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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단-451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누가복음11장27-32절)
성경말씀은 누가복음 11장 27절에서 32절까지 봉독합니다.
[누가복음 11장]
27 이 말씀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28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누가복음 11장 27절에 보면, 예수님 말씀을 가만히 들어보더니,
[누가복음 11장]
27 이 말씀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여기 ‘당신의 어머니가 복 있다’ 그러지 않고 ‘태와 젖이 복 있다’고 하는 거야.
그렇게 했는데, 예수님 말씀은 항상 우리 생각과 다르죠?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
28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이런 말씀은 얼마전에 한번 했던 적이 있었어요.
비슷한 말씀인데, 예수님께서 사람들 모아놓고 그 당시에 사람들이 납득할 수 없는 조금 급진적인 생각이죠.
그 당시에 보수 바리새파 입장에서 볼 때에는 예수님께서 너무 급진적인 강의를 하니까 예수님 어머니도 좀 염려를 하고 특히 예수님을 동생 중에 야고보. 의인 야고보라 하는 사람이 은근히 형님이 위태위태 하다하면서 사람들이 지금 예수님 앉아 있고 강의 듣고 있는데, 거기에 예수님 불러갈려고 자꾸 기웃 거리는 거야. 밖에서..
마리아와 야고보가 그런 모양인데..
그래서 누가 와서 귀뜸을 했어요.
당신 모친과 형제 자매들이 당신을 모셔갈려고 밖에 와서 기다린다고 하니까, ‘누가 내 모친이며 누가 내 형제냐?’
‘여기 봐라.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모친이다.’ 그런 적이 있죠?
그런데 누가복음 8장에서 그렇게 했는데, 또한번 더 예수님 당신 자신을 밴 태와 예수님 먹인 젖만 복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예수님을 잉태하고 예수님께 젖을 먹였다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 안듣고 안 지키면 복이 없는 거예요. 별로..
나는 카톨릭 사람들 이런 말씀을 좀 봤으면 좋겠어요.
물론 저는 마리아가 참 복된 분이고 거룩한 분으로 압니다.
그러나 그분이 신격화될 만한 그런 분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예수님 말씀은 오히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는 거야.
듣고 지키되 지키는 자세가 있어요.
억지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억지로 외식으로 겉치레로 마지못해서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것은 전혀 하나님께 기쁨이 안 돼요.
그래서 듣고 지키는데 그것을 다 깨달아야 돼요. 정말..
그게 진리인줄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게 진리인줄로 깨달아지고 억지로가 아니고 기쁨으로 감동을 받고 공감하고 감사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렇게 하면서 지켜야 가치가 있는 것이지, 지키는데 억지로 지키는 사람 그게 누구냐 하면 바리새인들이예요.
지키기는 지키거든요. 십일조도 최소 박하와 운향과 채소의 십일조까지 다 해..
고추 몇 개 따면 하고 가지 몇 개 따면 다 하고 철저하게 하는데,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요.
그러면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나중에 요한복음 공부하게 되면, ‘너희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는 줄 알았노라’ 하고 한마디로 끝내버려요.
그래서 듣고 지키되 잘 들어가지고 그 들은 말씀이 ‘우리를 위하고 우리를 사랑하신 말씀이다’ 하는 것이 믿어지고 깨달아질 때만 이게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즐거움으로..
제가 가끔 여러분에게 우리 성도님들에게 혹은 강좌 듣는 사람들에게 ‘율법이 우리를 사랑해서 주신 말씀이다’ 하면, 참 못 알아들어요. 사람들이..
그게 우리를 사랑해서 하신 말씀이라고 믿어질 때만 가치가 있는 것이지, 그것 안 지키면 지옥가는가 싶어서 하면 잘못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 안 지켜도 지옥 안 갑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것은 그저 돌아오니까, 죄인되었던 우리가 하나님을 등지고 피하고 숨고 도망하고 계속 거역하다가 믿고 돌아오니까 돌아오는게 고맙고 반가워가지고 지난 죄는 예수님께서 이미 다 처리했으니까 그냥 받아주는 것이지, 율법을 지키는 것은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러나 제대로 된 아들이라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후에 그 아버지의 말씀을 즐거워하면서 달게 감사함으로 지켜야 돼요.
여러분 제가 몸에 해로운 것 먹지 말라 했는데, 그게 먹고 싶어서 죽겠다 하면 그냥 먹는게 낫습니다. 차라리..
그것 못 먹어서 스트레스 받아가지고 그렇게 되면 차라리 먹어요..
그런 것 가지고 즐겁게 안 되고..
제가 지금 오늘 저녁에 지금부터 배나 더 잘 사는 비결을 알려줄려고 하는데, 배나 더 잘사는 비결이 있어요.
어떤 교수님이 반식으로 건강을 회복했다고 해요.
음식을 평소 먹던 것의 딱 절반을 먹어요.
그래가지고 1년만에 몸무게 15kg를 뺐는데, 얼마나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졌는지 모르는 거야.
그런데 여러분 절반만 먹으면 배나 잘사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것도 안 되면 바지도 반바지만 입어.
그리고 옷도 절반만 입으면 되는 것 아니야.
사실 지금 저도 그렇게 하고 있거든요.
밥을 전에 먹던 것의 절반을 먹고 있어요.
절반을 먹고 어지간하면 간식도 잘 안하고..
간식 해봐야 과일 한 쪽으로 하고 절반으로 줄였는데 아무 문제 없잖아요.
절반만 먹고 성경강좌 209회때 인도해봐는데 아무 문제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간식을 많이 먹었느냐?
간식도 절반으로 줄였어요.
그랬더니 마치고 입술도 안 부르트고 얼굴도 붓지 않고..
괜히 육체 노동을 안 하면서 많이 먹는게 이게 병을 만드는 거야.
여러분도 내일 아침부터 딱 평소에 먹던 밥의 양을 절반으로 줄여보세요.
그러면 몸이 가벼워지고 누워잘 때 배가 약간 살짝 꺼지면서 그렇게 기분 좋아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즐거워서, 억지로 하는게 아니라 즐거워서 할 때..
여러분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맞습니까?
즐거워서 해야 돼요. 억지로 하지 말고..
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아이고 참.. 2천년 전이 악하면 오늘날은 얼마나 악하겠습니까?
2천년 전 그 때 순진한 사람을 보고 예수님이 악하다고 했으니까, 지금이야 더 악독하겠죠? 그렇죠?
독하게 악한게 악독이야.
..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무슨 표적이냐?
이 때 말하는 표적은 두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요나의 표적이라 할 때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3일간 있다가 나온 것처럼 인자가 무덤속에 3일 있다가 부활한다 하는 의미에서 요나와 같은 표적이 된다 하셨고,
두 번째는 여기 오늘 누가복음에서의 말씀은 좀 달라요.
어떻게 다르냐?
지금 이 악한 세대가 심판을 받는 표적이 될 것이다.
왜 심판 받느냐?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어설픈 그런 성의도 없이 전도를 하루밖에 안 했어.
니느웨라는 큰 도시 예루살렘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인데, 요나가 개떡같이 하루만 했는데, 회개 했다는 거예요.
요나는 시원찮은 사람이야.
무슨 애정을 가지고 애착을 가지고 성의있게 진지하게 했던 것도 아닌데, 그렇게 했던 것 때문에 그들은 구원받았던 것 아니냐.
지금 현재 요나보다 더 큰이가 와서 연 3년을 기적을 행하면서도 너희가 듣지 않은 것 아니냐?
그래서 너희가 이 시대에 심판을 받는다. 그런 표적이예요.
그런 표적이 된다는 거예요. 예수님이야말로..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지금 너희가 안 듣는 것 아니냐..
그러니까 니느웨 사람들이 이 시대 사람들을 심판할 수 밖에..
이런 표적이 된다는 거예요. 예수님이야말로..
다른 복음서에 보면 이 말을 표적은 죽음속에 갔다가 무덤속에 갔다가 3일만에 부활하는 그런 표적으로 하는데, 여기 이 말은 다르지 않습니까?
요나의 그런 시원찮은 말을 듣고도 회개했는데, 하루 했거든요. 하루..
큰 길로 하면 사흘해야 되는데, 하루하고 그렇게 무성의하게 해도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 했기 때문에, 그 니느웨 사람들이 이 시대 사람들을 심판할 것이다.
그런 표적이 된다는 거예요. 지금..
그런 증거, 심판의 근거를 삼을려고 한다.
굉장히 무서운 말입니다.
예수님은 온갖 기적을 다 행했는데도 불구하고 요나는 아무 기적 행한 것이 없죠.
그냥 가서 하루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그 말만 했는데 그들이 회개 했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3년씩이나 그 많은 병자를 고치고 오병이어에다가 무슨 귀신이 쫓겨나고 그렇게까지 해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 받아 마땅하지 않느냐? 하는 표적이 된다. 하는 이런 의미가 있어요.
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요즈음 청소년들은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요. 타고 다니는 말로 생각하는 거야.
곡식을 담는 기구인데, 열되가 한 말이야.
그래서 동이처럼 생겼는데 나무로 통을 짜가지고 그게 ‘한 말’이예요.
등불을 켜서 그 말 아래 두지 않고,
..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니라
여러분 우리가 지금 갈메산 기슭에 샤론교회를 둔 것은 이 지역 사람들이 보라고..
십자가 높이 해가지고 예배당을 동그랗게 해가지고 ‘저 예수 믿는 사람들 어떻게 하는가..’ 보라고 비치라고 세운 겁니다.
우리가 숨어서 예수 믿는게 아니고, 예배당이 드러나게 종각도 십자가도 높이 해 놓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샤론교회의 착한 성도들의 삶이 이 지역 사람들에게 다 비치기를 바라는 거예요.
또 우리가 직장에 갔을 때 그 직장에서 우리의 착한 삶의 모습이 직장 모든 사람들에게 비치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런데 범사에 아름답게 선하게 정직하게 성실하게..
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여러분 우리가 눈이라는 것은, ‘온 몸이 천냥이면 눈은 구백냥이다’ 그런 말이 있죠.
눈이 안 보이면 세상에 좋은게 다 없어져 버리는 거죠.
그래서 눈이 밝아야 내 몸속에 빛이 들어오는 거예요. 눈을 통해서..
눈이 어두워져버리면 모든게 다 끝나버리는 거죠.
그런데 그 눈이 육신의 눈 물질세계를 보는 눈이 아니라, 영적인 눈 마음의 눈이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것을 ‘믿어 본다’고 하죠? 믿어보는 거죠.
맛은 어때요? 먹어보는 거죠.
말씀은 들어보는 거야.
어떤 마음에 눈이 있기 때문에 보는 것 아닙니까?
먹어본다, 들어본다, 믿어본다..
그렇게 보는 눈이 감각이 있어야 돼요.
진리를 들을 때 ‘아 이것은 진리다.’ 하는 감각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 마음속에 진리가 우리 속을 밝게 비췬다는 거죠.
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광선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그래서 우리가 마음의 눈과 육신의 눈이 밝아야 우리 몸이 밝아지고 우리 마음이 밝은 것이지, 눈이 침침하면 햇빛이 찬란해도 내 눈이 침침하면 어두워 보이는 거야.
제가 한번은 등산을 가는데, 일반 안경도 가지고 가고 선글라스도 가져가야 되는데, 일찍 올 수 있을 줄 알고 그냥 맑은 안경은 집에 놔두고 선글라스만 가지고 갔어요.
그게 도수에 맞춘 선글라스이기 때문에 그것을 벗어버리면 안경이 없으니까 컴컴하고, 쓰면 선글라스라서 컴컴하고..
나중에 어두워지는데 길이 안 보이는 거예요.
벗으면 안 보이고 써도 안 보이고..
그런 적이 있었요.
눈 하나 어두우니까 온 세상이 어두운 거야.
그래서 우리가 눈이 밝은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또 최근에 눈이 점점 더 시력이 나빠져서 안경을 새로 맞췄는데, 새로 맞추면 1년간 참 밝아요.
좀 더 어두워지고 좀 더 어두워지고 하는데,
눈이 밝다 하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죠.
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이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예수님께서 초대받아 놓고, 집 주인을 보고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겁나죠. 거침없어요. 그냥..
제가 좀 거침없이 강의하다가 쫓겨난 것 아녜요?
내가 보니까 예수님도 그래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래서 십자가에 달린 것이겠죠.
말을 좀 조심하고 그랬으면 괜찮을텐데..
그런데 ‘너희 속에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해버렸으니까..
이 사람 아마 대접하고도 굉장히 기분 나빴겠죠.
40 어리석은 자들아 밖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41 오직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탐욕을 품어가지고 욕심으로 돈을 쌓아 놓을려고 하지 말고, 그것을 가지고 구제하라. 어려운 사람을 구제하라..
..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그러니까 우리 속이 사실 오염되는 것은 누구없이 근본은 욕심이죠. 욕심.. 탐욕과 욕심..
탐심과 욕심 탐욕이 우리 속을 깨끗하지 못하게 하는 거죠.
예수님께서 삼가 탐심을 물리쳐라.
제일 안 떠나는 게 탐심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부자 청년, 관원이고 부자인 청년 봤죠.
그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지켰는데, 아직도 돈이 많은 거예요.
그러니까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나를 쫓으라.’
못하잖아요.
딴 것은 다 할 수 있는데, 탐욕 버리는 것은 잘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욕심 이것만 씻어버리면 굉장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거예요. 사람이..
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거기 줄을 그으세요.
사람들 세계에서는 공의 공평과 정의를 행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돼요.
아무리 안식일을 잘 지키고 아무리 박하와 운향과 채소의 십일조까지 그렇게 철저하게 지킨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사람들 세계에 공평과 정의를 행하지 아니하면, 그런 신앙은 예수님 앞에 안 통해요.
세상이나 교회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하나님께는 안 통하는 거예요.
..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그러니까 십일조도 해야 되지만, 공와 의를 행하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있어야 돼요.
사랑이 없이 십일조를 바치는데, 하나님을 사랑함으로가 아니고, 그것을 가지고 복받겠다 그것 안하면 벌받을란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한다면 하나님 지기에 곤비한 짐이라는 거예요.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예수님 식사하고 나왔나? 그냥 나오셨나?
바리새인 집에 가서 손 안 씻은 것 때문에 떨떠름하게 보는 그 시각 때문에 예수님께서 거침없이 말씀하셨는데, 그래가지고 식사하고 나오셨는지, 그냥 나오셨는지 뒤에 말이 없죠?
그러니까,
45 한 율법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아주 그런 것 처음 들어봤거든요.
‘우리까지 모욕하는 것 아니오?’ 이렇게 했는데,
46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사여,
바로 저주를 하는 거죠.
..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백성들에게 온갖 율법을 해석해가지고 잔뜩 부담스럽게 그 무슨 ‘미드라쉬 미쉬나 탈무드 할라까 하까다 토셉타 브라이다’ 이렇게 해석해가지고 다 지키라고 해 놓고, 자기들은 한손가락도 안 대고.. 이렇게 했다는 거예요.
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도다 저희를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48 이와 같이 저희는 죽이고 너희는 쌓으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49 이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저희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 더러는 죽이며 또 핍박하리라 하였으니
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51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그러니까 제일 무거운 죄를 누가 짊어지었느냐?
최고 예언자 최고 능력자 최고 지도자가 최고의 말씀과 최고의 능력을 나타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세대가 담당한다는 거예요.
아벨부터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맞아죽은 사가랴 선지자까지 그 의로운 사람을 죽인 모든 댓가를 예수님 당시 세대. 최고 능력 최고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은 이 세대가 담당할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너무 무서운 거죠.
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이런 것은 정말 요즈음 율법사는 아마도 신학대학 교수 이런 사람들이겠죠.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자기들도 안 들어갈뿐 아니라 남들도 못 들어가게..
율법사가 성경을 해석하고 하는 사람들이 전혀 바르게 하지 않아 자기도 안 들어가고 남도 못 들어가게..
지금 신학교에서 자행되는 그런 끔찍한 얘기를 들어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예요.
제가 에스라 하우스 홈페이지에다가 신학 대학 교수들이 창조론이 잘못되었다 해가지고 지금 우리가 교육과학부에다가 어떤 신학교수 한분과 우리 총회에서 장로님이 대통령이고 하니까, 진화론을 교과서에 실을려면 창조론도 같이 실어서 가르쳐야 된다. 하는 것을 건의하기 위해서 문건을 만들어가지고 제출한 모양인데, 그것을 두고 신학교 교수들이 창조론을 가르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일반 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치면 안 된다고 신학교수들이 나섰어요.
그 문건을 그대로 에스라 하우스 홈페이지 칼럼방에 있어요. 한번 보라고..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자기들도 가지 않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하는 거예요.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 우리 교단 지금 총회장이 한국 KNCC 대표가 되어가지고 WCC라는 세계교회 협의회를 한국에 유치해볼려고 출타중인데,
1991년도 캠버라 대회에서 한국의 정현경이라는 이화여자 대학교의 조직신학 교수예요.
가서 뭘 했느냐?
신학대학 교수라는 사람이,
‘하갈의 영이여 오소서, 우리아의 영이여 오소서, 그리고 원자탄 맞아 죽은 영들이여 오소서, 짠다르크 영이여 오소서..’
그래서 억울하게 죽은 수많은 영들을 불러요. 초혼이야. 초혼..
신학대학 교수가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어 헤쳤는지 모르지..
그래가지고 옛날에 도신(道神)이라고 할 때, 소제종이라고 있어요. 문종이 같은 것 불태워서 올라가는 것 있잖아요.
그것을 한 거야.
그래가지고 박수 갈채를 받았대. 그 총대로부터..
WCC(World Council of Churches) 라는 세계교회 협의회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이 그 뒤에 학교에서 쫓겨나서 미국으로 갔는데, 미국에서 어떤 신부를 만나서 신부한테 불교 명상을 배웠답니다..
자기가 박사과정을 하는데, 어떤 분은 점수를 잘 주는데, 어떤 사람은 점수가 잘 안 나와요.
그래서 점수 잘 안 주는 교수를 죽여버리라는 꿈을 계속 꿨다는 거야.
계속 죽여버리겠다 했는데, 명상을 배워가지고 마음이 안정 되어가지고 가서 그 교수를 안아줬답니다.
불교에 가서 어떤 불교사찰에서 동거한다면서 지내더니, 지금은 이슬람교에 가서 배우고 있답니다.
여러분 신학대학 교수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입니다. 지금 현재..
종교 다원주의는 기본이니까 지금..
그래서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고 남도 들어가지 못하는 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죠.
53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맹렬히 달라 붙어 여러 가지 일로 힐문하고
54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을 잡고자 하여 목을 지키더라
예수님이 이때부터 결정적으로 바리새인 집에 가서 거침없이 말씀을 해가지고 어려움 당하는데,
12장 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사람이 그래요.
수 만명이 모여오는데, 그 모여온다고 다냐?
된게 아니라는 거예요. 사실은..
..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외식이라는게 위선인데,
2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3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
그리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4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6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다른 복음서에 보면 ‘참새 두마리가 앗사리온 하나에 팔리지 않느냐?’ 이렇게 되어 있죠.
여기에는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은 많이 사니까 하나는 덤으로 끼워주는 가봐..
..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앗사리온은 화폐단위가 어느 정도냐 하면, 데나리온의 16분지 1입니다.
그러면 한 데나리온이 장정 하루 품삯인데, 장정 하루 품삯으로 참새 몇마리를 살 수 있는가 보니까 40마리 살 수 있어요.
한 앗사리온에 대충 두마리 정도, 다섯 마리에 앗사리온 둘 되는 건데, 덤으로 따라가는 한마리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떨어지지 아니한다.
7절, 그래서,
7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9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
베드로가 얼마나 겁났을까요?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맹세하고 저주하면서 부인했었거든요.
그런데 천국 가서 예수님께서 장난으로 ‘내가 너를 모른다.’ 그래봐..
세번이나 모른다고 해봐요. 겁나는 일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해놨기 때문에 베드로가 세번씩이나 부인해가지고 낙심할까 싶어서 디베랴 바닷가에 찾아가서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하신 것이 아니겠나..
정말 예수님께서 찾아가서 내 양을 치라고 안 했으면 베드로 이것 딱 보면 끝난 거죠.
세번씩이나 목숨이 두려워가지고.. 몸을 죽이고 더 이상 할 수도 없는 사람을 두려워해가지고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맹세하고 저주하면서 부인했으니까 사도 포기하고 사표내야죠..
그런 베드로가 낙심할 것을 염려해가지고 예수님 찾아가서 내 양을 치라 한 거죠.
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말로 사람의 아들인 줄 알고 거역하면, 사람이 사람인줄 알고 거역했다면 그럴 수 있지만,
성령인줄 알면서,
..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볼 때, 사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사실은 예수님을 거역하는게 한 사람의 아들 거역하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예수님 하신 일이 성령으로 하신 건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귀신을 쫓아냈더니 바알세불을 힘입어 쫓아내었다 하는 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거거든요.
이런 것은 사함받지 못하는 거야.
그냥 일반적으로 사람을 거역했다 그런 차원을 넘어서서, 아무리 봐도 예수님이 하신 일은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이고, 성령으로 한 것이 분명한데 그것을 모독했다면 사함받지 못한다.
굉장히 무서운 말이죠.
11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12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이런 일은 아직까지는 당해본 적은 없죠.
혹시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길 때 뭐라고 말해야 될 것인가 그런 것 염려 안해도 괜찮다는 겁니다.
적어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관료들에게 끌려가서 고문이나 심문 당할 때 끌려갈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끌려가서 순교함으로서 증거하는 그 증거가 굉장히 강력하기 때문에, 목이 달아나도 주장하는 저것은 진리가 아니겠는가 하는 그런 힘이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반드시 그 때 무슨 할 말을 주신다는 거예요.
그런 것 원고 안 써도 괜찮아. 그 때 성령으로 할 말을 주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님 말씀을 들어볼 때 예사롭게 듣지 말고, 그 때 처한 분위기를 깊이 생각하면서 들어보시면 예수님께서 굉장히 날카로운, 그야말로 서슬이 시퍼런 좌우에 날선 검같은 그런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거예요.
예수님께서 듣기 좋은 말로 아주 잘된다 복준다 아주 그렇게 달콤한 그런 설교한게 아닙니다.
정말 듣는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그런 말씀인데, 예수님 편에 서서 들으면 천번만번 옳은 말씀이고, 예수님 반대편에서 들으면 두가지입니다.
쫙 가슴을 쥐어뜯고 회개하든지, 이를 갈면서 ‘저것을 어찌할꼬?’ 하든지..
두가지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만민이 듣기 좋게 달콤한 소리, 복준다, 이런 소리 한게 아닙니다.
굉장히 두렵고 떨리는 말씀을 하신 거예요.
오늘 말씀은 다 그렇죠?
처음부터 격렬한 말씀을 거침없이 하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 말씀을 들을 때 예수님이 좋은 분이니까 부드럽고 좋은 말 달콤한 말 복된 말 이런 말씀만 했지 않겠나..
그것은 너무 설교를 달콤하게 했기 때문에 그래요. 사람들이..
늘 잘된다 복준다 그런 것만 빼어서 설교했기 때문에 그래요.
한절도 빼지 않고 제대로 읽어보면 달콤한 말씀 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대개 두렵고 떨리는 말씀이예요.
구약성경에 예언자만 두려운 말씀을 했지, 예수님은 달콤한 말씀만 하지 않았겠는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말씀은 끝장이거든요.
지금 이 예수님 말씀 안 들었다는 것은 유대인들도 마지막이야.
그래서 요나 같이 그렇게 성의없이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말을 듣고 회개한 사람들은 오히려 참 칭찬받을 만한거야.
반대로 요나보다 몇천배나 몇억만배나 위대한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와서 그 많은 이적과 표적과 그렇게 3년씩이나, 하루 이틀한게 아니고, 3년이면 1천날 이상이예요.
1천일 이상을 정성을 쏟아부어서 그 능력 표적을 다 보이면서도 듣지 않고 믿지 아니했다, 회개하지 않았다. 그 당연히 받을 심판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만약에 요나같이 개떡같이 설교하는 것을 듣고도 그런 설교 듣고도 회개 안 했으면 심판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의 설교 예수님의 사역임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당연히 받을 심판이 얼마나 무섭겠느냐 하는 표적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헛되이 듣지 말고, 삼가 듣고, 잘 듣고 깨달았으면 그것을 실천을 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부끄럽지 않은 또 두렵지 않은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잘 배워서 깨닫고 즐거워하며 이를 실천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우리를 통해서 이 시대에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