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25분 54번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월봉 김영부를 만났다. 반가운 얼굴이다. 만난 지 8개월이 지났다. 함평에서 어젯밤에 올라왔단다. 요즘은 주로 함평에서 생활하다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올라온 것이다. 전원일기에 도착하였더니 우리 회원 옆에 나의 보성중학교 동창생 정○○의 광주시청퇴직자 등산모임 회원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우리 목요산우회원들에게로 갔다. 그 모임도 오늘 처음 나온다는 것이었다. 송헌 최문수가 엄지발가락이 아파서 수술을 하였는데 고통을 무릅쓰고 2시간 전부터 승용차로 와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옆에는 산하 김재일이 든든한 모습으로 반겨 주었다. 주먹 인사를 나누고 나서 그는 배낭을 열더니 그의 전매특허인 수제 녹차를 꺼내서 따라 주어 마셨다. 한참 후에 월전 윤상윤과 석당 나종만이 도착하였다. 월전과는 너무 오래되어 목을 끌어안고 허그를 하고 싶었지만 코로나 시국이라 참아야 하였다. 월전이 안 나온 지 2년 2개월만이다. 석당이 바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감옥에 다녀 온 이야기라 한다.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 무슨 감옥을 다녀왔단 말인가. 그는 코로나 감옥에 갇혔다가 나왔단다. 지난 1월 온 가족(아내, 첫째 딸 가족, 셋째 딸 가족 등)이 코로나 확진자로 판명되어 2주 일간의 지정 격리를 당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방역체계가 얼마나 촘촘하고 우수한가를 체험한 바대로 설명하였다. 이러한 선진국 형 국가 방역체계를 확립한 대한민국의 높아진 국가적 위상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G7 정상들이 한국을 초청하였고, 또 세계 정상들이 서로 우리대통령을 국빈초청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재외 국민들까지도 든든한 조국의 발전을 배경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써의 자긍심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꽃을 피우며 약사암으로 올라가다가 송헌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자랑 턱을 내고 싶은데 언제가 좋겠는지를 물었다. 지인들에게 모두 자랑 턱을 냈는데 우리 모임에만 못하였으니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다. 다음 주에는 병원 예약이 있을 줄 모르니 오늘이 어떤가 하여 그러자고 하였다.
전부터 큰손자가 공부를 잘하며 다 방면에 걸친 학교 활동이 아주 적극적인데 자부가 그 뒷받침을 잘 한다는 말을 했었다. 그 손자가 금년에 제주 오현고 3학년인데 이번에 SKY 3개 대학에 합격하였으며, 최종적으로 서울대 정치외교학과를 희망하여 합격자 소집에 다녀왔다는 것이다. 그 손자가 중학교 시절부터 반기문처럼 한국인으로서 UN사무총장이 되고자 책상 앞에 글귀를 걸어 놓고 공부하였기 때문에 진로를 그렇게 정하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내일처럼 앞으로 10년이나 20년 후에는 최○○ UN사무총장이 탄생할 것을 기원하였다.
11시에 약사암에서 하산하여 12시에 다시 전원일기로 내려 왔다. 가산 장휘부가 식사시간에 맞추어 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으로 보쌈정식을 시켜놓았는데 가산이 얼굴부위에 대상포진 증상이 있어서 기름진 돼지고기를 못 먹으니까 ‘대구 뽈탕’으로 2인분을 따로 시켰다.
음식이 나와 더 많은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회원들이 인광 정재남의 근황을 아는 데로 이야기하였다. 인광은 아내의 노환에 이어서 본인의 초기 암수술로 광주 집에서 자녀들(아들과 딸들)이 살고 있는 인천 송도신도시로 가서 생활하고 있는데 아마도 광주 생활을 정리하고 자녀들이 있는 그곳으로 생활터전을 옮겨야 하지 않나 하는 구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임에서 그가 빠져 나가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형편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한 일이다. 그것이 젊었을 때와 늙었을 때의, 우리들이 맞고 있는 현실적 차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밝뫼 윤정남의 근황은, 안 좋았던 부인의 건강 회복에 힘쓰는 생활을 하다가, 정작 본인이 혈압에 떨어진 뒤로는 본인의 건강을 회복하는데 온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어제 모처럼 나에게 김상권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었다는 이야기를 전하였다. 그는 요즘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실버타운으로 들어가서 생활하고 있다고 하였다. 부인(화순 출신으로 나의 梁氏 동성동본 동생뻘)의 노후 편의를 위해 용단을 내려 실버타운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상권이는 학창시절 1~2학년을 나와 같은 반 친한 친구였다. 딱히 들출만한 공통점도 없었고 같은 중학교 출신도 아니었지만 그냥 서로가 공감하는 점이 있어서였던지 친하게 지냈었다. 쉬는 시간에도 많이 함께 어울렸었다. 그러다가 61년 졸업하고 잠시 미발령시절에 뜬금없이 그가 보성 득량 박실마을 우리 집을 찾아왔었다. 내가 그때 태어나서 쭉 살았던 ‘박실’이란 마을에서 같은 득량면 간척지 한 가운데 있는 ‘안심촌’이란 마을로 이사간지 얼마 안 된 참이었고, 또 사라호? 태풍인가가 지나간 뒤라 농촌 곳곳이 태풍이 할퀴고 간 생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어서 폐허처럼 복구가 안 된 곳을 지나가면서 마음이 아파 함께 걱정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함께 보성 득량의 우리 집에서, 그가 호감을 갖고 있었던 우리 사범학교 1년 후배 여학생 김모양의 집을 같이 가자고 하였다. 무작정 그 여학생이 살던 회천면 소재지 율포리 김양의 집으로 찾아갔다가 그녀가 출타 중이어서 만나지도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런 사연을 적은 엽서 한 장만 남겨 놓고 돌아왔던 추억이 생각나서 그 이야기하였더니, 우리가 그런 추억이 있었던가? 하고 되물었다.
헤어질 무렵 월전이 팔순 기념 타월을 나누어 주었다. 작년이 월전의 팔순이었는데 우리를 만나지 못하여 기념품을 전하지 못하였다면서, 2년 동안 못나온 벌로 아무 때나 점심을 대접할 수 있도록 10만원을 내게 맡겨 놓았다. 다음 주에는 월전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조촐한 파티를 열 생각이다.
만나기만 하면 고마운 사람들과 아름다운 산행이 오래 오래 지속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첫댓글 목요산우회 하루 행사에 대한 아석의 글을 읽으니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미니 다큐 한 편 잘 보았습니다.
송헌의 손자는 정말 자랑할 만 하네요
sky대를 모두 합격했다니 놀라운 지고
다른 사람들은 in seoul도 어렵다는데 제주도 촌학생이 ~~~~~~
제주도 공부 잘한 사람중 또 한 사람은 수능 1등해서 제주도 지사까지 하고 있으니
송헌 손자 유엔 사무총장은 따놓은 당상이고 미국대통령까지 꿈꿀 수 있을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