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에서는 그린테일을 ‘친환경 유통’으로, 그린슈머를 ‘녹색 소비자’로 바꿔 쓰라고 권장하고 있다.
참 재미있는 광고가 있다.
2015년 ‘대한민국 광고대상’ 영상 부문 대상, ‘2015 서울영상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작품인데, 쟁쟁한 상업광고들을 다 물리치고 대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광고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영광까지 얻었다. 환경부에서 만든 “쓰레기도 족보가 있다”(I am your father)라는 공익광고다.
로봇청소기 속으로 빨려들어 가기 직전의 두루마리 휴지를 우유팩이 뛰어내려와 막아주는 장면. 휴지는 목숨을 구해준 우유팩에게 “후 아 유”(누구세요)라고 묻고, 우유팩은 그 유명한 영화 대사 “아이 앰 유어 파더”(내가 니 애비다)라고 답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자동차의 바퀴 옆에서 한쪽 뒷다리를 드는 개를 보고 찌그러진 깡통이 급히 굴러와 개의 오줌을 받아내는 장면이 이어진 뒤, 자동차와 깡통도 같은 말을 주고받는다. 물에 빠진 플라스틱 오리 인형에게 달려가 인공호흡기가 되어주는 빨대, 헐벗은 마네킹의 몸을 가려주려 애쓰는 비닐봉투, 모두 같은 말을 주고받는다. 광고에 나오는 말은 이 두마디밖에 없지만, 자원은 그냥 버려지지 않고 다시 쓰인다는 것을 인상 깊게 보여준다.
이 대사와 함께 화면에 비치는 핵심어가 ‘Recycle’(리사이클)이다. 리사이클의 의미가 재순환, 곧 되살려 쓴다는 뜻이니 명사형 ‘리사이클링’은 ‘재활용’이란 말로 번역해 쓴다. 리사이클링에 이어 ‘업사이클링’(up-cycling)이란 말이 나왔는데, 이는 ‘새활용’으로 번역되었다. 재활용과 새활용의 차이는 무엇일까?
재활용은, “자원을 절약하고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불용품이나 폐물을 재생하여 이용하는 일”(표준국어대사전)이라 하고, 새활용은 “재활용할 수 있는 옷이나 의류 소재 따위에 디자인과 활용성을 더하여 가치를 높이는 일”(우리말샘)이라 한다.
그러므로 재활용과 새활용의 차이는 ‘새로운 가치 창출’을 했느냐 아니냐에 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이 입었던 옷을 중고장터에서 사서 다시 입으면 ‘재활용’이고, 폐펼침막으로 장바구니를 만들어 쓰거나, 폐차의 가죽 시트로 가방과 지갑을 만들어 파는 것은 ‘새활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구를 살리는 이 좋은 일에 쓰는 말들을 언제까지 바깥에서 빌려와 써야 할까. 기획재정부에서 운영하는 네이버 블로그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소비를 통해 개인의 신념을 드러내는 ‘미닝아웃’(Meaning Out)이 트렌드로 부상하면서 가치 소비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줄임) 이처럼 가치 있는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그린테일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린테일이란 그린(Green, 환경)과 리테일(Retail, 유통)의 합성어로 제품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기획하거나, 친환경 소재로 포장하는 등 유통과정(상품개발, 생산, 판매 및 소비)에 친환경요소를 도입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획재정부 ‘경제e야기’ 중 ‘환경을 생각하는 그린테일’
리사이클링에 이어 ‘업사이클링’(up-cycling)이란 말이 나왔는데, 이는 ‘새활용’으로 번역되었다. 환경부 유튜브 채널 갈무리
언론에서는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가치 소비를 우선시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그린슈머’(Greensumer)가 증가하고 있고”라 쓰고, 우리나라 대표 은행인 국민은행은 올해 6월부터 “KB Green Wave 캠페인”을, 어느 대기업은 지난 4월 지구의 날을 맞아 “레스 플라스틱(Less Plastic) 캠페인”을 벌였다고 한다.
이쯤 되니 우리나라에서 환경운동에 관심을 갖고 함께하려면, 먼저 영어부터 잘해야 하나 싶다. 국어원에서는 그린테일을 ‘친환경 유통’으로, 그린슈머를 ‘녹색 소비자’로 바꿔 쓰라고 권장하고 있다.
1990년대 환경운동을 상징하는 말 중에 ‘아나바다’가 있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기’라는 뜻의 이 말에는 누구나 바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환경운동 방법이 거의 들어 있다. 우리말로 만든 말 중 참 잘 만든 말이라 생각한다.
요즘 코로나19만큼 전세계에 깊은 근심을 안기는 말이 ‘기후위기’가 아닐까 싶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의 평균기온은 1도가 올랐고, 앞으로 1.5도 이상 더 오르면 지구는 통제도 회복도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고 한다. 지구를 살리는 환경운동에는 정부와 기업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해야 한다. 그러자면 누구나 설득할 수 있고 바로 행동할 수 있게 하는 말을 써야 하지 않을까. 이 절박한 활동에 허세 부리는 말이 끼어드니 진실성마저 의심이 된다.
신정숙 교열부 기자 bom1@hani.co.kr
감수 상명대학교 국어문화원 특임교수 김형주
공동기획: 한겨레신문사, (사)국어문화원연합회
첫댓글 우리말 참 좋으네요^♡^
기후위기~남녀노소 모두가 지구를 살리는 환경운동에 함께 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