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우진
교통평론가
철도기관사는 매우 특이한 직업이다. 철도운수업 자체가 우리 사회적으로도 특이한 사업이지만 그 중에서도 기관사라는 직업은 더욱 특이하다. 일단 기관사들은 교번근무제라는 특이한 근무체계를 따른다. 규칙적인 일근, 그나마 규칙적인 교대근무와 달리 교번근무제는 열차의 행로에 따라 계속 출퇴근 시간이 달라져서 적응이 제일 어렵다.
혼자 일하는 것도 특이한 부분이다. 팀으로 운영되는 항공기나 선박의 조종과 달리, 도시철도는 오로지 기관사 혼자서 운행한다. 1인 승무의 경우 차장의 도움조차 받을 수 없다. 기관사 1인이 수송하는 승객수도 압도적이다. 버스 기사는 수십 명, 항공기 조종사는 많아야 수백 명 정도이지만, 혼잡한 도시철도를 운전하는 기관사는 혼자서 2000명 이상을 담당하기도 한다. 8량 1편성 전동차의 혼잡도가 100%일 때, 정원은 1256명이고, 180%일 때는 2261명이다.
특별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일단 기관사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하는 것도 어려운 점이다. 철도 차량에 문제가 생기면 기관사는 일단 밖으로 나가 차량을 손본다. 추월이 불가능한 철도의 특성상 그 자리에 서서 정비사를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누군가 철도차량 앞으로 뛰어들어 자살을 한 경우, 그 시신은 기관사가 제일 먼저 손으로 치워야 한다.
철도의 생명인 정확성도 기관사들의 손끝에서 나온다. 철도운수업과 제조업을 비교해보면 영업이나 마케팅은 동일하지만, 제조업이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어내는데 비해 철도운수업은 선로와 차량을 가지고 운수서비스를 만들어낸다.
재고라는 여유가 있는 제품과 달리 운수서비스에는 여유가 전혀 없다. 운행이 중단되면 곧바로 손실로 이어지며, 잘못된 운수서비스는 일말의 지체도 없이 고객에게 전달된다. 이렇게 칼날 끝 같이 아슬아슬한 현장에서 끊임없이 운수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바로 기관사들이다.
흔히 1차원인 선 위에서 전진과 정지만 하면 되는데 기관사가 뭐가 어렵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두운 터널에서 혼자서 일하면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운수서비스를 만들어내며, 그와 동시에 수많은 사람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기관사의 업무의 진정한 어려움인 것이다.
이러한 기관사들의 어려움 덕분에 기관사들은 철도운수업 최고의 현장 전문가들이다. 운전뿐만 아니라 차량, 궤도 등 다방면을 꿰뚫고 있으며 관제사, 운전계획 수립 등을 하려면 기관사 경력 없이는 어렵다. 심지어 서울지하철 9호선을 위탁 운영하는 외국계 회사는 사장이 기관사 출신이다.
결국 젊은 철도동호인들을 비롯하여 철도 업계 진출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관사를 꿈꾸고 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울러 도시철도의 무인운전화와 기관사 면허 제도의 도입은 기관사 업무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신규 도시철도의 무인운전화로 기관사 수요가 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일단 무인운전이 불가능한 광역전철 노선이 꾸준히 늘고 있으며, 신규 도시철도가 무인운전을 한다고 해도 비상요원으로서 기관사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래서 요즘 철도운수회사에 입사할 때는 기관사 직종으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철도운전면허가 필요해지는 추세다. 철도운수사 입장에서도 동일 조건이라면 기관사 면허를 가진 사람을 뽑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면허가 있는 사람들은 철도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있으며, 유사시에 비상요원으로 쓰기 편리하다.
앞으로는 철도운수사의 역무원은 물론이고, 기획홍보나 재경 같은 분야를 지원하더라도 기관사 면허가 있는 사람들이 더 유리해질 것이다. 바야흐로 철도운전면허가 철도운수회사 입사를 위한 기본자격증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기관사란 철도운수회사를 대표할 만한 직종이다. 기관사들은 철도회사의 서비스수준을 직접적으로 결정하는 자리에 있으며, 어려운 환경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 이러한 기관사들의 노고 덕분에 시민들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철도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철도산업정보센터 http://www.kr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