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덕이나 하수오(何首烏)는 随心所欲이라,
제 마음에 따라 때론 우선, 때론 좌선으로 몸을 틀며 자란다.
흔히 갈등(葛藤)이란 말을 무심코 쓰지만,
칡과 등나무가 합쳐진 말이다.
칡은 우선하고, 등나무는 좌선하니,
이 둘이 서로 얽히고 섥히듯,
일이나 사정(事情)이 서로 복잡(複雜)하게 뒤얽혀 화합(和合)하지 못함을,
비유(譬喩)하고 있는 것이다.

덩굴식물이 감아올라가는 원리에 대하여는 두 가지 주장이 있다.
하나는 상대 물체를 타고 올라가는 덩굴 줄기 중에서,
상대 물체의 반대측에 있는 줄기의 세포 성장이 빨라져서,
안으로 말리며 감아쥐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주장은, 줄기의 세포에 비틀림이 발생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본글 말미에서는 다시 자세한 연구 결과를 제시할 것이다.
과학자들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덩굴식물들의 나선 방향은 선조로부터 유전된 것이라 한다.
억만전 남반구, 북반구에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햇빛을 받을 때, 아침, 저녁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
이에 따라 남반구에서 자라는 것은 좌선하고,
반대로 북반구에서 자란 것은 우선하며 자란다.
이게 오랜 시간이 경과되면서 고정되었다고 본다.

적도 부근에 자라는 식물은
태양이 머리 위에 달려 있으니,
굳이 이를 따라 몸을 틀 일이 없다.
따라서 이들은 고정 방향이 없다.
북반구의 경우 대부분의 덩굴성 식물은 우선한다.
그렇지 않은 식물은 타 지역으로부터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가득 담긴 목욕탕 물을 빼낼 때,
구멍이 좁은 배수구를 통해 나아간다.
그런데 물은 이 때 좌선하거나 우선하며 맴돌이를 하게 된다.
이는 좁은 곳을 빠져갈 때 회전하여야 빨리 배수가 되는 물리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북반구에선 우선, 남반구에선 좌선하게 된다.
이는 흥미롭게도 덩굴 식물과 같은데,
다만 물은 태양빛이 아니라,
지구 자전과 관련되어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여담이지만, 단말부에선 특이 현상이 나타난다.
가령 물이 다 빠져나갈 즈음엔 배수 속도가 빨라진다.
이를 side effect 또는 terminal effect라고 하는데,
이런 단말부 효과는,
그렇지 않은 부분의 일반적 해석을 단순 연장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덩굴성 식물의 만곡력 힘의 세기 역시 단말부에서 달라진다.
이러한 것은 전기역학에서도 나타나는 일반적 물리 현상이다.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별론으로 다뤄야 하기에 이 자리에선 더이상 논하지 않는다.

직립성(直立性) 식물은,
줄기를 곧추 세워 하늘의 태양을 지향한다.
이 올곧은 푸른 순정이라니, 그 얼마나 장한가?
가지를 방사형으로 벌리고,
잎을 교차해가며 햇빛을 더 받으려,
수직 공간을 기하학적으로 안분한다.
솜씨 좋은 장인의 공교(工巧)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덩굴성 식물은 공간을 안분하려 하지 않는다.
수평 공간 전체를 상대로 자신의 욕망을 끝없이 분출한다.
내가 올해 텃밭에 호박을 심었는데,
거지반 터가 이들 덩쿨로 점령 당하고 말았다.

직립성 식물은,
자기가 터한 곳을 중심으로 하늘을 향해 기도드리듯 발돋움을 한다.
하기에 살아가면서 이웃 식물과의 경쟁이 점유 공간내로 제한되어 있다.
물론 씨앗을 퍼뜨려가며 영역을 넓히려 작전을 펴지만,
이는 세대의 벽을 넘어서야 일어난다.
반면 덩굴성 식물은 무차별적으로 공간을 탐내며,
이웃 영역을 침탈해간다.
공간을 수직적으로 활용하는 예의 바른 직립성 식물의 삶까지,
장막을 위로 씌우듯 올라 타가며 덮어버리고 만다.
탐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