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의 두 얼굴
임병식
신문을 펼쳐 들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보았다. 노르웨이 축구선수 홀란이 뒷머리를 묶은 고무줄 끈이 한국에서 개발한 제품이라는 것이다. 경상도의 한 작은 업체가 머리를 묶는 끈을 상품으로 만들어 ‘끄네끼’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이 세계 여러 나라로 수출되고 있단다.
‘끄네끼’는 무엇인가를 묶는 끈을 이르는 말이다. 경상도뿐 아니라 전라도에서도 흔히 쓰던 방언이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부르던 말이 상품의 이름이 되고, 그 작은 끈이 세계적인 축구선수의 머리를 묶고 있다니 재미있는 일이다.
그런데 ‘끈’을 생각하면 단순히 무엇인가를 묶는 사물에만 머물지 않는다. 끈이 있다는 것은 서로 이어질 무엇인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끄네끼’를 생각하다 보니 문득 ‘끄나풀’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끄나풀은 남의 앞잡이나 밀정 노릇을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끄네끼’가 무언가를 묶어주는 끈이라면, ‘끄나풀’은 사람 사이를 오가며 좋지 않은 방법으로 관계를 잇는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서로를 믿고 이어주는 선의의 끈이 있는가 하면, 남의 약점을 캐내고 비밀을 옮기며 관계를 허무는 악의의 끈도 있다. 같은 끈이라도 무엇을 잇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오늘날 ‘끄네끼’는 작은 생활용품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 상품이 되었다. 평범한 생활용품 하나가 국경을 넘어 사람들의 일상에 들어가는 모습이 반갑다. 편리성과 효용성을 인정받아 오래도록 사람들의 삶에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 끈이 끄나풀 같은 연결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을 이어주느냐에 따라 끈의 의미가 달라지듯, 사람의 삶도 무엇을 위해 서로 연결되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생각해 보면 끈에는 두 얼굴이 있다.
서로를 묶어주는 끈이 있는가 하면, 서로를 얽어매는 끈도 있다.
어휘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사람이 그 말에 어떤 삶을 매어 놓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2026)
첫댓글 신문 속 사소한 일화에서 출발해 언어의 어원과 인간관계의 본질로 시선을 확장해 돋보입니다. '끄네끼'라는 친숙한 방언에서 '결속과 정리'라는 긍정적 연결을, '끄나풀'이라는 단어에서 '밀정과 얽매임'이라는 부정적 연결을 대비시켜 언어유희에 머무르지 않고 "끈에는 두 얼굴이 있다"는 성찰로 자연스럽게 전환됩니다. 일상의 작은 관찰을 삶의 깊은 지혜로 엮어내셨습니다.^^
사물속에서 다양한 생각들을 끄집어 내려고 노력합니다.
어느 말에서 비롯되었을 말이 긍정과 부정으로 갈리는 말로 변형된 것에 대해
생각이 머물었습니다.
저 스스로는 오늘 주변 사람들에게 타인을 빛나고 단정하게 해주는 끄네끼같은 존재였는지, 아니면 관계를 얽어매는 끈이었는지 조용히 반성해 보게 되는 멋진 글이었습니다. 좋은 글 읽게 해 주셔서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제품이 세계 곳곳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 모습이
흐뭇하고, 끄네끼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이 면이 스쳐가는 것은
어쩔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