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 묵자 편-제2회: 염색, 그리고 인간의 영향력
(사진설명: 묵자 기념관의 일각)
제2회 염색, 그리고 인간의 영향력
묵자가 평민학교를 설립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세상에 묵자의 제자가 없는 곳이 없게 되었다. 묵자의 제자들은 묵자의 가르침을 받아 검소하게 살고 규율을 엄격하게 지키며 두터운 학문으로 묵가학설을 선양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묵자가 점점 더 야위고 얼굴도 점점 더 검게 되어 마른 나무가지를 방불케 하는 것을 보고 묵자의 한 벗이 묵자에게 권고했다.
“지금 세상사람들은 모두 이기적이고 사리사욕만 채우는데 왜 당신만 혼자서 백성을 위한 도의를 지키고 있소?”
그 말에 묵자가 대답했다.
“열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부지런히 농사를 짓고 나머지 아홉 사람이 놀고먹는다면 숟가락을 얹는 사람이 많고 농사를 짓는 사람이 적은데 그런 상황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 더 노력해야 마땅하지 않겠소?”
묵자의 벗은 타인을 이롭게 하고 자신을 힘들게 하는 묵자의 정신에 감동을 받아 감개무량해 말했다.
“사람마다 모두 당신을 따라 배운다면 이 세상이 이렇게 어지럽지는 않을 것인데.”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바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은 결과요. 그러기 때문에 나는 겸상애(兼相愛)를 선양하고 있소.”
묵자의 말에 벗이 쓴 웃음을 지었다.
“입만 열면 그 얘기네. 언제나 잊지 못하는 그 겸상애 학설.”
이 때 묵자의 제자 경주자(耕柱子)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스승님은 나만 사랑하지 않고 나에게는 언제나 야단만 치시니 제가 정말 그렇게 형편없나요?”
그 말에 묵자가 웃으며 물었다.
“경주자야, 하나 묻자. 만약 내가 태산(泰山)에 가려면 좋은 말이 끄는 마차를 타야 할까 아니면 늙은 소가 끄는 수레를 타야 하겠니?”
경주자가 대답했다.
“아무리 둔한 사람도 이 답을 알아요. 당연하게 좋은 말이 끄는 마차를 타야죠.”
“왜 늙은 소를 쓰지 않느냐?”
“늙은 소는 무거운 짐을 끌지 못하니깐요. 좋은 말이라야 부릴 가치가 있죠.”
“지금 알겠느냐? 내가 너에게 야단을 치는 것은 너가 무거운 짐을 짊어질 수 있고 내가 너를 엄하게 가르칠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원래 스승님이 자신을 중용해서 야단을 치셨구나 하는 생각에 경주자는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이 때 묵자의 벗이 길게 탄식했다.
“그대들이 아무리 겸애와 비공을 선양해도 쓸모가 없소. 노(魯) 나라 군주가 당신의 학설을 무시하고 정(鄭)나라를 공격하려 하고 있소.”
묵자가 경주자를 보고 말했다.
“가자. 나와 함께 노 왕을 만나러 가자. 가서 내가 어떻게 그를 설득시키는지 보여줄게.”
묵자는 노 왕을 만나자 본론을 꺼내지 않고 에둘러서 말했다.
“만약 노나라에서 큰 도시가 작은 도시를 공격하고 큰 가문이 작은 가문을 공격하면서 마구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한다면 대왕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작정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타인의 재물을 약탈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니 과인은 당연히 큰 벌을 내리겠소!”
“대왕께서 노나라를 가지고 계시듯 하늘은 천하를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 아무런 연고도 없이 정나라를 공격하면 하늘이 대왕께 벌을 내리지 않을까요?”
묵자의 말에 노나라 군주가 불쾌함을 드러내며 말했다.
“선생은 어이하여 과인이 정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막으시오? 정나라에서는 3대에 걸쳐 군주를 시해하는 악행이 벌어져 하늘도 벌을 내려 연속 3년째 흉년이 들게 하고 있소. 과인이 정나라를 정벌하는 것은 하늘의 도를 대행하는 것이오.”
“정나라가 3대에 걸쳐 군주를 시해한 악행에 대해서 하늘은 벌써 벌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 또 정나라를 정벌하신다면 부친이 이미 사고를 친 아들을 혼내주었는데 이웃이 나서서 매를 든 것과 같은 황당한 일이 아닙니까?”
묵자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노나라 군주는 정나라 정벌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묵자와 경주자가 왕궁을 나와서 곡부(曲阜)의 거리를 거니는데 경주자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경주자가 묵자에게 말했다.
“급하게 길을 떠나다 보니 먹을 거리를 많이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가서 먹을 것을 좀 장만하겠습니다. 안 그러면 돌아가는 길에 굶어 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염색방에서 바쁘게 일하는 노예들을 바라보던 묵자는 경주자의 말에 머리를 끄덕이고는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서 잠사 날염과정을 주의 깊게 살폈다. 묵자는 하얀 잠사가 청색의 염료를 담은 통에 들어가면 즉시 청색이 되고 황색의 통에 들어가면 황색으로 변하며 붉은 염색통에 넣으면 또 붉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이 때 경주자가 다가와서 묵자에게 호떡 하나를 드렸다.
“스승님, 좀 드십시오. 우리가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멉니다.”
묵자는 염색방에 걸려 있는 오색의 잠사를 가리키며 경주자에게 말했다.
“저 채색의 잠사가 보이느냐? 오색의 저 잠사가 모두 원래는 하얀 잠사였는데 어떤 색깔의 염색통에 들어갔다 나오면 그 색깔로 변한다. 그리고 일단 색깔이 들면 다시 하얗게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참으로 신중하게 염색해야 하는구나.”
“스승님. 그만 말씀하시고 빨리 드십시오. 시장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너무 허기져서 당장 쓰러질 것 같습니다.”
묵자도 사실 배가 아주 고팠던 지라 게눈 감추듯 경주자가 건넨 호떡을 먹어버렸다.
호떡을 먹은 후 물을 몇 모금 마신 묵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사람도 잠사 염색과 같으니라.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관중(管仲)과 포숙아(鲍叔牙)로부터 염색되고 진(晉)나라 문공(文公)은 구범(咎犯)과 호언(狐偃), 초(楚)나라 장왕(庄王)은 심윤(沈尹)과 손숙오(孫叔敖), 오(吳) 왕 합려(闔閭)는 오자서(伍子胥), 월(越) 왕 구천(句踐)은 범려(范蠡)와 문종(文種)으로부터 염색되었다. 이 다섯 군주는 제대로 염색되었기에 제후들을 호령하며 천하를 제패하여 후세에 길이 이름을 남겼다. 우리는 어진 정치를 하도록 제후들을 권고해야 하는데 먼저 그들이 인의(仁義)지사를 측근으로 선택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들이 제대로 염색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묵자는 <소염(所染)>이라는 글을 써서 자신의 학설을 더 풍부하게 했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