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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은
영화제목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다가 죽기 전에 우리가 할 만한 일이 하나 떠올랐다.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닌 그런 일, 세상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값을 수 있는 그런 일...
지난 겨울엔가
우리가 홍콩을 다녀오는 와중에 수석이네 강아지 레오가 노환으로 죽자 그의 무덤을 만들며 수석이가 연주한 그 노래가 그렇게도 좋더니만 알고보니 그 연주 속에 절절한 슬픔이 베어 있어서였던 것 같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런 절절한 슬픔도 슬픔이지만 만약 나에게 그런 일이 닥치면 난 어째야 하나? 애를 어디에 묻어야 하나? 버들이가 죽고 못사는 그 애들을 어디에 어떻게 묻어야 되나? 하는 현실적인 문제로도 다가오더라. 그래서 그 문제를 걸핏하면 꺼집어 내어 이리저리 뒤집어보지만 뽀족 수가 생각나지는 않더라.
"쉬운 일은
왜 실행이 어려울까? 우리 강아지 레오를 얼음 땅을 깨고 묻는데 산은 안개로 지척이 구분되지 않고...그냥 하릴없이 낙엽을 긁어 덮고 또 덮다가 이래도 추울거라 또 덮고는 했다" 는 조그마한 사랑조차 실행하지 못한 후회나 행동들은 나로 하여금 반성하고 또한 구체적으로 준비하라는 부추김과 압박으로 다가왔었다. (수석이의 절절한 연주-거리에서-가 반복 재생되더라..459번)
'천국의 문'은
애완동물의 공동묘지를 만들고 운영하는 일에 대한 영화이다. 사람들이 갖가지 애완동물을 묻으러 오면서 각자의 사연을 늘어 놓으면 묘지 담당자가 조근조근 조의를 표하며 공감하는 가운데 사람들의 슬픔이 서서히 가라앉는 그런 장면들이 특히 눈길을 붙잡더라.
요즈음은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자신의 집에서 식구처럼 살고있는 애완동물과의 이별에 대해 어째야 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해 뒤숭숭해할 것이다. 그들과의 이별은 이제 특별난 몇몇 소수의 고민이 아니고 현실적으로 많은 보통사람들의 심각한 질문이 되고 있다. 이 이별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나? 슬픔이야 말할 수 없이 큰데, 그렇다고 누구 볼새라 그 슬픔을 내어놓고 슬퍼할 수도 없는 시류이기도 하고...
어째야 되까?
애들은 자꾸 노년에 다가가는데 내 노년도 만만치 않지만 아무래도 애들 노년을 먼저 만날 것 같은데...수석이가 산천곡곡을 헤메이며 노년을 보낼 곳을 수소문하는 모습을 보고 들으며 이제사 그 일하고 이 일이 매치가 되면서 이렇게 말을 꺼집어낸다.
핏줄이
죽은 것 못지않게 슬퍼하는 애완동물들의 친구들은 그냥 시류를 흘낏대기만 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힘들어 하는 것 같다. 선듯 나서기를 두려워한다. 나는, 그리고 수석이나 차연 식구들은 사람들 이목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으리라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있다. 왜냐? 슬픔을 그냥 슬픔으로 볼 줄 아는 안목이 있는 듯 하니까...
독립만세를
부르겠다는 것도 아니고, 반정부 데모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니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다만 사람 위주의 세상에 대한 반기를 드는 것인데, 말이 반기지 따지고 보면 그냥 슬픔을 슬퍼하게 하자는 것이 아닌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산속이면 혐오시설 물러가라는 토박이들 원성도 덜 만날거고..
영화에서는
사업성 때문에 무척 힘들어 하는 장면이 대부분인데, 우리는 그 문제가 크게 다가오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대충 일어나는 일은 우리 힘으로 해결하고 힘에 버겁거나 경제력에 버거우면 버겁지 않게 우리 식으로 단순화시켜 남이 뭐라든 슬픈 사람들이 자신의 슬픔을 마음놓고 슬퍼하게 하고 싶은 생각이 더 크다.
태어나서
마지막으로 보시하는 일이라고 단순화시켜 그 일을 해보면 어떨지.............................................나는 땅파는 일꾼 역할을 점찍어 놓으려 한다만...
일본 고치 시의 오베르주온천 리조트 곁...시복원
이 정도 규모라면
내 힘으로도 뭐 못할 것도 없겠다 싶다. 다만 땅파기가 힘에 부칠란가 몰라도...
진짜로
땅파기가 힘에 부치면 애들 몸을 들고온 지네들 보고 파라 해도 될거라..연장만 빌려주면 안될까..
땅 파면서
실컷 울 수 있도록 자리만 비켜주모 되지 않으까.....?
http://blog.daum.net/snuljs/16501348
데카르트라는 사람은
신 중심의 세상에서 인간 중심의 세상에로의 사색을 이어간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너무 지나치게 나아가다보니 이런 소리도 해버린 모양이더라.
...
동물은
이성능력이 없는 움직이는 기계일 뿐이고 인간은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이다...라고. 동물을 조금이라도 좀 살펴보고 그랬으면 그의 철학이 훨씬 영글었을터인데..애들이 움직이는 기계정도라면 우리가 왜 이리 슬퍼할 터인가...그렇지 않아도 그가 말한 '인간'이라는 범주속에는 지가 아는 사람만 포함된다고 해서 웃기는 철학이라고 해쌌더라만..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알고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인데도 아직 그런 공감의 수준까지 이르지 못한 모양이라...이 모든 것이 아직 우리가 인간중심의 사고체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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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는
신문에는 매주 박 정윤이라는 수의사 이야기가 실린다.
"...
사람의
평균수명이 늘어난 것처럼 동물의 평균수명도 많이 늘어났다. 우리 병원에 오는 대다수 아이들은 10살을 거뜬하게 넘은 나이임에도 다들 건강하다. 13~14살은 무난하게 사는 아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노년의 나이에 찾아오는 질환은 간단하지 않다. 고혈압은 물론 신부전, 호르몬 관련 질환도 많은 데다 요즘은 유독 종양이 많아졌다...."
그녀는
자기 병원에 치료하러 오는 동물들을 모두 애들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그냥 단순히 곁에서 우리가 품만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넘들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데. 태어나서 살다가 힘든 노년을 맞이하고 죽는 것이 모두 우리 하는 짓 꼭 그대로더라. 그냥 한 번 쓰다듬어 주는 걸로 소임을 다한 줄 알았더니 그 관계에도 애증이 꽃이 피고 희노애락이 철철 넘쳐나더라.
나의 이런
모든 감정은 버들이가 나를 교육시킨 거다. 아직도 내 사랑이 부족한 지 점검한답시고 잊을 만 하면 애들 독사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낸다. 아마 잊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용인 듯 하더라만. 그런데 언제인가부터는 그런 사진들이 압박이 아니게 되더라. 나도 모르게 한번씩 카톡으로 애들의 안부를 묻기도 한다.
버들이가
아직 애인지라 나중의 일은 걱정하지 않더라. 나는 볼 때마다 쓰다듬어 주고 한 발 떨어져 놀고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오만가지 생각이 오가게 되더라. 내가 이런 감정놀음에 빠지지 않을라고 사람에게조차 정을 주지 않으려 평생을 애썼건만 어쩌다 보니 또 이렇게 되어 버렸다.
어릴 적
나의 강아지 사랑은 다른 애들 못지 않았다. 하교하면 그 애 붙잡고 마당을 딩굴고 동투레 밀며 온 마을 들판을 쏘다니면 그런 나를 항상 따라 다니며 나를 지켜줬던 그 애들을 나도 엄청 좋아했었다. 서로 아무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그런 마음으로...그러다가 고학년이 되고 뜻밖의 이별을 접하게 되면서 정을 끊어야 하는 결심을 하게 되었더랬다. 그 때 사람들도 지금처럼 그런 애들이랑의 이별은 아주 가혹하고 매몰차게 해치웠으니까.
복날이면
마을에서 어른들이 힘을 합쳐 우리 집 감나무 가지에 매달아 놓고 그야말로 개패듯 패는 어른들을 엄마 치맛폭에 숨어 지켜보며 가슴 졸였던 기억과 강아지가 가지에 매달려 맴을 돌다 내 눈과 마주칠 때 나를 바라보던 그 눈길에 대한 숨막히는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것을 보면 굉장한 충격이었던 듯하다...
누군가를 향한
사랑이란 것이 그 사랑에게로 다가오는 이런저런 위기들을 막아내어줄 힘이 없어면 비참하고 무서운 거구나 하는 막연한 각성을 그때 쯤 하게 된 거 아닌가 몰라.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는 일의 만만찮음이...아마 그 반작용으로 버들이가 강아지를 기르기 시작했을 때 그 이별이 무서워 격렬하게 반응했는 지도 모르겠고..
내가
상념에 젖어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수석이의 연주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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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함께 일하는
수의사 선생님의 슈나우저 14살 ‘다롱이’가 얼마 전 하늘나라로 떠났다. 3개월 전 검진을 했을 때도 보이지 않던 폐종양과 신장결석이 거짓말처럼 나타났고, 다롱이는 한달을 조금 넘게 버티다 떠났다. 다롱이는 떠나기 전 일주일을 집에서 가족들과 보냈다. 보호자가 수의사인데 살리고 싶은 마음이야 오죽했을까 싶다. 결국에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그의 마음은 무거웠을 것이다.
병원에서
함께 지내던 코커스패니얼 ‘카스’도 10월에 세상을 떠났다. 카스는 2년 전 악성 유선종양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한 뒤 건강하게 잘 지냈다. 어느 날부턴가 앞가슴이 부풀고 알레르기처럼 얼굴도 가끔 팅팅 부어 검사를 받았는데, 폐에 생긴 큰 종양 덩어리를 발견했다. 실험실로 보낸 미세흡인검사에서 양성종양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우리는
많은 고민을 했다. 수술이 어려운 부위인 폐종양이라 수술은 안 하기로 생각했다가 양성이라는 말에 떼어주고 싶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카스는 숨 쉬는 것도 힘들어했고, 잘 때도 호흡이 힘들어 누워서 편히 잠을 자지 못했다. 힘들어하는 걸 손 놓고 지켜볼 바엔 수술을 해보자는 식구들의 마음을 따라 나는 카스의 수술을 결정했다. 수술 뒤 조직검사 결과 악성종양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카스는 수술 뒤 하늘나라로 떠났다.
2년 전
신장결석 수술을 한 13살 ‘쿠키’는 반대쪽 신장에서 결석이 재발해 신부전 치료를 받고 있다. 처음에 우리는 3개월을 못 넘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쿠키는 1년이 넘도록 투병중이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도 쿠키네는 지치지 않는다. 떠나보내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으로 오히려 우리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다. 처음에는 입원을 싫어했던 쿠키도 이제는 일주일에 3일씩 입원하는 것에 익숙해져 반복되는 채혈도 꾹 참고 수액 맞을 때도 기특하게 알아듣고 치료를 잘 받는다.
14살
요크셔테리어 ‘초롱이’는 꼬장꼬장한 할아버지다. 올해 여름 초롱이는 처방식도 거부하고 약도 다 뱉어냈다. 나이가 많아 혈압도 높고 지병인 호르몬 질환도 있어서 적극적인 치료도 어려웠다. 무엇보다 수액을 맞아야 하는데도 입원실이 싫어서 하루 종일 울부짖었다. 가족들이 돌아가며 하루의 대부분을 병원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초롱이는 눈에 띄게 괴로워했다.
우리는
초롱이의 성격을 존중하기로 했다. 치료를 포기하지 않지만 마지막까지 병원에서 힘들어하며 가족의 품이 아닌 곳에서 떠나게 하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매일 저녁 퇴원을 시키고 아침에 다시 입원하는 것으로 전환했다. 투병 4개월, 초롱이는 그럭저럭 잘 지낸다. 겉으로 보기에는 밥도 잘 먹고 여전히 꼬장꼬장하다. 가족들의 인내심과 노력이 초롱이를 버티게 하는 힘이라 느낀다. 초롱이가 몇년을 잘 버텨줄지는 솔직히 알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평균수명이 늘어난 것처럼 동물의 평균수명도 많이 늘어났다. 우리 병원에 오는 대다수 아이들은 10살을 거뜬하게 넘은 나이임에도 다들 건강하다. 13~14살은 무난하게 사는 아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노년의 나이에 찾아오는 질환은 간단하지 않다. 고혈압은 물론 신부전, 호르몬 관련 질환도 많은데다 요즘은 유독 종양이 많아졌다.
목돈이
들어도 한번에 완치가 될 수만 있다면 고민이 없겠지만 적지 않은 비용이 들고 시간을 들여 관리해야 하는 만성 질환이 늘어난데다 한가지 질환이 아닌 복잡하게 얽힌 다발성 질환으로 힘들어하다가 떠나는 경우도 많다. 사람도 견디기 힘들다는 항암치료를 선택할 때도, 투석을 받거나 하루가 멀다 하고 수액을 맞으며 혈액검사를 해야 하는 신부전 치료도 쉽지 않은 선택이고 지칠 수밖에 없다.
어떤 보호자는
진단이 나오면 고통을 주는 것이 싫어서 치료를 포기하고 안락사를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보호자는 코마 상태에 있는 아이라도 살아 있기를 원한다.
박정윤 수의사
버들이가
벌써 이과쪽을 향하고 있다. 마음을 아예 굳힌 모양이다. 그리고 맹렬하게 공부중이다. 내 주변에 이과 출신이 하나도 없어서인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는 있을 것이다. 지속적인 치료가 사람의 욕심이라고 단정짓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교과서적으로 아이들을 입원실에 옭아맬 수도 없다. 의학적인 지식과 진료 경험으로 제시하는 최선의 방법도, 삶의 질과 투병의 강도를 나이와 성격에 맞게 고려해야 하는 것도 모두 중요하다.
그러니
많이, 아주 많이 대화하고 함께 상의하자. 너무 빨리 포기하지도 너무 집착하지도 말자.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아이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도록 ‘함께 행복할 수 있는 투병 방법’에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선택에 대한 후회는 적어질 것이다. 다롱이도 카스도, 하늘나라로 떠난 아이들 모두 잘 지내렴.
... 박 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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