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오는 길
文 熙 鳳
11월 초순의 고속도로는 여행하기에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전라남도 장성땅을 가기 위해 서대전 톨게이트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고속도로는 환영의 눈빛이었다. 맑게 개인 하늘에 쏟아지는 햇살은 금방이라도 옥구슬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고속도로 좌우로 붉게 물든 산야가 펼쳐 보이는 장관은 여행자의 입을 벌어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눈까지 즐겁게 해 주었다.나뿐만 아니라 주행자 모두에게 즐거움과 환희를 선사해 주었다.
장성댐 바로 아랫동네에 위치한 잔치집은 꽹과리 소리가 먼저 우리를 맞아 주었다. 온 동리가 들뜬 기분으로 모두가 싱글벙글이었다. 농악만이 아니고 밴드까지 합세해 즐거움은 최극의 상태에 달해 있었다. 취기로 해서 홍조를 띈 얼굴엔 금방이라도 폭소가 터질 것만 같았고,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쳐 놓은 채알은 그 분위기를 하늘까지 끌어 올리고 있었다.
잔치집 주위엔 감나무들이 제각기 잘난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다. 뒷밭,바깥 마당,안마당 할 것 없이 적당한 높이로 자라고 있는 감나무들은 선연한 빛깔의 감들을 풍성하게 매달고 있었다. 이른 봄날 새순을 틔울 때 그랬던 것처럼 이 가을에도 그 수효만큼이나 많은 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보는 이들의 입에선 감탄의 함성이 저절로 쏟아졌다. 이와 같은 결실을 위해서 그간 얼마마한 고통을 감수했던가. 여름의 더위와 한발,태어난 자식을 모두 다 성장시키기 위해 쏟은 피나는 몸부림을 어느 누군들 제대로 기억해 줄 것인가.
최후의 순간에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잎은 모두 떨구고 알몸뚱이만을 매달고도 아름다움의 절정을 과시하는 감나무의 슬기를 인간인 우리들 중 그 누구가 흉내낼 수 있을 것인가. 잎을 떨구었다고 해도 추함을 내보이지 않는다. 추태를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 대로 원숙한 노련미를 구사한다. 싱그럽고 아름다운 노련미를 말이다.
젊음이란 무엇이냐? 한 마디로 패기다. 활동성이다. 젊은 여인의 생기발랄함을 보라. 사랑의 결실로 얻은 아이를 업고 안고 가는 여인의 모습을 보라. 얼마나 보기 좋은 그림인가. 폐경기에 도달한 여인의 모습도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내적 충실로 인한 아름다움이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겨울철 스포츠로서 각광을 받고 있는 대통령배 배구나 코리안 시리즈 농구 대잔치에 출전하는 선수들을 보라. 팽팽한 다리 근육은 점프력을 높인다. 상당한 높이로 뛰어 올라 상대방 수비수를 피해 때려 넣는 배구공은 터질 것만 같다. 상당한 높이로 뛰어 올라 링을 향해 던져 넣는 덩크 슛의 묘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젊음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한다. 누적된 피로에도 지칠 줄 모르는 그 패기가 보는 이들에게 젊음을 되살아나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기장을 즐겨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젊음은 정말 좋은 것이다.
특히나 여성은 젊어지기 위해 무진 애를 쓰는 것 같다. 피부의 탄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성형 외과를 찾아가 주름을 펴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미용실에서의 맛사지,화려한 의상으로 젊음을 지속시키려고도 한다. 달콤하면서도 감미로웠던 그 때 그 시절을 잊지 못한다. 그런 젊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이야 탓할 생각이 없다.
나에게도 젊음은 있었다. 망망대해로 나갔다가 남대천에 다시 찾아온 연어만큼이나 팔팔한 때가 있었다. 삼십대 때에는 무척 활동적이었다. 사십대 후반이 되던 어느 날 나는 드럼통 속의 폭삭은 새우젓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이마엔 주름살이 대여섯 개나 그려져 있었고, 피부도 탄력을 잃었으며, 머리칼도 그 수효가 왕성했던 때의 사분의 일 정도로 줄어 들었다.
어느 날 계룡산 등반을 했다. 은선폭포 쪽으로 정상을 향해 선주자를 따라 가느라 흘렸던 땀을,쏟았던 정력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흘린 땀만큼, 쏟은 정력만큼 나의 두 다리에는 가속이 붙지 않았다.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어렵다고들 말한다. 나의 지금까지의 삶은 내려올 때를 고려한 그런 알찬 삶이었던가 생각해 본다. 그저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앞뒤도 가리지 않고 달렸던 삶은 아니었던가. 조용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한 삶이었던가. 남의 눈에 추한 모습으로 비쳐진 비굴한 삶은 아니었던가.
오직 앞만 보고 달렸던 길, 이제 와서 생각하니 나에게도 욕심은 많았었다고 생각된다. 주어진 길을 마다하고 좀더 나은(넓은) 길로 나아가기 위해 몸부림쳤던 일, 급한 성미인 관계로 일 년에 두 번씩의 보리 농사를 지으려고 했던 무모함, 그러다가 건강을 잃고 고생했던 일 등 모두가 내려올 때를 생각지 않았던 것 같아 이제 와 생각하니 겸연쩍기 그지없다.
그러나 중년의 나이에서 느끼게 되는 허탈감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여유로움을 간직하고 일 속에 묻혀야 한다. 일 속에 행복이 있다. 일 속에 묻힌 행복은 그 인생을 기쁨 속에 살게 한다. 나이 육십에도 젊은 샐러리맨들과 같이 출퇴근하는 노익장을 과시하는 그런 사람과 같이 나의 삶도 그렇게 가꾸어야 하리라. 잘 익은 감나무 가지에 달린 감들과 같이,응접실 접시에 놓여 있는 모과와도 같이 내 인생도 늘 그렇게 충실하게 가꾸어야 한다.
전라도 땅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내려오는) 길엔 갈(올라올) 때와 같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으려니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논산땅에 도착하 기 훨씬 이전부터 차는 밀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어느 정도의 속력도 내지 못한 채 제자리에 묶여 있다시피 했다. 그건 나에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내려갈 때를 생각하는 여유를 갖게 해 주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내려오는 길에 당도해서 후회하는 삶이 아니라 그 때를 미리 염두에 두고 젊음을 불사르는 열정적인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 선연한 빛깔 그대로의 싱그럽고 아름다운 열매를 가득 매달고 패기와 노련미를 함께 간직한 감나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