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여류작가 루이즈 페니(1958~ )의 데뷔작(48세 때)이며
가마슈 경감 시리즈물 1탄이다.
배경은 캐나다의 프랑스마을인 퀴백의 스리파인즈 마을. 이 한가로운 시골마을의 단풍나무 숲에서 칠순이 넘은 할머니 제인 닐이 숨진 채로 발견된다.
몬트리올 경시청의 아르망 가마슈 경감이 수사책임자로 파견된다. 살인도구는 재래식화살촉으로 밝혀진다. 사냥철인지라 처음엔 이구동성으로 외부 사냥꾼에 의한 오발사고사라고 추측하지만, 부검결과 조준에 의한 계획살인임이 밝혀진다.
수십 년간 범죄하고는 담을 싼 시골마을인데다 훌륭한 성품의 제인 닐이 동네주민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점에 사람들은 더욱 충격에 빠진다.
제인 닐은 존경받는 마을의 학교선생님이셨고, 평생을 싱글로 살았으며, 아마추어화가로서 평생 그림을 즐겨 그렸지만 단한 번도 자신의 작품을 남에게 공개하지 않는 미스터리한 측면도 있는 노인이었다. 마침 다가올 마을축제에 [박람회 날]이라는 제인 닐의 논쟁적인(?) 작품이 처음으로 공개될 예정이어서 그녀는 들뜬 기분이었다.
누가...왜...이 친절한 노인을 죽였을까?
가마슈경감은 제인 닐의 딸 같은 친구인 화가 ‘클라라’의 도움을 받으며 살인동기가 있을만한 주변사람들을 한명씩 수사한다. 제인 닐을 포함하여 평온한 것만 같았던 마을 구성원들의 사적 비밀들(과거와 현재)이 드러난다. 가난한 예술가부부, 게이커플, 사춘기아들 때문에 몸살을 앓는 부모, 오랜 친구간의 애증, 실패한사랑, 마더컴플렉스, 금전문제 등등 다양한 상처와 딜레마들!
느와르소설, 범죄소설, 심리서스펜스 소설류를 주로 읽다가 오랜만에 읽은 ‘후던잇’류의 코지미스터리다.
퍼즐미스터리에만 주력하지는 않고, 다양한 인물의 심리와 관계에 공력을 많이 쏟았다. “캐릭터 중심의 퍼즐미스터리”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클래식 코지미스터리의 클리셰를 극복해보려는 노력이라 생각한다.
시리즈물로 기획한 거라면 공간과 인물에 대한 설명도 첫 작품에서 필요했을 것이다.
제1장 첫 문장부터 제인 닐의 죽음으로 바로 시작하는데,
이야기는 사건해결 위주의 일직선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 중의적인제목 [스틸라이프(still life)]처럼 이방인인 가마슈 경감이 정물화에 그려진 스리파인즈 사람들의 정체된 일상을 천천히 감상하듯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탐문수사를 한다.
그 과정에서 위대한 작가들(오스카와일드, W.H.오든)이 인용되고, 마을의 역사, 인생의 의미, 상실, 존재, 악, 비겁함 등 다양한 비중 있는 주제들이 논의된다. 마을특성상 다양한 불어표현들도 활용되면서 작품에 고상함과 잔재미도 부여한다. 미스터리로만 이 작품을 읽게 되면 당연 마음이 조급해질 것이다. 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거야? 두 번째 살인은?
하지만, 중반을 넘어가면서 클래식미스터리(퍼즐미스터리)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클라이맥스까지 궁금증을 유발시키며 몰입 도는 확 올라간다.
[스틸라이프]는 많은 데뷔작이 그렇듯이 두 마리 토끼(상업성과 예술성)를 잡고 싶은 작가의 야심과 과욕이 구석구석 보인다. 시인과 화가들이 살고 있는 스리파인즈 마을의 면모, 위대한 작가들의 인용, 시를 읊는 가마슈 경감과 전직 심리치료사인 흑인 ‘머나랜더스’(서점『네프 에 위자제;새책과 헌책』운영)와의 인생과 상실 등에 대한 토론 등 미스터리 장르소설을 넘어서는 문학작품으로 인증 받으려는 작가의 예술적 자의식이 표출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일정부분 성공했다. 다층적인 책읽기와 해석이 가능한 수준 있는 미스터리 작품이 탄생했다.
가마슈경감은 대도시의 경찰이기보다는 고전적 탐정에 가까워보인다.
인내와 배려심이 있고, 해박한 지식과 예술적 심미안도 뛰어난 인물이다.
P.D.제임스의 아담 달그리시 경감을 의식하고 만든 인물인 듯 보인다.
(부관인 보부와르와의 관계나 시를 좋아하는 공통점)
추리역사상 위대한 탐정(경감)들과 비교하면 2005년 데뷔한 탐정치고는 캐릭터가 약하다. 하지만, 벌써 6편의 가마슈경감 시리즈가 나왔다니,
10년을 함께한 부관인 보부와르 경위, 독불장군 신참여형사인 니콜, 라코스트 형사 등과 함께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다.
책 뒤에 있는 해설에 보면 루이즈 페니가 애거서 크리스티를 계승하는 현대 코지미스터리의 최전선이라고 하는 데 이견은 없다.
하지만, 이런 장르를 읽으면 서의 불만은 리얼리티의 부재다. 독자가 수사관이라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을 의도적으로 지연하는 것은 부당하다.
중요한 컨셉이기에 이해는 가지만 현실적으로 피해자의 집 수색을 그렇게나 늦게 할 수 있을까?
※ [스틸라이프]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낯익다 생각했는데...지아장커 감독의 영화가 있었다. 하지만 루이즈페니의 소설 제목이 먼저다. 그런데, 페니보다 먼저 같은 제목으로 쓴 ‘이케자와 나쓰키’의 일본소설이 또 있었다.
※※ 제인 닐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첫 페이지를 읽으면서 두 편의 영화가 생각났다. 히치콕감독의 코지미스터리 [해리의 소동, 1955]과 빌리와일더 감독의 죽은 자의 플래쉬백 구조가 인상적인 [선셋 대로, 1950]다. 그러면서 읽다보니, 그 많은 배우 중에서 ‘글로리아 스완슨’이 언급된 것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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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번역과 세심한 주석이 훌륭하다.
첫댓글 흥미로운데요. 읽어보겠습니다. 제가 이 카페를 오래전 누군가의 추천으로 가입한 듯 한데... 박찬욱 감독님이셨나... 아마도 그럴겁니다. 게시판 이곳 저곳을 둘러보니 스릴러 영화에 상당히 식견이 높으신 분 같습니다. 이제 종종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