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이 제 발이 저리는 법입니다
- 한상봉 기자의 글 “주교가 이런 말해도 되나”에 대한 반론 -
우리는 흔히 ‘도둑이 제 발이 저리는 법이다.’는 말을 씁니다.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보편적인 가르침을 이야기 하면 도둑은 ‘착하기만 해서는 굶어 죽습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거짓과 도둑질을 합리화합니다.
서울 주보 2월 1일자의 조규만 주교님의 글은 평범한 사람이 읽으면 지극히 합리적이며 그냥 보편적인 말씀입니다. 주교님의 말씀은 특정한 사람들을 지적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입으로만 정의를 외치고 사랑을 말하기 보다는 자신부터 변화하고 그리고 겸손한 자세를 잃지 말라는 평범한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평범해서 오히려 실천하기 쉽지 않으며 이는 보수적인 지식인이나 진보적인 분들, 좌익과 우익을 막론하고 인간의 참된 심성에 호소하는 글입니다.
그런데 도둑이 제 발이 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신자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지나갔을 터인데 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의 한 상봉기자라는 분이 발끈하고 나섰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만이 정의로운 양, 사랑을 실천하는 양 나발 불고 다니는 인간들이라는 것을 자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부터 사랑을 실천하라는 주교님의 말씀에 쌍지팡이를 들고 나섭니다. 언제나 편 가르기하고 가진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선악의 2분법으로 구분하면서 성서와 교리를 들먹이면서 자신들만이 진리를 실천하는 것처럼 거짓과 교만에 빠져있던 인간들은 주교님의 일갈에 양심이 찔리는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주교님의 보편적인 말씀을 비틀고 마음대로 첨언하고 침소봉대하면서 조규만 바실리오주교님을 공격하였습니다. 우선 시작부터 주교님의 말씀을 “ ‘돌발영상’에나 나올 법한 글이 실렸다” 고 하면서 적의에 가득 찬 도발을 합니다. 그리고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아듣기 힘들었다고 하는데 당연히 알아듣기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교님과 한 기자가 살아온 세상이 다르고 가치가 다르고 지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붉은 안경을 끼고 사팔뜨기 눈으로 보는 인간과 하느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같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인격수준을 넘어 세상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한 기자는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하는 주교님의 말씀을 소개하면서 앞에 ‘조규만 주교는 교회개혁을 요구하는 이들을 향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참 기가 막히는 조작이요 교활함입니다. 주교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하셨지 개혁을 요구하는 이에게 이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 말씀은 스무살 먹은 젊은 사람도 아는 말입니다. 저희들이 예를 들어 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갑자기 거룩해지는 것도 아니고 신학교를 졸업하는 신학생이 신품성사를 받고 사제로 축성된다고 윤리적으로 갑자기 거룩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한 사람이 바뀌고 변하려면 얼마나 많은 기도와 성찰이 필요한데 하물며 사회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역사적으로 예수님이 수난하고 돌아가신 후 유대사회가, 또는 세상이 일순에 변하였습니까? 예수님 사후 약 40년 뒤 예루살렘은 쑥대밭이 되었고 신자들은 300년간 박해를 겪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이 박해에서 벗어나 종교로써 인정받게 된 것은 무려 300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리고 교황님이 다녀가신 뒤 한국교회가 바뀌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한 기자 같은 분이 교황님의 사랑의 가르침을 거꾸로 이용하여 사제들의 정치참여를 부추기고 미움과 증오심을 부채질하였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고통 앞에 중립없다.’ 라는 말씀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교황님의 지극한 애정을 표현한 말씀인데 갑자기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세월호 유가족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어야 한다면서 전국 성당에서 신자들의 서명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이러한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교황님의 진정한 사랑의 정신이 묻히고 퇴색된 것을 저희는 너무나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설사 이러한 정치적인 사제들의 역작용이 없었다 하더라도 교황님이 한번 다녀가셨다 해서 사회가 바뀐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그 정도로 교회가 바뀔 것 같으면, 우리 교회는 수도 없이 탈바꿈해야 했을 것입니다.’ 라는 주교님의 말씀이 이상하게 들릴 이유가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교황님이 스리랑카도 다녀가셨고 필리핀도 다녀가셨습니다. 교황님이 한번 방문하셨다 해서 스리랑카라는 나라의 사회가 탈바꿈하고 필리핀이라는 사회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느님 사랑이 가득한 나라로 바뀔 것으로는 교황님 자신이 생각하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주교님은 마음의 심성부터 고치라고 말씀하시며 하느님의 영을 체험하고 나면 사람의 마음이 진정한 겸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말씀도 하셨지만 이 말씀이 주교님께서 전하시는 주된 가르침입니다. 주보에 실린 주교님의 말씀과 하등 관계없는 다음과 같이 저질적이고 선동적인 말을 글이랍시고 써서 인터넷 저널에 올리는 한기자의 강심장이 저는 부러울 따름입니다.
솔직히 일부 주교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조속한 철수’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교황이 한 마디를 할 때마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방한 당시 한국에 와서는 “번영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자리에서 밀어내고 있다”고 했으니 얼마나 좌불안석이었겠는가. 가톨릭교회의 생리상 주교들이 드러내고 교황의 입장을 반박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이런 교황의 생각에 기대서 ‘교회개혁’을 요구하며 마음껏 목청을 높이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얄밉고 분통 터지는 일이겠는지 짐작이 간다. 주교들이 보기에 이제 좀 살만하니까, 위에서 아래서 흔들어대는 격이다.
그 외의 한기자의 주장은 한마디로 더 이상 언급의 가치가 없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 ‘자신은 바뀌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교회와 교회 지도자)더러 바꾸라고 해서는 (교회와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모진 수난을 당하고서도 세상을 바꾸지 못한 것은 예수님 자신이 자기 변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란 말인가.”
제가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한 기자님은 세례받으신 가톨릭신자가 맞습니까? 함부로 예수님을 입에 올리면서 주교님의 말씀을 엉뚱한 방향으로 비틀지 마십시오. 우리는 사도신경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인류를 강생구속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고 수난받으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음을 믿는 하늘나라의 상속자들입니다. 세상이 바뀌기 전에 먼저 나를 바꾸고 그다음 세상에 사랑의 정신을 전하는 것이 가톨릭 신자들의 사명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예수님을 들먹이면서 남의 말을 헐뜯는 불신과 미움의 마음부터 먼저 버리십시오.
첫댓글 역시 우리 연구위원장의님 명쾌한 글 속이 시원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비뚤어진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이 계속 이렇게 써대니 일반 신자들이 헷갈리고 있다가 개종들을 한답니다. 정말 걱정이에요.
그럴듯한 말로 신자들을 현혹시키다니~~자신의 내면을 깊이 살펴볼 생각은 않구요.
명쾌한 분석 . 우리대천수 믿음이 갑니다, 감사합니다. 김원률 안드레아 형제님 수고하셨습니다.
이하동문~저도요!!! ^**^
도둑이 제발 저린 것이 맞습니다
원율이성! 역시 하늘에서 내려준 답변글입니다.
멋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