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호구산 용문사 (虎丘山 龍門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쌍계사의 말사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호구산(虎丘山)

우리나라 3곳의 용문사 중 상용은 경기도 양평의 은행나무가 유명한 용문사,
중용은 경북 예천의 용문사, 하룡은 이 곳 남해의 용문사이다.
신라 애장왕 3년(802)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는 호국도량으로 알려져
숙종 때는 수국사(守國寺)로 지정 하였다.

천왕각(天王閣) - 문화재자료 제150호
정면 3간, 측면 2간의 맞배지붕

봉서루(鳳瑞樓)-문화재자료 제394호
정면 7간, 측면 4간, 팔작지붕 초익공으로 사찰의 누하진입을 위한 문루의 형식

호구산 용문사는 870년(경문왕 10) 두문조사가 창건. 사적기에 의하면 936년 태조가 직접 중건했고,
1165년(의종19) 왕명으로 중수했다고 한다.
1171년(명종 1) 태자의 태를 일주문 밖 자비봉두에 묻은 다음 절 이름을 용문산 창기사라고 바꾸었고,
1179년부터 15년간에 걸쳐 대대적인 불사가 이루어졌다.
1478년(성종 9) 세종대왕의 비인 소현왕후의 태실을 봉안하고, 절 이름을 성불산 용문사라고 다시 바꾸었다.
1783년(정조 7) 문효세자의 태실을 이곳에 쓰고 성불산을 소백산으로 고쳤다.
1835년(헌종 1) 화재로 소실된 것을 역파대사가 상민 . 부열 등과 함께 중건했다.
현존 당우로는 보광명전 . 대웅전 . 응향각 . 응진각 . 명부전 . 응진전 . 회전문 . 범종루 . 등이 있다.
중요 문화재로는 대웅전(보물 145호) . 윤장대(보물 제684호) . 용문사교지(보물 제 729호)가 있고
강희 23년 명문이 있는 대장전목각불탱(보물 제 989호) 등이 있다.

대웅전(大雄殿)-시도유형문화재85호
정면 3간, 측면 3간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남해용문사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南海龍門寺木造阿彌陀三尊佛坐像
시도유형문화재 제446호
이 삼존불은 대웅전 중앙에 위치한 장방형 불단 위에 각각의 연화좌를 두고 그 위에 봉안되어 있다.
머리 뒤편 정수리 쪽으로 서너 개의 나발이 결손 되었거나 소매와 군의자락에 도금이 탈락한 것을 제외하면
전반적인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세 구의 불상은 저부에 마련된 복장공이 모두 열려 있었고,
복장물 역시 대부분이 도난당한 상태였으며, 그중 경전 · 다라니 등이 불상 내부의 목 부분과 팔,
다리 쪽으로 끼워져 남아 있었다. 또한 양측 협시상은 저부의 복장공 외에 배면 중앙에 타원형의 복장공을
따로 만들어 다른 판재로 엉성하게 덧대어 마감되어 있었다. 배면에 마련된 별도의 복장공은 팔의 내부나
머리와 같이 좌상의 밑바닥에서 복장물을 채우기 어려운 것을 쉽게 처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남해용문사목조지장시왕상 南海龍門寺木造地藏十王像
시도유형문화재 426
두부가 민머리인 지장보살상은 상반신을 곧게 세워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전체적으로 양감있고 건장한 모습이다.
신체적 특징은 무릎이 높고 像底前後徑이 넓으므로 불신의 안정감을 더해준다.
상호는 사각형에 가까우며 살집이 있고 턱 부위를 모나지 않게 표현하여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이마가 아주 넓은 편이고 눈썹사이에는 백호가 돌출되어 있다. 눈은 옆으로 길고 눈꺼풀이 두꺼운 편이다.
코는 콧날을 완만하게 하고 콧방울을 작게 나타냈으며, 인중은 뚜렷하고 넓게 패여있다. 도톰한 입술은
입술꼬리를 살짝 올려 미소를 띤 모습이며, 귀는 크고 두꺼우며, 귓바퀴가 뚜렷하다. 목은 짧은 편으로 3조의
융기선을 평행하게 처리하여 삼도를 표현하였다. 양손은 제1지와 3지를 맞대고 양 허벅지 위에 각각 두었는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있다. 양손의 손톱은 비교적 크며 손마디 조각도 뚜렷하게 처리하였다.
착의법은 상체에는 가슴 아래로 평행하게 보이는 승각기를 먼저 입고, 오른쪽 어깨에 편삼을 걸치고
그 위에 대의를 입었다. 엉덩이까지 길게 늘어진 대의는 목덜미에서 한번 접어서 양쪽 어깨를 덮고 흘러내렸으나,
오른쪽은 어깨부분만 감싼 변형통견식 착의이다. 대의는 양쪽어깨에서 3조의 주름선을 계단식으로 정연하게 표현하였다.
군의는 결가부좌한 양다리 아래로 넓게 드리워져있는데, 가장자리의 조각면이 매우 두껍다. 법의처리는 매우 두꺼우며
옷주름을 굵고 간략한 몇 조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좌협시 도명존자는 오른손에 석장을 쥐고, 우협시 무독귀왕은
합장은 한 채 각각 시립하고 있다.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큰 편이며 어깨가 넓어 당당해보이고 온화한 인상이다.
얼굴은 방형이며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다. 시왕상들은 모두 등받이와 팔걸이, 족좌가 있는 의자에 앉아 정면을 향한
자세이며, 표현기법은 거의 동일하다. 두부에는 무독귀왕상과 같은 원류관 형태의 관을 쓰고 있으며, 손에는
홀(제5·6·7·8·9·10상)을 쥔 경우, 책과 붓(제1·2상)을 들고 있거나 손을 무릎 위에 걸친(제3상) 다양한 모습이다.
얼굴의 세부표현은 도명과 무독상과 거의 같은데, 입꼬리가 올라간 상태에서 백색 치아를 드러내어 익살스럽게
웃는 모습은 매우 해학적이다. 착의법은 역시 상체에는 紅袍를 입었고, 하체에는 청색 혹은 홍색 군의 위에 녹청·백록·
청색 등의 요포를 걸쳤으며, 가슴부분에는 군의를 묶은 백색의 띠매듭이 발목까지 길게 드리워져 있다.
또한 가슴 중앙에서 부터 綬를 아래로 길게 늘어뜨리고, 화문을 도드라지게 장식하였는데 이는 따로 제작하여
끼워넣은 것이다. 의자는 각각 조립하여 구성하였고, 족좌를 따로 부착하였다. 등받이 양측에는 용두장식이 있고,
팔걸이의 양측에는 鳳凰頭를 장식하고 있다.



목조[木槽]-나무로 만든 구유. 경남유형문화재 제427호.
몸통 둘레 3m, 길이 6.7m로 1,000 명 분의 밥을 담았다.



남해용문사부도군 南海龍門寺浮屠群
시도유형문화재 제425호
첫댓글 소중한 사찰자료 감사히 보고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