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선 전에 쓴 글입니다.
위장술
요즘 세간에 이명박의 위장술이 화제다. 위장 전입 말이다.
위장술이란? 본래의 정체나 모습이 드러나지 않도록 거짓으로 꾸미는 기술을 말한다. 전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술이므로, 군대에선 전투 시 자신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 반드시 습관화 되도록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위장을 너무 과도하게 덧칠을 하게 되면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도 하는 것이 ‘위장술’이기도 하다. 지금 이명박이 딱- 그 꼴이다. 이 양반, 역시 군대 안 갔다 온 티가 팍-팍- 나는 것이 곧 죽게 생겼다. ㅋ.
이런 이명박을 보고 있자니, 문득, 나 역시 위장술을 너무 과도하게 부린 나머지, 한 여름에 굉장히 고생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오늘은 날도 궂고 기분도 깔깔한 거이 그 이바구를 한번 해볼까 한다.
롱롱 타임 어고......
내가 고삐리 시절이었던 어느 날,
ㅠㅠ.... 난 늦잠을 잤다. 그 당시 잠이란, 자도 자도 모자라는 나의 허기짐이었다. 그래서 늘 상 있는 일이었고 뭐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었지만 불행히도 그날만큼은 쫌 심각했다. 그 전날, 담임꼰대에게 경고딱지를 먹었기 때문이었다. 넉넉히 맞추어 놓은 자명종이 제아무리 시끄럽게 울려도 주인의 꿀맛 같은 아침잠을 깨우기에는 역부족....... 나는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들고 집을 뛰쳐나와, 시팔조팔 눈썹을 휘날리며 버스 정류장을 향해 뛰어 가야만 하는 고단한 생활의 고삐리였다.
이윽고 버스정류장. 역시나 학교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는 떠난 뒤였다. 그래서 나는 아무 시내버스나 올라탔다. 청량리에서 지하철을 이용해 종각까지 가서 다시 학교까지 가는 버스를 타면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이었다.
버스가 청량리 역에 서자마자 나는 다시 허겁지겁 지하철계단 쪽을 향해 또 죽어라 뛰었다. 나만 뛰는 게 아니었다. 어른, 학생 할 것 없이 모두들 뛰었다. 그들 역시 나처럼 늦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외롭지 않았다. 인생 머 있나? 뒤쳐지면 이렇게 졸라리 뛰는 수밖에.......
지하철계단을 막 내려가려는데 낮 익은 얼굴 하나가 저 앞 계단아래서 어슬렁거리며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고향친구 놈이었다. 녀석은 일년 전 서울로 유학 와 직장 다니는 누이와 중삐리 남동생, 그렇게 셋이서 자취를 하는 친구였다. 학교는 나와 다르지만 녀석의 집이 우리 집과 그리 멀지 않아 녀석의 집에서 자주 놀곤 하는 사이였다.
녀석이 나를 발견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입가에 묘한 미소를 흘렸다. 나도 녀석을 만난 게 반가웠지만 지금은 시국이 비상사태인지라 나는 그냥 눈인사만 하고 지나칠 요량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내 앞을 턱-하니 가로 막았다. 그리고는 쫓기듯 허둥대는 내 마음은 아랑곳없다는 듯 얄밉도록 여유롭게 말을 던졌다.
"늦었냐?"
"비켜 짜샤! 나 지금 늦었단 말여~"
나는 녀석을 피해 다시 뛰어 내려가려 했지만 녀석이 좀처럼 길을 비켜 주지 않았다.
"얌마! 인생 뭐 있냐? 급할수록 돌아가는 여유를 가져야지...... 안 그냐~?"
이건 도대체 뭔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녀석은 나를 안 놓아 주려는 듯 아예 내 팔을 감아 쥐며 실실 쪼갰다.
"얌마! 너 학교 안가? 얼릉 비켜! 장난치지 말고...... 나 진짜 늦었단 말여~”
"어어~ 잠깐만! 너 지금 가도 이미 늦었어. 너 교문에서 대가리 박을래?”
나는 시계를 보았다. 종각에서 버스만 바로 연결되면 대가리 박는 건 겨우겨우 넘길 것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확률상 그건 무지 어려운 일이었다. 노선버스가 그리 많지 않았고 그리고 이 녀석이 시방 지금 뭔 수작인지는 모르지만 내 앞을 턱 하니 가로막고 금쪽같은 내 시간을 뺏고 있질 않은가?
일초가 아까운 이 시간에 이 잡것을 확-
“아~ 그 새끼 진짜 뭔 심뽄지 몰겠네......
그래서 멀 어쨔자고?”
나는 녀석의 머리를 확 밀치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 야! 우리 어차피 늦은 거 오전은 학교 째자!”
녀석이 눈을 찡긋했다.
“ 뭐? 이 새끼가 돌았나....... 난 요즘 꼰대한테 찍혀서 안됀 마!
너나 째 쨔샤! “
내가 녀석의 팔을 뿌리치자 녀석은 이제 가방을 붙잡고 늘어진다.
그렇게 녀석과 실랑이 벌이는 동안 시간은 이제 절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 야! 나한테 기똥찬 생각이 있는데 할래? 응?”
나는 녀석의 확신에 찬 얼굴과 여유 있는 모습에 갑자기 솔깃해지기 시작했다.
“뭔데?
“ 그건 나중에 말하고 우선 우리 뭐 할까?”
녀석은 아주 자신만만했다. 그리고 나는 점점 시험에 빠져들고 있었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나를 향해 나지막이 속삭인다.
(파수테루야! 늦잠은 잤지만 넌 최선을 다 했어. 아침도 못 먹고 뛰었쟎여...... 이제 포기해....)
옛날 코메디프로인 이휘재의 ‘인생극장’ 상황이었다.
‘그래! 결심했어! ‘
젊음이란 어려운 역경에 도전하는 아름다움이다. 젊음이란 곧 일어날 현상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는 불굴의 의지다. 그리고 젊음이란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여유고 친구를 소중하게 여기는 우정이다. 그래서 나는 녀석과 행동을 같이 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긴장했던 모든 근육이 이완이 되고 아랫도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나는 소변이 마려워졌다.
“야! 니 얘기는 나중에 듣고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나는 가방을 녀석에게 던지다시피 안겨 주고 부리나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잠시 후, 배뇨의 시원함을 맘껏 만끽하고 몸을 부르르 떨며 화장실에서 나오자 화장실입구에서 녀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은 승차권 2장을 손에 쥐고 흔들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인천행이었다.
“ 얌마! 인천 가자고? 오전만 째자며? ”
“ 하아~ 그 새끼...... 그럼 이 시간에 어디 가서 죽치냐? 기냥 전철 타고 인천이나 갔다 오며 시간 때우면 얼추
맞쟌여? “
하긴 그렇다. 아침시간에 극장 안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가 영화 한편을 때리려 해도 시간이 너무 이르고 그렇다고 길거리를 마냥 돌아다니자니 위장복이긴 하지만 도심에 어울리지 않는 교련복 차림으론 위장효과가 거의 없을 게 뻔 한 노릇이고....... 역시 녀석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인천으로 향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 근심이 들어차 조금 무거웠다. 담임이 들고 다니는 공포의 니뽄도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내 새가슴은 덜컹거리는 전철만큼이나 덜컹거렸고 나는 녀석을 채근하기 시작했다.
“ 니 계획이 뭔데? 너 색꺄! 허투루 한 거면 주~거! “
“ 걱정 마 색꺄! 이 헝아만 믿어! 넌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여 색꺄! “
녀석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 불안하기만 했다. 녀석의 머리에서 과연 좋은 생각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학교성적을 비교 해봐도 그렇다. 나도 하위권이지만 녀석은 안전한 하위권이고 나는 턱걸이하는 하위권이라 녀석보다는 내가 쪼매 머리가 좋다. 난 다시 녀석을 다그쳤다.
“ 니 대가리에서 나오는 건 난 무조건 안심이 안 되니까 어여 썰 풀어봐 색꺄! “
“ 하~ 그 새끼...... 존나 성가시네....... 그럼...... “
이어지는 녀석의 계획은 정말 어마 어마했다. 도저히 녀석의 머리에서 나온 것 같지가 않았다. 영화 ‘스팅’ 에서나 나올법한 기똥찬 생각이었다. 녀석의 계획은 이렇다. 출발하는 만원버스를 타려고 매달리다가 떨어져, 팔이 부러진 걸로 설정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약국에 가서 석고 붕대를 사다 팔뚝에 감자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멀쩡한 팔에 흰색 위장포를 두르자는 것이었다.
대단한 시끼! 이 녀석의 아이큐는 어쩜 500 이 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측정불가인 아인쉬타인의 환생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갑자기 녀석이 존경스러워졌다. 주위에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녀석을 부둥켜안고 마구 뽀뽀를 해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당시, 출근길과 통학 길은 매일매일 벌어지는 땀 튀기는 전쟁이었다. 만원버스는 콩나물시루라 불려 질 만큼 빽빽하게 사람을 채우고 간다. 사람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상태에서도 버스안내양과 기사의 현란한 묘기로 버스 안은 금세 또 다른 여분의 공간을 만들어 내었다.
그 아침 풍경을 다음 글에서 그려보겠음^^
첫댓글 우왕~ 추억보따리다~ 이따가 읽어야쥐
연재글을 어서 올리세욧!!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요!!
안전한 하위권의 학교 째는 머리의 굴림은 항상 놀랍지요.
저도 시간날때 읽을께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