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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삼 1 장 :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라(2)
2. 칭찬과 권면(1: 4-8)
④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⑥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⑦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⑧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1: 4 -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사도 요한은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을 듣고 심히 기뻐하였다. 그는 성도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다고 말한다.
어떤 성도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사실은 확실히 목사들에게 큰 기쁨이요 성도들에게도 큰 기쁨이다.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은 하나님의 진리를 읽고 듣고 배우며 그 진리를 믿고 그 안에서 사는 것이다.
이것이 곧 우리의 영혼이 잘되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보다 더 귀하고 기쁜 일은 없다.
1)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자녀들'은 요한이 목회의 대상으로 느끼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가리키지는 않는다(Barker).
오히려 요한이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관심과 사랑으로 영육 간에 돌보아 왔던 대상들을 가리키는 듯하다(Stott, Smalley).
* 고전 4: 14-16 - ⑭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⑮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⑯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 갈 4: 19 -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 빌 2: 22 -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 살전 2: 11 -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 요일 2: 1 -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왜냐하면 '자녀들'앞에 사용된 소유 대명사 '에마'(나의)가 저자 요한과 자녀들의 상당히 오래되고 깊은 친분 관계를 암시하기 때문이다(Stott, Barker, Lenski, Wilder, Westcott).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표현은 요한 이, 삼서 외에는 신약성경에서 크게 강조되지 않는다.
요한 이서와 삼서에서 '진리'가 특히 강조되는 것은 요한의 공동체가 당면한 위기 즉 진리인 복음을 곡해하고 거짓된 교리를 전파하던 거짓 교사들의 횡포에 대항하기 위함이다(Stott).
요한은 '진리'를 강조하면서 이 '진리'를 '행함'과 철저히 연관시키고 있다.
* 요일 1: 6,7 - ⑥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⑦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요일 2: 11 -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 요이 1: 4,6 - ④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⑥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이는 진리를 알 뿐 아니라 그 진리대로 행해야 함을 시사한다(Smalley, Stott).
2) 더 기쁜 일이 없도다.(더 즐거움이 없도다.)
개역성경에는 본문이 본 절의 마지막 부분에 기록되어 있으나 헬라어 본문에는 본 절의 서두에 기록되어 있어 가이오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이 요한에게 가장 큰 기쁨이었음을 강조한다.
'더'(메이조테란)은 이중 비교급으로 요한이 가이오의 소식 즉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다른 어떤 소식보다 훨씬 더 기뻐하고 있음을 시사한다(Smalley, Lenski).
'즐거움'(카란)이 일부 사본에서 '카린'(은사, 은총)으로 기록되어 있어서(Codex Vaticanus), 혹자는 이를 인정하나(Vulgate, Westcott, Hort) 이는 필경사의 실수일 가능성이 높다(Stott).
1: 5 -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사도 요한은 가이오가 '형제들과 나그네들'에게 선하고 진실하게 행한 일을 칭찬하며 격려하였다. '나그네들'은 아마 순회전도자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들은 가이오의 사랑의 행위에 대하여 교회 앞에서 증거 하였다. 가이오의 행위는 진실한 행위이었고 가식이나 위선이 아니었다. 그의 선행은 모든 성도들이 본받을 만한 일이었다.
1)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가이오'는 형제들(3절) 곧 나그네와 같은 자들을 최선을 다해 환대하고 대접하며 도왔다. 요한은 이러한 가이오의 행위에 대해 최상급인 '에르가세'(행하는)를 사용하여 타인에 대한 가이오의 환대 행위가 최선을 다한 것이었음을 강조한다.
형제와 나그네들에 대한 '환대'는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요구되었다.
* 롬 12: 13 -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 딤전 3: 2 -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 딤전 5: 10 -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 딛 1: 8 -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 벧전 4: 9 -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초대 교회에서의 나그네 영접은 특히 중요한 사역이요 덕목이었다(Smalley, Barker)
* 마 10: 10,40-42 - ⑩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마 25: 35-40 -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 히 13: 2 -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그러나 외부인에 대한 요한의 경고로 인해서 가이오의 신실한 환대 행위는 교회의 일부 사람들로부터 냉대와 소외를 겪은 듯하다(Barker, Westcott, Smalley).
* 요이 1: 10 -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이러한 가이오의 소식을 통해 '형제들에 대한 사랑'과 '나그네들에 대한 사랑'이 충만한 그를 확인하며, 칭찬하고 있다(Smalley, Lenski, Stott).
2)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신실한 일이니'(피스톤 포이에이스)는 개역성경에서 본 절의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나 헬라어 본문에는 본 절 서두에 등장하여 요한이 가이오의 신실한 행위를 강하게 칭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나그네는 누구를 가르키는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나 삶의 터전을 떠나 사는 사람을 성경에서는 객, 타국인, 이방인 등으로 번역했는데 보다 정확한 의미는 타국인과 이방인의 중간에 위치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근동지역에서 양을 치며 사는 유목민이나 베두인들은 자신들의 떠돌이 생활로 인해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관습이 있다. 아브라함 역시 부지중에 나그네를 잘 대접하다가 천사를 대접했다.
후에 이스라엘도 애굽에서 나그네 생활을 했으며, 광야 40년 역시 나그네처럼 방황했던 생활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출 23: 9)고 하셨다.
성경에서 나그네에 대한 기본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이스라엘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곧 나그네 같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처소에 거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야곱은 바로 앞에 섰을 때 자신의 삶은 나그네의 생활이었다고 고백하였다(창 47: 9).
(1) 나그네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애굽에서 나그네로 지낸 것을 기억하라고 명령하셨다(출 22: 21. 23: 9. 레 19: 33-34. 신 10: 19. 23: 7).
그래서 이스라엘 중에 거하는 나그네들을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쉬는 것(출 23: 12), 공평한 재판을 받는 것(신 16: 18), 추수 때 이삭과 열매를 남겨 두는 것(레 19: 9-10), 제 삼 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의 소산을 주어 먹게 하는 것(신 26: 12) 등을 나그네에게 행하라고 명하셨다.
선지자들도 나그네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 사 58: 7 -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 겔 18: 7 - 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며 빚진 자의 저당물을 돌려 주며 강탈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나그네들도 할례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될 수 있었으며(출 12: 43,44,48) 이스라엘의 절기와 희생 제사, 율법에 관련된 조항들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주어졌다(출 12: 49. 레 16: 29. 17: 8-9. 18: 26. 민 15: 29).
성경에는 아브라함(창 18: 1-8)이나 롯(창 19: 1-3), 욥(욥 31: 32) 등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예수님도 나그네를 대접하는 삶을 중요하게 가르치셨으며(마 25: 35-40) 예수님의 제자들도 나그네를 대접하는 삶을 강조하여 가르쳤다(롬 12: 13. 갈 6: 10. 딤전 6: 18. 딛 1: 8).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은 감독과 장로, 참 과부의 자격 요건 중 하나였다(딤전 3: 3. 5: 10. 딛 1: 8).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갈 때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권면하였다(벧전 1: 17).
(2) 성경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거나 나그네의 삶에 대해 고백한 사람들.
① 아브라함 : 헷 족속에게 사라의 매장지를 구할 때 자신이 나그네로 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창 23: 4).
② 이삭 : 나그네의 삶을 살던 이삭은 블레셋 사람의 시기를 받았을 때 그의 우물을 몇 차례나 양보하였다(창 26: 12-25).
③ 야곱 : 바로를 만난 야곱은 자기의 나이를 밝힐 때 나그네길의 세월이 130년이라고 하였다(창 47: 9).
④ 이스라엘 백성 :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팔지 말라고 하시며 그들은 이 땅에 사는 나그네라고 말씀하셨다(레 25: 23).
⑤ 잇대 : 블레셋에서 귀화한 잇대가 압살롬의 반란으로 쫓겨 가는 다윗을 따르려고 하자 다윗은 그가 나그네로 지내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반대하였다(삼하 15: 19-20).
⑥ 다윗 :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예물을 드린 다윗은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 머무름이 없으며 인생이 나그네의 삶이라고 고백하였다(대상 29: 15).
⑦ 예수님 :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지만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시며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가심을 말씀하셨다(마 8: 20).
⑧ 성도들 :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이 땅에 살면서도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며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벧전 2: 11).
1: 6 -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사도 요한은 가이오가 그들을 전송할 때에도 '하나님께 합당하게' 전송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하나님께 합당하게'라는 말은 우리가 다른 성도나 주의 종들을 대할 때 그들의 외모를 따라 사람에게 대하듯 하지 말고 그들의 중심을 보고 하나님께 대하듯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골로새서 3: 23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교훈하였다.
여행하는 형제들은(3절) 교회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들에게 베풀어 준 가이오의 진심어린 사랑의 행위를 증거하여 요한과 온 교회가 그를 기뻐하도록 했다(Barker, Lenski, Stott).
형제들의 이러한 증언은 잘못된 오해로 인해 냉소를 당한 가이오의 상황을 반전시켜줄 뿐만 아니라 가이오 안에 있는 진리와 그의 사랑의 행위의 신실함을 입증시켜 주었다(Stott, Lenski).
1: 7 -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가이오가 주의 종들을 하나님께 합당한 태도로 영접하고 전송하는 것이 옳은 까닭은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해 대가 없이 일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라는 말은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전도자들은 물질적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일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삯군이 아니다.
말씀 사역은 장사가 아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말씀하셨다(마 10: 8). 물론 그는 또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부언하기도 하셨다(마 10: 10).
1)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본 절은 나그네를 잘 대접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여행하는 형제들 곧 나그네들은 평범하게 여행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선교 사역을 행하는 선교사들이다(Barker, Stott).
당시 여러 곳을 여행하며 설교나 전도를 하던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수 많은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선교 사역을 감당하였다(Westcott, Stott).
* 행 15: 40,41 -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 롬 1: 5 -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2)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이방인'은 '이교도'를 의미한다(Smalley, Stott).
* 마 5: 47 -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여행하며 선교하는 형제들이 '이방인들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이방인들로부터의 일련의 지원을 받는 것을 금지한다는 단순한 상식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Marshall).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는 예수의 말씀에 충실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듯하다(Barker, Smalley).
* 마 10: 8 -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 막 6: 8-10 - ⑧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⑨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⑩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선교사들이 교회로부터 지원을 받음이 합당하다.
* 고전 9: 12,14 - ⑫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⑭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 빌 4: 10-18 - ⑩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⑪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⑫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⑬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⑭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⑮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⑯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⑰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⑱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그러나 교회의 도움을 받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
* 고전 9: 14-18 - ⑭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⑮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⑯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⑰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⑱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 고후 12: 16-18 - ⑯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⑰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⑱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 살전 2: 6-9 - ⑥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⑦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⑧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⑨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가이오와 같이 나그네를 환대(歡待)하는 것은 당시에 매우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덕목이었다.
1: 8 -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성도들이 전도자들과 주의 종들을 영접하는 것은 마땅하다.
주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0: 40).
또 성도들이 전도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한 것은 진리를 위해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직접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지 못할지라도 기도와 헌금으로 또 기회 있을 때 전도자들을 하나님께 합당한 태도와 예절로써 영접하고 또 전송함으로써 진리를 위한 수고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다.
1)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본문에서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한다.'는 것은 단순히 숙식을 제공하고 격려하는 단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음 목적지까지 어려움 없이 갈수 있도록 물질을 지원하는 것을 포함한다(Lenski, Smaller).
요한은 선교사들이 마땅히 교회의 환대를 받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이유 즉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행한다는 것과 실질적으로 아무런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것 외에 한 가지 이유를 더하고 있다.
그것은 교회의 일원들이 선교들을 환대함으로 선교사들이 선교 사역에 동참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Stott, Smalley, Moffatt, Wilder, Lenski).
2)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는 '진리의 동역자', '진리의 협력자'라는 의미이다(Moffatt, Wider).
순회 선교자들은 돕는 일이 그 형제들의 동역자가 되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진리 그 자체와도 협력자가 되는 것임을 시사한다(Smalley).
'함께 일하는'은 바울이 일반적인 협력의 개념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한 표현이다.
* 롬 16: 3 -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 고후 6: 1 -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 빌 2: 25 -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 골 4: 11 -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요한의 공동체에서의 '사귐'과 부합되며
* 요일 1: 3 -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 마 10: 8 -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 요 13: 34,35 -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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