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의 자동차 잡학(雜學)] 수 없이 많은 생명 중에서도 몸 안에 단단한 뼈대를 갖춘 것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지구상 동물계 중에서 약 3/4라는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곤충만 해도 몸의 바깥 부분이 단단한 외골격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식탁에 오르는 고등어 같은 경골어류부터 우리 같은 사람까지, 척추동물이 여기에 해당한다. 몸 안에 근본이 되는 뼈가 있고, 그 주변을 살이나 근육, 피부가 덮어 전체 형상을 만드는 동물은 그리 많지 않다.
자동차는 이 중에서 어디에 해당할까? 단단한 차체를 생각하면 곤충 같은 외골격을 가진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척추동물에 가깝다. 척추동물은 척추를 기준으로 좌우 팔과 다리, 머리 등이 붙어 몸을 이룬다. 마찬가지로 자동차도 기본 뼈대에 엔진과 변속기 같은 주행 장치, 휠과 타이어를 포함한 서스펜션, 각종 전기/전자 장비와 편의 장치가 더해지며 완성된 모습을 갖춘다. 섀시는 차의 모양을 이루는 것은 물론 핸들링 같은 주행 성능에도 영향을 미치고 정숙성과 승차감을 포함한 감성적인 부분에도 중요하다. 특히나 사고가 났을 때 탑승객을 보호하는 역할도 해야 하므로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이기도 하다.
가장 많이 쓰이는 모노코크(Monocoque) 구조의 자동차는 기본이 되어 강성을 책임지는 뼈대와 겉모습을 만드는 부품들이 분리되어 있다. 자동차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지만, 일반적인 3박스 세단을 기준으로 할 때 흔히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는 언더 보디는 엔진 부분, 실내 바닥 부분과 리어 플로어 파츠 등 셋으로 나뉜다. 여기에 좌우 옆 패널과 지붕, 트렁크와 실내를 구별하는 리어 벌크 헤드, 앞 유리 아래쪽을 좌우로 잇는 어퍼 카울과 좌우 보디 아래쪽의 사이드 카울 등을 붙이면 기본적인 모노코크 구조가 완성된다. 여기까지를 메인 보디라고 부르고 보닛, 좌우 펜더와 도어, 트렁크 리드 등이 더해지면 화이트 보디가 된다. 흔히 ‘차체’ 무게는 이 화이트 보디를 측정해 말하는 것이다.
모노코크 섀시 외에는 보디 온 프레임(Body on Frame) 타입이 있다. 자동차가 마차에 엔진을 다는 것부터 시작했음을 떠올려 보면, 구동계통과 서스펜션을 포함한 완충장치가 달린 사다리꼴 프레임 위에 차체를 얹는 방식은 역사가 매우 오래 되었다. 일단 기본이 되는 프레임을 개발하면 그 위의 보디 모양만 바꾸면 새 차를 내놓을 수 있어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까지도 승용차에 많이 쓰였다. 이렇게 사다리꼴 섀시와 차체를 합친 유니보디(Unibody) 구조는 1930년대에 처음 선을 보였고, 현대적인 모노코크 섀시의 시초라 할 차는 1934년에 세상에 나온 시트로엥 트락숑 아방으로 역시 최초의 대량 생산 앞바퀴굴림차이기도 했다.
이렇게 모노코크 구조로 바뀐 이유는 간단하다. 보디 전체가 하나의 구조물이 되면 프레임 방식보다 차를 가볍게 만들 수 있어 연비가 좋아진다. 또 다양한 설계 기술과 초고장력 강판 등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충돌 안전성도 비약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아직까지도 큰 무게를 견뎌야 하는 상용차(트럭 및 버스)에서는 프레임 보디를 사용한다. 또 승용차 중에서도 오프로드처럼 섀시에 부담이 많이 가는 노면을 달려야 하거나, 견인 등으로 높은 강성이 요구될 때는 프레임 보디를 아직 사용하기도 한다. 국산 승용차 중에서는 기아 모하비와 쌍용 G4 렉스턴이 유이하고, 수입차 중에서는 지프 랭글러와 벤츠 G 클래스가 아직 프레임 구조를 쓴다.
이런 필요에도 불구하고 모노코크 형태로 넘어간 대표적인 회사가 랜드로버다. 1997년에 나온 프리랜더가 처음으로 모노코크 구조를 사용했고, 2002년 3세대 레인지로버에 인티그레이티드 바디 프레임(IBF)을 쓰며 브랜드 최초로 하드코어 SUV에 모노코크 섀시를 적용했다. 최근에 런칭한 올 뉴 디스커버리를 비롯해 레인지로버, 레인지로버 스포츠 등은 알루미늄 모노코크 구조인 D7u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재규어 랜드로버 그룹은 2003년부터 재규어의 대형 세단인 XJ에 알루미늄 모노코크를 사용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쌓인 노하우를 이용해 대형 SUV까지 만든 것이다. 자동차 섀시에 많이 쓰이는 강철보다 무른 알루미늄으로 3.5톤의 견인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물론 험한 오프로드도 달릴 수 있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물론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SUV의 원조인 지프도 할 말이 많다. 1993년에 데뷔한 1세대 그랜드 체로키가 헤비 듀티 SUV로는 세계 최초로 유니 보디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크라이슬러와 합병하기 전 AMC(American Motor Company) 시절인 1980년대 중반 개발을 시작한 그랜드 체로키는 당시로써는 첨단 기술이던 CAD(Computer Aided Design)을 사용했다. 1987년 크라이슬러의 일원이 된 이후에 2000년대 들어서 CATIA 등 다양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런 노하우가 쌓여 랜드로버의 동급 모델처럼 3.5톤의 견인력을 발휘하는 것은 물론 대부분 철로 만들어졌음에도 2톤 중반의 상대적으로 가벼운 무게를 유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