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비둘기 울음소리
풀잎 끄트머리 대롱대롱 맻혀있는 이슬거리 툭툭 털어 가며 새벽이슬에 바짓가랑이 축축이 젖어 오는
오솔길을 내려 설적에 이른 새벽부터 산비둘기 가 울고 있다.
/기집죽고 /자식죽고 /전지재산 /다떨구고 /어찌 살꼬. /어찌 살꼬……./
/구국구국 /구국구국 /구국구국 /구국구국 /구구구국 ....
어릴 때 어머니께서 내게 들려주신 이야기 인데 지금도 비둘기 우는 소리만 들려오면
그 이야기가 생각나서 따라 중얼 거린다 .
산비둘기 는 네 번씩 장단을 맞추어서 구국구국 이렇게 운다.
그 울음소리엔 농사꾼이 장마에 아내와 자식 그리고 논 밭 을 다 떠내려 보내고
한이 되어 죽어서 산비둘기 가 되어 저렇게 서럽게 울부짖는 거란다.
동녘 산마루에 여명이 밝아 오를 무렵 모처럼 일요일에 아버지 농사일을 거든다고
논에 나서면 논두렁 삑삑이 풀 에 달려있던 이슬방울이 냉장고 에서 꺼낸 물 보다 더 섬칫하게
차갑게 바짓가랑이에 달라붙고 가래질해서 반들반들한 논두렁은 맨발로 밟으면
자꾸 미끄러져 몸을 가눌 수가 없어서 논바닥으로 나뒹굴기 십상이다.
이맘때 새벽 물 기운은 한겨울 못지않은 차가움이 있다.
논에 나가 봐야 글공부 하는 놈은 공부나 신경 쓰라는 아버지 말씀에 논에는 들어가지도 못하지만
모두가 바빠서 눈코 뜰 새 없는데 공부 한다고 방에만 있기 민망하여 들로 나가 본다.
논둑 가래질 하시는 아버지와 용돌이 한준씨 바라보이는 수멍[논에 물들어 오는 터널] 에 앉아서
송사리 잡으려고 엎드려 끙끙 대는데, 꼬랑지를 춧석 춧석 날아오는 박새가
노랑쟁이 꽃[애기똥 꽃]속에 둥지를 틀고 새벽부터 벌레를 물고 열심히 드나든다.
아버지는 늘 그러셨다 내가 농사일을 손에 대는 것조차도 싫어하시고 선비로 자라주길 바라시고
선비는 험한 것을 보지도 않으며 듣지도 말고 험한 일은 손에 대지도 마라 하시며
선비는 마당에 우케[낱알]멍석이 다 떠내려가도 고개를 돌리는 법이 아니다.
하시며 오로지 글 하는 놈은 글만 하고 농사짓는 놈은 농사만 지으라고 말씀 하였는데
지금에 나는 험한 일만 골라서 하고 다니니 아이러니 하다.
들에 가나 산에 가나 항상 노트 한권 들고 나가 시 쓴다고 끄적거리고 그림 스케치 한다고
연필 들고 그려 댔는데 시인도 못되고 화가 또한 되질 못했으니 적성도 모르며
허황된 꿈만을 꾸며 살았나 보다.
그때 쓴 글귀 하나가 생각난다. [鳩鳴曉霧中...구명효무중 ..새벽 안개 속에 비둘기 우는 소리가]
[寒露哀心歸...한로 애심귀..차가운 이슬보다 슬프게 가슴에 와닿는다.]
그 정도 밖에 표현할 줄 모르니 시인이 못 되었을 수밖에 ㅎㅎㅎ 그래도 그때는 엄청 잘 쓰는 글 인줄
착각하며 살았으니 우물 안 개구리가 따로 없다. 왜그리 그때는 시인이나 화가가 부럽고 되고 싶었는지...
지금도 그때 생각 때문에 자꾸 글쓴다고 끄적 거리곤 하는것 일 것이다.
아버지 께서는 하루 중에 농사일 하시는 시간이 새벽부터 해가 뜰무렵 까지만 하시고 낮에는
읍내에 나가 주로 산림 벌목[남의 산에 나무만 사서 허가내어 베어 파는] 사업을 하셧다.
농삿일은 어머니 께서 머슴 둘 데리고 하시곤 했는데 용돌이와 박한준 이다.
한준씨는 이북에서 온 피난민 인데 알콜 중독자 라서 술 없으면 일도 못하고 술 취하면 앞냇가에
나가 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꿈에본 내고향 노래를 울며 불며 부르곤 했는데 아버지께서는 한번도
그를 야단 치질 않으시고 애석해 하셔서 그도 산비들기 처럼 우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냇가에 앉아 그가 부르던 /꿈~~에본 내~~고향이 ~~마~`냥그리워/ 소리가 들리는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