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 편 103 : 1 - 5
오늘은 맥추감사 예배를 드립니다. 맥추감사절은 보리농사를 지었을 때 보리추수를 한 후에 지키는 절기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보리농사도 짖지 않으면서 맥추감사절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느냐? 고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해마다 교회가 맥추감사주일을 지킨다고 하니까 별로 의미 없는 맥추감사주일이 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께서 마땅히 지키라고 하신 맥추감사절이 오히려 성도들을 시험 들게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탄은 오늘도 성도 여러분에게 감사절을 지키지 말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가 지키라고 하니까 지키기는 하되 감사가 없는 형식적인 절기로 지키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맥추감사주일에 진실 된 감사가 없는 약간의 헌금을 하는 것으로, 그것도 하지 않고 맥추감사절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맥추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먼저 맥추(麥秋)라는 것은 보리 추수를 뜻합니다. 농경사회에서는 보리나 벼를 주 농사로 지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절기였습니다. 수확한 보리를 몇 가마니씩을 바치며 감사절로 지켰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보리와 밀을 농사하지 않지만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의 기회를 갖는 신앙생활에 유익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시편 103편은 다윗의 시로서 그 내용의 풍성함이 시편 전체 중에 가장 아름답고 뛰어나다고 할 정도로 주옥같은 시입니다. 다윗은 그가 체험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인자하심에 대하여 실로 감격적이고도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찬양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두 가지 측면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원성입니다. 유한한 인생이 영원까지 이르는 은혜의 축복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편성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신앙적 체험을 점차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자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우주 만물까지 확대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전우주적 찬양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1)고 했습니다. ‘영혼’은 단순히 육체를 제외한 영적인 존재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육체까지도 포함한 전인격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씀입니다. ‘송축하라’란 말은 ‘찬송하라’, ‘찬양하라’ 와는 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송축하라’는 말은 ‘복을 빌다’, ‘축복하다’란 의미가 있는 말로 사랑과 감사에서 우러나오는 내적인 찬양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마치 잠든 영혼을 깨우치는 것처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라고 호소합니다. 다시 말하면 깨어있는 영혼으로 여호와를 축복하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떠하든 ‘내 영혼은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호소입니다. 성도인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이름을 축복하라는 사명감을 일깨워 줍니다. 성도는 마땅히 여호와를 송축할 사람들입니다. 감히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송축한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무한한 은혜요 특권입니다. 성도가 아닌 그 어느 누구도 여호와를 송축할 수가 없습니다. 성도된 나와 여러분은 창조주 하나님을 송축하므로 영광을 돌릴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를 어느 정도 송축하라고 하셨습니까?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것들’이란 우리의 감정도, 우리의 능력도, 우리의 기능도 모두 동원하여 하나님을 축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인 나와 여러분은 특별히 맥추감사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에 마음껏 여호와를 송축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시간에 진실된 감사가 없는, 확신이 없고, 열정이 없는 입술의 노래를 부른다면 하나님은 매우 역겨워 하실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서 부르는 찬송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받으실까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다윗은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고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찬송하는 것이 은혜를 입은 성도로서의 합당한 찬양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기억하고 송축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모든 은택’은 성도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총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택을 잊어버리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찬양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은택을 잊어버린 사람은 감사의 찬양 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은택을 잊어버린 사람이 부르는 찬양은 하나님께서 듣기가 역겨워 하실 것입니다.
감사가 없는 대신 원망의 소리만 늘어놓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감사의 찬양을 드리기 위해서 받은 복을 세어 보고 그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은택을 기억하며 송축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하여 마음껏 찬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를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우리도 축복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모든 좋은 것을 주셨으니 우리도 모든 좋은 것으로 돌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받은 은택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배은망덕한 자가 되기 때문에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택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그분으로부터 받은 은택의 첫 번째가 사죄의 은혜입니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3)라고 했습니다. 죄 사함은 하나님의 은혜의 시작이요 최초의 선물입니다. 사죄함이 없다면 우리는 은택의 대상이 아니라 죄로 인한 저주와 형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누릴 모든 축복은 죄 사함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죄 사함을 받기 전에는 다른 것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12)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로서의 영적 경험이 사죄의 은총입니다. 죄 사함을 받았다는 확신이 있어야 영혼이 여호와를 송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라는 이 말씀은 계속적으로 사하여 주시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을 뿐 아니라 계속하여 매일 우리를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죄악’, 우리의 크고 작은 죄, 헤아릴 수없는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셨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용서해 주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라고 말씀합니다. 죄가 사라졌기에 신체적인 질병, 정신적인 질병, 영적인 질병조차도 사라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재판장이시기도 하지만 질병을 고치시는 의사이시기도 합니다. 질병이 세상에서 완치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천국에는 완치된 몸으로 들어가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못고칠 병이 없습니다. 우리의 약한 모든 것을 다 고쳐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병을 고치시는 은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 번째로 속량의 은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4). ‘파멸’은 ‘음부’와 ‘지옥’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음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죄로부터 속량함을 받았음을 노래하였습니다. ‘속량’이란 댓가를 치루고 노예를 풀어 자유인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값을 주고 노예를 사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파멸에서 건져주셨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파멸’이란 영원한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는 사탄의 종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살아날 수 없는 파멸에서 우리를 주께서 속량해 주신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속량’이라고 할 때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을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려 죽어서야 했습니까? 그것은 나와 여러분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속량의 제물이 되시지 않으셨다면 생명의 파멸에서 죄 사함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속량의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는 생명의 파멸에서 속량함을 받을 수가 있게 된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죄의 구렁텅이에서 구출해 주신 구원자 예수님을 큰 소리로 찬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죄 값으로 자신의 몸을 주셨음을 기억하며 진심으로 감사하며 여호와를 송축하여야 합니다.
한 때 우리는 소망이 없던 자였습니다. 삶의 의미도, 목적도 없던 자였습니다. 죄의식과 두려움과 한탄과 좌절에 빠졌던 자들이었습니다. 내세에 대한 희망도 없었습니다. 천국 대신 지옥을 향하여 달려가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무런 대책도 없었습니다. 구원 얻을 만큼의 선행도 할 수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속량해 주심을 받은 자들로서 그 은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은혜를 받은 자답게 내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해야 합니다.
네 번째로 관 씌워주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불쌍히 여기심으로 인하여 성도들이 왕과 같이 높임을 받을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주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 사함과 질병을 고치심과 속량하신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왕관을 씌워주십니다. 하나님이 씌워주시는 왕관은 시들고 쇠하는 월계수 관이 아닙니다. 영원히 시들지 아니하고 금과 은처럼 녹슬지 아니하는 영광스러운 관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관을 씌워주십니다. 돈을 주고 구입한 왕관이 아닙니다.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응당 받아야 할 자격이 있어서 씌워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을 돌이켜 보면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을 씌워 주신다는 것은 무한한 은혜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감사절기로 영광을 돌려드리는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영광스러운 관을 씌워주시는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광스러운 관을 하나님께서 손수 씌워주실 때에 우리는 한없는 기쁨을 느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죄인이었던 우리를 용서하셨기에 쾌히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관을 받아쓰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은혜를 기억하며 마음껏 여호와를 송축해야 합니다.
이것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만족하게 채워주심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들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며, 모든 것을 후히 주시기를 즐겨하십니다. 성도들인 나와 여러분들을 만족하게 해 주시고 새롭게 해 주십니다. 좋은 것을 먹고 마시게 하십니다. 마치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해 주십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힘을 새롭게 하고 삶의 에너지를 공급받고 창공을 오르는 독수리처럼 새롭게 회복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받은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택을 기억하며 성도답게 여호와를 송축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택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성도는 하나님을 송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것처럼 우리도 감사와 찬양으로 마음껏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은혜를 알지 못하는 배은망덕한 존재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모든 은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를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여호와를 송축하지 않을 때는 배은망덕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를 느끼지 못하고 배은망덕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우리는 받은 은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땅히 감사하며 마땅히 송축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받은 은택을 기억하며 내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하여 여호와를 송축합시다. 여호와를 축복합시다. 우리 모두 모든 은택을 잊지 말고 이 시간 마음껏 여호와를 송축하며 영광을 돌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