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선지자란/새 언약의 일꾼[김다니엘]
고후 3;6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새 언약은 신약이다./예수님은 세례요한이 나타난 뒤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모세를 통하여는 율법을 예수님을 통하여는 은혜를 내려주셨다.
이 일꾼들의 특징은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때에도 낙심하면 안된다.
둘째는 숨은 부끄러운 일들을 버린다는 것이다./죄는 남들이 아는 죄와 나만 아는 죄로 나뉜다.
하나님을 잘 믿는 자들은 남들이 모르는 죄일지라도 철저히 회개한다.
셋째는 속이지 않는다. 넷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는다. 이 말씀이 혼잡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람의 말을 섞어 말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진리를 나타낸다. 우리가 진리를 사모해야 한다. 세상에서는 진리를 증오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떠나 진리를 쫒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새 언약이 무엇일까? 히브리서에는 이 새 언약을 잘 설명한다.
새 언약은 두 기둥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십자가와 부활이다.
우리는 신앙생활 속에 이 두가지가 서있어야 한다.
22, 산위와 산 아래[김다니엘]
막 9;20~29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성경에는 산 위와 산 아래의 장면이 여러번 나온다.
구약에서는 대표적으로 노아와 모세가 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변화되었다. 옷과 몸이 모두 변화되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의 양 옆에 서있었다. 가장 중요한건 산 위에 신비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을때 신비체험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믿음은 다 바리새인들과 같은 가짜이다.
그렇지 않으면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사이비가 된다.
변화산 위에 제자들이 배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이다.
우리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변화산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둘째로는 모세와 엘리야의 나타남이다. 모세는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였고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격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율법과 선지서를 완벽하게 이루게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내포한다.
우리 신앙은 높은 수준의 신앙생활이 되어야한다. 셋째로는 십자가와 부활이다. 이것은 복음이자 진리이다.
우리는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하나님을 알려면 예수님을 꼭 알아야한다.
23,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여![김다니엘]
사 40;9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선지자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선 많은 소식이 들려오지만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소식을 찾기가 힘들다. 아름다운 소식은 복음이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다. 모두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은 예수님 뿐이다./이 아름다운 분과 함께일때 우리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엔 아름다운 소식을 유다와 예루살렘 시온에 전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시온은 처녀 예루살렘은 이미 결혼한 여자이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알려주셨다.
시온과 예루살렘, 유다의 공통점은 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24, 나귀의 비밀[김다니엘]
마 21;1~7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오늘 본문엔 예수님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장면이 나온다. 성경에는 나귀 이야기가 여러번 나온다
첫째는 발람이 나귀를 탔던 일이 있었고 또 사울이 찾던 나귀도 있었다./오늘 다룰 이야기는 바로 예수님이 타고 오셨던 나귀이다.
나귀의 특징이 무엇일까?
첫째로는 귀가 크다. 이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는 것이다./우리 사람은 모두 고집이 세다.
나귀는 고집이 센 동물의 대명사이다. 나귀의 목을 꺽으라는 말씀은 고집을 꺽으라는 말씀이다. 나귀는 고집만 아니라 정욕도 세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란한 마음을 가지고 살 때 하나님은 나귀처럼 음란하다고 말씀하신다.
또 나귀는 적응을 잘 한다. 한 목사님은 자신을 나귀라고 한다.
예수님이 입성하실때 받은 환영을 나귀가 자신을 환영하는 줄 알면 그것은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우리도 나귀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항상 겸손히 주님의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백성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야 한다.
내가 양이라면 목자의 목소리를 분별할 수 있어야한다.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고 예수님의 말을 잘 따라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