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두를 넓게 펼쳐 한껏 욕심을 내본다. 뒤뚱거리며 이리저리 놈들을 몰아보지만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닌다.
겨우 반두 안에 집어넣었다고 입가에 미소를 흘리기도 잠시 야속하게도 태반은 물 위를 날듯이 잽싸게 도망가 버린다. 반두 속에 남은 것은 겨우 손에 꼽힐 정도.
이 녀석들만큼 빠른 물고기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은어(銀漁)라는 놈이다. 은어를 잡으려면 웬만큼 동작이 민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은어 고기를 맛보면 이처럼 쏜살같이 달아나는 방어수단이라도 없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은어에서는 수박 냄새가 난다. 오이 냄새가 난다는 이도 있다. 물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은어에서는 나지 않는다. 누구나 한번 보면 그 맛을 잊지 못하는 이유다.
비할 것이 없는 고기 맛에 우리 인간을 포함해 호시탐탐 노리는 포식자들이 이미 오래 전에 씨를 말렸지 않았을는지.
오죽했으면 조선시대 법으로 은어천렵을 금지하기까지 했으랴. 임금님 밥상에 올려야 하는데 괘씸한 백성들이 씨를 말리고 있으니 그 심정 한편으로는 이해도 간다.
은어는 극동아시아에서만 서식하는 회귀성 어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낙동강 상류에서 많이 살았다. 따지고 보면 은어만큼 까다로운 녀석도 없다. 이끼만 먹고 산다. 더구나 1급수가 아니면 살지도 않는다.
은어는 대부분 하천에서 생활하며, 부화와 동시에 바다로 내려갔다가 연안에서 겨울을 지낸 뒤 강으로 다시 거슬러올라와 일생을 보낸다. 그러나 강이 오염되면서 청정지역에서만 서식하는 은어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안동댐이 들어선 뒤 길이 끊기면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 이처럼 귀하디 귀한 은어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은어잡이를 직접 해보는 것은 물론 임금의 입을 즐겁게 했다는 그 맛을 보는 호사도 가능하다.
올해로 9회째를 맞이하며 경북 대표축제로 자리잡은 봉화군의 은어축제에서다.
해마다 축제는 봉화읍 내성천에서 열린다. 올해 축제는 7월 29일부터 8월 5일까지 8일 동안 진행된다.
수만 명의 시민이 물 속에 뛰어들고 이에 놀란 은어들이 수면 위로 날아오르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을 연출한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바짓단을 둥둥 걷어 올리고 피부 속으로 파고들어오는 은어 채취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한여름 더위 쯤은 날려버리기에 충분하다.
은어는 재빠른 몸놀림으로 사람들에게서 도망가기 바쁘다. 사람과 은어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축제기간 내성천 곳곳에서 펼쳐진다. 전광석화와 같이 움직이는 은어들을 쫓느라면 더위도 시간도 모두 잊는다.
손수 잡은 은어를 직접 먹어보는 것도 은어축제에서 빠뜨릴 수 없다. 담백한 은어 속살 속에 은어알까지 담겨 있어 그 맛이 일품이다. 은어는 회, 튀김 등 요리법이 매우 다양하다.
남해에서 낙동강을 타고 올라오는 은어는 여전히 없다. 봉화군청은 축제를 위해 18만마리 은어를 내성천에 풀어놓는다. 근처 3개 은어양식장에서 키운 것이란다. 이 양으로 관광객들 수요를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지만 그러면 어떠랴.
은어 축제에서는 수중달리기, 수중자전거, 래프팅, 뗏목타기 등도 덤으로 즐길 수 있다.
아버지와 아이가 손잡고 물속을 달리다 보면 어른, 아이가 따로 없이 동심 세계로 돌아간다. 대나무로 만든 뗏목을 타고 낚시 피로를 한꺼번에 날릴 수 있는 망중한의 멋을 느낄 수 있다.
은어와 비할까만은 축제기간 근처 봉성돼지숯불단지에서 즐기는 담백한 돼지고기 맛도 별미다. 특이하게 암퇘지갈비를 소나무 숯으로 굽는다.
[박승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