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행적을 후세에 남기길 원하여 종종 기념비를 세우곤 한다. 하지만 그런 기념비가 그들의 사후에는 칭찬과 감사의 기념비가 아니라 치욕과 모욕의 기념비로 전락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이 권력을 손에 쥐고 있을 때는 그 칼이 두려워서 아무 말도 못하던 사람들이 그가 죽고 나면 그 기념비에 침을 뱉고 발로 걷어차는 것이다. 기념비는 사람이 남긴 석비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삶이 말하는 것이다.
압살롬의 기념비가 어디에 세워졌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혹은 예루살렘에 세워졌을 것이라고 하고 혹은 헤브론에 있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실물이 남아있지 않아서 확인할 방도란 없다.
(삼하 18:18)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여 세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고 말하였음이더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을 기념하여 그 비석에 이름을 붙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그것을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그는 불행한 자신이 왔다간다는 한 평생을 돌 한조각에 남기려고 했다. 아버지를 반역했고 이복형제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다윗의 아들들 가운데 가장 뛰어났고 걸출한 아들이었지만 그의 마지막은 비참했다. 자식도 셋이 있었지만 위의 구절로 봐서는 모두 일찍 죽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동생 다말이 비참한 폭행을 당한 것을 묵인하는 아버지 다윗에 대한 거부감이 모반과 반역으로 이어졌고 전쟁 중에 죽었다. 자기를 위해 기념비를 세웠지만 그의 무덤에 세우지도 못했고 그의 시체는 수풀 가운데 구덩이에 던져졌다.
(삼하 18:14) 요압이 이르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삼하 18:15) 요압의 무기를 든 청년 열 명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죽이니라 (삼하 18:16) 요압이 나팔을 불어 백성들에게 그치게 하니 그들이 이스라엘을 추격하지 아니하고 돌아오니라 (삼하 18:17) 그들이 압살롬을 옮겨다가 수풀 가운데 큰 구멍에 그를 던지고 그 위에 매우 큰 돌무더기를 쌓으니라 온 이스라엘 무리가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니라
압살롬은 키가 크고 준수했다. 하지만 그의 아름다움이 무색하게 되고 말았다. (삼하 14:25)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그는 노새를 타고 도망가다가 상수리나무에 머리가 걸렸다. 그의 장점이 오히려 그의 약점이 되고 만 것이다. 때론 자랑이 수치가 되고 수치가 자랑이 되기도 한다. 압살롬은 자신의 좋은 자질과 타고난 재능을 잘못 사용함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압살롬의 행적을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다윗은 압살롬의 전사 소식을 듣고 가슴을 부여잡고 통곡을 했다. 어찌 아니 그럴까?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지나간 실수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삼하 18: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비록 패역한 아들이라도 부모의 마음은 다 그럴 것이다. 진정 죽었어야 할 자신은 살고 금쪽같은 아들이 죽었으니 어찌 가슴이 터지지 않겠는가? 이렇게 이스라엘의 3대왕이 될뻔 했던 한 사람, 압살롬은 그렇게 죽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죽어야 마땅했지만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 큰 사랑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 오늘도 그 은혜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고 더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의 남은 삶으로 적어 갈 우리의 비석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새겨지게 해 주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