 그 선분마다 점점 신에게 다가가는 단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인간이 신과 단절이 된 것이 아니라, 신과 통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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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분(線分) - 직선 위에서 그 위의 두 점에 한정된 부분. 직선상의 두 점을 A, B라고 할 때 A, B를 양끝으로 하는 선분을 '선분 AB' 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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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그러면 윤회(輪廻)는 무엇인가요?
이 '윤회' 라는 것은, 먼저 '온' 이라는 인간의 집합체가 분해가 되어있는데, 그렇게 분해된 집합체가 있고, 또한 착한 업을 쌓게 되면 다음에 태어날 때 더 나은 동물로 태어나고, 하지만 나쁜 일을 많이 하면 쥐새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아는 그대로 남아있으니, 그것이 뺑뺑이를 도는 것을 곧 '윤회'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아무튼 이 디오니소스는 술과 여자로 올라가는데, 그런데 오르페우스에 오게 되면 이성적으로 정리가 되는데, 즉 금욕을 통해서 신과 합일을 한다는 것이다. 아까 신과 합일하는 것을 '카타르시스' 라고 했는데, 불교의 해탈이란 말이다. 요즘말로 하면 구원이고 말이다. 아무튼 오르페우스와 피타고라스는 금욕에 의해서 드디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 이미 영혼 선재설이 !!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이 신과 합일을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있는가? 그것이 바로 '영혼' 인데, 그러므로 오르페우스와 피타고라스 시대에 이미 영혼 불멸설이, 즉 영혼 선재설이 형성이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피타고라스 종교에 오면 더 정교하게 되는데, 알다시피 피타고라스가 우리에게는 교주보다는 수학자로 알려져 있는데, 바로 이 피타고라스는 '수(數)'로서 그렇게 자기 종교를 정의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숫자로 한다는 것은 '비례'를 의미하는데, 화장실의 비데가 아니고 말이다.
◈ 피타고라스는 '비례'로 아름다움을 !!
그러면 비례가 무엇인가? '1:1', '1:2' 등등인데,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의 '아름다움' 이라는 것은 질서가 있는 비례가 될 때는 항상 뷰티풀하다는 것이다. 그런 아름다움의 비율이 '1:2' 라고 한다면, 그것이 집에 들어가면 아름다운 집이 되고, 우리 몸에 들어가면 에스라인이 되고(?), 아니 건강한 몸이 되고, 행동에 들어가면 착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아름다움의 비율은 우주의 그 어디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겠는가? 되지 않겠는가? 물론 당연히 적용이 되는데, 그러니 이 세상은 정확한 질서의 비례가 될 때, 그때 이 세상은 진정한 유토피가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즉 '이상사회'가 말이다. 그것이 바로 교주 피타고라스가 주장하는 바라는 것이다.
◈ 나는 무리수(無理數)가 싫어 !!
그래서 피타고라스는 어지러운 숫자를 제일 싫어하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이상한 숫자, 즉 '무리수(無理數)' 라는 것이다. 정수와 분수만으로 나타낼 수 없는, 끊어지지 않는 흐지부지한(?) 숫자라는 말이다. 아름다움은 깔끔을 떨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말이다.
그 증거를 '현(絃)'에서 찾는데, 즉 피아노 건반을 눌리면 마디에 따라서 '도레미파솔라시도' 라는 음이 정해지고, 그것이 아름답다 것이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우당탕탕' 두드리면 아름답지 않은데, 그런데 그것을 음계에 따라서 두드리면 듣기에 좋은데, 즉 아름답다는 말이다.
그러니 피타고라스가 하는 말이, 이 세상의 아름다움은 정확한 비례에 따라서 결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름다움 중에서 최고 아름다움은 누구인고 하니까, 바로 '신' 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신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합일이 되지 않으면 인간은 해탈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 이 금욕적인 생활을 플라톤이 수용 !!
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은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아름답게, 아름답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혼란과 무질서를 버려야만 하는데, 그것은 아름답지 못하니 말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금욕적인 생활을 강조하는데, 바로 이것을 플라톤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플라톤이 피타고라스부터 비롯되었다는 말씀인가요?
물론 그러한데, 그렇게 해서 플라톤이 등장하는데, 이제 플라톤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한번 해보자는 말이다. 플라톤은 아까 말한 계파들을 모두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차이점이 무엇인고 하니, 소크라테스는 어디에 주안점이 있는고 하니, 인간의 영혼을 강조했는데, "니 자신을 알라" 라고 말이다. 즉 "니 분수를 알고서 너무 설치지 말라" 라고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정말 소크라테스는 무신론자였나요?
그것은 오해인데, 그 당시 소크라테스가 눈에 가시이니, 그런 죄목을 갖다 붙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땅에 과학적인 사고로 인해서 주체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모두가 유신론이라는 것이다. 세계를 다 살펴보아도 고대에는 무신론이 없다는 것이다. 이슬람 세계는 당연하고, 우리나라의 고조선 시대의 부여, 옥저, 동예 등에도 보면 다 제천행사가 있었고, 모두가 신을 섬겼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신론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 그 당시에 무신론자는 없어 !!
그러니 언제 무신론이 등장하는고 하니, 자기가 신이 되었을 때만 더 이상 신이 필요가 없기 때문에 무신론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자연의 섭리를 파악했다고 착각했을 때부터 말이다. 왜 착각인가? 왜 자기가 죽는지도 모르고, 왜 태양이 있는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냥 이용만 하면서 다 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기 주체가 강조가 되면, 신이 언제 필요하겠는가? 신이 자기에게 이용가치가 있을 때, 즉 신이 힘이 있다고 여길 때만 이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때 신을 믿는데, 그러니 오늘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 신자라고 하는 놈들이 다 신을 이용하기 위해서 신을 믿기 때문에, 그러니 사실 신자라고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종교인에 불과한데, 즉 종교라는 것에 다리를 하나 더 걸치고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소크라테스는 영혼중심이라는 말씀이죠?
물론 당연한데, 자기가 죽는 것도 신의 뜻에 의해서 죽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다시 이야기를 하지만, 신이 있다는 것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 신이 쥐고 있는 주도권을 운명이라고 하는데, 그 운명에 복종할 때 인간은 비로소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토아 학파라는 것이다.
* 질문 - 지난번에는 신 위에 운명이 있다고 했는데, 그러면 새롭게 개념이 바뀌었나요?
방금 제가 말한 신은 운명과 함께 있는 신이고, 그 신에 의한 하급신들이 또 따로 있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이렇게 새롭게 개념적으로 정리가 되었다는 말씀인가요?
그것이 아니고, 그 이전부터 있었다는 말이다. 지금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지금 철학들이 신을 버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은 그렇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철학적으로 따질 때는 따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때는 자연이 신이기 때문에, 운명을 그렇게 위에다 놓는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므로 이렇게 신과 운명을 동일시하는 것은, 그 이전에는 신을 자연으로 보다가 새롭게 변천이 되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지 않다면 신의 위치가 어떻게 되나요?
그렇게 변한 것이 아니라 똑같은데, 계속해서 그대로 간다는 말이다. 그리고 운명과 하나인 신이 있고, 그 밑에 하급신이 있다는 것이다. 이 하급신이 올림푸스 신화 등에 나오는 주인공들(?)이고 말이다. 이러한 신들보다는 운명이 위에 있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처음부터 운명이 신 밑에 있었다는 말씀인가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철학자들은 이러한 관계를 자기들의 철학적 개념으로서 설명을 한다는 말이다. '크세노파세스' 라는 자는 하급신들을 따로 인정하지 않고, 모든 신을 하나로 보았고 말이다. 그리고 운명은 또 하나의 신이 아니라, 신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런데 이전에 4번째인가 강의를 할 때, 운명을 신 위에 놓으셨는데 말입니다.
그것은 하급신들의 집합으로서 이야기할 때, 그런 신들보다는 운명이 위에 있다는 것이다. 이 운명은 하나의 신과 같이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올림푸스 신들을 보면, 그 신들의 대장이 제우스인데, 그런데 이 제우스라도 운명 밑에 있다는 것이다. 혹시 지난번에 강의를 하면서 이런 부분들이 간과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이해하면 된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래도 제가 보면 변천과정이 있는 것 같은데, 목사님은 없다고 하시니, 좀 궁금한데요?
제가 왜 없다고 하는고 하니, 오늘날 철학자들을 보면 딱딱 정리를 하고 지나가는데,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렇게 정리를 해버리면 무신론자로 취급을 당해서 죽는데, 여기서 정리한다는 것은 비판적으로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죽었다는 말이다. 신을 믿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말하는 그런 신을 믿지 않는다고, 즉 하급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든지 해서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운명적 신을 믿었는데, 그래서 자기가 그렇게 사약을 받는 것도 운명이라고 해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자기의 믿음대로 말이다. 그러니 정말로 신을 부정하는 '주체' 라는 것은 과학적인 사고가 생겼을 때 비로소 등장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소크라테스가 이러한 다신론을 차단시킨 것인가요?
물론 그 이전부터 있었는데, 그것을 소크라테스가 정리를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사실은 그 이전에도 정리를 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소크라테스가 그것을 가지고 아테네의 젊은이들에게 소위 산파술로서 설득을 하니, 그들이 동의를 하고, 그래서 사회적으로 동요가 일어나니 권력층에서 소크라테스를 제거해버렸다는 것이다. 사회안정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제자인 플라톤이 기록으로 남겨놓으니 후대에 알려지게 되었고 말이다.
◈ 그 당시는 하급신을 거부하면, 곧 죽음 !!
파르메데스의 경우에는 신을 존재로 보았고, 그러니 전체를 모두 다 포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논은 운동으로 이야기했는데, 그러니 이러한 설명을 왜 하는고 하니, 그런 하급신을 벗어나서, 물론 그것도 맞는데, 하급신이 인간의 감정적인 요소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하급신이 아닌 다른 것으로 한번 표현을 해보자는 것이다. 신 존재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고 말이다.
그렇게 거부하면 바로 죽음인데, 어떻게 죽이는고 하니, "당신이 태양이 있는 이유를 설명해보아라" 라고 하는데, 그것을 누가 답변하겠는가? 그래서 죽여버린다는 것이다. 태양이 있는 이유가 신 때문에 있는 것인데, 그런데 그런 신도 믿지 않으면서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모르면서 까분다고 하면서 그냥 죽여버린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그것이 우리가 잘못 배운 무신론자 소크라테스라는 말씀이지요?
그것을 굳이 잘못 배웠다고 하기보다는, 지금은 이렇게 철학적으로 구분이 되어서 소크라테스는 무신론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 당시는 그렇게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당시에는 무신론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차이점은?
이제 계속해서 하겠는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차이점이 무엇인고 하니까, 소크라테스는 개인적인 영혼에 강조점을 두는데, 즉 "자슥아, 인간이 되어라" 라는 것이다. 신이 어쩌고저쩌고 하기 이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플라톤은 뭐라고 하는고 하니, 국가가 먼저 서야 백성이 제대로 된다는 것이다.
◈ 인간 개인인가? 국가인가?
바로 그 차이점인데, 결코 적지 않은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니 인간이 개인적으로 아무리 제대로 바로 서려고 해도 주위환경이 나쁜 것을 강요한다면,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생깡패가 있는 이유가, 그 학생이 깡패를 만났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즉 깡패에게서 돈을 뺏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니 원래 나빠서 나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자들과 어울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질문 - 소크라테스가 상당히 현대적 감각이 있는 것 같네요?
그러한 면이 있는데, 현대에서 플라톤은 욕을 얻어먹는다는 것이다. 현대는 주체사상이 강하기 때문에 말이다. 플라톤의 국가론은 집단적 사고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전체주의적 사고라는 것이다. 즉 전체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요즘 유행하는 사적이 행복이 공적인 것에 의해서 침범을 당하니, 현대에서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 플라톤의 국가관은, 국가가 먼저 !!
아무튼 이 플라톤의 국가관은, 국가가 먼저 바로 제대로 서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상국가'를 주장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상적이고 멋있는 국가를 어떻게 건설하는가? 그런 국가를 건설하는데 두 종류의 적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신화' 라는 적인데, 그래서 먼저 신화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詩)와 예술에 대해서 상당히 압박을 가하는데,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인간의 감정을 흔들기 때문에 말이다.
◈ 로고스(이성), 노모스(법), 텍시스(질서) !!
그래서 3가지의 법칙을 들고 나오는데, 즉 '로고스(이성)'와 '노모스(법)'와 '텍시스(질서)' 라고 말이다. 그렇게 이성과 법과 질서에 의해서 국가가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성은 신화를 겨냥한 것인데, 신화를 부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아니, '단군신화' 라니 !!
그러니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와 같은 것은 플라톤에 의하면 용납이 되지 않는데, 과거에 일본이 35년 동안 식민지배를 하면서 우리나라를 통치했는데, 그때 단군을 신화라고 보았는데, 그것을 식민사관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지금 기존의 역사학자들이 누구에게 배웠는가? 바로 일제시대에 다 공부한 사람들인데, 그러니 당연히 일본역사학자들에게 배워서 일본의 식민사관을 가지고 있다고 젊은 역사학자들에게 엄청 공격을 당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식민사관에 의하면 단군은 신화라는 것인데, 그러니 믿을만한 것이 되지를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 신화를 빼고 역사를 집어넣어야 하는데, 그렇게 해야 제대로 된 역사라고 하는 것이 바로 식민사관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곰이 사람이 되는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비이성적인 소리를 더 이상 하지 말라는 것이다.
* 질문 - 일본이 군국주의이기 때문에 그렇게 나왔나요?
그러한 군국주의고 제국주의 사회에서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기 때문에, 약한 힘을 가진 사람은 강한 힘을 가지 사람에게 빌어 붙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진국은 요원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신화를 무시해야 근대국가가 되는데, 물론 일본이 그렇게 단군신화를 무시한 것은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부정하려는 의도도 있었고 말이다.
◈ 강한 나라는 약한 나라를 계몽해야 !!
제국주의시대에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할 때는 나름대로의 합리적 논리가 있는데, 힘이 약한 나라는 강한 나라가 지배해서 그들을 계몽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유럽도 그러했고 말이다. 제국주의 자체가 그러한데, 그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에서 나오는데, 아까 자본주의가 내부적으로 압박을 받고, 또 외부적으로 압박을 받는다고 했는데 말이다.
먼저 내부적으로는, 노동자가 생산의 주체이면서도 또한 투쟁의 주체라는 것이다. 그런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많이 주면 소비가 촉진이 되어서 좋은데, 그러나 그러게 하면 자본가들의 이윤이 적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본가들은 임금을 적게 주려고 하는데, 그런데 그렇게 되면 소비촉진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 소비의 촉진을 위해서 식민지 개발에 나섰다는 것이다.
◈ 소비의 촉진을 위해서 식민지 개발에 !!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원리인데, 물론 아직도 이런 원리가 여전히 유효하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반발해서 노동자들이 어떻게 하는가? 나라를 떠나서 이주를 하는데, 즉 "에이, 나에게 이 순간에 무슨 나라가 있고, 민족이 있는가? 지금 배가 고파서 죽겠는데"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지금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등지에 가면 한국국적을 주지 않는다고 난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미국 국적을 따려고 난리이고 말이다. 군대에 가서 쓸데없이 고생하는 것보다도 차라리 국적을 포기하겠다는 말이다.
◈ 국민(nation), 대중(multitude), 인민(people) !!
참고로, 여기서 '국민' 이라는 'nation' 개념과, '대중' 이라는 'multitude' 개념과, '인민' 이라는 'people' 개념이 서로가 다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 이 '국민' 이라는 개념은 20세기초인 근대에 생긴 개념인데, 왜 국민이 없었는고 하니까, 주권이 없어서 그렇다는 말이다. 옛날에 주권은 귀족이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는 말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비로소 생긴 개념이라는 것이다.
◈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 !!
그렇게 해서 국민이 생기니, 이 국민을 인민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그런데 이렇게 국민에서 인민으로 바꾸려고 하면 그냥 알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 '이데올로기'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뭔가 서로가 다 공감을 하는 공통적인 사상이 말이다. 그런 공통적 사상이 있을 때 비로소 인민이 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것을 도와주는 것이 '붉은 악마'이고, '푸른 도깨비(?)' 라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있음으로서, 모래알처럼 흩어졌던 국민들의 마음이 하나로 되는데, 그것을 '헤게모니' 라고 한다는 것이다. 자발적인 복종을 헤게모니라고 하는데, 즉 자발적으로 권위에 복종한다는 것이다. 강제로 복종을 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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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게모니(hegemony) - '패권'은 본래 한 나라의 지배권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오늘에는 일반적으로 한 국가(또는 집단)이 다른 국가(또는 집단)을 지배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정치, 문화, 사상 등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다른 세력을 길들이는 권력이라 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의 활동 등과 관련하여 '정치적 지배'를 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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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이 헤게모니는 문화와 정치적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 아닌가요?
물론 결과적으로는 문화적이지만, 그러나 모든 기초에서 다 자본주의에, 즉 경제에다 그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문화와 정치적 측면을 빼고서도 당연히 사용을 한다는 것이다. '그람시' 라는 사람이 그런 주장을 했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정신세계에서는 어떠한가요?
물론 정신세계는 아닌데, 왜냐하면 현대의 모든 철학은 항상 돈과 물질에 기초해서 나오기에 말이다. 그러니 물질에 기초하는데, 다만 그 형태가 문화적으로 나올 때 헤게모니라고 한다는 것이다. 원래 이 헤게모니의 의미는, '국경을 넘어선 문화적 일치체'를 두고서 부르는 용어인데, 그런데 이것이 기존의 권력자에게 대항의식이 강한데, 모임자체가 말이다. 국경을 뛰어넘었으니 그렇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반면에 이데올로기는 기존의 자본가에 대한 대항의식으로 등장한 것이고 말이다. '레닌' 같은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헤게모니는 그 이후에 나타나는데, 즉 기존의 문화가 다른 문화를 압박할 때, 그렇게 고난을 받는 문화가 힘을 합칠 때, 그때 헤게모니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 본래의 인간은 없어 !!
지금 이렇게 철학을 공부하면서 고대와 현대를 다 아울러서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지금 "본래의 인간은 없다" 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것이 바로 인간이다" 라는 것은 없는데, 그냥 그때그때마다 시대의 조류에 따라서 적응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적응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 야야, 이번 어버이날에 바쁘니 오지 마라 ??
그러니 요즘 같은 산업사회에서,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석유와 같은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나라에서, 수출이 아니면 전혀 먹고 살아갈 길이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수출을 해서, 거기에서 나오는 잉여가치로서 4800만 명이나 먹고 살아가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마당에 어버이날에 찾아오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는 부모가 있다고 하면, 그야말로 퇴출 1순위라는 것이다. 지금은 과거의 농경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부모님을 일일이 다 찾아 뵙다가는 수출품에 크레임이 걸리고 해서 온 나라가 난리가 난다는 것이다.
물론 부모가 자식을 키운다고 먹을 것도 안 먹고, 기저귀도 일일이 다 갈아주고, 그렇게 고생 고생을 했기 때문에 찾아뵈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당연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새벽 5시에 나와서 잔업까지 다하고 밤에 10시에 집에 가는데, 그렇게 해야 수출이 되고 온 나라가 다 먹고서 살아가는데 말이다. 그런데 언제 무슨 수로 시골에 있는 부모님 집을 찾아가느냐는 것이다.
◈ 학생들은 산업 예비군 ??
그러니 지금 집사님과 같은 경우에도, 이 수학학원을 해서 개인적으로 돈을 버는 차원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수학을 제대로 가르쳐서 지식 경쟁력에서 승리하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들은 수학을 제대로 모르고, 설령 안다고 해도 바빠서 안 되니 말이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 집사님도 수출역군인데, 학생들은 산업예비군이고 말이다.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투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IT 산업이 어디 하루아침에 되는가? 수학이나 다른 학문들이 기초가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니 그런 것을 미리 다 준비하고 있다가 공장이 세워지고 하면 뛰어들어서 신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꼭 60, 70년대의 새마을 운동을 연상시키는 말씀을 하시는데요?
그것이 우리나라의 특수한 현상이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개발도상국들의 보편적 현상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아무튼 이 아이들은 수학을 싫어하니, 부모가 볼 때는 환장을 한다는 것이다. 수학을 반드시 해야 하는데 말이다.
* 질문 -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게 만드니 그렇게 되지 않나요?
참 괜찮은 표현인데, '공동의 목표' 라고 말이다. 어떤 개인의 목표가 아닌데, 결코 박정희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박정희의 이데올로기가 우리에게 내면화된 것인데, 결코 박정희가 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살아야 비로소 자기가 산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박정희는 우리로 하여금 더욱 더 주체적인 존재임을 깨닫도록 하기 위한 도구인데(?), 아까 말한 것에 의하면 상기론에 의한 것인데, 인간에게는 이미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 돈이 없으면, 일본과 야구를 해도 '10:0' !!
과거 박정희 시절에는 그 당시의 우리나라의 산업역군이라고 할 수 있는 농부들이 365일 중에서 120일은 마구 놀았다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다른 나라의 사정을 몰랐는데, 그런데 그때 일본은 마구 날아다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본이 우리나라를 얼마나 한심하게 보았는지 모른다는 말이다.
그래서 야구를 해도 10:0으로 마구 지고 말이다. 게임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야구가 정신력으로만 그냥 이기는 것이 아니라, 돈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데 그런 돈이 어디서 생기느냐는 것이다. 일년 중에 120일을 놀아 제끼니 말이다.
◈ 이성과 법과 질서로서 이상국가를 !!
그러니 플라톤이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개인이 아무리 도를 닦는 것도 좋지만, 즉 철학자가 아무리 좋아도, 그 철학자가 철학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즉 생활이든 모든 면에서 안정이 되어야 철학다운 철학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혼란과 모든 무질서를 깨부수어야 하는데, 즉 이성과 법과 질서를 통해서 말이다. 그러면 이 이성과 법과 질서를 어떻게 하는고 하니, 거기에는 순서가 있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런데 아까 목사님께서 플라톤의 국가관을 이야기하면서, 이상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신화 말고 또 뭔가 하나가 더 없애야 한다고 했는데요?
그것은 바로 그 당시 지배자들의 횡포인데, 권력을 철학자적 입장에서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권력이 있을 때 한바탕 챙기자" 라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마치 박철언처럼 말이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완전히 전두환 식인데, 플라톤의 이상국가가 그런 것이란 말입니까?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그러나 여기서는 그것이 아니고, 그렇게 하는 권력의 횡포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이 이상국가를 위해서 제거해야 하는 두 가지가 바로 신화와 그런 권력의 횡포라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있는 한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되풀이되겠지만 말이다.
◈ 무질서함을 국가의 법으로 !!
지금까지 강의한 것이 조금은 엉성했지만(?) 이해가 됩니까? 종교가 등장하면 항상 무질서해진다는 것이다. 그런 무질서함을 막는 것이 바로 국가의 법이라는 말이다. 소크라테스의 경우에, 그 시대에는 국가가 개판이 되고 말았는데, 그렇게 되니 개인적으로 도를 닦는 것밖에 다른 길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라가 무질서해지면 종교도 같이 뜨는데, 왜냐하면 실망감이 팽배해지니 말이다. 그것을 해소하려고 사람들은 종교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라가 안정이 되면 사람들은 교회에 안 나오는데, 경제가 돌아가면 돈을 버는 재미가 솔솔하니 말이다. 그렇게 좋은 나라에 합세해서 어울리기 위해서는 돌을 열심히 벌어야, 그 풍요한 물질을 다 누리고 즐길 수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 위치인고 하니, 이제 국민들이 국가에 기대를 걸만한 시기인데, 그러니 종교가 과거처럼 뜨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은 부동산 투기를 하든지 무엇은 하든지 간에, 아무튼 부지런히 돈을 벌어야 하니, 교회든 절이든 장사가 별로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독재자가 나타나서 나라가 엉망이 되면 다시 종교가 빛을 발하고 말이다. 다음에 그런 독재자가 나타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즉 "야, 말세다" 라고 하면 종교가 뜨고, "아니야. 지금은 진보의 가능성이 있어" 라고 하면 종교는 가라앉고 국가는 뜬다는 것이다.
◈ 국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한 인간의 몸 !!
아무튼 이렇게 국가가 이성과 법과 질서를 통해서 혼란을 바로 잡는데, 거기에는 3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개인적 영혼인데, 그래서 국가를 무엇으로 보았는고 하니, "하늘을 배경으로 한 인간의 몸이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몸의 덩치가 얼마나 크겠는가? 그 거대한 최홍만도 비교가 안 된다는 말이다. 아무튼 국가는 그렇게 거대한 몸과 같다는 것이다.
◈ 정신의 영혼, 용감한 영혼, 정욕의 영혼 !!
그런데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만 인간으로 보았지, 인간의 몸은 일시적인 옷이기 때문에 인간으로는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국가가 거대한 몸이라면, 영혼의 질에 따라서 3개로 나누는데, 첫째는 '정신의 영혼'이고, 둘째가 '용감한 영혼'이고, 셋째가 '정욕의 영혼' 이라는 것이다. 그 이름도 참으로 별난데 말이다.
여기서 정욕의 영혼은 영양보충인데, 즉 배고픔, 생식본능, 성욕 등이 여기에 속한다는 것이다. 가장 동물적인 근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용감한 영혼은 정서적인 것인데, 사람이 먹을 것만 해결해서는 안 되고, 때로는 노래도 불러야 하고, 춤도 좀 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신의 영혼은 아주 냉철하게 이성적인 것이란 말이다. 플라톤은 이렇게 3가지 영혼이 있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 첫째, 소수의 철학자들이 '정신의 영혼' !!
이렇게 국가가 덩치가 큰 몸뚱이리라고 하면, 이러한 국가의 질서가 잡히려고 하면, 곧 이성과 법과 질서에 의해서 말이다. 그렇게 되려고 하면 이 영혼에 따라서 계급이 나누어지는데, 첫 번째인 정신의 영혼의 제일 고위층이 곧 지배계급이 된다는 것이다. 이 지배계층은 '철학자들' 인데, 그 특징이 바로 무리의 숫자가 적다는 것이다. 그러니 소수의 철학자들이 곧 정신의 영혼이라는 말이다.
◈ 둘째, 군인들은 '용감한 영혼' !!
그 다음에 두 번째가 용감한 영혼인데, 바로 이것 때문에 플라톤이 엄청나게 욕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누구인고 하니까, '전투자' 라는 것이다. 전투를 하는 계층인데, 즉 군인이라는 말이다. 이들은 지배자 계층을 보조하는데, 이들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잘 한번 들어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전투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고 하니, 처와 자식과 재산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인 디모데전서에도 이런 내용이 나오는데, 군사는 어디에 얽매이지 않는고 하니,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명의 면류관이 거기서 나오는데, 그래서 사도바울은 결혼도 하지 않고 악마와의 이 영적전쟁에 몰입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플라톤에 의하면 전투를 하는 사람은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낳지 않는가? 그것이 아니라, 국가에서는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을 수 있는 기간을 따로 준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자식을 낳게 되면, 국가에서는 책임을 지고 공동보육을 해주고 말이다.
◈ 나는 내 가족이 좋아 ??
왜 국가에서 나서서 그렇게 하는고 하니, 만약에 개인적으로 하게 되면, 그렇게 해서 가정의 재미를 알게 어떻게 되겠는가? 마누라의 품이 그립고, 또한 자식들의 재롱이 눈에 아롱거리면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활을 하다 재산도 축적이 되어서 "이 정도면 되었다" 라고 싶으면, 당연히 전쟁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에 WBC 야구대회도 병역혜택을 결승전으로 하자는 주장도 있었는데, 이미 4강에 진출해서 병역혜택도 받고 보너스도 챙기고 했으니 더 이상 싸울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6:0'으로 지고 말았는데 말이다.
◈ 전쟁터에서는 악마가 되어야 !!
아무튼 군사가 사유재산이 생기고 하면, 그야말로 이를 악물고 할 때와는 전투를 함에 있어서 확연한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다. 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엄청난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사랑하는 아내가 후방에 있다고 하면 남편으로서 품위를 지키려고 하는데, 그러나 전쟁터에서는 악마가 되지 않으면 승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악마를 좋은 말로 '기계' 라고 할 수가 있는데, 즉 '전쟁기계' 라는 말이다. 이 전쟁기계는 그야말로 피도 없고 눈물도 없는데, 오로지 명령에 따라서 그대로 움직일 뿐이라는 것이다. (터미네이터인가?) 조금이라도 자기 생각을 개입시키면, 그런 사람은 군대에서 쫓겨난다는 것이다. 물론 죽어서 말이다.
◈ 제가 1974년도에 군대에 갈 때만 해도 !!
제가 1974년도에 군에 갈 때만 해도 명령을 듣지 않으면 죽어서 나갔다는 말이다. 그것은 사회에서는 모르는데, 그냥 매를 맞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군대에서 죽는 것은 '전사자' 라고 해서, 비록 상관이 실수로 죽여도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는 말이다. 무슨 시대이기 때문에 그런가? 유명한 전두환 시대이기 때문에, 아니 박정희 시대이니 말이다.
아무튼 군사정권의 시대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군인위주인데, 소위 '군관민(軍官民)' 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그 당시에는 군대에 가면, 부모들은 마음을 졸이고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군에 간 사람도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까라고 하면 까야 되고 말이다. 모든 것을 상급자에게 허락을 받고 해야하는데, 그래서 '사랑은 아무나 하나?' 라는 노래가 거기서 나왔다는 말도 있다는 것이다.
◈ 용감한 영혼, 이근호 ??
그야말로 참으로 암울했던 시대인데, 그래서 저는 지금도 군대를 합법적인 폭력단체라고 보는데, 매일같이 때리고 매일같이 맞았다는 것이다. 맞으면 그것을 그대로 하급자에게 복수하고 말이다. 그렇게 복수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감히 그 복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르는데, 그래서 얻어맞고도 하급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니 한 내무반 안에 전라도 고참이 버티고 있으면 그 기간 동안은 경상도는 벌벌 떠는데, 그런데 그 전라도 고참이 제대를 하고 나면 경상도는 자기 세상이나 된 듯이 그야말로 난리가 난다는 것이다. 물론 강원도는 양쪽에서 다 얻어맞고 말이다.
아무튼 군인은 전투를 하는 기계이기 때문에, 마누라와 자식에 대해서 신경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전쟁터에 가서도 남편의 품위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또한 가족들을 다시 만날 미래를 생각하게 되면 도대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전쟁터에서 몸을 사리게 되는데, 그런데 군인이 그렇게 조심을 하면서 무슨 전투를 하며, 또한 승리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야말로 자기 목숨을 바쳐서, 즉 미친놈이 되어서 마구 설쳐야만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 전투자들을 '용감한 영혼'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 셋째, 농부는 '정욕의 영혼' !!
그리고 세 번째가 무엇인고 하니, 농사꾼이나 제화공이나 대장장이와 같은 생산을 담당하는, 즉 생산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인간의 모든 생활 필수품을 다 제공한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노동자들인데,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는 것이다.
◈ 지혜, 용기, 절제, 정의 !!
바로 이러한 계층들이 있기 위해서 소수의 철학자들이 제일 위에 있는, 마치 피라미드식과도 같은데 말이다. 이 소수의 철학자들은 무엇을 했는고 하니, 덕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 덕이 바로 지혜, 용기, 절제, 정의 등이 여기에 속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플라톤이 이야기하는 국가론의 4가지 덕이라는 것이다. 지혜, 용기, 절제, 정의가 그렇다는 말이다.
현대 철학자들은 이것을 두고 '훈육의 시대' 라고 했는데, 즉 철학자들은 백성들을 가르쳐야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가르치더라고 그냥 하면 안 되고 아까 말한 상기론에 의해서 가르쳐야 하는데, 그런데도 깨닫지 못하는 놈은 영혼이 병들었든지 하기 때문에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상기론에 의하면 처음부터 잠재되어 있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게 잠재된 것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그것을 물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그것은 마치 해가 어디서 왔는지, 그것을 물을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냥 신이 창조한 것인데, 요즘 같으면 자연이 그냥 만들었다는 말이다. 즉 진화론에 의하면, 태양은 하나의 초거성으로서 별의 진화단계라고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자연세계가 스스로 진화하면서 태양도 만들고 달도 만들고 지구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자연세계는 어디에서 나왔는가? 그것은 곧 '빅뱅' 인데, 즉 '빵' 이라는 말이다. 모든 것이 처음에는 다 소립자로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처음의 처음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것은 또 다른 우주에서 온 결과물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N' 차원까지 가는데, 15차원까지 말이다.
◈ 플라톤의 국가론에 현대사회에 어필하는 이유는?
이제 마지막으로 이것만 더하고 마치겠는데, 그러니까 철학자들이 지혜, 용기, 절제, 정의를 가르쳐야 하는데, 그때 무엇으로 가르치는고 하니, 바로 '법'으로 가르친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것이 오늘날의 현대국가에 딱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예를 들어서, 순경이 과속차량을 잡아서 스티커를 발부하고 그냥 보내지 않고 뭐라고 하는가? "다음에는 과속을 하지 말고 조심해서 운전하십시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절제'에 해당이 되는데, 즉 법으로 절제를 가르친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이쿠, 몰랐습니다. 이 도로가 80km가 제한속도인지 말입니다" 라고 하는 것은 '지혜'에 속하고 말이다.
그렇게 가르치는 것을 치안을 담당하는 쪽에서, 즉 그 당시로 하면 철학자나 전투자가 하는데, 그런데 가르치는 경찰이 걸리면 어떻게 되는가? 더 혹독한 처벌이 따른다는 말이다. 그래서 음주운전을 하면 일반회사보다는 공무원들이 더 징벌이 가혹하다는 것이다. 걸리면 승진에 제한을 받고 말이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이것이 플라톤의 국가론과 똑같다는 것이다. 목적은 정의로움, 즉 사회정의라는 말이다.
◈ 세상이 선하면 선할 수록 유토피아에 가까워 !!
그래서 플라톤은 신의 세계인 이데아의 세계는 선한 세계이기 때문에, 즉 신은 선하고 단일체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은 선하고 다양한 체제이고 말이다. 그러니 이 세상이 정의롭고 선하면 선할 수록 더욱 더 유토피아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플라톤의 그 유명한 '국가론' 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플라톤의 국가론이 나중 중세시대에 로마제국에 이어서 어디에 연결이 되는고 하니, 중세의 카톨릭과 결합이 된다는 것이다. 그때는 물론 철학자가 아니라 교회의 성직자들이 가르쳤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살펴보면, "아하, 역사가 그렇게 흘러갔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인간들이 이 땅에서 별의 별 짓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저 천국에 가려고 온갖 아이디어를 다 짜내어 보지만, 그러나 하늘나라에는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밖에는 그 길이 없는데, 그것은 전혀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주님이 참된 왕이신 참된 국가를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