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고 한 시간 정도 졸고 나니 날이 밝아온다.
땀과 피로에 절은 혹독한 밤이었다. 05시부터 서둘렀다.
꿈에 그리던 타지마할을 보려면 일찍 서둘러야한단다, 그 곳 전체가 대리석인데다가
신발을 벗고 맨 발로 다녀야 한단다. 오전부터 열을 받기 시작하면 대낮에는 맨발로
도저히 걸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겁먹은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이 젊은 친구들도
지레 질려서 새벽부터 서둘렀다.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여행 리드가 되어버린
뿌자씨,(인도명) 38살의 이 노처녀는 얼마나 인도를 좋아하는지 그 동안 인도행이
20회가 넘는단다. 인도에 반해서 여태 결혼도 안한 그녀는 인도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없었다. 인도에 관한한 거의 박사급이다. 그래서 우리 몇 친구들은 계속 뭉쳐 다니게
되었고 그 덕에 나는 이 험난한 여정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다닐수 있게 되었다.
대충 세수만 하고 카메라와 복대, 생수까지 챙기고 오늘도 내 머리통과 얼굴을 지켜줄
사리로 눈만 내놓고 머리와 온 몸을 야무지게 똘똘 싸고 출 발!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사귀던 애인에게 차이고 실연의 상처를 잊기 위해 떠나 왔다는
키 크고 늘씬한 현정이는 아라비아 공주처럼 치장을 했고, 단순하게 친구들에게
“나는 인도 갔다 왔다는” 자랑꺼리가 필요했던 수희는 들리는 시장마다 옷과 장식품들을
어찌나 사 모았는지 그걸 다 걸고 두르고 아주 패션쇼를 하고 난리가 아니다.
그렇게들 나름대로 다 인도 복장으로 한껏 멋을 내고 나서니 모두들 그럴듯하게 보였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사우스게이트까지 도보로 약 20분 정도 걸렸다, 재미있는 것은
길 옆 노천 식당들 간판에 “김치볶음밥, 수제비, 신라면 기차게 맛있어요.”라는 한글
문구들이 여러 군데 보이는 게 아닌가, 그 만큼 한국 관광객들이 많은 것이겠지,
그런데 이상하게 별로 반갑지가 않았다. 한때, 무슨 유행처럼 인도바람이 불어
인도 한번 못 가본 사람은 어디 말 한자리 끼지 못하고 정신적 열등감을 느끼게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느꼈던 아니꼽고 빈정 상하던 생각이 났던 것일까,
이곳 아그라포트는 타지마할이 다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입장료가 자그마치 15불, 750루삐, 중급 호텔 하루 숙박비다.

타지마할! 무굴 제국의 황제 샤자한의 왕비 무무타즈 마할의 무덤,
어릴 때 교과서에서 봤던 그 대단하던 건축물, 타지마할에 들어 선 순간 뭔가 현실
같지가 않고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살기 위한 건물이나 신에게 제사지내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오로지 죽은 자에게 바쳐진 건축물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직접 눈으로 보는데도 그 규모나 크기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마치 사람의 심장을 찌르듯 섬뜻할 정도로 맑고 푸른 하늘에 우뚝 솟은 새하얀
대리석의 거대함에 압도당할 뿐! 얼마나 열열이 사랑했으면 왕비에게서만 열네 명의
자녀를 낳았고 전쟁터에 조차 데리고 다닐 정도로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열네 명 째 아이를 전쟁터에서 출산하다 죽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며 기리기 위해 지은 무덤이 바로 타지마할이다. 세기의 건축 광답게 무굴제국의
온 국력을 다기우려 장장 22년의 세월과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서 1653년에 완성,
지금에 이른다. 그 덕으로 지금까지 가난한 무굴의 후예들이 무덤을 관광자원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고생, 고생을 하며 찾아간 그 곳 타지마할은 그럴 가치가 있었다. 야무나 강을 끼고 시가지에서 들어가면 붉은 사암으로 된 정문이 있고 정문 아치를 지나
입구 유료신발 보관소에서 5루삐씩 내고 신발을 맡기고 맨발로 바로 앞 분수대로 걸어
나오니 사방 푸른 정원을 전경으로 꿈속처럼 타지마할이 나타난다, 눈부시게 희고 빛나는 돔이 슬픈 듯 도도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거대하고도 정교한 돔과 주변 바닥들은 완전히
하얀 대리석으로 조성되어 있었고 그 희고 단단한 대리석에 내리 쬐는 태양은 참으로
야성적이고 위협적이다, 분수대 앞에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앉아 사진을 찍었다는
다이애나 벤치에서 우리도 사진을 찍었다.


지하묘실에 대해서 현지 안내인이 뭐라 설명을 하는데 뚝딱 거리는 발음에 당최
뭔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원, 그냥 안내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이해하고
건물과 주변을 돌아보았다. 기대를 했던 야무나 강은 오랜 가뭄으로 실개천처럼
그냥 까맣게 엎드려 있었고 타지마할을 제외한 다른 주변 풍광은 황량할 정도로
대조를 이루었다. 타지마할 잔디 벤치에 앉아 쉬면서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의대생인 은지는 그림도 잘 그리고 목소리도 예뻐서 노래 소리가 듣기 좋았다,
그리고 모두의 합창으로 부르는 아리랑에 맞춰서 빨간 사리를 휘날리며
나는 살풀이춤을 추었는데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 들고 박수와 앵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참을 더 그렇게 춤을 추었다, 지가 무슨 이사도라던컨이라도 된다고
맨발로.....뼈가 물러질 것 같은 더위도, 내속의 웅크리고 있던 부끄러움도 체면도
허식도 타지마할의 뜨거운 대리석 바닥 속으로 녹아들고 나는 자유로워졌다.
여행이, 그리고 익명성이 주는 조금은 대담하고 치기어린 자유를 느끼는 순간 탈수,
탈진 현상도 함께 느껴지다. 대 여섯 시간을 알뜰하게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오니
이런 젠장! 또 정전이다. 씻을수록 뻑뻑해지는 피부, 감을수록 철사처럼 빳빳해지는
머리카락, 대충 씻고 침대에 쓰러지니 갑자기 시원한 얼음물에 미숫가루 한 사발만
마셔봤으면 원이 없을 것 같았다, 집에 돌아가면 바로 미숫가루부터 빻아야지,
큰 양재기에 가득 타서 얼음 띄우고 실컷 마셔야지, 아! 얼마나 시원하고 고소하고
달콤할것인가, 생각하니 미칠 것 같다. 시원한 물 한 사발이 이토록 절실하다.
뜨뜻하다 못해 뜨거운 생수를 얼마나 마셨는지 속이 다 울렁거린다. 뒤척뒤척 잠시
졸았는지 어디서 쿠르렁 쿵쾅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는데 아, 전기가 들어와서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는 소리였다, 어찌나 반갑던지, 그러나 찬기가 느껴지기도 전에
다시 정전, 에 라 이!....오후에 비가 내렸다, 모두들 흥분했다, 게스트하우스 마당으로
뛰어나가 환호성을 지르며 쏟아지는 소나기로 샤워를 하며 즐거워했다.
인간이란, 한줄기 소나기에도 이토록 행복할 수 있구나, 비 오는 기념으로
우리는 파티를 하기로 했다. 호텔 정문 앞 식당 Roof, 주인이 깔끔하고 교육받은
채식 주의자란다. 그래도 인도사람 특유의 호기심과 심한 여유로움은 주문한
음식이 빨라야 시간 반, 그것도 하나씩, 한 사람이 다 먹을 때쯤에 또 하나...
결국 우리는 식당에 갈 때는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가기로 했다.
인도에 오면 인도 법을 따르라! 그러면 노 프라블럼이다. 맥주까지 한잔씩 하고
유쾌하게 웃고 얘기하다 돌아와 푹 잤다. 땀을 팥죽같이 흘리며.........
5/10 지출: 입장료: 750Rs 식대/생수: 175Rs 합계 925Rs 잔액;3828Rs
5/ 오전 7시 아그라포트로 갔다.



제국의 3대 황제였던 악바르 대제가 세운 아그라포트는 무굴제국의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던 만큼 야무나 강변에 우뚝 솟아 있는 붉은 사암으로 지은 당당하고
아름다우며 견고한 성이였다. 아들에게 유폐된 샤자한이 무산만 부르주 (포로의 탑)
에서 아득하게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무무타즈를 그리며 울었다는 눈물의
방은 출입이 통제되었다. 성 내부에는 궁전 모스크가 늘어 서있고 나무와 잔디밭이
잘 관리되어 있었다. Diwan-i Am은 일반 접견실이고 Diwan-i khas 는 특별 접견실이다
샤자한이 조성한 모스크는 Moti masjid인데 망루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정말로
일품이었다. 유려하게 구부러진 야무나 강의 수면위로 아득히 멀리 타지마할이
신비한 섬처럼 떠 있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타지마할은 훨씬 더 특별하다,
낮에 그 거대함에 숨죽이게 하던 타지마할은 보름달이 뜨는 밤이 되면 환상속의
모습으로 변한단다. 하얀 달빛 아래 드러나는 타지마할의 자태는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신비로움의 절정이다. 유감스럽게도 1994년부터는 만월의 밤에도
오후 7:30분 이후에는 입장불가란다. 건축왕 샤자한은 아들에 의해 유폐되어
아그라 성에서 굶어 죽었다고 한다. 1666년 74세였단다.
돌아오는 길은 퉁가를(마차) 탔는데 나보다 더 늙어 비실비실하고 지저분하고
지독하게 못생긴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사우스게이트로 나오는 길은 정말이지
너무나 예뻤다, 오래 머물면서 아침저녁으로 산책하면 참 좋을 길이다,
먹을 것을 들고 어슬렁거리면 원숭이란 놈이 잽싸게 채가서 탈이지만, 길이 하도
예뻐서 사진 촬영을 하려는데 퉁가왈라(마부) 아저씨, 자기가 굿 픽쳐! 굿 픽쳐라고
카메라를 뺏어가며 찍어 주겠다고 어찌나 난리를 치던지 그러라고 했더니
디지털카메라를 처음 만져봤는지 모니터에 눈을 딱 대고 몇 번 눌러대더니
양쪽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의기양양, 그런데 찍었다는 사진에 사람과 풍경은
안 보이고 말대가리만 보였다, 그래놓고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너무나
당당하게! 기막혀, 그럼 사진 속 사람은 어디 있냐고 했더니
대답이 걸작! 말대가리 너머에 있단다. 그리고는 노 프라블럼! 5루삐 줬다
웃긴 댓가로...

그리고 대원이가 다시 찍었다.
첫댓글 아름다운 여행따라 로그인하게 됐네요. 넘 즐감했습니다.
태평양 건너에 살지만 마치 산자야님 곁에서 여행기를 듣는듯한 느낌.
덕분에 이 아침 행복한 바가본도가 되어봅니다. 감사~
릴리언니~~~~~~~~~~~~~~~~~~~~~~~~
어쨋든 우리 살아있으믄 소식이나~~~~~~~~~~
그냥 이곳에 몇 사람들이 재미로 보고 댓글쓰고 하는건데 그 먼곳에서도 볼 수있군요,
세상 참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시간되셨다니 감사합니다.
희지,
미안혀유~
자주 들락거려볼게.
이제 석달후면 얼굴로 보자구. ^^
산자야님,
만나고 싶은 사람중 한 사람에 추가합니다.
그 용기 배우고 싶어요.
저까지 만나 주시겠다니 기쁩니다. 뵐 수있기를......
저 오롯이 앉아있는 여인네가 언니?
ㅋㅋㅋ
이제 가물거려서 내가 누군지도 모르것네ㅋㅋㅋㅋㅋㅋㅋㅋ
인도물 마신분들이라 대답도 다르네요!
그리고 사진 찍어준 굳픽쳐..그양반 진짜 한철학 하시네. 왜눈으로 보이는것만 인정 하려고 할까하고
을매나 답답했을까? 한푼 잘 주셨소!
오늘의 단어 "굳 픽쳐"
한세월인데... 요즘 바쁜 일정속에서의 여행기이기에 더더욱 고맙소이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고 한 말 딱 맞죠! 일할 때나 놀때나 집에 붙어있는 시간이 별로 없는 것은 똑 같은것 같아요.
타지마할 앞 연못에 달 빛 비치면....
접어둔 꿈 , 다시 펼 용기는 잃었지만 생생한 후기로 실감합니다.
그대 꿈은 늘 펼쳐져 있도다!
인도가 가까이 와 버렸네요. 산자야님 덕에...가고싶은 곳은 떠나야 하는데...

멀리까지 갈 필요있나요, 가까이서 저와 함께 둘러보시지요 뭐! ㅎㅎㅎㅎㅎㅎㅎ
하루 더 있어도 그만 가도 그만인 여행을 해 본 때가 참 오래 됬그만요.
느긋허니 헐 지서리 다허고 노작기리 감서 건물이나 명소만 보는 나들이가 아니라 사람을 보고 사람들이랑 새기는 나들이를 올해는 좀 해 봐야것네요...
단 한본이라도... ^^
그런 여행이 선생님께 딱 어울리시지요. 천천히, 어슬렁, 기웃기웃, 아! 생각만해도.......
또 바랑 싸고 싶어집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지금은 환율이 어쩐지 모르겠지만 1루삐가 우리 돈으로 약 40원 정도됩니다.
그때 1달러에 1300원 정도 했는데 100불짜리 환전하면 약 4300~4400루삐 정도 받았어요.
인도는 미국 달러를 받는데 정식 은행에서 환전하면 제대로 받을 수있고 우리나라 암달러상들처럼
구멍가계같은 곳에서도 달러 바꾸라고 호객하는 곳도 있었는데 운 좋으면 은행보다 몇 십루삐
더 주는데도 있었어요. 돈은 완전히 쓰기 나름... 100불로 한 달을 살 수도 있고 하루에 천불이 부족할 수도 있고...
위에 덕행님 의견에 한표...던집니다...^^
저도 경비를 원화로 얼마나 될까? 궁금했거든요? 물론 인터넷뒤져서 찾아서...계산해서...할수도 있지만...
거기까진...못하구용..ㅋㅋ
꿈만 꾸고 있지만,,,인도여행의 경비는 얼마나 들까?
산자야님에 대해 잘 몰라...어떻게 저렇게 자유롭게 사실까??
24살 결혼해 가정이라는 울타리에만 갖혀 사는 팍팍한 아줌마는 감히 상상도 해 볼수 없는...ㅠ.ㅠ
그래서...아주 존경스러운...여성~~^^으로 꼽고 있습니다.ㅎㅎㅎ
지리산학교에 많은 존경스런 여성분들이 계시지만, 고알피엠여사님이랑..산자야님!! 두분이 일단은 으뜸으로 존경하는 여성으로 자리잡습니다.^^
대리만족~잘 하고 있답니다.^
나은님! 저는 가정이라는 나라를 튼튼하게 지키는 주부의 힘이 어떤건지 잘 압니다.
가정은 울타리가 아니라 우리모두의 정체성이 깃든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존경은 그 나라를 운영하는 분들이 받아야지 저같은 사람은 그저 좀 재미있는 사람일 뿐!
존경이라니,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하여튼 잘 봐 주심은 감사합니다.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산자야님의 여행기를 읽으니 더 간절해 지내요. 외국 여행기 뿐만 아니라 국내 여행기도 계속해서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어줍잖게 여행 일기를 옮겨 본것인데 일이 좀 커진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읽으셨다니 부끄러워지네요. 격려라 생각하고 감사합니다.
인도는 가보진 않았지안 감탄과 실망으로 뒤죽박죽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참 당당하게 즐기시는 모습. 부럽습니다
맞습니다, 감탄과 실망, 충격과 분노 그리고 슬픔과 아름다움 이런것들이 뒤죽박죽이었죠.
지금은 산재해 있는 일이 많아 여행은 다음기회 이렇게 생각하며 지내는지라 여행기도 뒤로 미루었었고
인도는 경이로운 나라임에 틀림없지만 은근히 위 댓글처럼 실망스럽고 고통스러울까봐 걱정하는 맘이
많았나봐요..(가보지도 않고 걱정하느라 ㅋㅋ)..그런것이 인도에 대한 관심마저 끊었었나 봅니다.^^
산자야님의 용기가 부럽고 또 부럽습니다.
언제한번 남미대륙 탐험하러 한번 오세요^^
상쾌한 바람이 연상되는 산자야님~
남미 대륙은 돈이 많이 들어서 저같은 가난뱅이는 힘들겠지요 ㅎㅎㅎㅎ
저는 주로 베낭하나 달랑 매고 거지 비스꾸리하게 다닌답니다.
그런 여행이 저는 좋습니다. 그야말로 고생이 팔자인........
워낙 거리가 멀어서 비행기삯이 비싸긴 해요...ㅎㅎㅎ
하지만 어디든 베낭하나 달랑 매고..라시면 쓰기 나름일거 같은데요?
워낙 대륙이다가 보니 거리 이동도 만만치 않지만
이과수 폭포와 빙산을 볼 수있는 남쪽여행은 정말 흥미로운데....쩝!
인도에 혜성처럼 나타난 여인!!
그대 이름 "산~자~야~"
길이 빛날지어다
인도 대륙에
살아있는 자여!!
아무도 저를 혜성같이 안봐주던디요!
인도 대륙은 온통 살아있는 자 투성입디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나도 애인과 헤어지고 실연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인도로 떠났었는데....
뭐 인도에 특별히 관심이 있었던것도 아니고 같은 비용으로 최대한 오래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서여서요.
그래서 뭐 관광지에 관심도 없고 그냥 숙소에서 잠자고 배고프면 밥사먹으며 6개월 지냈네요.
산자야님 덕분에 지금에서야 알찬 여행 하고있습니다.
여행은 어떤 절실함으로 떠나느냐에 따라서 똑 같은 장소, 같은 풍경에서도
전혀 다른 감응과 깨달음으로 다가온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