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갑제 선생을 존경하며 그의 애국적 보수운동을 지지한다. 단 한 가지, 그의 한자(漢字)사용 주장은 찬성하지 않는다. 한자 사용과 보수주의가 전혀 관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한글전용과 공산주의도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글만 쓰기를 주장하는 이유는 그 길만이 우리말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아래에 인용한 조갑제 선생의 글은 학문을 하는 학자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들로 가득 차 있다.
말(言語)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따라서 어떤 문자체계의 평가는 의사소통을 정확하게 할 수 있게 하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말이 소리로 의사소통을 하는 수단이라면 글은 그 소리를 글(文字)로 쓴(記錄한) 것이다. 따라서 가장 좋은 문자체계는 말을 그대로 글로 옮길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글을 읽는 것이 말을 듣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우리 조상들이 우리말을 기록할 수 있는 문자를 가지고 있지 못하여 중국글자(漢字)를 빌어다 썼다. 처음에는 이두(吏讀)라고 하여 글자는 한자를 쓰되 글은 우리말을 그대로 옮기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다가 그런 노력을 포기하고 한문(漢文)을 그대로 쓰게 되었다. 그러나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 서문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말이 중국말과 달라 서로 통하지 않아 불편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한글을 창제하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한자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언어유산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순전히 우리글이 없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한자가 우리글, 즉 한글보다 우수하기 때문이 아니다. 언어는 언제나 모국어, 다시 말해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말이 가장 사용하기에 편하다. 그런데 우리말을 기록할 글자가 없다보니 한자를 사용하게 되었고 따라서 우리말을 한자어가 대체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한문에 쓰이는 용어들을 빌려 쓰게 되어 우리말이 발전도 하지 못하였고 우리말이 사라지기도 하였다. 따라서 현재 국어사전에 낱말(語彙)의 70%가 한자어라고 하여도 이것은 역사적 유산이지 우리말 자체의 결함은 아니다.
따라서 문제는 이 과도기적 상황이며 따라서 이 과도기를 어떻게 지혜롭게 넘길 것인가의 문제, 즉 한자어가 우리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현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며 그러나 우리말의 발전을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여야 할 때이지 무조건 한자를 사용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슬기로운 대처가 필요하지 무조건 과거로 회귀할 문제가 아니다.
조갑제 선생은 아래 인용한 글에서 “保守주의는 역사와 전통과 관습을 존중한다”고 정의하면서 “좋은 것은 保守하고 나쁜 것은 補修”한다고 하였다. 일면 그럴 듯 하지만 엄격하게 따지면 그렇지 않다. 보수주의를 단순히 한자어 ‘보수(保守)’의 뜻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보수’는 단지 지킨다는 뜻이지만 ‘보수주의’는 정치사회적 이념 또는 태도를 나타내며, 보수주의는 실생활의 경험을 통해서 인류의 집합적 지혜가 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보수주의는 과거로의 복귀 또는 복고(復古)가 아니며 집합적 경험을 통한 발전을 의미한다. 한자사용과 관련하여 생각한다면, 예를 들어, 1880년대의 공식문서는 모두 한문으로 기록되었지만, 대한제국의 문서는 한문을 쓰되 토 정도는 한글로 쓰는 기록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조금 더 발전하여 기미독립선언서 같은 경우 한자어를 많이 썼지만 우리말 비슷한 문장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 한글을 쓰기 시작하였으며 지금은 일간신문에서조차 한자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한글만 쓰게 되었다. 이것이 발전이다.
보수주의라고 하여 조선시대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대한제국시대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기미독립선언 시대로 돌아갈 것인가? 아무리 보수주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하여도 실생활을 통해 집합적 지혜가 발전하여 보다 더 향상된 의사소통 방법으로서 한글만을 쓰자는 운동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정치적 이념으로서의 보수주의는 한자의 사용과 전혀 무관하다. 보수주의는 사실상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민주제도를 지키자는 것이며 공산주의와 같이 급진적 그리고 사변적 혁명을 거부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와 인권 그리고 법치주의 등과 같은 현대 민주제도를 지키려고 하는 운동이지 과거의 절대왕정이나 또는 조선시대의 양반제도로 되돌아가자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한국어 정상화가 보수운동이 되어야 한다든가 또는 한글전용을 저지하는 것이 국가정상화의 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사회과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아래 조갑제 선생의 글을 전부 인용하였다. 이 글 자체가 굳이 한자를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글에도 한자로 쓴 단어는 몇 개 되지 않는다. 이 한자로 쓴 모든 단어를 한글로 바꾸어도 뜻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예를 들어 “韓國語”를 ‘한국어’로 적어도 그 말을 모를 사람이 없다. 굳이 韓國語로 표기할 이유가 없다. 더더욱이 “忠孝”는 한자로 썼지만 그 뒤에 오는 “충성”이나 “효도”는 한글로 적었다. 한자를 쓰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이와 같이 기분에 따라 한자로 쓰기도 하고 쓰지 않기도 한다. 이 말은 곧 굳이 한자로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물론 “보수주의는 좋은 것은 保守하고 나쁜 것은 補修하려고 한다”는 문장에서 “保守”와 “補修”를 대비시킨 것은 굳이 한자식으로 대비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그 문장을 보다 쉽게 쓸 수 있다. ‘보수주의는 좋은 것은 지키고 나쁜 것은 고치려고 한다’라고 쓰면 뜻이 달라지는가? 그런데 ‘보수’라는 단어를 한자로 쓰면 소리로는 그 뜻을 구별할 수가 없다. 반드시 글자를 보고 그 뜻을 헤아려야 한다. 이것이 한자어의 불편한 특성이다.
한자를 계속해서 사용하게 되면 이런 불편을 계속 겪어야 한다. 한자어는 소리로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그러나 우리말은 그런 경우가 드물다. 우리말의 장점이다. 왜냐하면 우리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자 사용을 계속하는 한 이런 현상이 고쳐지지 않는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쓰게 되면 이런 현상이 점점 줄어든다. 그래서 우리말과 글이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현재의 과도기적 불편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한자는 괄호 속에 넣어 쓰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괄호가 필요한 한자어는 잘 쓰지 않게 될 것이며 결국 그 한자어를 대체하는 우리말이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갑제 선생께서 “한국의 保守주의는 漢字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다. 보수주의와 한자는 전혀 상관이 없다. 물론 공산주의와는 상관이 없다. 언어는 단지 언어일 뿐이다. 다만 언어정책, 특히 글자정책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 중국에서 간체자를 쓰는데 대만에서는 번체자를 계속 쓰는 것은 꼭 이념과 결부시킬 문제는 아니다. 북한에서 한글만 쓰기를 하는 것도 공산주의나 독재정권과 상관이 없다.
북한에는 해방 후 일찍이 한글학자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한글전용이 정책으로 추진될 수 있었다. 이승만은 일찍이 1896년에 매일신문을 창간하여 한글로만 글을 썼다. 모든 사람들, 특히 평민들이 그 신문을 읽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신문을 비롯하여 많은 서적이 한글로만 쓰여 있다. 그래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 과도기에 놓여 있으므로 한자를 배우는 것이 정확하게 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한자는 배우기는 배우되 쓸 때는 꼭 필요할 때만 괄호에 넣어서 쓰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의사소통도 잘 할 뿐만 아니라 우리말의 발전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갑제 선생이 “母國語의 파괴는 애국심과 정체성이 상실된 인간을 만든다”고 주장하는 것도 무리다. 애국심과 정체성은 한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국가에 대한 자긍심에서 나온다. 한자와 애국심은 무관하다. 굳이 한자와 애국심을 연결시키자면 우리가 한자를 사용하던 조선시대나 그 이전의 한문시대에서 긍지를 찾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무리가 아닌가. 사회과학적으로 전혀 증명될 수 없는 이런 주장은 한자 사용과 관련된 다른 모든 주장도 의문을 갖게 만든다. 또한 한자의 구성요소를 가지고 그 낱말의 뜻을 정의하는 것도 재미있기는 하나 위험하다. 조갑제 선생은 “예컨대 知識이란 한자 속에는 지식의 定義가 정확하게 들어 있다. 화살 矢는 전략, 입口는 먹고 사는 문제, 즉 경제를 가리킨다. 言은 말과 글의 학문, 즉 人文學이고 音은 예술이며, 戈는 창, 즉 전술이다.”라고 한자의 훌륭함을 설명하는데, ‘지식’을 학문적으로 그런 식으로 정의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린이들이 이 글을 읽으면 정말로 지식을 그런 식으로 이해할까 두렵다. 우리가 지킬 것은 우리의 집합적 경험을 통해 얻은 집합적 지혜, 즉 한글이다. 한자가 아니다. 우리가 지난 100여년의 한글의 발전을 역사적 발전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발전의 결과물인 한글전용을 우리가 지켜야 한다. 이것이 보수주의의 본질이다. 보수주의는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경험을 통한 발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언어도 발전하며 따라서 글도 발전한다. 이 발전을 소중하게 지키는 것이 바로 보수주의의 본질이다.
< 조갑제 선생 글의 원문>
韓國語 정상화가 보수운동이 되어야 한다
한글專用의 확산을 저지하는 길이 국가정상화의 길이다.
趙甲濟
어느 나라이든지 保守주의는 역사와 전통과 관습을 존중한다. 자연히 忠孝를 귀중한 가치로 여긴다. 국가에 대한 충성, 부모에 대한 효도, 건전한 가정, 절도와 예절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보수주의는 좋은 것은 保守하고 나쁜 것은 補修하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보수세력은 反좌파 투쟁 이외에 할 일이 있다. 민족문화와 美風良俗을 살려가면서 외부의 좋은 것들을 받아들여 우리 것과 접목시켜서 더 나은 것을 만드는 일이다.
한국의 민족문화는 동양문화 속에서 발전되어 왔다. 동양문화는 불교, 유교, 도교, 샤머니즘이기도 하고 漢字문화이기도 하다. 동양문화는 漢字를 통해서 확산되고 깊어지고 이어져왔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까지 한국인들은, 말은 중국말과 다르게 하면서도 글은 漢字로 썼다. 한글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국가 공용문자는 漢字였다.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모든 역사적 자료가 한자로 표기되었다.
韓國語 낱말들중 한글로 표기할 수 있는 것은 전체의 30%에 지나지 않는다. 비, 눈, 바람, 하얗다, 파랗다, 한다, 간다 등등의 한글어는 주로 자연현상, 감정, 동사 등 원초적인 것들을 표현한다.
民主, 知識, 冊, 言論, 機械 같은 개념語와 전문語와 고급語는 거의 전부가 漢字語이다. 漢字어휘는 한국어 낱말의 70%이다. 漢字語는 한자로 쓰여지지 않으면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도 전할 수도 없다.
漢字의 한 자 한 자는 수천년간에 걸쳐 진화된 문자로서 事物의 본질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글자 자체가 인류의 지혜를 모은 정보의 寶庫이다. 예컨대 知識이란 한자 속에는 지식의 定義가 정확하게 들어 있다. 화살 矢는 전략, 입口는 먹고 사는 문제, 즉 경제를 가리킨다. 言은 말과 글의 학문, 즉 人文學이고 音은 예술이며, 戈는 창, 즉 전술이다. 지식은 모름지기 전략, 전술, 경제, 인문, 예술을 두루 다 이해한 상태를 가리킨다.
한국의 保守주의는 漢字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保守하고 補修해야 할 가치는 거의가 漢字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역사, 철학, 문학, 법률, 종교, 관습, 예절 같은 기초 학문과 민족문화, 그리고 전문서적들은 거의가 한자어로 표현되고 있다.
한국어는 70%의 한자어와 30%의 한글어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한자를 쓰지 않으면 한국어는 뿌리가 잘려버리고 반신불수가 된다. 뿌리가 잘린 언어는 천박해진다. 언어가 천박해지면 생각도 행동도 그렇게 된다. 70%의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하면 암호가 되어버린다. 암호를 가지고 의사소통을 하려면 힘이 들고 부정확하다. 그런 생활이 오래 가면 정확도와 正直性이 떨어지는 二流시민, 二流국가가 된다. 한자어를 모르면 半文盲이다. 한국은 그런 半문맹률이 약70%이다. 이렇게 높은 문맹률을 가진 사회이니 물질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정치, 언론, 사법, 학계 등 정신분야의 수준이 낮고 때로는 저질인 것이다.
한국어의 뿌리가 잘려나가면 깊은 생각을 유도해야 할 언어가 요란한 소리로 변질된다. 한자어, 특히 固有명사를 한글로 표기하면 의미 전달 기능이 상실되고 소리로 변한다. 소리는 언어가 아니다. 언언의 암호화, 소리화를 촉진하는 한글전용은 언어파괴이고 정보전달과 思考기능의 파괴이다.
國語는 조국이란 말이 있다. 母國語는 민족혼의 매개체이다. 母國語의 파괴는 애국심과 정체성이 상실된 인간을 만든다. 70%의 낱말이 소리화되면 한국인의 어휘력이 약해진다. 어휘력이 약해지면 창조성이 떨어진다. 이는 문화적 창조성뿐 아니라 경제적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한자를 안 쓰는 대신에 영어를 많이 쓴다. 그렇게 할수록 한국인과, 한국문화의 정체성과 주체성은 약해진다.
동양에서 한자 말살은 주로 공산주의자들이나 이에 영향을 받은 세력에 의해 이뤄졌다. 공산주의자들은 한자를 기득권층의 귀족적 문화어라고 규정하고 핍박했다. 좌익들은, 한자가 배우는 데 가장 시간이 적게 먹히는 글자인데도 가장 어렵다고 선동했다(영어는 평생을 배워도 제대로 사용하기 힘들지만 한자는 어릴 때 여섯 달만 배워도 평생 써먹는다). 한국인은 한자와 한글을 병용하여 씀으로써 뜻글자와 소리글자의 장점을 종합할 수 있는, 기막힌 有利点(유리점)을 가졌다. '漢字는 외국어'라는 무지막지한 선동에 넘어가 한글전용이 독립운동이라고 착각한 세대가 있었다. 한국어는 한글만 딛고는 설 수 없는 존재이다.
한글專用은 한국을 외발자전거로 만들 것이다. 외발자전거로 달리는 나라는 위태위태하고 언제 쓰러질지 몰라 항구적으로 불안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신문, 출판물들이 漢字를 말살함으로써 한국인의 언어생활을 결정적으로 불구상태로 만들었다. 이 시기에 좌익이 득세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의 보수세력이 다시 주도권을 잡게 된 지금 漢字-한글 혼용의 올바른 언어생활을 復元할 때가 되었다. 보수할 가치, 즉 민족문화와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 漢字語이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한자復原 운동을 통해서 한국어를 정상화하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 이것이 가장 보수적이고 가장 애국적이고 가장 反좌파적인 정치적 문화운동이다. 한자교육의 확산과 보수확산은 반드시 軌를 같이 할 것이다. 保守세력은 개인과 단체의 이름부터 漢字로 쓰자!
한국의 신문인, 출판인들은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을 가르칠 생각을 하지 않고 이들에게 영합함으로써 자신들이 먹고사는 근거인 한국어를 파괴하여 종국적으로는 자신들의 삶의 기반을 허무는 실수를 하였다. 보수단체가 漢字를 포기한 신문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할 필요도 있다.
漢字를 복원하여 韓國語를 정상화시키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방송이 字幕을 한글-漢字 혼용으로 하고, 간판에 한글-漢字를 병용하고, 신문이 고유명사부터 한자로 표기하기 시작하면 단시간에 漢字의 기억이 되살아날 것이다.
漢字를 아는 지도층과 지식인, 그리고 기성세대가 漢字문맹퇴치 사업에 나서야겠다. 모르는 사람에게 영합하지 말고 모르는 이를 가르친다는 생각을 해야 지도력이 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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