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헌관 안동준 서운면장이 두 번째 술잔을 올리며 제를 봉행하고 있다. |
의병(義兵)은 국가공동체에 침입한 외적을 국가가 해결하지 못해 위기에 처했을 때 적을 물리치기 위해 민중들이 스스로 떨치고 일어나 국가공동체와 구성원인 국민을 지키기 위해 만든 군대 또는 그 군대에 소속된 병사를 말한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주권자인 국민(백성)의 안녕을 지켜주지 못하는 무능함이 발생할 때 민중이 자발적으로 외적의 약탈과 생존위협 그리고 국가공동체의 붕괴를 지켜내기 위해 만든 조직한 것이 의병이었다.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반도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세 개의 부대(3대(隊)로 나누어 한양을 향해 급격히 북상했지만 당시 국가였던 조선의 군대인 관군은 밀고 올라오는 왜군에 무력하게 궤멸했고, 결국 선조임금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부랴부랴 수도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을 가야했다.
이때 국가인 조선이 지켜주지 못했던 주권자인 국민(백성)의 생존과 왜구의 수탈에 저항해 분연히 민중들이 스스로 떨치고 일어났다.
경상도 곽재우, 전라도 고경명, 충청도 조헌, 경기도의 홍계남·이덕남 등 의병장이 민중들과 함께 지역공동체와 구성원의 생존위협과 수탈위기에 맞서 의병을 조직해 왜군에 저항했다.
▲ 의병장 이덕남·홍계남 장군 춘향제에 참석한 시민들 제를 기다리고 있다. |
안성시지에 따르면 안성에서 일어난 의병은 서운면 출신의 홍자수 장군과 그의 아들인 홍계남 장군 그리고 홍자수 장군의 생질이자 홍계남 장군의 고종 사촌인 이덕남 장군이 안성 민중들이 참여한 의병을 이끌고 국가인 조선의 관군을 대신해 안성공동체와 국가공동체를 지켰다.
또 기록에 따르면 의병장 홍계남 장군은 아버지 홍자수 장군과 함께 협공으로 진천 엽돈령에서 왜군을 크게 물리쳤다.
적들은 그를 두려워하여 ‘홍장군’이라 일컬었다.
홍계남 장군은 안성뿐만 아니라 전라, 경상지역까지 진출하였고 권율장군이 경성 회복작전을 펼 때 영주군수 고언백은 “홍계남이 없으면 경성의 인심을 의지할 데가 없고 제군의 선봉이 될 만한 자가 없다”고 할 만큼 용맹성을 인정받았다.
그래서 선조임금으로 부터 이순신이나 권율, 곽재우 등과 함께 은사를 받았으며 김덕령과 함께 말을 하사받기도 했다.
이덕남 장군은 서운면 양촌리에서 태어났다.
조실부모한 이덕남 장군은 외삼촌 홍자수장군 슬하에서 자랐다.
임진왜란 당시 외삼촌 홍자수 장군과 외사촌 홍계남 장군과 안성의 민중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킨다.
농기계를 녹여 무기를 만들고 북진하는 왜적을 여러 번 격퇴시켰다.
용인, 죽산, 양지에 진을 구축하고 안성과 진천의 경계인 서운산에 토성인 서운산성을 쌓았다.
경기와 호서 지방 의병과 합세해 여러 싸움에서 승리했다.
죽산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위기에 처한 홍계남 장군을 구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홍계남 장군이 자리를 비운 사이 왜군의 갑작스런 습격을 받아 외삼촌 홍자수 장군과 함께 장렬히 전사했다.
이런 의병장 이덕남 장군과 홍계남 장군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지난 4월 25일 남양 홍씨 문중과 영천 이씨 문중 그리고 서운면민을 중심으로 유림과 안성시민들이 모여 426년 전 임진왜란에서 안성과 국가 공동체 지키고 민중의 생존위협과 수탈을 막아주었던 마음을 새기며 두 분의 위패를 모신 사당 진양사(陣陽祠)에서 춘향제를 올렸다.
이덕남 장군과 홍계남 장군을 기리는 춘향제는 그 전에도 묘역에서 이어져 왔으나 특히 지난 1986년 진양사가 지어진 이후에는 매년 음력 삼월 초정일(初丁日)에 봉행하고 있다.
사당(祠堂) 또는 사우(祠宇)인 진양사가 위치한 곳은 행정구역은 미양면 구수리 야산으로 미양면과 서운면의 경계이고 서운면 양촌리, 신기리 등과 붙어 있는 곳으로 당시 의병들이 왜군을 무찌르기 위해 진을 친 곳이라 ‘진재’라 불려왔다.
그래서 그 ‘진재’에 두 분 위패를 모신 사당을 건립하며 사당(祠堂) 이름을 진양사라 짖게 되었다.
춘향제는 본래 두 분 의병장의 공덕을 기리고자 하는 안성주민들의 열망을 모아 유림에서 모시던 것으로 제향의 주관은 서운면 유림에서 해 왔고, 해마다 이덕남 장군의 문중인 영천 이씨와 홍계남 장군의 남양 홍씨 문중에서 번갈아 제향을 도와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림 조직이 점점 쇄하는 등 관심이 떨어져 춘향제 봉행에 어려움을 겪자 서운면민을 중심으로 지난 3월 ‘진양사 보존 추모회’를 만들고 이를 통해 의병장 이덕남·홍계남 장군을 보다 조직적으로 새롭게 기려 나가기로 하고 첫 춘향제를 주관했다.
진양사 보존 추모회(회장 정용문. 이하 추모회)는 정관을 통해 “임진왜란 당시 왜적의 침입에 항거하여 국난을 극복한 위대한 이덕남 장군과 홍계남 장군의 전공을 기리며, 민족정신을 계승하여 후손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고 문화재인 이덕남 장군의 묘소와 홍계남 장군의 고루비를 보존 관리하고 교육 홍보를 하여 지역문화 창달을 선도하고 지역발전을 도모”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사업으로 ▷홍계남 장군·이덕남 장군의 향사 봉행 ▷홍계남 장군 고루비와 진양사 시설의 보존 관리 ▷청소년 교육문화 창달을 위한 홍보활동 ▷문헌 발굴과 편찬보급 및 문화행사 등 이다.
새롭게 만들어진 ‘진양사 보존 추모회’ 임원은 ▷고문 한춘섭, 오도진 ▷회장 정용문 ▷부회장 이만호, 김학철, 임병세 ▷감사 강익수 ▷총무 고현수 등이며 당연직 이사로 서운면장, 안성문화원장, 서운농협장, 서운노인회장, 안성시청 문화재 담당 과장, 안성교육지원청 담당과장, 서운면 이장단 회장, 서운치안센터장, 서운면 부녀회 총회장, 서운중학교장, 서운초등학교장, 현매초등학교장, 산평초등학교장, 서운우체국장, 새마을 남·여지도자, 남양홍씨 문중회장 외 5인, 영천 이씨 문중회장 외 5인 등이다.
한편 4월 25일 봉행된 홍계남 장군·이덕남 장군 춘향제에는 초헌관 권혁진 안성시의회 의장, 아헌관 안동준 서운면장, 종헌관 김현치 안성산림조합장 그리고 전축 이만호, 집례 정용문, 대축 이민식, 전례 고현수, 봉향 유병권, 봉로 안종만, 봉작 박상태, 전작 김학철, 사준 임병세, 사세 권영자 등과 서운면민과 안성시민 그리고 영천 이씨 인리문중(회장 이해길, 총무 이호식)과 남양 홍씨 양촌리 문중(회장 홍순용, 총무 홍헌표) 등에서 참여했다.
▲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을 비롯한 제관들이 제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
홍자수, 홍계남, 이덕남 의병장과 함께 했던 의병들이 426년 전 임진왜란으로 국가와 지역 공동체 그리고 그 구성원인 민중이 생존 위협과 침탈의 위기에 스스로 분연히 일어나 스스로 안성과 한반도를 지켰기에 지금이 있을 수 있었다.
새롭게 이덕남·홍계남 장군 향사(享祀)인 춘향제(春享祭)를 중심으로 구성된 ‘진양사 보존 추모회’가 의병장(義兵將) 이덕남·홍계남 장군과 함께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안성 민중(民衆)인 의병(義兵)들의 숭고한 희생정신도 함께 이어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