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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26·사진)씨의 어린 시절 행보는 아버지 정명훈(57)씨의 지휘 경력과 일치한다. 정명훈씨는 1984년 독일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 음악감독 겸 수석지휘자를 맡았다. 아들은 같은 해 이 곳에서 태어났다. 89년 정명훈씨가 바스티유 오페라단 음악감독으로 옮겨가면서 정민씨도 파리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로 일할 때는 로마에서 살았다. 아들은 아버지의 거의 모든 지휘 장면을 본 청중이기도 하다. 오케스트라는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생활 터전’ 같은 것이었다. 2007년 처음으로 지휘봉을 잡은 일도 자연스러웠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가 처음이다. ‘누구의 아들’이라는 점만 부각될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골고루 악기 공부=“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평범하게 자랐어요.” 19일 만난 정민씨는 “아버지는 평범한 ‘아빠’였고, 내가 음악을 하든지 안 하든지 어떤 간섭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 연습장에 자주 따라가서 음악을 듣긴 했죠. 지휘자나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특별한 목표를 세워본 적은 없었어요.” 그가 바스티유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더블베이스 주자에게 반한 것도 우연한 일이었다. 그 깊은 소리에 반해 오케스트라 연주자에게 악기를 배웠다. 하지만 그는 이후 바이올린과 피아노로 악기를 바꿨다. 그는 2005년 서울대 음대 기악과에 바이올린 전공으로 입학해 지난해 독어독문학과로 전과했다.
지휘자로 데뷔한 것은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다.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연습을 좀 도우라’는 아버지의 말에 그는 지휘대에 서기 시작했다. 보육시설인 ‘소년의 집’ 아이들로 이뤄진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습하고, 자선음악회에서도 지휘했다.
“아버지가 특별히 지도를 해주지는 않아요. 궁금한 걸 물어보긴 하지만, 단 며칠 만에 30분 정도에 휘리릭 가르쳐주죠. 한두 마디 정도면 통해요.” 그는 스스로 악보를 파고들면서 음악적 아이디어를 찾았다.
‘부산 소년의집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는 정민씨. 그는 이들과 함께하는 다음 달 11일 미국 카네기홀 공연이 청중으로 가득 차는 것을 꿈꾼다. 그는 아이들 실력이 미국을 놀라게 할 것이라고 했다. [미라클오브뮤직 제공] | |
◆나눔으로 경력 시작=정민씨는 요즘 다음달 11일 소년의집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미국 카네기홀 공연 준비에 흠뻑 빠져있다. 매주 부산에 내려간다. “아이들이 일반 오케스트라보다 잘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이번처럼 자신의 실력을 100% 끌어내서 연주하기란 쉽지 않거든요. 1979년부터 오케스트라를 지도한 안유경 선생님의 노력이 특히 힘이 된다고 봐요.”
정민씨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하지만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얘기가 나오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얼마 전 소년의 집 옆에 있는 병원이 증축된 걸 봤어요. 후원자가 도와줬나 보다 했는데 우리가 했던 자선음악회로 만든 거라고 하더라고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분이 좋았어요.” 그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주고 있지만 사실 배우는 게 더 많아요. 저 말고 아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졌으면 좋겠어요”라며 겸손해했다.
이제 그의 꿈은 지휘자로 굳어졌다. 올 안에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아시아 오페라 오케스트라’도 만들 생각이다. 소박한 뜻에서 시작한 지휘자이지만 한 발 한 발 그 길을 다져갈 작정이다. “어려서부터 음악 말고 다른 길은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평범한 다짐이 오히려 더 큰 울림으로 들려오는 듯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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