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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서론
- 설교 : 김강호 목사
오늘은 모세 오경에서 레위기의 위치가 어디 있는지 그리고 레위기의 전체적인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공부하겠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1장부터 시작하겠다.
항상 이렇게 성경은 전체를 빨리 파악해야 된다. 그래서 레위기를 배울려고 해도 모세오경 옛 언약의 중보자로서 모세가 오경을 기록했기 때문에 언약의 토대인 모세 오경을 여러번 읽어야 되고 그리고 그 중에서 레위기를 여러번 읽어서 전체적인 윤곽이 자기 말로 설명이 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내용을 해석을 잘 못한 것은 그 다음 일이고 일단은 그렇게 여러번 읽어서 자기 말로 전체 윤곽을 설명할 수 있어야 되고 그쯤 읽고 나면 여기서 전체적으로 말한 것이 무엇인지 감이 잡힌다.
그리고 이제 대충 구분할 수가 있다. 그런 전체적인 윤곽을 잡지 못하고 해석해 들어가면 바른 해석을 못한다. 특별히 히브리서를 같이 읽어주기 바란다.
먼저 하나님께서 기록된 성경을 자기 백성에게 주신 것은 성경의 뜻데로 그들과 언약을 체결하셨기 때문이다. 출34:27절에 그렇게 되어있다. 다시 모세를 산에 부르시고 내가 너에게 한 말을 기록해라 하고 나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왜 너에게 기록하라고 그러는가 이 기록된 뜻데로 너와 내 백성과 언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도 친히 돌판에 기록하셔서 자필 사인을 하셨다. 그러니까 자기 백성에게 주신 것은 성경의 뜻데로 자기 백성과 언약을 체결하셨기 때문이다.
모세 오경은 여호와께서 옛 언약의 중보자인 모세를 통하여 옛 언약아래 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逑?주신 것이다. 그 중에 레위기는 세번째 책이다.
그 다음에 새 언약의 중보자로서 제자들과 함께 하신 예수께서 부활하사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도들을 통해서 기록하신 신약의 성경에서 하늘에 속한 영원한 생명의 교제와 헌신이 교회에서 온전히 완성됐다. 문장은 나쁘지만 연결해서 읽으라. 무슨 말이냐 하면 성경을 기록해서 주면 어떤 의미냐 하면 구약 때는 모세를 통해서 옛 언약 백성에게 기록해 주셨고 신약에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약 백성에게 기록해 주신 것이다. 그러면 모세를 통해서 기록한 오경은 옛 언약 백성에게 주신 언약이요 기업이고 이제 부활하신 예수안에서 기록해서 교회에 주신 것은 그의 교회에 주신 기업이고 유업이다.
그것이 기록해서 주었다 하는 의미다. 그러니까 모세는 옛 언약의 중보자로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기록해서 이스라엘백성에게 주셨다. 모세가 기록한 대로 하나님이 모세와 이스라엘백성에게 언약을 체결하시고 그것을 누리게 하는 의미로 기록해 주신 것이다.
기록한 돌판을 항상 증거궤안에 두고 갈때마다 매고 다니면 하나님은 항상 그 기록된 말씀대로 그들과 영원히 함께 계신다는 의미다. 이 기록에 의미를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도들을 통해서 기록해서 영원히 교회의 유업으로 주셨다. 그것은 기록된 대로 교회에서 언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어떤 기록인가. 땅에서 예수가 행하신 모든 일들이 부활하신 보좌에 있는 그런 질서로 영원히 교회에 함께 하신다. 그런 의미로 신약 성경이 기록되서 교회에 주어진 것이다. 기록해서 주어진 것은 언약이 체결 됐다는 뜻이고 그런 의미로 기록된대로 자기 백성에게 시행되는 것이다. 나중에 읽어보라고 기록해 준것이 아니라 기록된 대로 시행된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시내산에 강림하사 그들과 함께 하신 여호와 이것이 출애굽기의 내용이다. 모세 오경을 전반적으로 볼려는 것이다. 창조의 처음부터 사람을 자기의 대리자로 삼으사 함께 하신 창조주이시며 조상들에게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리라 언약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셨다. 그것이 창세기의 내용이다. 창세기는 창조와 언약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이제 레위기에서 회막에 계신 여호와와 함께 하는 삶으로 이스라엘을 복주신 것이다. 민수기는 세상에 대해서 이스라엘자손이 여호와의 군병으로서 믿음으로 봉사하는 것과 여호와께서 모든 불신앙과 싸우시는 내용이고 신명기는 언약의 땅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는 풍성한 삶, 순종의 삶을 언약하시고 명령하신다. 그것이 모세 오경이다.
창세기부터 안쓰고 출애굽기부터 기록한 것은 출애굽기와 레위기가 연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창세기도 출애굽기의 관점에서 기록된 것이다. 출애굽기의 언어로서 기록된 것이다. 그래서 출애굽기부터 시작한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 을 애굽에서 권세로서 건져내시고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언약을 체결하셨다. 언약 체결은 집을 짓고 내가 영원히 한 집에 살겠다 함으로 언약이 확증된것이다. 이 하나님이 누구냐? 왜 이 하나님이 언약을 체결하시고 너희를 인도하시느냐? 창세기로 돌아가야 되는 것이다. 그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자기 대리자로 세우셔서 동행하신 분이신데 사람이 범죄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조상들을 택하시고 가나안 땅을 새로운 성소로 정하시고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언약 하셨는데 이 하나님이 너희들을 인도해 내서 이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신 것이다. 어떻게 영원한 성소로서 너희중에 계실려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출애굽기가 끝나고 나서 레위기에서 이제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부르시고 이제 그 교제의 삶을 레위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시내산에 율법이다.
그리고 나서 민수기는 시내산에서 출발해서 광야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민수기는 무엇인가? 이제 드디어 그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한 장막에 살면서 먹고 마시는 친교를 나누는 그런 백성으로 하나님이 복을 주셨는데 이 백성들은 그전에 하나님이 애굽에서 싸우셨던 것처럼 이제 광야를 통과하고 가나안 땅을 들어가도록 원수와 싸워야 한다. 그래서 민수기에는 하나님의 군대대로 계수해라. 계수하는 것이 군대대로 계수하는 것이고 진도 군대의 진처럼 진을 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광야에서는 싸울것이 없는것 같지요? 광야에서는 사망의 권세가 있다. 죽음에 노출되어 있으니까 그래도 그들은 만나를 주신 하나님이 우리 생명의 하나님이 이시다 그렇게 믿고 투쟁해 나가야 된다. 그것이 그들의 믿음의 봉사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하나님이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과 싸우셨고 이스라엘 백성을 미혹한 미디안과 싸우셨고 그렇게 싸우신 분으로 나타나있다.
심지어 옛 언약의 중보자들이 온전하지를 못했을 때 그들과 싸우셔서 미리암은 문둥병 들렸고 아론과 모세도 죽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민수기다. 그래서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군병으로 계수 되도록 되어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세상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책무다.
그리고 나서 그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60만을 지으시고 신명기를 말씀하셨다. 요단강 동편에서 그것은 가나안 땅의 정복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안식을 모든 사람이 누리는 것 그것이 신명기다. 그래서 이것이 모세 오경의 내용이다.
어떻든 시내산 언약은 레위기에서 완성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레위기를 그렇게 잘 생각을 못했다. 출애굽기만 언약 체결이고 레위기는 하나님은 무시무시한 분인데 어떻게 하면 그 앞에 나갈꼬 이런 식으로 구원론적으로 거의 이해를 했다. 하나님은 성질 내고 계시는데 그 앞에 나갈려면 큰일 났구나 안 나가도 좋지요 안 나가면 그 만이지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해서 예수의 십자가 사건도 전부 레위기의 언어인데 레위기 언어를 어떻게 무시무시한 하나님 앞에 들어갈 것인가 이쪽에다 초점을 맞춰놓은 것이다. 그런데 레위기는 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하시고 언약 교제의 삶, 친교의 삶 한 장막에서 먹고 마시는 삶 그 삶을 명령해서 복주는 것이 레위기다.
레위기는 출애굽의 연속되는 책이며 시내산 언약의 완성이다. 그러므로 레위기는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라는 말로 시작해서 이상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이니라. 하는 말로 끝을 맺는다.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한 것은 레위기가 끝이다. 우리는 항상 출애굽기만 항상 염두해 둔다. 그런데 레위기가 끝이다. 레위기라는 이름은 레위 지파가 주로 행할 율법을 주로 기록한 책의 내용을 따라서 70인역과 벌게이트 역에서 부친 것이다. 레위기 하는 것은 번역 성경에서 붙인 것이다. 70인 성경은 헬라 지방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언약의 책인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 성경을 당시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 70인 경이고 그리고 로마 정권 밑에서 라틴어로 번역 된것이 벌게이트 역이다.
그것은 레위기의 내용이 주로 제사장 지파들의 율법 행위들 제자 제도들에 대해서 쭉 기록하고 있거든요. 그 내용을 따라서 레위기 그렇게 붙인 것이고 히브리어에 있는 책에 이름은 처음 말을 따라서 그리고 여호와께서 부르셨다 그것이 책의 이름이다. 히브리어의 책에 이름은 항상 첫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창세기는 태초에 하는 것이 책의 이름이고 출애굽기는 이름들은 이러하니라. 하는 것이 책 이름이고 레위기는 그리고 여호와께서 부르셨다 하는 말이 책 제목이다.
우리 번역 성경에는 그리고 부르셨다는 말이 처음에 안 나와있고 여호와께서 성막안에서 모세를 부르셨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제 히브리 성경에는 부르셨다는 말부터 나온다. 그래서 그것을 제목으로 한다.
그런데 이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책 처음에 있는 말씀 이것은 단순히 우리가 아버지 한테 편지 쓸데 처럼 내용 없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안된다. 요새 편지는 어떻게 문안 인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문안 인사는 옛날 어른 문안 인사와 신식 인사가 좀 섞어져가지고 복잡했다. 기체후 일향만강 하옵시고 하면 우리는 좀 이해가 안가는데 좀 고상하게 쓸려면 그 말을 써야 할것 같고 그리고 어떤 학생은 이만 어 펜을 놓겠습니다. 중학교를 들어갔거든 이런 때여서 좀 난처한데 그때 우리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인사해도 다름이 아니오라가 바쁘지 인사는 편지 형식이지 별로 중요하지 안했거든 말하자면 이제 자식도 나이가 들어야 부모가 중요한 줄 알지 어렸을 때는 부모 중요한지 잘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에 시작하는 말은 별로 무엇이 없다. 우리 나라 운동을 봐도 그렇다. 일본 사람 유도 한것 보면 잡았다 하면 바로 기술이 들어가는데 우리는 한 참 뜸을 드리니까 그 판에 넘어가버리고 그런다.
그러니까 우리는 처음에 시작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심각성을 못 느끼는데 히브리 문장의 구조는 처음과 마지막이 핵심이다. 그러니까 태초에 그랬으면 그것이 창세기를 여는 문장으로 아주 중요한 말이고 출애굽기의 이름들은 이러하니라 하는 것은 출애굽기를 여는 중요한 열쇠다.
그런데 우리들은 출애굽기의 처음에 이름들은 이러하니라 그들이 애굽에 내려갈 때 70명이었는데 이렇게 중다한 민족으로 번성하고 한 의미를 설교한 사람은 별로 없다. 뱀 잡는 그런 이야기나 설교할까 처음에 이름들은 이러하니라 한것은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데 레위기도 하나님이 부르셨다 하는 것은 레위기를 여는 핵심이다. 출애굽기 제일 끝에 보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임했는데 구름 때문에 능히 모세도 못들어갔다. 만일에 영원히 못들어가면 그것은 언약 체결이 안된다. 마치 시내산에 임했을때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처럼 되면 안되지요. 그런데 거기서 하나님이 모세를 불렀다. 모세야 들어오라 너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제물을 나에게 이렇게 이렇게 드려라. 하나님이 그들의 예물을 기꺼이 받으심으로 그들을 불러들이고 계신다. 그것이 레위기의 내용이다.
하나님이 자기 장막으로 부르시고 자기 상에서 제물을 먹게 하시고 그 관계의 삶을 모든 가나안 땅의 삶에다가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 레위기의 내용이다. 이것은 그 당시 은혜의 복이지 하나님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분이니까 들어올 때는 죽어야 들어올 것 이렇게 해석하면 안된다 그 말이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요 언약의 하나님이시요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부르셨다 하는 말이 레위기를 여는 첫 열쇠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시내산에 강림하사 그들과 언약을 체결하시고 그들을 자기 백성 삼으셨다. 이것이 출애굽기다. 이제 회막에 임하사 거기서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성소 곧 회막에 계신 여호와 앞에 나아와 헌신하게 하시며 제사를 지내고 하고 정결케 하셨다는 내용이 16장 까지고 그들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여화와께서 함께 하시는 거룩함을 누리며 나타내도록 명하셨다. 17-27장까지의 내용이다. 이것이 레위기의 내용 구분이다.
그러니까 시내산에 강림하신 언약의 하나님이 언약의 거처로 회막을 짓게 하시고 이것이 성막인데 곧 회막이다. 모이는 자리다. 이제 거기서 부르셔서 이제 내 앞에서 즐거워해라 내 앞에 헌신해라 하는 여호와께 그 하나님 성막에서 하는 교제의 삶을 기록하시고 이 삶을 모든 삶의 영역에 나타나도록 명령하고 있다. 그것이 레위기다.
이것이 레위기의 내용구분이다. 레위기의 주제는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는 언약 백성의 거룩이다. 이 거룩을 당장 도덕적으로만 해석하면 안된다. 하나님의 소유가 됐다는 의미로 거룩이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도록 거룩한 것이다. 20:27절을 특별히 괄호속에 넣은 것은 그것이 언약적인 본문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넣은 것이다. 나는 너흐들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게 할려고 내가 너희를 내굽에서 불러냈지 않느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그렇게 되어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이스라엘 백성의 거룩을 회막중에 계시는 하나님을 나타내면 거룩이다. 그 거룩은 모세 율법에 규정되어 있다. 그렇게 하면 거룩이다. 모세라 해서 우리처럼 거룩한 이유가 없다. 어린 아이가 아무리 순종해서 말을 잘 들어도 어린 아이로 살면 그는 완전한 것이지 어른으로 살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이 거룩을 윤리적인 완전함으로 직접으로 정의를 해서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어떤 의미로 하나님은 죄가 없다는 의미로 빛으로서 거룩하시다. 그러니 하나님은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하고 교제하겠는가 그러니 거룩하라는 말은 도덕적으로 완전하라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하면 안된다 그 말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본성으로 출발을 하지 않고 자기 백성중에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출발을 한다. 창조주로부터 출발을 하고 자기 백성중에 계시는 언약의 하나님으로 출발을 하지 하나님의 존재 정의나 그 속성이나 그 쪽으로 출발을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아들한테 아버지를 알릴 때도 아버지로서 자기를 아들에게 알리지 아버지라는 것은 본래 이렇게 너하고 수준이 다르단다 너도 장가가서 아들 낳아봐야 내 속알것이다. 나하고는 한참 멀었어야 이렇게 가르치면 이 아버지의 고훈은 아들한테 아무런 생명이 안된다.
그러나 내가 너의 아버지인데 내가 너의 아버지고 내가 너한테 다 해주지 않냐 너한테 책도 사도 다 해주지 않다. 그러면 너도 숙제를 잘해가지고 잘해서 아버지 뜻데로 해줘야 할것이 아니냐 그러면 너는 내 지혜로 살고 너를 본자가 나를 볼것이고 지금 네가 이렇게 계속해서 순종해서 노력하면 너는 아버지와 같이 될것이다. 이래야 아들이 교훈을 받는 것이지 그렇지 않겠어요?
아버지를 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안되고 교훈이 안된다. 그러니 여기서 거룩이라는 말을 그냥 신학적인 정의를 해서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윤리적으로 거룩하시 고 절대적인 빛이고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백성의 거룩을 요구했는데 안돼다. 우리 한테도 하나님과 같은 거룩을 요구한다. 그러면 안된다 그 말이다. 우리보고 하나님처럼 거룩하라 그 말은 우리중에 오신 하나님 우리중에 오셔서 예수님이 제자와 원수들의 친구가 되시고 먹고 마셨다. 그리고 하나님을 순종해서 걸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닮아라 그런 말이다.
그래서 모든 일에 내가 너희를 용서한 것처럼 용서해라 핵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처럼 거룩하라 그러면 한마디로 하면 장가도 안가야 되고 말하자면 하나님이 재산이 있으시겠어요? 그러니까 보험회사 사람들이 불안하다. 예수를 믿고 잘못 섬기라고 남한테 보험을 들라고 그럴까 하나님을 믿으라고 그럴까 갑갑한것이다. 그리고 어느 목사님이 보험 들어 주니까 뒤에 가서 흉본다. 목사님도 하나님 앞에 미래를 안맞기고 보험들더라.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무슨 말이냐 하면 성경을 잘못 해석하니까 그렇게 된것이다.
여러분은 완전한 도덕적 존재가 못됐다고 섭섭한 것이 아니라 실은 아버지 어머니 노릇을 못해주면 섭섭하다. 미안하고 내가 이렇게 못해줬구나. 그리고 자식도 아버지를 보았을 때 아버지로서 어떤 일을 해주시는가가 자식한테 생명이거든 거기가 핵심이 있지 우리 아버지가 공자처럼 유명한가 그쪽을 보지를 않는다. 그러니까 하나님이란 관념 때문에 도덕적인 거룩으로 막 출발하면 안된다. 언제든지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으로서 자기 주권이 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었으니 너희는 내 백성으로 살아라 그런 의미로 거룩이다. 그러면 그 하나님은 누구신가? 이스라엘 백성 중에 와계신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을 닮으라 그 말이다. 어떻게 친히 너는 이렇게 되라고 말씀하셨거든.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 교회에서 믿음으로 몸을 이루고 있는 삶은 신적인 윤리다. 왜 하나님이 친히 오셔서 한 몸을 이루셨거든. 이것은 째째하고 교회는 마음 안맞은 사람 많잖아요? 천당가면 멋있는 천사들만 만날 것이니까 그냥 교회니까 대충 참고 살자 이런 식으로 살아서는 옳은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형제 지금 약점을 가지고 있는 형제 그 형제를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수고로 수고하는 것이 참다운 윤리다. 그것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윤리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사랑하신 윤리다. 왜 하나님이 지금 죄인된 형제들을 고치시거든. 그 사랑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도덕적인 완전으로 해석을 하니까 그렇게 생각을 안한다.
지금 여러분이 자식 밥해주고 키우면 별일 없으니까 째째한 것 같지요? 그러나 그것이 어머니로서 최고의 기능이고 완전함이다. 별볼일 없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으면 자식은 못산다. 왜 하나님이 그 위치에 세웠으니까. 그러니까 지금 신의 성품에 참여한 윤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구원 경영에서의 사랑이지 말하자면 신적인 본질에 참여하는 그런 쪽으로 돌이켜서는 안된다 그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면 천사들도 그런 명령을 받은 적이 없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지 않으면 형제도 구원 받지 못한다. 그런 의미로 신의 성품에 참여한다.
그러니까 여기 언약 백성의 거룩이라는 말이 이제 구약에서는 시내산에 계신 하나님이 성막에 계시고 부르셨거든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될려고 불러 냈지 않냐? 그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그들의 거룩이다.
거룩은 제사제도와 물과 피로 정결케 하는 것과 윤리적인 삶으로 레위기를 보면 구성되어있다. 제사법은 10까지 물과 피로 정결케 하는 것이 11-16장까지 거의 나온다. 그리고 그 이후에 보면 소위 윤리적인 명령들이 따라 있고 또 가나안 땅의 헌신의 삶이 따라 있다. 그것이 곧 거룩이다.그러니까 구약 백성의 거룩은 레위기의 거룩이다. 더 이상 거룩을 말하면 안된다.
여호와속한 이스라엘 백성이스라엘 백성자손에게 성소의 교제의 삶으로 복을 주시고 그들의 삶의 모든 영역을 여호와의 것으로 거룩하게 하셨다. 그것이 이 앞에서 여러 가지로 분리한 내용을 총합한 것이다. 제사제도 물과 피의 정결 윤리적인 삶 또 헌신 그런 문제는 어떤 문제냐 여호와께 속한 이스라엘 백성이스라엘 백성자손에게 성소의 교제의 삶으로 복을 주시고 그들의 모든 삶의 영역을 여호와의 것으로 성소의 것으로 거룩하게 하신 것이 그 내용이다. 여기서 거룩하다 그 말은 종교적인 문제다. 여호와의 것으로 구별했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이 은혜의 일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교회에서 완성하셨다. 벧전1:14-16절을 보면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날 때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 너희는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구약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위기의 요절을 인용하고 있는대도 그 적용을 어떻게 하냐 너희를 부르신 자가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한 자가 되라 하면서 구약을 인용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애굽에서 그들을 건져내시고 시내산에서 그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따라 산것이 그들의 거룩이면 지금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완전한 빛가운데서 우리를 그의 백성 삼으시는 그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이 거룩이다. 이처럼 완전한 관계가 왔기 때문에 이제 완전한 윤리가 요구되고 주어진다. 그러니까 윤리적인 성취는 신약에 있는 것이지 구약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말씀이다.
그러니까 구약의 윤리는 신약에 그리스도를 아는 윤리로 풀어 들어가야 되지 구약의 정신을 묵상해서 신약으로 넘어 들어오면 안된다.
그래서 너희도 순종하던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하고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구약과 비교하면 이것은 애굽의 상황에 적응되겠지요. 애굽에서는 그들은 바로의 종으로 살았다. 이제는 시내산에서 여호와의 것이 되었다. 그러니 여호와의 것으로서 삶을 살아야 된다. 그것은 성소의 삶이다. 성소에서 하나님의 상에 드리고 거기서 먹고 그 삶을 전 삶의 영역에 확대하는 것이 레위기다.
이제는 보좌 우편에 취임하신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빛가운데서 살고 이 빛가운데 삶을 전 삶의 영역에 확대하는 것이 신약 시대의 윤리다. 이제 여기서 완전한 윤리가 요구된다.
이렇게 번호를 붙여 놓으면 알기 쉽다.
언약 백성의 거룩한 삶 이렇게 길게 쓴 것이다. 그냥 거룩하면 훨신 멋있어 보인다. 그래도 언약 백성의 거룩한 삶 이렇게 풀었다. 거룩하면 의미 설정이 안된다. 단어는 탁월하고 알기 좋을란가 몰라도 의미는 설명이 잘안되니까 의미가 설명될 수 있도록 거룩을 쓴것이다. 그래서 언약 백성의 거룩한 그렇게 썼지요. 이것도 조금 추상적이다. 성소에서 함께 하시는 언약 백성의 삶 그래야 딱 내용이 들어 맞는다. 그렇게 하자고. 요새는 이름이 길지요. 데모한 사람들도 제목을 길게 하데요. 그래야 이 레위기에 맞는다. 이제 신약 백성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언약 백성의 삶이겠지요. 그전에는 성소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언약 백성의 거룩한 삶이지요? 그렇게 한것이 좋을 것이다.
레위기의 주제가 시내산 언약 의 목표이다. 즉 성소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 그것이 시내산 언약 의 목표다. 그래서 레위기를 끝으로 언약은 끝나는 것이다. 시내산 언약 언약인 출애굽기와 레위기가 모세 제도의 토대이며 따라서 모든 신약 언어의 기본적인 의미이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고 너는 내 백성이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다. 우리 한 장막에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 안식하고 쉬자 하는 이런 문제 이것이 언약 체결의 목표고 핵심이다. 그래서 시내산 언약은 출애굽기와 레위기다. 레위기를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끝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언어가 모제 제도의 토대다. 언약이기 때문에 토대고 이 언어 개념이 신약의 모든 언어의 기본적인 의미를 형성해 준것이다.
이미 여기서 하나님을 섬기는 기본적인 의미가 설정되고 이 기본적인 의미의 설정의 완성을 예수 안에서 주신 것이다. 그런데 항상 기본적인 의미를 빼 놓고 예수께서 행하신 일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 말이다. 그것을 잘 생각해야 한다. 항상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언어다. 또 신명기가 나오면 신명기는 가나안 땅의 완성을 말하니까 신명기가 언급이 되어도 그것까지라도 기본적인 언어 개념은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언어 개념이다. 그것을 항상 염두해 두어야 한다.
내용구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면 레위기가 27장인데 16장까지로 나눌 수가 있다. 16장 까지는 성소에 속한 거룩한 교제의 길 이렇게 붙여놨다. 왜 그러냐면 이제까지 이것을 붙일 때 성소에 나아가는 길 이렇게 붙였거든요.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닌데 그렇게 붙여놓으면 우리는 항상 구원론 적으로 이해를 한다. 하나님은 저 위에 성질내고 계시고 우리가 나갈려면 어떻게 하나님을 달래야 할것인가? 하나님이 처음부터 자기 안으로 부르시고 복을 주셨는데 우리는 저 밖에서 들어가는 방법론적으로 이해를 하니까 완전히 율법적으로 이해가 된다. 그래서 성소에 속한 거룩한 교제의 길이라 했고 나아가라 나가라는 말은 빼낳다. 나가고 들어가는 말은 빼버리고 어떻게 하면 성소에 속한 거룩한 교제를 나눌 것인가 그 방법을 말하고 있다. 그렇게 말을 바꿔 놓은 것이다. 그전 말로 하면 항상 공로적인 방법이 항상 나타난다. 그렇게 해서 성소에서 하나님 앞에 교제하는 이 교제의 길을 하나님이 어떻게 허락하셨는가 하는 문제가 첫 내용이고 그 다음 두 번째 내용은 이 교제의 삶을 그들의 모든 삶의 영역에 확대 시키고 있는 것이 두 번째 내용이다. 그래서 ㅋ께 속한 거룩한 삶 그들의 모든 영역이다. 시간이고 절기고 축제고 전부 그런 영역이다. 그렇게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제일 끝에는 이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확증과 그것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 대한 경고가 나와있다. 그것은 지키면 복 준다 그런 말로 강조 된것이 아니라 안 지키면 벌준다는 말만 계속 강조 되어있다. 그것이 실은 모세 율법의 특징이다. 이것이 제일 강조되어 나타난 것이 신명기 27장인데 거기 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언약을 체결하거든요. 에발산과 그리심산에서 여섯 지파씩 세우고 율법을 읽을 때 축복의 말에 대해서는 그리심산에 있는 사람이 아멘하고 저주의 말에 대해서는 에발산에 있는 사람들이 아멘하고 그렇게 했거든요. 그런데 거기 선포된 이야기는 전부 저주에 대한 이야기 밖에 없다.
그리고 제일 끝에 이 모든 율법을 항상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으라 하고 끝내고 있다. 그것이 구약에서 언약 체결의 음성이다. 거기는 축복이라는 말은 아예 나타나지 않은 정도로 되어있다. 그런데 레위기도 26장을 보면 만일에 이렇게 해서 안들으면 벌을 칠배를 더 할것이고 그래도 안들으면 벌을 일곱배를 더 할것이고 그래도 안들으면 벌에 일곱배를 더할 것이고 벌에 벌을 일곱배 일곱배 하는 식으로 되어있다. 그렇게 해서 언약을 확증하고 경고하고 있고 그리고 이제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그 맹세를 갚고 그 십일조를 드리고 이런 헌신의 삶이 27장에 기록이 되어있다.
그러니까 26-27은 결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언약을 확증하고 그 언약의 삶에 대한 복을 27장에 다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구조로 되어있다.
이제 이것을 조금더 설명을 하면 하여튼 여러번 읽어서 자기 말로 설명하도록 읽어야 한다. 정확하게는 모르드라도 여기 이런 말이 있고 자기 말로 1-마지막 장 까지 이야기 할수 있도록 읽어야 된다. 그런데 쉬운 것이 이것이 도덕적인 말같으면 어려운데 그 표현법으로 하면 그림 언어다. 이런 저런 제도들의 설명을 하니까 알기가 쉽다. 여러분 창세기 그냥 외울 수 있지요. 눈감고 외우라고 그러면 몰라도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에덴에서부터 가인 아벨 노아 아주 쉬운 이야기들이다. 또 아주 재미있고 이렇게 스케일이 방대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세상에는 없다.
레위기도 말로 할 수 있도록 여러번 읽으라 그 말이다. 그것은 해 줄 수 있어야 된다.
제일 처음에 보면 다섯가지 제사가 6장까지 있다. 그 다섯 가지 제사가 있고 그 제사 제물을 먹는 이야기가 그 이후로 7장까지 있다. 그리고 그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의 위임과 취임에 대한 규례가 8-10까지 있다. 실은 10장에는 제사장의 취임에 대한 기록은 아니고 제사장의 아들들의 벌 받는 이야기다. 그래도 그것은 취임에 포함 시켰다. 그리고 나서 이것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는 법이다. 다섯가지 제사는 하나님 앞에 예물을 가지고 와서 드리고 먹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고 또 성소에 못 들어가고 하는 그런 거룩에 대한 문제들이 있다. 총 결론은 대 속죄일의 거룩이다. 대 속죄일에 온 백성을 정결케 했다. 지성소를 정결케 했거든요. 거기까지 제사장이 나간다. 그 이전에는 못 나갔다. 그래서 대속죄일의 정결법이 하나님 앞에 성소에서 교제하는 길의 결론이다. 목표고. 레위기에서는 대속죄일이라는 그런 언어 개념을 안쓴다. 그 말을 쓰지를 않는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성소를 정결케 하는 것 그런 말로 쓰지 대 속죄일 그런 말은 안쓴다. 이 날은 백성이 전부 굶은 날이다.
음식도 하나님의 상에서 먹는 것을 자기 일상적인 음식에까지 확대시킨 개념으로 정하고 부정한 음식을 말하고 사람은 출생 때 부터 부정한 자다 정결법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자녀로 계산이 안된다. 하나님의 성소에 못 들어간다. 여자를 80일이 지나야 성소에 들어갈 수가 있다. 그렇게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정결법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면 문둥병과 유출병도 그렇지요. 정결함을 받아야 성소에 들어갈 수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못 들어간다.
그리고 지성소를 속죄하는 대 속죄일이 총 끝이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성소에 속한 거룩 그 거룩을 누리는 길 그런 문제가 전반부에 있다. 그리고 이제 이런 거룩한 교제를 모든 삶에 확대 시키고 있는 것이 17장 이하인데 음식을 먹을 때도 하나님의 단에서 먹는 방식으로 먹어라. 하나님의 단에서 한꺼번에 먹을 수 없다. 다 나갈 수도 없으니까. 그럴때 피는 땅에다 쏟고 고기는 하나님의 단에서 먹는 것처럼 먹어라. 그렇게 해서 그들의 일상적인 삶을 이전의 하나님의 단에 들어가서 화목제를 먹었던 그런 방식으로 확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생명으로 사는 사람들은 윤리적으로도 거룩해야 한다. 왜 애굽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했으니까.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 속한 윤리적인 법규들을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특별히 이 거룩이 제사장에게서는 탁월하게 나타나야 할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시간 질서 연중을 하나님 앞에 축제로 지내야 한다. 그래서 안식의 절기 7대 절기가 23장에 쭉 기록 되어있다. 그것은 전부 안식의 절기고 수확의 절기고 먹고 마시는 절기로 관계되어있다.
그리고 만일에 이 교제의 삶을 살지를 못하는 사람들은 죽여야 된다. 그렇게 해서 성소에서 봉사하는 제사장은 이러이러한 자는 봉사해라. 부정함이 있어서는 안돼고 흠이 있어도 안된다. 그런 말을 하고 나서 그 다음 범법자를 죽이는 이야기를 그 옆에 붙여놨다. 그래서 이것은 언약 파괴에 대한 죽임이 되겠지요. 그리고 이제 그 땅의 완성 모든 종들의 해방 안식년과 희년에 대한 문제 또 가난한 형제를 어떻게 도와주고 히브리 종들을 어떻게 해방해 줄것인가 하는 완전한 자유 안식의 문제를 25장에 말슴하고 있다. 이것이 소위 완성이다.
이 은혜의 일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친히 하나님께서 완성하셨다. 이제는 몸으로 산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왜 우리는 휘장 밖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 성소에서 함께 한다. 모세를 따라서 들어간 사람이 아니라 완전하신 아들을 蕙撰?들어간다. 아들과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맹세하고 초태생으로 헌신하고 십일조로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 삶의 영역으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늘의 성소로 우리를 부르셨다. 우리는 그 성소의 합당한 자의 거룩을 들어내야 한다. 만유가 하나님의 안식의 거처가 되도록 까지 그래야 한다. 모든 죽음의 세력이 물러가고 하나님께서 만유의 생명으로 드러나도록 그 때는 모든 죄들은 물러나고 죽음은 끝나고 완전한 안식과 자유가 주어질 것이다. 그때까지 봉사한다. 그런 문제들이 기록이 되어있다. 그래서 출애굽기와 레위기를 잘 알아야 된다. 그래야 구약이나 신약을 풀 수가 있다.
그런데 교회에서 레위기는 어려운것 하고 안 읽는다. 읽어보니까 맨 비슷비슷한 말만 들어있고 무슨 제사가 복잡하기도 하고 그래도 쭉 읽다 보면 한가지는 알겠어 반드시 죽여야 되고 피를 흘려야 되고 더럽고 보니까 수십번 씻어야 되고 저도 레위기를 읽어 보니까 사람이 이렇게 부정한가 감이 잡히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죄를 떠오르게 하는 것이 레위기의 제사의 중심이다. 그래도 강조점은 하나님이 성소에서 부르심 너희들이 내 앞에 와서 내 상에서 함께 먹고 마시자 한것이 레위기의 핵심이다. 그런데 아직 휘장밖에 있고 죽음을 통과해서 들어와야 한다. 그냥 못 들어온다.
이 일을 하나님이 아들의 죽으심 안에서 완성하시고 이제 휘장을 영원히 제거 되었고 우리를 위해서 몸을 주신 주님이 참으로 우리의 장막이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의 전체로 하나님 앞에 맹세와 헌신의 삶을 살게 된것이다. 그것이 완성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열린 책으로 우리에게 주셨고 축복의 책으로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가 성경을 펴지 않고 읽지 못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동안 창세기 강론하고 나니까 너무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그리고 강론하면서 굉장히 많이 배웠다. 출애굽기를 배우면서 또 감사하고 왜냐하면 교회가 성경을 풀지 않고 목사가 그냥 느낀대로 설교만 했거든. 하기 좋은데 성경을 풀지를 않는다. 그리고 주석가들의 책도 문법적인 문제만 조금 이야기를 하지 그리스도의 책으로 풀지 않으니까 읽어봤자 문자적인 책이 그리스도의 책이 안된다. 그래서 교회가 실은 가난하다. 아주 빈곤한 형편이다. 그런데 큰 책을 풀고 또 레위기를 푸니까 하나님이 더 크신 은혜를 주시리라는 확신이 생긴다. 왜 하나님이 교회를 복주실려고 성경을 주셨고 우리가 참으로 성경을 믿고 열면 하나님은 주시도록 되어있지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믿음으로 풀려고 그러는데 하나님께서 안 열어 주실 까닭이 없다. 그러니까 많이 사모하고 기도하십시요. 이것은 아마 교회들로 이렇게 푸는 교회가 별로 없다. 더구나 이렇게 교회에서 구약 성경은 풀지를 않는다. 우리에게 큰 복인줄 알고 감사하고 깨달은 대로 사람들한테 이야기 하고 그렇게 하면 더욱 부요해 질것이다.
지금 우리하고 교제하면서 교제들을 가져간 사람들도 신학교에서 배워가지고는 성경을 못 푼다. 또 신학적인 사상 정립도 안되고 요새는 우리가 토대를 바꾸니까 더 그럴 것이다. 그래도 가지고 가면 성경들을 풀고 쓰는데 그것이 자기가 참으로 믿음으로 서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그 다음 문제다. 우리가 유명해서 자료를 가져간 것은 아니다. 성경이 풀어지니까 가져가는 것이다. 여러분이 그점을 잘 아시고 레위기를 통해서는 더 큰 축복이 임하실줄 믿고 여러번 읽으십시요. 그리고 목사가 그 직무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면 그러면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복일 뿐만 아니라 몸으로서 교회에 주신 복으로 많은 형제들에게도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7월 1일에 모여서 성경을 쭉 강독합니다. 그래서 한 두루마리씩을 다 읽고 나면 회당 주위를 뱅뱅 한번 돌던지 무슨 이유로 도는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그런 식이 있다. 그렇게 해서 읽으면 그 사람식으로 하면 몇년이면 성경을 한번 다 읽을 수가 있다. 읽는다 그 말은 예배석상에서 읽는 것이다. 그전에 어디 주석에 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의식이 다 성경적은 아니니까 그것으로 해서 우리가 받아 들일 아무런 이유는 없다. 그런데 하여튼 기업으로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에게 해석되고 읽혀진다는 것은 큰 복이다. 그렇게 아시고 열심히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음식물 같은 것을 지금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직도 안 먹는다. 우리 목사님이 먹지 말라고 했다고 돼지 고기도 안먹고 부추도 안먹고 마늘도 안 먹고 마늘은 먹는가 김치에 넣어 먹으니까 본내 애굽에서 먹었던 것이 부추 파 마늘 그런 것이다. 그 때는 그런 것도 먹고 좋았는데 여기서는 만나 뿐이구나 그러고 있거든요. 그러면 제대로 하면 그것도 안 먹어야지요. 그런데 그것은 레위기에 먹지 말라는 말이 없으니까 먹는 모양이구만. 하여튼 애굽 양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레위기에 먹지 말라고 한 것이 꽤 있다. 그러니까 이것을 축복의 책 구원의 책으로 읽지를 못하고 법규의 책으로 읽는다.
만일에 예수를 모르면 미신이다. 무슨 음식은 정하고 그러면 구원론적인 의미를 모르면 미신이다. 그래도 우리는 성경대로 하니까 보수파 개고기 먹으면 벼렸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거든. 목 매어 죽인 것을 먹지 말라고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참 갑갑하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그것을 귀신의 가르침이라 지금도 무엇을 먹지 말고 결혼하지 말고 그러는가 그것은 귀신의 가르침이라 그렇게 딤전4장에서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것은 먹을 자유가 있다고 하는데 성찬식을 행하면 어쩌냐 먹는 그 자리에서만 효과가 있음. 먹고 남은 것은 정결한 곳에 묻을 것임, 완전히 미신이다. 그것은 천주교가 왔다갔다 가지고 다니거든. 피와 살이라고 먹으라고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효과가 있음 끝나고 나면 효과가 없음 천주교를 대항하는 말로는 맞는데 그러니까 그것이 완전히 미신이다. 올해는 우리가 포도주를 넉넉히 담아야 되겠지요. 포도주는 기쁨의 잔이다. 올해는 좀 넉넉히 담아야 겠다. 그러면 성찬식 비용이 꽤 많이 들어간다.
그런데 그전에는 천주교는 안준다. 피 흘리면 큰일 난다고 안주고 천주교 신부만 금잔에다가 홀짝 홀짝 마시고 그리고 아이들인가 혀 내밀면 거기에다 하나씩 나주고 완전히 미신이다. 그러니까 그전에 모세 율법만 잘못 해석한 것만 귀신의 가르침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모르면 그것은 의미 없는 미신적인 행동들 밖에 안되고 거룩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번에 레위기를 잘 배우면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구원에 대한 문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히브리서도 함께 몇번 일으십이요. 그러면 훨신 더 이해하기가 좋을 것이다. 이것은 교회적으로 복이고 개인적으로도 큰 복이다.
주님 가르친 기도로 함께 기도하고 마칩시다.
이종근목사 레위기 서론
1. 표제
레위기는 레위 지파가 행하던 제사장 직분을 주로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 책의 서명으로 불린다. 고대 히브리 학자들은 이 책의 첫 단어를 따서 그것을 “와이크라”(Wayiqra’)라고 불렀고, 지금도 유대인들은 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 “그분께서 부르셨다” 는 뜻이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이 되는 것을 중심으로 탈무드는 “제사장법" (The Law of the Priests), 또는 “제사법" (The Law of Sacrifice) 이라고 일 컬었다. “모세의 세 번째 책” 이라는 부제는 원래의 히브리어 사본에는 없었으나 여러 세기가 지난 뒤에 첨가되었다.
2. 저자
레위기는 모세 오경(Pentateuch) 의 세 번째 책으로 모세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총 27장 중에서 20장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라는 말로 시작된다(1, 4, 6, 8, 11-25, 27장). 이것은 이 서책의 신적 기원을 강조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모세의 율법" (눅 24:44) 이라고 일컬으셨다.
문둥병자들을 치료하신 이야기에서 그는 분명하게 이 책을 위대한 입법자 모세와 연관을 시키고 있다(마 8:4 녹 5:14; 레 14:3,4,10). 불신의 유대인들을 향하여 하신 다음과 같은 그분의 말씀은 의미심장하다: “모세를 믿었더면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요 5:46,47). 여기서 우리는 모세가 “기록”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가 기록한 것이 “그의 글” 로 번역된 단어의 원문은 복수로서 더욱 구체적으로 직 역을 하자면, “그의 글들” 이 다. “글들” 이 라고 복수를 사용하신 것은 모세가 두 권 이상의 글을 기록했음을 뜻한다. 여기서 말하는 그 글들(책들)이란 보편적으로 모세의 책들이라고 불리는 오경을 말한다.
초기로부터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공히 레위기를 모세의 저작으로 믿어왔으며 이 책의 저자에 관한 의심이 제기된 것은 단지 현대에 이르러서이다.
3. 역사적 배경
레위기가 차지하는 기간은 꼭 30일이다. 출애굽기는 회막의 건축과 그것을 봉헌하기 위한 준비에 관한 서술로서 끝났다. 저작 시기는 출애굽(C. BC 1445) 이후 광야에서 회막을 봉헌한 날이 출애굽 제 2년 1월 1 일 이었다(출 40:17). 민수기의 인구 조사가 출애굽 제 2년 2월 1일에 시작했고(민 1:1), 시내 산을 출발한 날은 동년 2월 20일이었기(민 10:11) 때문에 한 달 혹은 그 전후 기간에 레위기의 교훈이 주어지게 된다. 시내 산 봉오리의 빽빽한 구름 속에서 말씀하시며 율법을 선포하셨던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완성된 회막 곧 성소에서 말씀하신다(히 12:21). 시내 산을 진동하셨던 그 동일한 권능의 하나님이 무한한 사랑과 은혜로 구속의 도리를 선포하고 계심을 느낀다.
광야에서의 회막 건축은 시내 산에서 율법 반포 직후에 있었다. 이스라엘은 그 때 산봉우리를 뒤덮은 빽빽한 구름 속으로부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히 12:21). 레위기에서 이스라엘은 또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산에서가 아니라 성소 곧 율법과 속죄소(시은좌)가 간직되어 있는 지성소에서였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현현(theophany)을 알려 주시던 곳은 구속의 장소인 그룹 천사들 사이 즉 속죄소였다. 시내 산이 자비가 없는 율법을 나타내었다면, 성소는 율법과 자비가 만났으며, 거기서 구속이 가능하게
되었다. 레위기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레위기의 주요 내용은 대략 제사법(1 -10장), 성결법(11-17장) 및 시민법(18-27장) 등에 관한 것이다. 중요 사상은 속죄와 헌신, 교제, 경배와 감사 그리고 서원과 삶의 성결로 이 모든 것의 의미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다. 제사법은 고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성과 죄의 악성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대한 속죄와 화해를 교육하기 위한 실물 교훈이었다.
4. 주제
레위기는 주로 제사장 직분과 성소 봉사 그리고 유대 민법의 일부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문제들에 관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신 교훈을 모두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많은 중요한 사항들이 민수기 등 다른 곳에 기록되어있다. 여기서는 예배의 기본 원칙들의 대부분이 개괄되어 있다. 이런 까닭에 이 책은 중요성을 띠게 되고, 특별한 연구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주요 주제들을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임재
레위기는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낸다. 예배를 통해서 끊임없이 “여호와 앞에서, 여호와께 나가다, 여호와께 드리는,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등의 표현이 있다(1:9,13,17; 2:9; 3:5; 16:1; 21:17).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법으로 만 가능함을 강조하고 임의로 예배할 수가 없었다. 그것을 어길 때는 죽음을 의미했다(10:2).
하나님은 예배에서만 가까이 계신 분이 아니라 항상 모든 현세적인 의무에도 그러했다. 삶 전체가 하나님의 임재에서 행해져야 했다.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18:22; 19:3-4,10; 20:7) 등은 그들 삶의 모든 영 역 : 음식물(11장), 종교(21-24장), 성(18장,20장), 이웃관계(19,25장) 등이 그들의 구속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관심사항이라는 것이다. 각자의 행위는 하나님의 것을 반영하는 것이며 (20:7)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약자들: 눈먼 자, 늙은 자들, 그리 고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구속받은 선민의 삶은 하나님의 엄존 앞에 사는 신전의식(Coram Deo) 의 생애였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라서 생활의 모든 국면에 성결한 삶을 살아야 했다.
제사
레위기의 제사제도는 하나님과 인간 관계를 회복시키는 의미가 있었다. 관계 단절의 원인인 죄를 해결하는 과정이 제사이다. 죄를 짓고 병들고 문제 있는 인간이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제사제도를 통하여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상적 삶을 영위하도록 개인을 정결하게 하고 거룩하게 했다. 죄와 질병, 그리고 정상성을 벗어난 모든 것은 부정하게 되었으며, 제사제도가 이것을 바르게 회복시킬 수 있었다. 부정한 죄인이 희생제도를 통해 정결하게 되고 성화되었다. 반면 그것으로 인해서 거룩한 성소는 더럽혀지고 불결하게 되었다. 회개한 죄인은 의식적으로 정결하게 된 반면 죄인의 부정이 전이된 제물을 통해 죄가 옮겨진 성소는 더럽혀지고 불결하게 된다. 이렇게 된 성소를 일 년에 한 번씩인 대속죄일 봉사를 통해서 성소를 정결하게 했다. 거룩하지(holy) 않은 것은 모두다 속된(common)것이다. 속된 것은 정한 것 (clean)과 부정한 것 (unclean)으로 구분되는데, 정한 것이 성결의식 (sanctified)을 거쳐 하나님께 바쳐지면 거룩하게 된다. 정한 것이 더럽혀지면 부정하게 된다. 거룩한 것도 더렵혀지고(defile) 부정하게 될 수 있다.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거룩한 (일례로, 부정한 자가 거룩한 음식을 먹올 수 없었다, 즉 만약 먹으면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끊어진다고 했다(레 7:20-21; 22:3). 이 과정을 도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거룩함
↙ ↖
거룩 속됨
↘ ↗
더럽힘
정결하게 함
↙ ↖
정결함 부정함
↘ ↗
부 정 함
제사제도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단어가 속죄인데 이것은 속죄하다는 뭇의 단어로, “덮다” 라는 의미이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에댄에서 인간이 타락한 이래로 계속되어 왔었다. 그러나 그 모든 제사들이 예표하고 지칭하는 구세주에 관한 보다 명백한 계시가 레위기의 제식 가운데 주어졌다.
제단의 뿔들에 바르거나 휘장 앞에서 뿌리거나 지성소의 법궤 앞에서 뿌린 피는 헌제자(offerer)를 정결하고 거룩하게 했으며 죄 용서를 가져왔다. 희생 제물을 드리는 자가 그의 죄를 고백하면서 제물의 머리 위에 그의 손을 없는 매일의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봉사하는 정규적인 제사장 직분의 제도를 통하여, 그리고 회막의 지성소에 있는 하나님의 존전에 대제사장이 일 년 일차씩 들어가서 드리는 제사를 통하여 죄의 전가와 중보와 화목과 구속의 원칙들이 전수되 있다. 이 모든 규례들과 교훈들 가운데서 사람들은 우리의 죄를 친히 지시고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며 그분의 희생으로 죄인들이 죄 용서를 받게 되고 죄의 상처에서 나음을 얻게 되는 주님의 중보 사업을 깨닫게 된다.
성소 봉사는 상징적이었고 일시적이었다.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피가 필수적인데 레위기에 나오는 제사법에는 인간보다 못한 짐승의 피가 수없이 되풀이 희생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수송아지나 염소 등의 짐승의 피는 인간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고 단지 의로우시고 거룩하시며 또한 인간의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번의 일시적이며 완전하고도 영원한 속죄를 예표하는 바 구약시대에만 국한되는 한시적인 것이었다. 즉 제사제도는 표상적이고 장차 올 좋은 것의 예표와 그림자가 되었으며 따라서 매우 중요한 목적에 이바지하였다.
이것은 신약시대의 예배적 성격도 지니고 있다. 성도가 회개하고 침례를 받은 뒤 신앙생활에서 필수적인 회개, 간구, 기도, 경배와 교제 동의 예배를 항상 드려야 하는 것처럼, 구약에서는 백성들이 정기 및 비정기적, 혹은 의무적으로나 자발적으로 계속 반복하여 속죄, 헌신, 죄용서와 변상, 그리고 공동체의 교제 및 서원, 그리고 성결한 삶을 위한 제사를 드혔다. 즉 구약제사에서는 피흘립을 통한 제물의 죽음을 기초로 제사가 진행되었지만, 신약에서는 무한히 의로우시며 완전하신 그리스도의 단 한번의 영원한 십자가 죽음을 통한 속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거룩함
거룩함은 이 책의 매장마다 다루고 있는 대 주제이다 이 말은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것을 말하고 정결하고 분리되어 있는 것을 뜻한다. 제사장과 백성들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했다.
제물들도 완전하고 홈이 없는 것이어야 했으며,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은 거룩하여야 했다. 하나님의 반복적인 명령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 11:44,45; 19:2; 20:7, 26)였다. 대제사장이 쓰던 관에 부착시켰던 문구도 바로 “여호와께 성결” 이라 새기었다(출 39:3()). 레위기에 나오는 제사법과 제사장법 및 기타 의식법들은 인간의 삶 속에서 절대 성결과 거룩함을 유지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레위기의 법들은 택한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대 성결하신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죄의 문제를 해결하며 언약 관계를 유지하고 하나님과의 계속적인 교제를 하도록 고안되었다. 속죄와 헌신 친교 및 경배와 감사의 삶을 통해 거룩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거룩한 삶의 궁극적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한 희생제물이 되셨으며, 그분께서 우리들에게 거룩함이 되시며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시다.
전복음(pre-gospel)
레위기 연구는 복음 진리의 · 핵심 중의 하나로서 신약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제사장과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나타나 있다. 우리의 속죄 제물로서 그 피를 제단 주위에 뿌리면서 죽임을 당한 희생 제물이시다. 그분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양식과 세상의 빛으로서, 그리고 향기로운 분향이시다. 이 단지 희미하게 이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울은 히브리서를 기록하고 설명할 때 이 책에 크게 의존했다.
오늘날 우리들은 레위기의 제사법의 다양한 의미를 통해서 신약의 갈보리 산의 주님의 구속 사역의 여러 측면의 진리를 이해하게 된다. 그분의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과 변호자로서의 봉사, 재림전 심판과 그분의 엄박한 재림, 율법과 시은소, 그리고 안식일들에 관한 참된 교리들의 이해에 있어 레위기 연구는 필수적이다.
5. 레위기의 구속사관
레위기는 복음의 심장부이다. 그 신성의 뜨거운 심장부의 사랑과 관심을 체험할 수 있다. 이 책은 구약 성경 중에서 태중의 복음(gospel in embryo)으로 불린다(SDABC, 1:695). 레위기를 통해서 우리들은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죄인들을 위해 구원의 길을 예비하여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
와 자비를 볼 수 있다. 이 연구를 통해서 다양한 율법 속에서 나타난 복음을 알게 된다. 성소제도에서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 죽임을 당하는 희생 제물로서,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으로서, 분향단의 모든 향연으로, 그리고 다른 여러 제도와 법들을 통해서 우리를 위하여 봉사하시는 구원자요, 심판자, 유지자, 공급자, 섭리자 그리고 변호자로서의 구세주의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들이 레위기의 각종 법들을 연구하고 그 가운데 있는 믿음과 삶을 위한 원칙들을 이해하고 실천할 때, 우리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된다(요 1:12), 레위기의 매 성경 말씀에 우리가 두 손을 여미고 가슴으로 그리고 믿음으로 성령의 조명 하에 이해
하려고 기도할 때에 우리는 영겁의 무한하신 대 사랑의 심장으로부터 울려 나오는 감격과 회열의 대 박동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매 말씀마다 다함이 없는 진리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느낄수 있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신 길을 걷고 그분의 그 오묘한 구속의 도리를 이해하고자 한다연 이 책의 제사제도와 여러 법등을 연구해야 한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도록 주신 하나님이 바로 레위기에서 말씀하시는 그 분이시다. 그래서 오늘날도 거룩한 삶과 예배의 정신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이 연구는 필수적이다. 본서에서는 매 장마다의 구속사관에서 레위기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Heilsgeschite)를 조명한다.
6. 제사법의 의미와 상징
제사제도의 근간은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회복하는 과정인데, 그것은 바로 생명의 피를 통해서 된다. 범죄한 자는 죽음의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죽을 죄인은 살고 대신 희생 제물이 죄를 전가(impute)받아 죽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형벌인 짐승의 죽음을 통한 공법과 무한히도 죄인을 사랑하시어 구원하시는 사랑(정의)의 조화가 이루어졌다.
모든 제사법들은 인간의 창조주와 우주의 대주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들을 위해 자원하신 완전하고도 영원한 효력이 있는 그분의 구속을 예표하는 것이다. 십자가 이전의 제사제도는 죄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했지만, 십자가 이후에는 그것뿐만 아니라 영원 전부터 예정하시고(엡 1:4-5) 수천년 동안 예언적으로 예표되고 성취되어 온바 역사를 초월하여 진행되는 하나님 섭리와 은총의 구원사를 우리들에 게 증거한다.
제사는 피를 요구하는 의무적 측면과 함께, 죄인의 죄에 대한 고백과 믿음이 수반되었다. 이와 함께 헌제자의 감사와 찬양 그리고 헌신 및 하나님께 대한 간구의 요소가 내포되어 있었다. 제사 원리와 방법은 규범적인 측면이 있지만, 제사를 드리는 동기와 자세는 헌제자의 정성의 표현이었다. 구약적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경배 그리고 사랑의 표현이었고, 신약적으로 보면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대한 믿음과 신앙고백을 기초로 감사, 찬양, 간구와 헌신 등으로 이루어지는 신앙공동체의 예배에 해당된다.
이상에서 언급한 다양한 다섯 가지의 기본제사의 의미와 그 상징성 그리고 제사 목적 등에 따른 명칭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살펴보자. 이는 주석에 논할 제사법과 성결법 및 유대 시민법 등에 대한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이름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성격
의무제 및 자원제
자원제
자원제
의무제
의무제
상징
그리스도의
희생과
속제 및
헌신
그리스도의 완전한 삶
화목제물이
신 그리스도와 성도의 교재
용서하시는 그리스도
죄를
변상하시는 그리스도
의미
그리스도의
완전한
헌신과
희생
온전한
헌신의 작품을 하나님께 드림
성도의 화목과 교제
속제
속죄와 변상
목적
희생과 헌신
감사
속죄와 변상
제사 방법에 따른 구분
앞에서 나오는 제사법의 목적에 따른 다양한 분류뿐만 아니라 각종 제사들의 집전에서 그 방법에 따라 불리는 명칭들이 있다. 각 제사들을 시행하는 방법에 따른 다양한 제사명과 그것에 대한 예표적 의미가 있다. 이로써 그리스도의 대속적 진리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의미를 조명하고 있다. 우리들의 둔한 이해력을 넓혀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이 어떠함을 느끼게 된다. 참
으로 놀라운 진리의 매력을 보게 된다. 이것들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서 다함이 없는 주님의 은총을 찬양하고 감사하자.
다음은 제사 방법들에 따른 구분이다.
이름
화제
요제
거제
전제
방법
불로 태우는 제사
위⦁아래로 듦,
좌⦁우로 흔듦
높이 올림
부음, 쏟음
상징
그리스도의 속제와 헌신
그리스도--
생명의 양식
그리스도--
생명의 양식
헌신과 충성
제사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속건제, 초실물
화목제,
초실물,
십일조, 전리품
번제, 소제, 화목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