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253호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녀교육 (신6:4~9)
목회 초, 국내 집회를 다닐 때는 보통 월요일에 나가면 금요일에나 들어왔고 토요일에는 주례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직 어린 두 아들이 늘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매일 잠언을 한 장씩 쓰라고 했습니다. 내가 끼고 있다고 잘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그들을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매일 검사하는 사람이 없는데 어린 것들이 매일 썼겠습니까? 제가 돌아올 때가 되면 일주일 치를 쓰느라 어지간히 바빴겠지요. 그게 아이들에게 무슨 영향을 끼쳤을까 싶겠지만, 아이들이 장성한 후 그들 입으로 하는 말이 이겁니다.
“아버지, 그때 억지로 쓴 그 잠언 말씀이 나를 지탱해줬어요.”
여러분,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이 참교육입니다. 요즘 청년들에게 ‘왜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하냐?’ 하면 ‘교육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는데 그걸 감당할 수 없어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거 압니까? 그거 세상 교육방법입니다. 세상 교육방법으로 자녀를 교육하면 세상 임금이 쓰기 좋은 인물이 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교육방법으로 기르면 하나님이 쓰기 좋은 인물이 됩니다. 그런데 그건 쉬워요. 돈도 안 들어요.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하나님 뜻대로 교육하면 되니까요. 그래서 우리 교회 청년들은 낳았다 하면 셋은 낳습니다. 참 교육방법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 교육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잘되라고, 남들보다 잘살라고 없는 돈 있는 돈 긁어서 학원 보내고, 좋은 학군의 학교에 보내고 유학을 보냅니다. 근데 그거 길어야 100년을 위해서 하는 교육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뿐이면 그것에 치중해야겠지요. 그러나 100년의 몇 곱, 아니 계산이 안 되는 영생, 영원히 사는 세상이 우리에게 있단 말입니다.
그 세상에 비하면 이 세상은 찰라, 눈 한 번 깜빡할 정도로 짧습니다. 그러니 어떤 세상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요? 어디에 목적을 둬야 할까요? 당연히 영원히 사는 세상에 들어가고, 그 세상에서 잘 사는 것에 목적을 두고 그것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나라에 들어가고 그 나라에서 잘 사는 방법은 하나님 말씀대로 가르치면 됩니다.
여러분, 근시안적인 사고가 가장 무서운 겁니다. 바로 코앞, 눈앞만 보는 자는 넘어지기 정말 쉽거든요. 멀리 보고 크게 생각해야 합니다. 큰 틀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역사하신 하나님을 보고 장차 우리에게 나타나실 하나님을 볼 줄 아는 지혜가 절실합니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목사님, 다음 주부터 기말고사인데 애들 수련회에 보내야 하나요? 중고등부 예배에 보내야 하나요?” 아니 이걸 질문이라고 합니까? 당연히 보내야죠. 매번 드리는 예배니까, 매년 하는 수련회니까 한 번쯤 빠져도 된다고요? 그럼 매일 먹는 밥인데 왜 매번 먹습니까? 이번 수련회는, 이번 예배는 단 한 번의 예배입니다. 지나가면 다시 드릴 수 없는 그때 그 예배입니다.
시험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시험보다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정확한 삶의 목적과 방향을 알려줘야 자식들이 어디에 중점을 두고 살지 알게 되고, 세상과 부딪칠 때 어느 편에 설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교육법은 워낙 유명해서 책으로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유대인의 교육이 뭡니까? 깨끗하고 하얀 심령에 가장 먼저 하나님 말씀을 넣어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이가 입을 떼면 먼저 ‘토라’부터 가르칩니다. ‘토라’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으로, 곧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그렇게 양육된 유대인들이 지금 세계 경제의 70%를 쥐고 있으며, 300명이 넘게 노벨상을 따낸 겁니다.
이게 하나님 교육방법입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6:6~7). 이걸 잘 보세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는데, 세상에서도 잘 되었단 말입니다. 왜 그러냐?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시19:7~8).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
미국인이 역사 이래로 가장 존경한다는 ‘에이브러험 링컨’은 대통령이 된 후 “오늘의 나는 내 손에 성경을 쥐여준 어머니 덕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링컨의 나이 9살에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어린 링컨의 손에 성경을 쥐여주며 ‘이 한 권의 책이 너를 세계적인 인물로 만들 것’이라고 말해주었고, 그 말씀을 늘 읽었던 링컨은 위대한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교육방법이 세상 교육법을 포함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교육방법은 자식이 잘못하면 때려서라고 바로 잡는 것입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13:24).
제 둘째 아들이 어릴 때 거짓말한 것이 들통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를 지하실에 가두고 밖에서 열쇠로 잠가버렸습니다. 중학교 때는 거짓말한 것을 알고는 4개월 동안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지독한 아비라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다시는 거짓말하지 않게 하려고, 내 자식이니까 잘 키우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요즘은 부모가 훈육을 위해 회초리를 들면 경찰이 옵니다. 학교 선생님이 제자 야단을 치면 부모가 득달같이 따지러 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세상은 그래도 하나님은 자식이 잘못했을 때는 체벌하라고 하십니다. 채찍이 천대(千代)를 기르는 법이거든요.
엘리 제사장은 자식들이 잘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뒀다가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가로챘고, 회막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했습니다.
엘리는 그것을 알고도 야단치지 않았더니 하나님이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삼상2:29)라고 엘리에게 노하셨고, 진노의 심판이 예언대로 이뤄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삼상3:12). 엘리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삼상3:13).
이게 엘리 제사장에게만 국한된 이야기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자식이 잘못하고, 악을 행하고, 잘못된 길을 가는데도 ‘오냐 오냐’만 하면 이 꼴 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12:5~8).
혹여 하나님의 징계가 있거들랑 ‘내가 미워서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나를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식이니까 잘되라고, 나쁜 길 가지 말라고 때리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아이들은 여러분을 보고 배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 성경 읽어.”라고 강요하지 말고, 부모인 여러분이 먼저 성경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교회 가야 해.” 강요하지 말고, 주일에 교회 가는 부모가 되세요. 본을 보이면 따라옵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교육방법, 곧 하나님 말씀대로 가르치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쓰시기에 좋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신명기 28장의 복이 보너스로 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어린 가지는 잡혀도 큰 가지는 잡다 부러진다
가정은 최초의 교육기관이요 최고의 교육기관이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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