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은사 쇄신과 '어둠의 세력' - 제11장 은사 쇄신과 구마에 대한 심리학적 관찰

[모서리]

제11장   은사 쇄신과 구마에 대한 심리학적 관찰

 

악령에게서 구해 내는 '해방'의 모임을 이번에는 심리학의 관점에서 고찰해 보기로 하자. 이는 악령에게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사람의 정신과 깊은 내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심리학에서도 매우 신중해야 한다.

 

특히 다음 까다로운 두 가지 점에 주목해야 한다.
- 첫째는 올바른 진단을 내리기가 어려운 예비 단계와 관련된다.
- 둘째는 '마귀 들린' 사람도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도 겪게 될 심리학적 위험들과 관련된다.

 

  1. 진단의 어려움

 

51. 마귀의 영향이 작용하고 있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는 문제 때문에 확실한 진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아무도 그것을 직접 입증할 수는 없다. 마귀들은 영적 존재이므로 우리의 경험적 관찰과 지성적 범주로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진단은 단지 추정일 수 밖에 없다. 다양한 문화에 따라 수세기 동안 해석해 온 여러 가지 외적 현상을 여기서 숙고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고지식하고 너무 쉽게 믿는 것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면, 과학의 발견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평범한 과학적 사실조차 모르는 놀라운 무지 때문에 악령에게서 구해 내는 '해방'을 터무니없이 지나치게, 또 지혜롭지 못하게 시행하는 것을 몇몇 집단에서 여러 번 보았다.

 

어떤 그리스도인 모임이라도 과학적 발견들을 무시하지 않아야 신뢰를 받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배척받게 될 것이다.

 

뛰어난 신학자인 예수회의 드 통퀘덱(de Tonquedec, S.J.) 신부는 여러 해 동안 파리교구의 구마자였는데, '정신신경 질환과 마귀 들린 증세'(Les maladies nerveuses ou mentales et les manifestations diaboliques)라는 표제로 책을 썼다. 이 책을 저술한 지가 꽤 되었는데도 이 책은 아직도 우리의 화제가 되고, 우리 주제에 중요한 책이다. 왜냐하면 이 책이 이상한 형태의 행동에서 마귀의 활동을 곧바로 찾아내는 이들에게 그 진단에 대해 재고할 것을 권고하기 때문이다. 드 통퀘덱 신부는 진정한 마귀 들림과 정신무력증, 히스테리, 여러 종류의 간질과 같은 신경계 질환에 공통되는 어떤 특징들을 명시한다. 그는 순수하게 의학적인 사례들 중에서 전혀 그 환자의 정상 행동이라 할 수 없는 심술궂고 통제되지 않은 행동, 짐승같이 거칠고 버릇없는 습관 등 이례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정신분열증으로 알려진 상태를 언급한다. 그러나 이 모든 행태는 정신질환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마귀 들린 것은 아니다.

 

비슷하게, 사탄의 도구로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어떤 히스테리 환자는 종교적인 대상들에 대해 공포심을 드러내고, 악에 맛들인 경향을 나타낸다. 때때로 그는 난폭하게 뒤흔들리고 상스러운 말을 하거나 부끄러운 줄 모르는 태도를 취한다.(1)

 

정신 병리학에서는 어떤 동물이 자기 배 안에 살고 있다고 믿는 강박 관념 같은 것도 있음을 안다.
이러한 병들은 매우 특별해서 이 이상한 현상들이 마귀에서 비롯된다고 추정하고 따라서 마귀에게서 구해 내는 '해방'으로만 치료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이 생기게도 된 것 같다.

 

암이나 백혈병의 경우에는, 구마예식에 의지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병들의 증후들이 그러한 상상을 흐트러뜨리기 때문이다. 신경계 질환으로 생기는 이상한 현상들 때문에 그 병들이 마귀의 영향이라고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

 

52. 과학 자료를 무시하면 은총과 자연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모르게 된다. 성 토마스 데  아퀴노는 은총이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을 보충하고 완성한다고 말하면서 이  관계를 자주 강조한다. 종교 개혁에서 나온 경향들에 반하여, 가톨릭교회는 자연을 본질적으로 손상되었거나 부패된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우리의 현재 목적을 위하여, 하느님의 선물인 식별이라는 초자연적 은사는 비판적인 인간의 지성을 배제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이고 싶다. 지성 역시 창조 전체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선물이다. 은사들은 서로 보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식별의 은사를 정신의학이 확증한 인간적인 사실들을 무시하거나 교회의 식별에 의지하지 않고 성령께 직접 호소해도 좋을 기준으로 제시해서는 안된다. 일반적으로 구마단이 의지하는 식별은 기도 모임의 식별이지, 어떤 고립된 개인의 식별이 아니다. 그러나 이 집단적인 식별조차 충분하지는 못하다.

 

비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집단적 식별을 그들의 최종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이 문제에 더 깊이 들어가고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신비를 인정하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가 사도들의 교회이기를 바라셨고, 사도들의 교회는 주교들의 계승을 통하여 대대로 이어왔다. 일단 신자가 그들에게 사실에 관하여 신뢰심을 갖고 솔직하게 알리면, 최종 판단에 대한 의무는 주교들과 그들과 일치하여 있는 사제들에게 또는  지금의 경우처럼 그들에게서 위임받은 이들에게 있다.

 

'식별'이란, 중대한 오해를 피하려면 신학이 명백히 해야 할 까다로운 단어들 가운데 하나이다.

 

  2. 마귀에게서 '해방되어야 할' 사람이 받을 심리적 위험

 

53. 어떤 모임이 마귀에게서 구해 내는 '해방'을 아무리 지혜롭고 신중하게 한다 하더라도 '해방되어야 할' 사람에게 미칠 심리적 영향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보통 이 사람은 자기 병이 악마의 영향 때문이라고 믿거나, 그렇게 믿도록 설득되었다.

 

그리하여 이 사람은 여러 가지 강박관념에 떨어질 위험이 있다. 우선 그는 자기가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자기의 책임이나 자유와는 무관한 무서운 힘에 묶여 끔찍한 영향을 받고 있는 희생자라고 생각할 터이므로, 자기 자신에 대한 영상이 감정적 충격으로 일그러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책임이 없다고 느끼는 것은, 치유에 협조할 환자의 능력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매우 해롭다.

 

어떤 사람의 열등의식을 부추기고, 행동하고 반응할 능력을 어리석게도 감소시키는 것은 언제나 비난받아 마땅하다.

 

따라서, 그가 구마를 청하게 된 이유들을 면밀히 분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는 자기 단련을 더 많이 요구하는 방법을 모면할 신속한 구제책이나 자기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에 도움이 못되는 쉬운 방법을 찾으려는 유혹을 받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집단적인 악 영향의 증가도 고려해야 한다. 갑자기 구마가 쇄도하고 인기있는 구마자가 큰 군중을 이끌어낸다는 증언을, 나는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들어왔다.

 

  3. 해방자 편에 도사린 지배의 위험

 

54. 그러나 내 견해로는 가장 심각한 위험은 '해방'을 시행하는 사람들이 '해방'에 자기 자신을 내어놓은 사람에 대해 가질지도 모르는 지배력에 있다고 본다.

 

그 사람을 해방시키는 모임 중에 때때로 가장 내밀한 마음의 동요를 드러내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는 그의 과거, 정신적 또는 신체적인 병, 죄책감, 고뇌, 근심, 증오 등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될 질문을 받는다. 구마자는 이들 마음의 상처의 근원이라고 믿는 마귀의 신원을 밝히려 하고, 마귀들을 몰아내고자 하나씩 이름을 부른다.

 

보통, 해방의 모임에 자신을 내어놓은 사람은 그의 '해방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느끼며 미래 안녕을 위해서 그들의 충고와 제안을 거의 맹목적으로 기꺼이 따르고자 한다.

 

비록 조종할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이렇게 남의 마음을 조종하게 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교회는 수도회의 규칙을 승인할 때, 개인의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고자 언제나 노력해 왔다.
이 유서 깊은 지혜는 지워버려서는 안될 어떤 울타리가 있다는 것과 개인의 자유와 책임이 여전히 불가침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기 도

 

볼 수 없는 세계는 신비에 싸여있지만, 우리가 확신하는 한 가지는 주님께서 우리의 영적 투쟁 한가운데에 현존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교회의 기도에 결합시킵시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전능하신 하느님,

당신의 빛을 보내시어 세상의 어둠을 밝혀주셨으니

저희를 인자로이 굽어보시어

독생 성자의 영광스러운 탄생을

저희가 한 목소리로 찬미하게 하소서.  - 성탄 팔일 축제 내 제5일 기도 -

 

반성과 토론을 위한 질문

 

1. 과학, 특히 의학과 정신병학이, 지금 우리가 검토해 본 주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51항)
2.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다."라는 신학적 주장은 현 맥락에서 무슨 뜻인가?(52항)
3. 구마의 직무는 당사자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그 사람을 지배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위험들을 분석해 보자.
4. 많은 경우에 '해방'의 직무가 왜 구마의 참된 실천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