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대통령에게 기대는 마음
-서민이 함께 웃고 행복해하는 세상, 양동 창녀촌을 찾은 대통령-
10년 후, 20년 후의 한국은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어떻게 가꿀 것이고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32년 전, 1988년 삼성회장으로 취임한 지 1년이 지난 이건희 회장은 달동네 빈민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비디오로 담아 사장단이 보도록 지시했다.
이 시기는 88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그 후유증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빈부격차가 극심해지기 시작한 시기이다.
보육사업을 삼성의 사회봉사의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우고 1석 5조의 맥을 짚는다. 빈민촌에 탁아소를 세워 부모들은 안심하고 경제활동을, 자녀들은 양질의 교육을 받아 도전의 기회를 주고, 정부는 저소득층 생계문제와 고용문제를 덜 수 있고 기업은 공익사업으로 이미지를 새롭게 할 수 있으며 결국 이들이 구매력 확대로 연결된다는 전략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보육사업의 추진을 반대하거나 심드렁한 간부들의 의견에 맞서 보육사업을 포함한 사회공헌사업을 연말 사장단 평가 자료로 활용하게하면서 실행하게 된다, 이건희 회장이 사회봉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원인은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나환자촌인 성 나자로 마을을 홍라희 여사가 매년 1월 9일(이건희 회장의 생일) 떡과 과일과 용돈봉투를 들고 찾아갔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신 경영을 위해 행정 혁신가며 전도사인 일본의 시마네현의 17만의 작은 마을의 시장인 이와구니 테쓴도 씨를 직접 찾아가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이와구니 시장은 행정이 최고의 서비스라며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장터와 백화점에 시청분소를 설립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69년 가을 밤이다.
노동자들이 입는 허드레 가을 잠바를 입고 중절모를 쓴 대통령이 박종규 경호실장과 비밀 경호원만 대동하고 청와대 문을 나섰다.
박정희대통령은 서울에서 가장 큰 창녀촌인 서울역 앞 양동골목으로 들어섰다.
서울에는 종삼으로 불리는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창신동 창녀촌이 있었다.
여성가족부가 조사한 “전국 성매매 집결지”를 보면 서울은 용산역전, 청량리 588, 영등포역 앞, 천호동 텍사스, 미아리 텍사스, 이수역 팔팔 골목, 부산의 완월동, 범전동, 해운대, 대구의 자갈마당, 인천의 엘로하우수, 학익동, 광주의 금남로 5가(황금동), 무등로, 수원역전등 전국에 45개가 있다고 발표한바 있다.
붉은 전구불이 골목길을 비추는 사이사이마다 여인들이 튀어나오고 옷소매를 당긴다. 몇 번 뿌리치다가 아예 온몸으로 껴안는 앳된 아가씨를 따라 창녀의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타임은 200원, 긴 밤은 1천원인 비좁은 양동의 밤은 아침 기차를 기다리는 나그네와 창녀와의 소주잔 대화로 깊어갔다.(1960년대 후반의 쌀값은 5,700원)
“아저씨, 여기 포주들이나 경찰, 정화위원도 모두 도둑이예요. 지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야. 우리를 감시하고 뜯어먹고 단속 나온다고 알려주고 숨기고 모두 도둑놈 강도들이예요, 아저씨는 대통령하고 비슷하니깐 이야긴데 대통령도 도둑놈이에요. 모른 체하면 모두 도둑놈이지 뭐. 나는 미용기술이라도 배워서 미장원 한번 차려보고 싶은 것이 꿈인데....”
스르르 잠든 창녀의 방을 빠져나온 청와대의 새벽은 내무부장관을 비롯하여 관계기관장들이 줄줄이 불려왔다.
“임자들은 회전의자에서 폼만 잡으면 끝나는 줄 알아”
그때부터 갈 곳 없는 창녀들을 보호하는 장소가 만들어지고 미용기술을 비롯한 생계형 교육의 실질적인 변화가 이뤄지기 시작한다. 산업화에 따라 전문 인력이 태부족인 현실에서 1967년 제정된 직업훈련법이 실지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직업훈련법은 기술인력 수요의 급증, 무기능 인적자원, 실업교육과 견습공제도의 불균형, 기업의 기술계 부족인력 양성에 대한 한계점이 사회적으로 문제되었기 때문이다.
청와대 비서관이 아들 박지만을 유학 보내자고 권유했을 때 “내가 아들을 유학 보내면 장차관들 자식들도 전부 유학 보내려할 텐데 공장 여공들이 피눈물로 벌어드린 외화가 장차관 자식의 학비로 쓴다면 이 나라가 언제 자립하고 자주국방을 하겠나”라고 거절하기도 했다.
명품 나비축제로 유명한 39살에 군수가 되어 3회 연속 함평군수를 지낸 이석형군수는 일관되게 실적 위주의 인사방침을 고집한 인물로 유명하다.
공무원노동조합에서 추천한 하위직 공무원을 인사위원에 포함시켰으며 친 조카 동기들은 모두 6급으로 승진했어도 공채 7급으로 근무했으며 경주 이씨 일가 과장이 구조조정 대상이 되기도 했다.
공직자가 올곧게 직분에 임하다 보면 가족의 희생이 뒤따른다.
서해안고속도로 공사로 레미콘을 세울 부지가 없자 군수의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땅에 레미콘 임시공장을 차리기도 했다. 레미콘 부지는 대다수 주민들이 반대하는 최악의 환경유발 업종이기에 모두가 멀리했다.
도시로 유학을 보내달라는 딸을 설득하여 함평군 학교로 보내고 특성화고를 설립하여 국내에서는 최초로 함평골프고등학교, 전남보건고등학교 등을 설립하여 도시로 빠져나가는 학생이 아닌 도심에서 함평을 찾아오게 했다.
공무원이 주민위에 군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경비원을 민원안내원으로 대체하여 찾아오는 주민에게 무조건 친절하게 대하게 했다.
민원봉사실 앞에 차량을 대기시켜 민원업무가 끝난 민원인들을 집으로 모셔다드리는 서비스도 실행했다.
인물 됨됨이에서 기획 형인지 실무 형인지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했으며, 열심히 일을 하다가 실패하면 용서하지만 권한을 줬는데도 어영부영하는 인사들에게는 가차 없이 질책했다.
아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상처가 도지고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는 것이 이석형 군수의 지론이다.
하지만 직언하고 소신 있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지근거리에 있으면 오히려 안전판 역할을 해서 부정적인 결과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고 정의한다.
이석형 함평군수가 대표적으로 인선한 인물로는 진급도 못하고 능력도 발휘 못했던 나홍채 나산면장을 자연생태공원 관리사업소장으로 맡겼으며 그 결과 세계나비곤충엑스포 사무총장으로 활약하여 무결점 행사라는 정부평가를 받는 성과를 거뒀다.
건국이후 12명의 대통령을 만나고 헤어졌으며 얼마 있으면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된다.
대통령 본인이나 지근거리의 참모들의 자랑스러움만 나열하지 말고 잘못한 것들과 그 원인을 진단하는 고백서와 같은 진지한 참회록(실록)을 이 계절에 읽고 싶다.
(김동환/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 경영학박사,시인,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