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긍심의 중요성
필자는 가끔 몸이 힘들면 맹인안마사에게 안마를 받는다. 많은 안마사가 있고, 각각 다른 기술과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안마사가 있다. 기술과 능력이 보통 안마사와는 확연히 다른 안마사로, 그 안마원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안마사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싶다는 제안을 필자에게 하였다. 처음 만났을 때 받은 느낌이 있어서 부드럽게 포장하여 말해주었다.
처음 받은 느낌은 이 안마사는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눈이 안보이니 그렇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럴 경우 다른 사람들은 이 안마사를 배려하지 않거나 무시하게 된다. 상대방이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존중, 배려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는 무의식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무시하는 사람도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암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표현이 정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추측하건대 이 안마사는 다른 사람들이 무시하는 상황을 여러 번 경험했을 것이다. 그럴 경우 다른 사람들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거의 대부분 자신으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이 안마사가 자신이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무의식에 깔려있어서 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려고 하니 다른 사람에게 저 자세,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만약 누군가 도와준다면, 눈이 정상인 사람도 도와주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이 나쁘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기대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면, 당당하게 상대방과 대화할 수가 있다. 또 모든 인간은 존재 자체만이라도귀한 존재이기 때문에도 그렇다. 자신을 귀하게 여겨야 다른 사람들도 귀하게 여긴다. 여담으로 이와 같은 상황은 무의식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나아가 명상을 통하여 정신기관이 계발되면, 누구라도 이와 같은 사실을 파악할 수가 있다.
이 안마사가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는 없으나, 만약 받아들였다면 삶을 살아가는 시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첫째 이와 같은 문제들, 대부분의 문제들이 자신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렇게 되면 자신의 문제를 진지하게 바라보아서 문제해결을 자신으로부터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으로부터 문제를 찾는 것이 자신의 정신을 계발하는 출발지점이다. 모든 인간은 '정신기관'이 자신의 내부에 있어서 계발할 수가 있다. 계발하면 곧 자신의 능력이 된다.
두 번째로 안마기술에 있어서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생각해 보았다. 맹인 안마사들은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음의 눈으로 사람의 몸을 만진다. 인간의 몸에는 기운이 흐르는 곳, 기운이 모이는 곳, 혈자리가 있다. 기운이 흐르는 곳을 짚어가다 보면, 기운이 모이는 곳 혈자리에 이르게 되고 기운이 통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막힌 혈이 뜷리면, 몸이 가벼워지고 병을 예방하게 되는 것이다. 이 안마사는 보통의 안마사들이 하는 혈자리를 뚫어주는 것에서 나아가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기술까지 가지고 있다. 인간의 몸은 살면서 균형이 무너지고 한 쪽으로 치우쳐진다. 즉 척추가 굽고, 골반이 틀어지는 것이다. 이런 균형을 잡아주는 기술은 오랜 시간 배워서 연구한 결과 습득했을 것이다. 당연히 훌륭하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기운이 움직이는 혈자리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인다. 끊임없이 흐르므로 안마를 해주는 안마사의 혈자리도 기운이 흘러야 한다. 그런데 이 안마사의 기운이 흐르지 않았다. 만약 안마사의 기운이 흐른다면, 안마를 해주는 안마사도 안마하면서 즐겁고 행복한 것은 기본이고, 안마도 힘이 거의 들지 않는다. 여기에서 질문, 왜 안마를 해주는 안마사의 기운은 흐르지 않는가. 안마를 받는 사람의 기운은 흐르는데, 해주는 안마사의 기운이 흐르지 않는 것이 궁금한 것이다.
인간의 기운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힘인 에테르체가 움직이는 것이다. 에테르체는 동양에서 말하는 기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인간으로 하여금 생명을 영위하게 한다. 이 움직임이 삼라만상을 움직이게 하고, 그 힘, 에너지권 안에 삼라만상이 함께 있어서 '모두가 하나'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이 그 에너지권 안에 들어가면 가볍고 편안하다는 것을 느낀다. 나아가 생명의 힘을 얻기도 한다. 문제는 인간의 에테르체가 특별히 깨우지 않는 한 대부분 잠을 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안마사의 에테르체도 잠을 자기 때문에 흐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에테르체가 흐를까?
먼저 에테르체를 느껴야 하고, 두 번째로 에테르체의 에네지권 안에 들어가야 한다. 에테르체를 느낄려면 먼저 자세, 반가부좌자세를 하고 눈을 감는다. 반가부좌 자세는 피라미드처럼 에너지를 단전에 모아주기 때문에 안정감을 준다. 눈을 감는 것은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두 손 손바닥, 손의 장심(중심점)을 마주보게 한다. 마주보는 두 손을 천천히 가까이 하거나 벌린다. 그렇게 하다보면 두 손 사이에 자석과 같이 끌어당기는 힘, 밀어내는 힘을 느낄수가 있다. 여담으로 필자가 과거 현장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해 보았는데, 시작한지 2-3 분 정도가 지나면 아이들 대부분이 이 힘을 느꼈다. 중요한 것은 집중이다.
하루에 5분 정도 조용한 곳에서 집중하면 누구라도 가능하다. 시간이 흐르면 손바닥에서 느끼는 이 힘을 온 몸으로 느끼는 단계가 된다. 온 몸으로 이 힘을 느낄 수가 있으면, 다음 단계로 이 에너지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자신의 몸에 집중하면, 어떤 힘에 자신의 몸이 저절로 움직이게 된다. 아무런 힘도 가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둥글게 움직이거나 좌우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 힘이 삼라만상을 움직이는 힘, 우주에테르이다.
이는 자신이 우주 에테르에 연결되었다는 것인데, 연결된 존재는 자신의 자아이다. 이 자아는 원래 우주 에테르에 연결되어서 우주 에테르의 힘에 의해서 그렇게 그동안 생명을 영위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깨어있는 의식상태에서 삶을 영위함으로 해서 그런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 백회(머리의 가운대부분)혈과 심장에서 단전까지 일직선으로 연결된 선이 느껴진다. 우주 에테르에 자신의 몸 가운데 부분이 연결되어서 같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수가 있다. 이것이 우주 에테르 생명의 에너지권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어서 생명의 에너지권 안에 들어가면 자신의 에테르체를 움직여야 한다. 식물 옆에 가면 식물 에테르체와 같이 움직이고, 자연의 생명의 에너지안에 들어가면은 자연의 생명 에너지와 같이 움직인다. 왜냐하면 삼라만상이 원래 우주 에테르 에너지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산에 가면 편안하고 행복한 것, 또 식물을 보면 힐링이 되는 것은 식물의 에너지, 산의 에너지가 나의 에테르체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특별히 에테르체를 깨우지 않아도 평소 느끼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연 안에 들어가야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상상으로 자연의 에너지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이와 같이 평소에도 자신의 에테르체를 움직일 수가 있다.
그렇다면 궁금한 것이 생긴다. 이 안마사가 안마를 한다는 것, 즉 다른 사람의 혈자리를 눌러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에테르체를 움직이는 것이다. 이 안마사는 오랫시간 이 일을 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자신의 에테르체는 움직이지 못하는 걸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첫째, 자신의 몸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눈을 뜨고 상대를 바라본다는 것은 자신에게서 상대로 집중이 간다는 것이다. 이후 다시 자신에게 집중해야 하는데, 정신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집중이 흐지부지 된 것이다.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았으니 자신의 에테르체가 잠을 깨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의 속성이 나온다. 정신은 삼라만상이 길가에 난 풀과 같은 존재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는 존재, 누구도 침해하지 않는 존재가 자신이고, 이것이 삼라만상의 생명의 힘이다. 우주 에테르의 에너지 자체가 그런 에너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런 에너지를 가졌을 때에 우주 에테르 에너지와 호환이 된다. 내가 그런 에네르지를 가졌을때, 내가 우주 에테르의 에너지권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말하는 자긍심이고, 정신으로 말하면 '해탈의 에너지', 자유로운 에너지이다. 이 안마사는 자신을 사랑하는 자긍심이 약해진 것이다. 아마도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
이 안마사가 자신의 에테르체를 움직일려면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더불어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존재로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무의식의 에너지로 무의식에서 이런 에너지가 나와야 한다.
인간이 자긍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자긍심의 에너지가 자신의 생명의 힘이고, 우주 에테르의 에너지의 힘이기 때문이다. 자긍심의 에너지가 인간의 생명을 움직이고, 인간의 생명은 우주 에테르의 에너지에 의해서 움직인다. 따라서 내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나의 생명의 힘이 힘차게 움직이는 것이다. 또 나의 생명의 힘이 우주 에테르의 에너지와 같을수가 있다면, 나는 우주 에테르 에너지권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자신의 에너지가 그렇다면 자신의 생명의 힘이 힘차게 움직인다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지는 않을 듯싶다.
만약 내가 자신을 사랑한다면 나는 우주 에테르 에너지 권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수가 있다. 여기에서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나뿐만 아니라 삼라만상을 나와 같은 존재로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럴때 나는 우주 에테르 에너지권 안에 있다. 가만히 길가에 난 풀을 보면 그렇게 살고 있음을 알수가 있다. 그렇게 우주 에테르 에너지권 안으로 내가 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