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회암스님
작성일:2000.7.19(수) 00:46
[불교의 세계관] 일체개공
(3) 일체개공(一切皆空)
제행무상이 우리에게 사사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라는 것이
한 번 지어지면 다시는 고칠 수 없는 건물처럼 "꼼짝없이 되어있는 대로
살아야 하는 것 " 이 아니라 언제던지 마음만 내키면 "나에게 맞도록 처음
부터 다시 지을 수 있는 집" 과 같다는 것이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마음에 따라 알맞도록 고쳐나갈수가 있
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세계하고 하는 것이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
인 것이다.
열반경(涅槃經)에 "나는 아주 깊은 지혜로 온갖 세계의 산하대지와 삼라
만상을 두루 관찰했는 바 일체의 존재현상이란 절대로 공적(空寂)할 뿐
이어서 허공의 모양과 다를바가 없었다. 온갖 존재들의 이름과 그 존재에
대한 생각이 있을수가 없으니 모든 존재의 실체가 공(空 /Sunys)이므로
관계가 끊어진 까닭이다. 일체가 평등하여 차별을 지을수가 없으니 이것
이라고 할만한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물질도 중생도 시간도 없으며
생겨남도 멸함도 없어서 온갖 양상이 끊어져 하나도 존재함이 없었다.
대저 법의 진실한 성품의 본질이 이와 같았나니라"
제행무상일체공(諸行無常一切空) 모든 존재는 무상하여 공의 무늬에 불과
하다.
즉시여래대원각(卽是如來大圓覺) 이것이 부처님의 모자람이 없는 깨달음
이다.
약장망어광중생(若將妄語 衆生) 만약에 이것이 중생을 속이는 것이라면
자초발설진사겁(自招拔舌塵沙劫) 한량없는 지옥의 고통을 스스로 맞으리라.
공(空 /Sunys)이란 무엇인가? 물질이 분해되어 먼지처럼 작아져서 창문
으로 스며드는 햇살속에 보일 듯 말 듯이 떠 다니는 크기를 일광진(光塵)
이라고 하였다.
<일광진의 7분의 1을> 우모진(牛毛塵) <우모진의 7분의 1을 >을 양모진
(羊毛塵) <양모진의 7분의 1>을 토모진(土毛塵) <토모진의 7분의 1>을
수진(水塵) 1 수진의 7분의 1을 1금진(金塵)이라 하는데 <금진>이란 금속
사이를 마음대로 통과할 수 있는 크기이며 <1 금진의 7분의 1>이면 극미
(極微)이며 극미는 물질 중에서 가장 <작은 것>으로서 극미진이하의 상태
를 공(空 /Sunys) 이라고 하였다.
일체존재는 그러한 공(空 /Sunys) 이라는 바다에서 일어나는 물결의 무늬에
불과한 것이다. 그곳에는 물질이라고 부를 어떤것도 없는 세계이다.
<있다고 볼 수도 없고 없다고 볼 수도 없는> 상태이다. 일체의 존재는 모두가
이곳에서 나오며 또한 이곳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이러한 공(空 /Sunys)의
상태는 있다고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존재한다고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없다고도 할 수가 없다. 일체의 존재가 이곳으로부터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있다고 할까 아니, 한결같은 모습이 텅 비어 (空) 있고,
없다고 할까 아니, 만물(萬物)이 다 이로부터 나오네,
크다고 할까 아니, 어느 구석진 곳에도 들어가지 못함이 없고,
작다고 할까 아니, 아무리 큰 것이라도 감싸지 못함이 없다.
(Na' ga' rjuna 龍樹 Awakeing of Faith in the Ma' haya' na 大乘)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신비주의(神秘主義)라고 불리웠던 붓다의
이와같은 견해는 금세기 초에 물리학자들이 원자적 실재를 새롭게 경험함으로
서 이제까지 아주 분명한 것으로 되어 있던 세계관의 기초가 근본적으로 동요
하지 않을 수 없는 놀라운 체험에 의해 증명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가리켜
일본의 저명한 불교학자인 스스끼 다이세쓰는 "경험의 모든 표준형태를 모조리
뒤엎는 인간의 의식영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사건" 이라고
표현하였다.
The Essence if Buddhism & (Hozokan Kyoto Japan 1968) p 7
하이젠 베르크는 "현대물리학의 최근의 발전에 대한 격렬한 반응은 물리학의
기초가 여기에서 동요하기 시작하였고 이 동요로 해서 과학의 토대가 송두리
째 와해될 것이라는 느낌을 주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만 이해될 수가 있다"
고 하였으며 아인슈타인은 그의 자서전에서 "물리학의 이론적 토대를 이러한
새로운 방식의 인식논에 적응시키려고 했던 나의 모든 시도는 완전히 실패
하였다. 그것은 마치 지반이 밑에서 떨어져 나갔으며 어느 곳에도 근거를
가질만한 간단한 기반조차 보이지 않는 암흑의 심연같은 놀라운 충격이었다"
고 언표하였다.
W.Heisenberg Physics and Philosophy (Allen & Unwin London 1963) p145
P.A. Schilpp (ed) Albert Einstein : Philosopher-Scientst (The Library) of
Living Philosophers, Evanston Illinois 1949) p 45에서
현대물리학에서는 물질의 최소단위인 분자(molecune)를 <눈으로 보려>고
한다면 <야구공이 지구만큼 확대되면 <포도 한알>정도의 크기로 보여 질 것
이라고 한다. 분자는 또 원자(atom)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한 개의
분자가 17층 높이의 빌딩만큼 확대될 경우 원자는 맛소금 한알크기로 보여질
것이라고 한다. 뉴턴(Sir Isaac Newton)에 의하여 세워진 물리학의 체계는
이러한 원자는 더는 쪼개질수 없는 알갱이로서 절대불변의 실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물리학의 발전은 이러한 원자(原子)가 더 이상은 분해될 수 없는
알맹이가 아니라 원자 역시 소립자(素粒子)로 분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소립자의 세계로서 이것은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는" 이상한 현상이어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는 상태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소립자의 세계를 물리학에서는 장(場)
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장은 불교에 있어서의 공(空 /Sunys)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서 동일한 것이다.
성불모반야경(聖佛母般若經)에 "오온의 자성이 다 공(空 /Sunys)한 것이다.
존재의 실상이란 곧 공이며 공이 존재의 일체 현상이다. 그러므로 공이 즉
존재자체와 같은 것이며 존재한다는 것이 곧 공(空 /Sunys)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받아들이고 (受), 생각하고 (思), 행동하는 것도(行),
생각하는 그 자체(識)가 알맹이가 없는 것이다. 모든 사물이 이러해서
생겨지는 것도 없고 멸해지는 것도 없으며 더러움도 없고 청정함도 없으며
늘어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것도 없다."
존재하는 사물의 현상에 대하여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은 "우리들은
물질이라는 것을 장(場)이 극도로 강하게 집중된 공간의 영역들에 의하여
성립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일정한 공간의 영역에 집중(集中)
되는 입자(粒子)의 집중량(集中量)이 극대화되면 물질이 되며, 극소화된
상태는 비 물질로 나누어 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새로운 물리학에서는
<장> 과 <물질>이 따로 존재하는 영역은 있을 수 없다. 장(場)이 곧
유일(唯一)한 실재(實在)이기 때문이다."
M. Cap다 The Philosophicat of Contemporary Physics (D. Van
Nostrand Princeton New Jersey 1961) p319
" 사물의 존재란 장(場)에 입자가 집중된 상태이므로 장(場)이 곧 실재이며
이것이라고 할만한 존재는 없다. " 라는 아인슈타인의 견해는 붓다가
설하신 반야심경(般若心經)의 "공(空 /Sunys)이란 존재와 다르지 않고 존재한
다는 것은 공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존재가 곧 공이며
공(空 /Sunys)이 즉 존재자체인 것이다".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般若心經) 과 같은 것이다.
Prajna- Para(Oxford University Press London 1890) vol XLLX Buddhist
mita- hridaya Sutra in F. M. Muller (ed) Sacred Books
(Oxford University Press London 1890) vol XLLX Buddhist
지금까지 발견된 은하계의 숫자는 약 일조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한 은하마다 태양처럼 빛을 내는 약 이천억개의 항성이 존재한다고
한다. 태양의 질량은 지구보다 약 삼십 만배나 된다. 이러한 우주의 존재
현상이란 단지 현대물리학이 말하는 장(場)과 불교철학 이 말하는 공(空)
이 만들어 낸 것이며 그것은 "물질이라고 볼 수도 없고 물질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입자(粒子)들의 량(量)" 이 "한곳에 극도로 집중되어
있는 상태" 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한 은하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우주공간이란 것도 단순한 무(無)의 상태가 아니라 "입자들의 집중이
희박한 상태" 여서 존재와 비존재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는 "물리의 혁명적 사고인 원자물리학의
발견에 의하여 설명되어지고 있는 이러한 이론들은 본질적으로 생소한
것이거나 전대 미문의 것이거나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우리
문화사(文化史)속에서도 하나의 맥락을 가지고 찾아 지는 것이며 불교
속에서는 더 중요한 중심적위치를 점(占) 했던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옛 지혜의 예증(例證)이자 그것의 장려(奬勵)이며,
또한 그것을 한층 더 갈고 다듬는 일이다."
Robert Oppenheimer science and the Common Understanding
(Oxford University Press London 1954) pp8-9 참조
입법계체성경(入法界體性經)에 "온갖 사물은 있는 것이 아니어서 있다고
한다면 이름만이 있을 뿐이다 " 하였고 화엄경(華嚴經)에 "존재의 진실한
본성은 원래가 공(Sunya)한 것이어서 이렇다할 양상이 없으니 허공과
같아서 분별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여러 가지 집착하는 생각을 초월
하고 말할 길이 끊어진 상태여서 진실하고 평등하며 언제나 청정한
것이다. 모든 사물의 진실한 성품은 항상 공적하여 그중의 어느
하나라도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린잔 로이 박사는 "19세기 전반은 완전히 물질(物質) 물량(物量)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지배하였다 누구도 이 원리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으며 과학자들은 그들 원리가 <창조의 지배적 요소> 이며
우주의 <근원적 체계>를 구성(構成)한다고 공언하였다. 하지만 19세기
말이 되자 J.J 톰프슨과 그의 제자들이 원자(原字)를 부수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그 원자(原字)는 조각조각 붕괴되어 버렸다. 그리고 붕괴물
(崩壞物)은 동일한 마이너스의 전하(電荷)를 띤 양자(陽子)와 전자
(電子)로 분해되어 버린 것이다. <일정불변의 질량> 이라는 개념은
영구이 내어 버려지게 된 것이다. 20세기에는 물질이 시시각각으로
소멸되고 있다고 말한 붓다의 무상(無常)이 확인된 것이다. 과학은
우주의 생성과정이 집합 분해 재집합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현대과학의 흐름은 궁극적 본질, 에고의 통일과 다양성으로 향해 있으
며 불교의 무상(無常) 무아(無我)를 반영시키고 있는 것이다.
헤르만 바일(Hermann Weyl)도 "물질의 <장> 이론에 의하면 -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은 입자가 엄청나게 높게 집중되어 있는 전기장
(電氣場)의 영역에 불과하다. 이것은 큰 에너지가 매우 좁은 공간에
결집되어 있는 것을 뜻한다. - 그러한 에너지의 마디는 결코 남아
있는 장(場)과 뚜렷하게 윤곽을 지울 수 없으며, 호수의 표면을 가로
질러 가는 파도와 같이 빈 공간을 통하여 전파되어 나아간다.
전자를 언제나 구성하고 있는 단일한 통일체 같은 것은 없다"
(Hermann Weyl - Chandogya Upanishad 3,14,1)
화엄경(華嚴經)에 "세상의 진상을 남김없이 알고 보면 그것이 가명
(假名)일 뿐 실체(實體)가 없는 것임을 알게된다. 기실 중생과 세계는
꿈같고 아지랑이와 같으며 그림자 같은 것이다. 모든 사물 자체가
공(Sunya) 자체이니 부처님의 경계도 그러하며 내지는 어느 사물이라
고 할지라도 공(Sunya) 에 있어서 생겨남도 없고 멸하는 것도 있을수
가 없다. 공(Sunya)의 성품을 샅샅이 이해하고 보면 이름지을 아무
것도 없음으로 존재하는 세계가 없음을 알게 될것이다."
사물의 궁극적 실체인 공(Sunya)의 상태는 그 스스로 이것이라고
할만한 것이 전혀 없어서 스스로는 고요하되 무엇을 만나게 되면
즉시 계합하여 만상을 생성시킨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공(空)이라
는 것이 있기 때문에, 일체의 존재가 성립하는 것이다. 만약에 공(空)
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을 가진 절대의 무(無)라고 할 것 같으면
일체의 존재는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유공의고(以有空義故) 공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체법득성(一切法得成) 일체의 존재가 이루어 질수가 있는 것이다.
약무공의자(若無空義者) 일체의 존재는 생겨날 수가 없는 것이다.
<공>의 세계는 무(無)와는 다른 것이다. <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인바 제로(0)는 아무리 많이 모아 놓아도 <제로>이다. 공(空)이
라는 것은 범어(梵語)의 수냐(Sunya)로서 부풀어오르는 성질을 가진
그러나 인식할 수는 없는 그 무엇이라는 뜻이다. 팽창하는 것이므로
속이 텅 비어서 알맹이가 없다. 없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수냐>를 텅 빈 - 공허(all empty)라고 번역한 것은
F. 막스 뮬러인데 <그>는 이것을 아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서
없다는 무(無)로 해석토록 하는 오해를 불러 일으켰지만 공은 무와
는 다른 것이다.
진여(眞如)라는 말은 <공>의 어원인 Sunya를 한자로 뜻으로 옮긴
것이다. 그것은 나타낼 수 없이 없다고도 할수 없으나 - 모든 존재가
이것으로부터 생성되어 나오는 것이다.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실체
가 곧 공(空)이라는 것은 공(空)이 어떠한 원인이 주어지면 그것과
결합하여 무엇을 생성하게 하지만 그 자체는 있음과 없음을 초월
한 어떤 존재인 것이다.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존재의 실상은 본래부터 적멸
(寂滅)하여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如境) 지혜로 느낄수 있을 뿐 말할
경계가 아니다.
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 진리의 본체는 지극히 깊고 미
묘 하여
불수자성연성(不守自性隨緣成) 스스로 고요하되 인연을 따라
형태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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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2.1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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