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봉산 산행기
서울건축사등산동호회 7월 정기 산행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하다 날씨를 살피며 밖을 보니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하지만 망설이지 않고 우중 산행을 각오하고 나섰다. 아니 모처럼 우중산행을 체험하고자 했다. 백두대간 종주 때는 산행중 비를 맞는 일이 더러 있었다. 그리고 육십령에서 덕유산을 오르는 구간에서는 주룩주룩 내리는 빗길을 시작했었다. 이런 때 산행을 하다보면 색다른 기후속의 특별한 자연의 느낌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백두대간 종주때 혼자 하루에 50km를 걷던날 오후 옛 대관령 휴게소로 향하고 있던 밤에 세차게 쏟아지는 비로 바로 앞 길을 분간하기 어려웠을때는 정말로 큰 위기의식을 가졌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 상황을 체험하고 난 후로는 오히려 비가오건 눈이 오건 일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강촌역에서 10시 집결하기로 되어 있어 경춘선 전철을 타기 위해 상봉역으로 갔다. 플랫폼에 오르다보니 회원들이 이심전심 모여들어서 아홉분을 만나 8시 37분 출발했다. 다음 전차에 6명, Itx 청춘 열차로 2명, 자가용으로 3명이 더 올 거라고 했다.
차가 달리고 있는 경춘선 인근 강변에 위치한 청평, 강촌 등은 대학생이 되어 가는 단골 MT 코스였다. 그래서 이 차에 탄 사람들도 모두 젊은 시절 낭만과 추억이 떠오를만한 곳이다. 나도 한번쯤 다녀갔지만 별로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시절이 그립게 느껴졌다. 내가 그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불쑥 배낭을 열고 오미자 술을 꺼내어 “경춘선 기차를 타고 가면서 술도 안 마시느냐”고 하면서 종이컵에 조금씩 부어 술을 맛보게 하니 평소 술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웬일이냐고 했다.
특별한 인연이 없었던 이 곳은 2002년 남이섬 문학촌 설계와 2009년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풀코스 완주, 그리고 강원대학의 인증실사로 몇일 머물면서 더 친밀하게 다가오게 되었다.
비가 세차게 내리다 부슬비로 변하다 하기를 반복했다. 북한강 강물이 많이 불어 있었다. 철로와 함께 달리고 있는 북한강의 발원지는 금강산이다. 금강산에서 갈라져 나온 한북정맥과 태백산맥 사이의 유역을 흐르는 금강천이 북한강의 최상류 지역인데, 그 물길이 철원에서 금성천과 만나 합류한 지점부터 북한강으로 불린다. 그리고 그것이 화천군을 거쳐 춘천에서 소양강과 만나면 대하의 면모를 지니게 된다. 이 강은 서쪽으로 흐르며 다시 홍천강과 조종천 물길이 협쳐진후 양수리에 남한강과 합류해 한강을 이루고 서해로 빠져나간다.
강촌은 행정구역상 춘천에 속하는데, 춘천은 흔히 물의 도시, 또는 호반의 도시로 불린다. 북한강이 흐를 뿐 아니라 소양강 댐 등 그 물길을 군데군데 막아 댐을 만들면서 너른 호반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물놀이 공간이 많고 풍부한 수경관을 만날 수 있다. 춘천은 국토의 동서 방향으로 볼 때 중간지점에 해당한다. 서울에서 강원도로 깊숙이 들어온 것 같지만 그래도 깊은 산지에 들어서지는 못한, 큰 산지의 언저리쯤에 해당한다.
9시 55분 강촌역에 도착했다.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광장 쪽 역사 포치 아래서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리다 모두 도착해 10시 20분 산행을 시작했다. 내린 비로 역 광장 바닥에 얕은 물살이 생겼다. 옆을 보니 박기호 건축사는 신발에 물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려고 신발에 검은 비닐봉지를 감싸놓고 있었다.
산행중 가장 곤란한 일의 하나가 바로 빗길을 걷다 신발에 물이 들어차는 것이라,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째내기도 한다. 나도 대간종주때 발목에 비닐을 두르고 테이프로 고정해 걸은 적이 있는데 조금 가다보니 마찬가지였다.
도로를 건너 들머리 이정표를 지났다. 총무가 바로 옆 건물이 뒤풀이 식당이라고 했다. 거기서 강선봉이 1.3km, 검봉산이 3.6km 거리였다. 먼저 오를 강선봉은 높이는 높지 않지만 경사가 급해 힘든 코스로 알려져 있다. 농가가 띄엄띄엄 놓인 마을길을 오르다 보니 토마토, 고추 등 밭작물들에 주렁주렁 열매가 달려 있었다. 잠시 뒤돌아보니 지나온 강촌역이 물길과 어우러져 보였다. 가까이서 보면 상업가로 모습이지만 입지는 역시 깊은 산골지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미에서 두 명이 안주를 사러 갔다 온다고 하며 다시 내려갔다.
마을을 벗어나 조금 어둑해진 산길로 접어들었다. 비에 젖은 나무줄기가 석탄처럼 검은 빛깔을 띠고 있었다. 숲은 안개가 자욱히 끼어 그윽하고 원초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경사가 비교적 급한 길에 물기가 젖어 일행과 보조를 맞추며 조심스레 올라갔다.
오르다 보니 삼거리가 나왔다. 거기서 강선봉은 오른쪽 길로 가야된다고 했다.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아 전화를 하고 강선봉을 향해 갔다. 드문드문 편마암이 날을 세우듯 쪼개진 바위들이 널려 있어 조심스러웠다. 내리는 비로 뿌연 안개가 끼어 시야가 멀리 열리지 않았다. 강선봉 아래쪽에 다가서서 로프가 걸린 칼바위 급경사 길을 올라 11시 25분 강선봉에 도착했다.
북한강이 보일 위치지만 안개가 자욱해져서 강변 풍광은 볼 수 없었다.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올라온 사람이 많지 않았다. 뒤에 오던 절반 정도는 바로 검봉산으로 갔다고 했다. 거기서부터 검봉산 까지는 평평한 능선길이라 별로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칼바위 길을 조심스레 내려가 검봉산으로 향했다. 길이 외길이라 헤맬 염려는 없을 것 같았다. 비가 그쳤지만 나무들은 많은 물기를 머금어 검게 보이고 가지가 쳐져 있었다. 가다보니 밑뿌리서부터 줄기가 7개로 나뉘어 자라난 큰 나무가 보였다. 그 곳을 조금 지나 앞서가던 일행들과 만나 막걸리와 간식을 먹었다. 막걸리에 내가 갖고 간 오미자술을 조금 섞어 따라주니 모두 맛이 좋다고 했다.
다시 산길을 걸었다. 검봉산 정상까지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지점이었다. 무더워진 여름철에 접어들어 숲은 점차 무성해지며 검푸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큰 나무 숲 아래를 지나갈 때는 그 숲 그늘에 어둑한 느낌이 들었다. 정상부로 다가가다보니 평평하던 길이 다시 가파라졌다.
12시 30분 검봉산(530)에 도착했다. 전에 응봉산에 참가했던 최종수 건축사 아들이 힘이 드는지 덥석 표지석 기단에 걸터앉았다. 검봉산(劍峰山)은 칼을 세워 놓은 것 같이 생겼다 해서 그리 불리는데 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북쪽의 삼악산과 마주보고 있는 위치이지만 안개가 끼어 아무 조망도 볼 수 없었다. 북쪽 멀리 국망봉 등 한북정맥 줄기가 보이는 장소여서, 날씨가 맑으면 바라보는 풍광이 좋을 듯 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간 지점의 헬기장 옆에 조망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점심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일행은 배낭을 열고 각자 준비한 음식을 꺼내 자리 위에 펼쳐 놓고 식사를 했다. 막걸리를 주고받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즐겁게 식사를 했다. 한가하게 예기를 나누는 동안 정말 평소 일상에서 겪은 시름들이 다 잊힐 것 같았다.
1시 15분 식사를 마치고 문배마을과 구곡 폭포 옆을 지나는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1시 50분 문배마을 인근 봉우리 앞에 놓인 이정표에서 길이 갈라져 있었다. 방향을 확인하다 보니 모두 다시 만나는 길이라고 했다. 앞 봉우리를 지나 1시 55분 문배마을 안내판이 세워진 곳에서 일행을 기다렸다. 바로 옆이 문배 마을이었다.
문배마을은 문배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문배는 돌배보다 열매가 조금 큰 품종이다. 원래 화전민들이 살던 마을인데 지금은 광관지로 개발되어 문배집, 촌집, 김가네, 엄마네, 신가네, 장씨네, 한씨네, 이씨네 등 10가구가 모두 민박과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다시 구곡폭포를 향해 내려가다 마주 오는 젊은 부부가 문배마을을 물어보아 알려주었다. 깊은 골짜기에 위치해 외부에서 입구를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로 나오니 다시 그 곳 주변을 설명한 안내판이 보였다. 제목이 봄내길 2코스 물께말구구리길 이라고 쓰여 있는데 구곡폭포로 이어진 주변이 모두 관광지화 되어 있었다. ‘물께말구구리길’은 이 곳 옛 지명을 따서 지은 것인데 이곳에 구구리 마을이 있었고, 강촌은 물께말로 불렸던 곳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구구리란 아홉구비를 돌아드는 마을에서 유래되었고 구곡 폭포도 그런 연유로 생긴 이름이었다. 춘천 의병장을 지낸 습재 이소응 선생은 이곳을 숨어살기 좋은 골로 표현하여 ‘문폭유거’ 라는 시를 남겼다.
현대에 새로 등장한 철도 등의 교통수단의 발달과 여가문화의 정착, 대학생 등 젊은이들이 여가 생활을 즐기는 장소, 그리고 관광산업의 영향으로 북한강 주변은 관광지의 인상이 먼저 다가오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이곳을 다 돌아보기 전까지는 이 지역에 아로 새겨진 역사의 흔적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정감어린 옛 지명을 대하면서 비로서 현대 문화가 덧 씌워지기전, 깊은 산과 도도한 강이 어우러진 여기만의 깊은 산골의 자연 환경에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삶의 체취가 진솔하고 그립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런 소중함을 제대로 간직하지 못하고 관광상품화 되어가는 세태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2시 13분 구곡폭포에 도착했다. 장마철에 불어난 저 위쪽의 계곡물이 봉화산 절벽에서 중력의 원리대로 자유낙하하며 굉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허공으로 쏟아진 폭포수는 절벽에 부딪쳐 튕겨진 다른 물살과 엉기면서 여러 갈래의 기운이 꼬여 용트림 하듯 세찬 물살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그 호방한 기운에 도취된 듯하였다.
폭포로 오르던 길을 돌아 나와 입구로 나오다보니 길옆에 조금 전 보았던 폭포수가 계곡 물살을 이루며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검푸르진 나무 사이로 연두 빛깔을 띤 단풍나무가 색다르게 다가왔다. 입구로 나오니 길 옆 건물 창구에서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2시 36분 주차장에 당도하니 뒤풀이 장소로 예약한 식당에서 봉고차 2대를 보내 대기하고 있었다. 조금 기다리다 보니 반 정도 인원이 먼저 도착해 한 차에 타고 2시 50분 식당에 도착했다. 오늘은 우중 산행이라 스케치북을 챙기지 않았는데 구곡폭포를 스케치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 식당 주인에게 종이가 있느냐고 하니 농협 달력을 갖다 주었다. 세로로 긴 달력이라 폭포 구도에 적당 할 것 같았다.
종이를 바닥에 펴고 아까 본 구곡폭포의 인상을 살려 그리는데 열중하다 보니 금세 차 시간이 다가왔다. 오전에 역에 도착할 때 미리 표를 사 놓았었다. 아까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미리 주변에 예기를 해 놓은 터라 함께 자리한 회원이 서둘러야 할 시간이라고 챙겨 주었다. 남은 일행에게 급히 인사를 하고 3시 38분 itk청춘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휴일을 보내는 열차내 다른 손님들 얼굴에서 한가롭고 편안한 표정이 느껴졌다.
(20170708)
첫댓글 멋진 산행후기 감사함니다
추억에 한장면 한장면 생각나네요
행사 주관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늘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길 되시기 바랍니다.
오랜만에 읽은 산행기가 예전 같이 했던 많은 산행 생각이 나게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안녕히 가셨는지요? 저도 글을 쓰면서 백두대간 산행을 함께 할 때를 떠올렸습니다. 벌써 그리운 추억이 되었네요.^^
추억에 남을만한 우중산행 이었습니다..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중에 거동은 불편해도 특별한 체험을 안겨주게 되는 것 같습니다.^^ 행사 치루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장문의 산행후기는 아무나 쓰는거이 아니죠~~
김건축사의 산행기는 그림과 사진이함께 아우러지는시서화세계를 그려내야하는 자의 멋진모습입니다
행사 주관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