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려면?”입니다.
본문의 핵심 내용은 6절 뒷부분과 7절입니다.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고 합니다. ‘기억하다’는 것과 ‘쉬지 못하시게 하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도록 힘쓰고 하나님께서 쉬지 않고 일하시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으시기까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자이어야 합니까? 하나님을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가 되길 축복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쉬지 않고 일하시는 분입니다.
“너희는 쉬지 말며”라고 했는데 쉬지도 않고 일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억하시도록 하는 것을 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속 기억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하나님이 반응하시도록,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진행해 가시도록 너희는 쉬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기억하시게 하도록 했을까요? 그래야 하나님이 일하시니까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이 기억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43:26에 "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라고 합니다. 쉬지 말고 기억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알아서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우리는 자리를 펴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역사하실 자리를 펴드리는 것이 우리가 쉬지 않고 해야 할 일입니다.
본문은 당시 바벨론에 의한 이스라엘의 패망과 회복에 대한 말씀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때를 말합니다. 즉 우리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기까지 우리는 쉬지 말고 하나님께 기억시켜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정한 주인 되는 회복이 이뤄지면 8절에 "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양식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네가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이 마시지 못하게 할 것인즉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라고 합니다. 이때까지 너희는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고 일하시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께 기억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즉 하나님을 일하시게 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답을 찾으려면 그동안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알면 됩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통해 일하셨고 영광을 받으셨는지를 알면 됩니다. 다행히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기억하시고 일하셨는지를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인생의 교과서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일하신 경우, 하나님이 사람에게 반응하신 경우를 보면 두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름 아닌 순종과 믿음입니다. 즉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경우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믿음으로 나아간 경우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할 때 반드시 일하셨습니다. 순종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따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나아갈 때도 역사하셨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움직이고 일하시게 하는 확실한 도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억하여 일하시도록 하는 것이 기도라고 생각합니다만 정확히 말하면 믿음의 기도입니다.
여호수아를 먼저 생각해보세요. 여호수아는 많은 전투를 치뤘지만 두 전쟁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리고성 전투와 가나안 연합군과의 전투입니다. 이 두 전투에서 순종과 믿음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제사장과 법궤를 앞세워 칠 일간 열세 바퀴를 돌라고 했습니다. 그대로 했더니 성이 무너졌습니다. 순종의 역사입니다. 이렇게 돌면 반드시 무너지리라는 믿음이 모두에게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던 그 어려운? 이상한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순종의 결과입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도 강물이 넘치는데 하나님은 제사장이 법궤를 메고 발을 내딛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순종의 역사입니다. 홍해를 건널 때는 하나님이 먼저 바다를 갈라놓고 지나가게 하셨지만 요단강을 건널 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대로 발을 내딛으니 갈라졌습니다. 순종의 역사입니다.
이후에 가나안 족속들과 싸울 때 이스라엘이 이기고 있는데 해가 넘어가 전쟁을 끝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때 여호수아가 말합니다. 수10:12입니다.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이것은 믿음의 역사입니까? 순종의 역사입니까? 하나님이 먼저 이렇게 선포하라고 명령하셨기에 그대로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는 다급하여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심을 믿고 선포하였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순종의 역사가 아니라 믿음의 역사입니다.
모세도 그러합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가서 바로 앞에서 들면 재앙을 내리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모세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열 가지 재앙이 애굽에 내려 이스라엘이 마침내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광야에서 물이 없어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큰 바위를 가리키며 지팡이를 들고 가서 저 바위를 치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가서 지팡이로 치니 반석이 갈라지고 샘이 터졌습니다. 순종의 역사입니다. 그 이후 아말렉과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모세는 지팡이를 들고 산으로 올라가서 손을 들어 기도합니다. 모세의 손이 올라가니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이 내려가니 아말렉이 이깁니다. 손이 아프니 아론과 훌이 곁에서 모세의 손을 들어줍니다. 마침내 아말렉을 이겼습니다.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산에 올라가서 손을 들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손을 들어 기도한 것입니다. 믿음의 역사입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었고 또한 믿음으로 기도하여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이겼습니다. 순종의 역사와 믿음의 역사이지 않습니까?
한센병이 든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왔을 때 요단강에 들어가 일곱 번 목욕하라고 했습니다. 나아만은 불평하며 돌아가려고 했지만 부하가 말리는 바람에 마저 못해 순종했습니다. 그 피부가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깨끗해졌습니다. 순종의 결과입니다. 열 명의 한센병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가서 모세의 명한 예물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먼저 가서 보이라고 했습니다. 병든 채로 제사장에게 나아가는 것이 대단히 두려웠지만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가는 도중에 나았더라고 했습니다. 순종의 역사입니다.
엘리야는 사렙다 과부에게 마지막 남은 밀가루 반죽으로 떡을 해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과부도 억지로 순종했는지 모릅니다. 가뭄이 끝날 때까지 통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는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순종의 역사입니다. 자식을 번제물로 받치라는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졌습니다. 얼마나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입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명령에 순종합니다. 이해가 안 되지만 순종해버립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나도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순종을 통해 복을 받은 것입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밤새 수고했어도 잡은 것이 없지만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할 때 ‘왜요?’ 라고 따지지 않고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물에 고기가 가득했습니다. 물 위로 걸은 것도 예수님이 오라고 명령하니 발을 내딛었습니다. 이처럼 베드로도 순종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만났습니다. 제자들은 저가 누구의 죄 때문인가를 물었지만 예수님은 저를 통해 하나님이 하실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 하시고 그의 눈에 흙을 바르며 말씀합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소경은 가서 씻고 보게 되었습니다. 순종의 역사입니다. 왕의 신하가 아들이 병들어 예수님 앞에 와서 초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집에 따라가지 않고 네 아들이 나았다고 말씀하여 돌아가게 했습니다. 가는 순간에 나았다고 했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역사가 있었습니다.
가나 혼인 잔치 집에서 일어난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시고 다시 떠다주라 하니 하인들이 떠서 손님에게 주었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바뀌었습니다. 순종의 역사입니다. 하인들 중에 누가 이 물을 떠다주면 포도주로 바뀔 것이라고 믿었겠습니까? 손님한테 얻어맞지는 않을까 염려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명령에 순종할 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나사로의 무덤에서 예수님은 돌을 옮겨 놓으라고 했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다고 했지만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나사로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났습니다. 순종의 역사입니다. 이처럼 순종이 하나님을 일하시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사울왕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삼상 15:22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그런가 하면 또 하나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하나님을 일하게 하신 경우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물맷돌로 이긴 것은 순종이 아닌 믿음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돌을 던지면 승리를 주겠다고 약속한 적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으로 인해 하나님의 존귀한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어지는 것을 보고 참을 수 없어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일하신 것입니다. 혈루병을 앓던 한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사람들이 많아 도무지 앞에 나아갈 수 없을 때 이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했습니다. 나았습니다. 옷자락만 잡아도 나을 것이라는 약속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순전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치료자이심을 믿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 여인의 믿음이 역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로마군대의 한 백부장은 하인이 아파서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예수님이 가서 고쳐주겠다고 하자 만류합니다. 집에 오시지 말고 다만 말씀만 하시면 나을 줄 믿고 가겠다고 합니다. 하인이 치료받았습니다. 한 중풍병 든 사람을 친구 네 명이 침상에 누인 채 데리고 왔습니다. 사람들이 많아 예수님 앞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자 지붕위로 올라가 환자를 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믿음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일하셨습니다. 네 믿음대로 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전합니다. 히11:6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33절 이하에서는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라고 합니다.
이처럼 성경에 수많은 이적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순종과 믿음을 통한 역사입니다. 하나님을 쉬지 않고 일하시게 하는 방법은 순종과 믿음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그 말씀이 불합리하고 이치에 맞지 않아도 내 생각과 계획을 내려놓고 순종할 때, 그리고 믿음으로 행할 때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을 통해 일하지 않고 믿음과 순종의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