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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16(주일) 요한복음 2:1~12 ‘가나의 혼인잔치가 주는 교훈‘
요한복음에는 총 7개의 표적이 등장하는데, 첫 번째 표적이, 오늘 우리가 살펴볼 ‘가나의 혼인잔치’의 표적입니다. 두 번째 표적은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시는 사건이구요. 세 번째 표적이,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는 사건이고, 네 번째 표적이,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표적은 물 위를 걸으시는 사건이고, 여섯 번째 표적은, 소경을 고치시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표적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사건입니다.
이러한 표적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그 분이 이 땅에서 이루실 일, 즉 예수께서 무슨 일을 하실 것인가를 가리키는 표지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공생애 첫 번째 이적이자 표적이었던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십니다. 이 일을 통하여 예수님은 자신의 신적능력을 스스로 입증시켜 보이십니다.
19세기 영국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이 케임브리지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일 때, 신학 과목 학기말고사 논술시험 주제로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에 담긴 종교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서술하라"라는 문제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Water saw its Creator and blushed.
물이 그 창조주를 뵙고 얼굴을 붉혔도다.
남들은 깜지 채우고 있는데, 답안지에 이 한 문장 쓰고 최고점을 받았다고 합니다. 원래 대학교 시험이라는 것이 무조건 양만 많이 쓴다고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교수가 출제한 문제의 의도를 정확히 알고 교수가 원하는 답(문장, 단어 등)을 써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물론 위의 문장처럼 보기 드문 기발함이 아니라면,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고작 한두 문장 정도로 만점(A+)까지 받기는 힘들긴 합니다. 양이 중요하지 않다고는 하나 최소한의 분량은 채워서 써야 되니까. 위의 문장은 종교인이든 비 종교인이든 누가 봐도 엄청난 센스가 돋보였기 때문에, 교수라면 분량이 한 문장에 불과하더라도 충분히 최고점 줄 만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다만 이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는 미지수이며, 후대의 각색이라는 주장도 많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신학과목 학기말 고사 논술시험 문제와 같이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가나의 혼인잔치 기적에 담긴 종교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기를 원합니다.
이 표적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하며 무슨 교훈을 받고 어떤 적용을 해야 할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 각자에게 주시는 음성을 들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우리 삶에 포도주가 떨어질 때 주께 기도하라(1-4절).
가나의 혼인잔치가 주는 첫 번째 주는 교훈은 우리 삶에 포도주가 떨어질 때 주께 기도하라,
예수께서 가나 혼인잔치에 초대 받아가십니다(1,2절). 그런데 가장 축복된 잔치의 흥을 돋울 포도주가 떨어지고 맙니다(3절). 당시 유대인의 결혼식은 일반적으로 일주일 동안, 길면 이주간이나 축하연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연회 중에 포도주가 부족한 것은 혼례를 베푸는 주인에게 큰 수치였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중요한 순간 포도주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처럼, 우리 삶에도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부족함이 찾아와 고통과 수치를 당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예수의 어머니는 예수께 나가가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나이다’라고 말합니다(3절). 그리고 하인들에게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이릅니다(5절). 우리 삶에 가나의 혼인잔치처럼 결핍이 찾아올 때 마리아처럼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한다면, 예수님은 놀라운 기적을 통해 우리의 어려움과 부족함을 해결하시고 풍성한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예수님께 있다고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등산을 하다가 실족하여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낭떠러지로 떨어지다가 다행히 나뭇가지를 하나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누구의 도움이 없이는 도저히 살길이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뭇가지를 붙잡고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오셔서 ‘네가 정말 나를 믿느냐? 그리고 네가 너를 살려 줄 것이라고 믿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뭇가지를 붙잡은 채 위를 바라보며 ‘내가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그렇다면 그 나뭇가지를 놔라. 내가 너를 살려 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위를 행해서 이렇게 소리쳤다고 합니다. ‘그 위에 하나님 말고 다른 분 없습니까!’ 웃자고 만든 이야기지만 우리들의 자기중심적인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예수님의 도우심을 믿고 기도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했던 믿음의 여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잉태하는 과정을 보면 마리아가 결혼하기 전에 성령으로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는 과정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는 과정에서 아기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하게 하는데 그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여인을 찾으시다가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응답하며 순종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으로, 그리고 세상의 상식으로 선을 그으며 수용여부를 결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지식과 경험과 상식의 선을 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수용할 수 있고, 이해되는 범위 안에서만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성도에게 주신 무기이며 특권입니다. 누구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언제나 기도하기를 결심합니다. 그러나 기도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기도하다가 쉽게 포기하고 낙심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중단해서는 안됩니다.
무엇을 잘 하는 사람보다는 무엇이든지 끝까지 하는 사람이 유능하고 필요한 사람입니다. 처음보다는 끝이 좋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끝내주는 사람입니다.
승자는 구름 위 태양을 보고 패자는 구름 속의 비를 봅니다. 아인슈타인은 말합니다. “이 세상은 두 가지 방법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부류는 기적 같은 건 절대 없다고 믿으며 사는 사람이고, 또한 한 부류의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것들 중의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인생의 주책덩어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는 쉽거나 간단한 것이 없습니다. 살면 살수록, 하면 할수록,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욱 어렵고 복잡합니다. 그래서 한계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건강, 직장, 사업, 관계성, 기도, 봉사, 충성.... 너무 힘들어서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도저히 안 된다고 단념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시작일 뿐이라고 크고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때로는 하늘도 바라보고 내 옆에 있는 가족들도 쳐다보십시오. 새로운 힘이 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하나님도 바라보고 그 분 앞에 무릎을 꿇어 보십시오. 솟아나는 용기와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적용) 요즘 나는 어떤 결핍의 문제로 힘들어합니까? 어떤 힘들고 절박한 상황도 주님이 가장 좋은 것으로 바꿔주실 줄 믿고 마리아처럼 주님께 간구합니까?
2.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라(5-10절).
가나의 혼인잔치가 주는 두 번째 주는 교훈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라입니다.
마리아는 그 집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5절)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7절)고 하십니다. 이에 하인들은 여섯 개의 돌 항아리에 물을 가득채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인들의 순종을 볼 수 있습니다. 6절에 "유대인의 결례에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항아리의 용적을 정확히 하기는 쉽지 않지만, 대략 80리터에서 120리터 사이로 추정이 됩니다. 다시 말해, 혼인잔치를 베푸는 집의 항아리 여섯 개의 총 용적은 대략 500리터에서 700리터 사이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굳이 연구해보지 않더라도 당시 상황은 수도시설이 있을리 만무하므로, 이 정도의 용적을 사람의 손으로 물을 길어서 채운다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노동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명령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항아리에 포도를 집어넣어서 예수님의 신비한 능력으로 한 순간에 발효시켜 포도주를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항아리 안을 물로 채우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아마도 집에서 일을 도맡아 하는 하인들로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명령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먼저는 다 떨어진 포도주를 만들었던 것도 아마 하인들이었을 것이며, 그들은 아마도 포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혹은 예수님을 오해할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잔치가 무르익었고, 사람들이 취했으므로, 물을 먹여도 취한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인들은 예수님께서 혹시 임기웅변을 발휘하는 것인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문을 보면, 하인들은 순종했고, 그 표현으로 "아구까지 채우니..." 라고 말한다. 항아리를 물로 채우는데, 대략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항아리의 아구까지 물이 차 오르도록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순종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순종'이라는 단어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순종함에 있어서 적당한 수준의 순종은 필요없습니다. 자신의 지식과 추측으로 순종의 정도를 결정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온전한 순종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과 타협된 순종이 아니라, 때론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저 따르는 것, 사실 우리에겐 그러한 순종이 필요합니다. 현대 사회는 점점 지식수준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개인주의 마저도 팽배해져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점점 중요시 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이러한 순종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순종은 바로 오늘 본문의 하인들이 순종한 그 순종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그것을 떠다가 연회를 주관하는 책임자에게 갖다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인들은 항아리 물을 떠다가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습니다(8절). 그런데 그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연회장은 포도주 맛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9절). 일반적으로 혼인잔치에서는 처음에는 좋은 포도주를 내 놓고 사람들이 어느 정도 술에 취하면 질이 떨어지는 포도주를 내 놓는 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인들은 그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고(9절),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결국은 내 생각과 주관을 따라 생활합니다. 그런 삶에는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생명의 변화는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전적인 기준이 될 때입니다.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예수님이 하는 말을 그대로 하라”(5절)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절대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하며 따를 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적용) 하인들처럼 말씀대로 행하여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까? 아직도 말씀은 뒷전이고 내 생각과 주관을 따라 행동합니까?
3. 참 기쁨을 주시는 예수님을 체험하라(11-12절).
가나의 혼인잔치가 주는 두 번째 주는 교훈은 참 기쁨을 주시는 예수님을 체험하라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사건은 예수님만이 잃어버린 참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포도주는 기쁨과 즐거움을 상징합니다.
기쁨과 희락의 표식인 포도주가 떨어진 사건은 모든 기쁨과 소망 없는 인류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멀리 떠나간 인류는 결코 기쁨이 없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지는 사건은 이것이 인간의 실존임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마치 포도주가 떨어짐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결혼식이 '중도에 파탄난 미완성의 결혼식'(김회권_요한복음)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 결혼식의 완성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포도주)를 흘리심으로 완성하실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속담에 ‘포도주가 없으면 기쁨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는 포도주가 떨어진 혼인잔치집과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인잔치집에 떨어진 포도주를 최상품으로 채워주심으로 잔칫집에 참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시켜주십니다. 인간에게 있어 참 기쁨은 죄로 얼룩진 심령이 깨끗하게 되어 하나님과의 원수되었던 관계가 온전하게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 일이 예수님으로 인해 이루어질 것을 예수님은 가나의 혼인잔치의 표적으로 암시하십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 4절에 말씀하신 ‘내 때’입니다. 그 때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그 분의 피로 속량하시고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관계를 회복하시며, 참 즐거움과 기쁨을 회복하실 그 때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의 소원을 이루어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인간의 형식적이고 율법적인 종교 행위로는 결코 죄를 씻을 수도, 원수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도 회복할 수 없음을 ‘두 세통드는 돌항아리 여섯’(6절)를 상징으로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항아리의 목적과 숫자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6절은 항아리의 목적이 '유대인의 정결예법을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씻는 것은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 의무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유대인의 집에나 손과 발을 씻을 물을 담아두는 물항아리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물항아리는 바로 그런 목적으로 쓰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숫자가 ‘여섯’이라는 데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에게 있어서 ‘일곱’이 완전수이며, 여섯은 언제나 '모자라거나 불완전 한 것' 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율법의 불충분성’을 시사합니다. 유대인에게 있어 신앙은 ‘율법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인간으로 하여금 ‘원리와 규칙에 복종하도록 강요’합니다. 그러나 사랑과 은총을 잃은 종교적 삶이란 ‘참된 생명력’을 잃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사건은 유대인의 메마른 종교적 삶에 풍성한 생명력을 가져오셨다는 의미를 함축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좋은 원칙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원칙주의자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원칙주의자는 신앙의 생명력을 잃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이해를 가져오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과 같이 경직된 사고는 자기의 이해력을 벗어날 때 남을 정죄하며, 자신의 판단력이 미치지 못할 때 이웃을 죽입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신 것은 이 사실을 명백하게 입증합니다. 바라기는 자신이 세운 원칙이 우리를 경직시키지 않도록 항상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어놓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하심과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에 나 자신을 맡기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나의 이해력과 판단력을 새롭게 하셔서 가나의 혼인잔치의 물이 변화여 포도주가 된 것과 같은 참 기쁨과 즐거움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적용) 나는 참 기쁨과 즐거움을 주시는 주님을 체험하고 있습니까?
[큐티인간증 내 인생의 표적, 김진주]
이혼 위기에 있던 저는 언니의 권유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유아세례를 받는 부부들의 모습을 보며 부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첫째를 임신했을 때 허리디스크와 임신중독증, 조산으로 고생한 데다 남편과 갈등 중이었기에 아기 생각을 접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뜻밖에도 저희 부부에게 둘째를 허락하셨습니다. 하지만 태아는 기형아 검사 결과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이었고, 저는 양수 검사 권유를 받았습니다. 친정식구들은 건강이 좋지 않은 제게 낙태를 권했고, 저 역시 힘든 출산과정을 버틸 자신이 없어 낙태수술을 예약했습니다. 하지만 교회 지체들의 설득과 남편의 반대로 결국 수술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임신 7개월무렵에 남편은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중독을 끊고자 성매매 업소에 출입한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큰 충격을 받은 저는 배냇저고리도 준비하지 못한 채 둘째를 출산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후 저희 부부가 끊임없이 싸우자 소그룹 리더는 제가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했습니다. 처음에는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떠서 연회장에 갖다준 하인들처럼 순종했더니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먹으면서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7-8절). 이후 공동체에서 양육을 받으며, 남편을 무시했던 제 죄가 보여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남편을 향한 분노가 사라져 가정도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다운 증후근이 의심되었던 둘째는 그새 유아세례도 받고 건강하게 자라 올해 여덟살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 인생의 목적도 행복에서 거룩으로 바뀌었습니다. 낙태에 이혼까지 할 뻔한 저를 불쌍히 여겨 아내와 엄마의 자리를 지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건강한 아기를 주신 것이 제 인생의 표적입니다(11절). 이 기쁜 일을 가족과 지체들에게 나누고 저의 간증으로 복음 전하는 사명을 진실히 감당하며 살겠습니다. 적용하기) 딸들이 밥 먹을 때 집안 일을 하지 않고 함께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저와 비슷한 고난으로 힘들어하는 지체들에게 제 간증을 전하며 위로하겠습니다.
결 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가나에서 행하신 기적이 첫 번째 표적이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아르케' 는 '첫 번째' 라는 의미보다는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사건은 놀라운 일들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불신자가 예수님을 마음 속에 영접하고, 또한 그 예수님께 그의 삶을 맡기는 사람에겐, 날마다 새로운 질적 변화가 발생하며, 무한한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윌프레드 그렌펠경 (Sir Wilfred Grenfell)은 자기의 사업을 돕겠다고 나선 자원봉사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많은 보수를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와 함께 일을 하면,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전혀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의 표적을 베푸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시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부와 명예와 출세와 성공을 약속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우리에게 우리에게 샘솟는 기쁨과, 약동하는 생명력과, 무한한 창조적 변화를 약속하셨습니다.
바라기는 내 삶의 포도주가 떨어지는 사건 앞에서도 믿음의 눈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항아리 아귀까지 채우는 적용을 하시고, 회개하며 천국의 기쁨을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