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이야기] 보쌈과 족발의 유래
1. 족발의 시작은?
돼지의 발로 만든 이 요리의 기원은 중국에서 부터 시작되.
중국에서는 다들 잘 알려나 모르겠지만
돼지고기의 소비가 타 육류 소비보다 월등히 앞서.
현대 중국 요리에서는 소요리도 많이 애용되지만 중세까지만 해도
소고기는 잘 먹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고 한다.
돼지고기 소비율이 높다보니 어떻게 하면 안먹는 부위를
잘 먹을수 있게 요리할까 라는 고민들도 많이 했지.
그러다 탄생한 요리 중 하나가 족발이야.
특히 족발은 중국에서는 국수와 같이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요리다.
가족의 생일상이나 생일을 맞은 사람을 축하하기 위해 국수와 함께
항상 올려진 음식이 바로 이 족발이라고 해.
이런 풍습의 시작은 살이 찐 돼지의 무거운 몸을 체구에 비해
아주 작은 다리로 지탱하는 것을 보고 매우 강한 힘을 가진 부위라고 생각하여
이 힘을 얻고자 건강함과 장수하는 것이라 믿어 전해져 왔다고 해.
이처럼 장충동 가면 평안도가 원조라는 사실을 간판으로도 알 수 있다.
2. 한국의 족발
중국에서 유래된 음식이라서 인지 족발은 북쪽 지방에서 주로 먹었다고 해.
특히 함경도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옛날 즐겨 먹었던 머리고기 만큼
인기가 많았던 술안주였다고 한다.
그런 족발이 우리한테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 부터야.
당시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먹기 시작한것이 정착이 되었지.
1953년, 평양출신인 할머니 둘이 최초로 시작 되었다고 해.
원래 평안도 식 족발은 된장을 넣고 푹 삶은 된장족발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것이 사람들 맛에 익숙치 않아 장사가 잘 안돼자
두 할머니들은 간장을 넣고 조리는 방식의 족발을 택했는데
이것이 맛있다는 소문이 점점 돌기 시작했어.
3. 그럼 왜 장충동 족발?
그럼 왜 북에서 내려왔는데 장충동 족발인거냐 생각하는 게이들이 있을 거야.
그럼 당시 장충동의 배경부터 알아보는 것이 좋을거 같다.
장충동은 60-7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가 어제 뜨겁게 치뤄졌던 대선이라던가
총선등의 연설이 종종 이루어졌던 곳이지.
우리가 알던 그장충 체육관에서 말이야.
또한 이곳은 당시 폭발적으로 인기가 많았던 프로레슬링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였기에 유동인구가 엄청나게 많았어.
장충동 족발의 원조는 전숙렬씨라는 분인데
이분이 평안도 할머니들한테 배운 간장족발을 가판대에서 판매하였는데
요즘도 야구장이나 축구장등 무언가 구경하러 가면 먹거리를 사들고 많이 가지
그때 당시엔 술과 먹을거를 바리바리 챙겨서 어디 이동하는것이 더 심했던 시대야.
먹는것이 귀한 시대였다 보니 돼지고기인 이 족발이 맛도 좋은데 가격도 싸,
이건 뭐 술안주에 이만한게 없던 것이였지.
그럼 당시 고기가 귀한 시절인데 왜 족발은 값싼것이냐?
이전까지 우리한테 족발은 대중적 음식이 아니였대.
그래서 서울에서 가장 큰축산물 시장이 있던(지금도 상당히 큼) 마장동에서
족발은 여기저기 굴러댕겨도 누가 안가져갈 정도로
못먹는 부위라고 생각했다더라.
그걸 전숙렬이라는 사람이 이전에 평안도 할머니들한테 배운 족발을 생각해서
마장동에서 가깝고 유동인구도 많은 장충동에서 가판대로 팔았고
이것이 대 히트를 쳤던 거지.
그리고 가판대 가게에서 어느순간 정식 가게로 입tothe갤 했는데
처음엔 2곳이던 가게가 이제는 12곳으로 늘어났다고 하지.
그래서 사람들이 장충동 = 족발 이라는 원조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추가정보 -
오향족발의 시작은 중국 산동지방, 족발의 시초도 이쪽이라고 유추되고 있지만
현재 확실한 증거는 없다.
보쌈
1. 안타까운 풍습의 그 이름 보쌈
보쌈이란 2가지로 인해 행해지는 우리의 고유 풍습 중 하나였다.
1- 부잣집 딸이 재혼할 팔자가 있다는게 밝혀지면
밤에 길가던 총각 하나를 납치해 강제로 신혼방에 넣은 뒤 죽이고
여자는 시집을 간다.
이러면 재혼효과가 있다 생각하여 사주가 핀다고 생각했던 것.
2- 가난하여 혼기를 놓친 노총각이 주로 과부를 납치해 강제 혼인했던 것.
(처녀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어찌보면 재혼이 안돼는 당시 풍습을 액땜하기 위해 그리고 음....
돈없으면 당시에도 결혼을 못했구나 젠장
2. 우리나라의 보쌈
보쌈은 주로 고기를 보쌈용 김치 즉 김치속과 함께 싸서 먹는것을 말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고유의 향토 음식이라고 해.
돼지고기 수육은 이전부터 즐겨먹던 음식이였다.
보쌈김치는 그럼 어디서 나왔느냐,
바로 개성지방의 향토 음식이라고 해.
개성배추는 속이 연하고 잎이 매우 길고 고소해 보쌈 김치를 만들어 먹는데
아주 유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개성지방에서는 보쌈이란 말이 위에 열거된 풍습처럼
썩 좋지 않은 의미를 담았기에 쌈김치라고 불렀다고 해.
3. 보쌈의 대중화
보쌈김치가 문헌에 언급되는 것은 1940년대 이후야.
대중화 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직후라고 한다.
보쌈김치는 주로 겨울에 담가먹는 김치로 양반댁에서 사람을 많이 부려
다량의 김장을 했는데. 고생한 일꾼들을 위해 양반, 혹은 부잣집에서
동네 사람들 옹기종기 모여
김치를 하루종일 담구었으니 참 피곤하지 않나 생각했나 봐.
그래서 그날 만큼은 고생했다고 돼지 한마리를 잡아주고
그 돼지를 푹 삶아 막 담군 김치와 김치소를 함께 해 싸먹었다는 기록이 있어.
돼지잡는 것은 우리 민족의 잔치에서 빠지지 않는 대표 먹거리 중 하나였는데
아무래도 김장이라는 문화와 융합되면서
저 보쌈김치 라는 말이 생겼지 않나 라며 학계에서는 추측 되고 있어.
아쉽게도 보쌈이라는 음식 어원은 쌈김치에서 어떻게 바뀌어서
현재 보쌈이라 불렸는지 기록은 전혀 없다고 합니다.
-옮겨와서 올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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