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 풀밭을 맨발로 걸어본 적이 있나요?
정홍택 새벽이슬 담뿍한 풀밭을 맨발로 걸어본 적이 있나요? 얼마 전 결심을 하고, 아침 일곱 시 반에 동네 공원에서 산책을 하기로 했습니다. 한 열흘을 계속하고 나니 제법 재미도 나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특별한 경험을 했답니다. 공원의 풀밭 길에 들어서니 풀들이 밤새 이슬을 맞아 흠뻑 젖어 있었죠. 한 바퀴를 돌고나니 이슬이 신발 속으로 들어와 양말과 발이 함께 푹 젖어옵니다. 문득 괴테의 동시(童詩)가 생각났습니다. 시 제목도 시구도 잊었지만 테마는 아직도 기억이 나는군요. * * 이른 아침 어린 괴테는 마당에 나가 밤새 이슬을 흠뻑 맞은 풀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빗겨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풀들은 제각각 칠색 무지개를 뿜으며 빛의 향연을 연출하고 있었겠죠.
그때, 그의 맘으로 하나님이 들어오셨습니다. 그는 즉시 풀밭에 주저 앉아 신을 벗고 맨발로 풀밭에 들어섰습니다. 처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셋째 날 풀밭을 만드시고 여섯째 날 아담을 만드셨느니라. 안식 후 새 날이 시작되자 하나님은 풀밭에 이슬을 담뿍 뿌리시며 여기 아담이 첫 발 디딜 때를 생각하시고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우주 속 지구 한 귀퉁이 이슬풀밭에 아담이 첫 발을 내디딜 때의 감촉을 맨발의 괴테는 온 몸으로 느꼈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감격을 동시(童詩)로 썼대요. (아, 그 시가 생각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제목만이라도......) 나도 그 감동을 맛 보고자 벤치에 앉아 운동화 끈을 풀고 양말도 벗었습니다. 용감하게 맨 발로 풀밭에 섰을 때 발에 느껴지는 그 원시적인 선뜻함, 시원함. 나는 한발 한발 의식해 걸으며 이슬 담뿍 머금은 풀길을 걸었습니다. 푹신푹신하게 푹 젖은 풀잎들이 발을 포근하게 안아주었습니다. "아!" 이 놀람은 아담이 느꼈던 "아, 시원해" 그리고 소년 괴테가 느꼈던 "아, 놀라워(Wunderval)"의 그 "아!"가 아니었을까요? 그 상념 속에 계속 걸었습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그때 진정 나는 듣고 보았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은 천사였으며, 그 지저귐은 천상의 합창이었던 것을.
나는 내일을 기다립니다. 이 감격을 어서 빨리 다시 느끼고 싶습니다. * * (후기) 이 감격을 글로 써서 몇 몇 친구들에게 e-mail로 보냈습니다. 범신론자 의사 친구로부터 급한 답장이 왔습니다. <괴테가 밟았던 풀밭엔 틱(tick,진드기)이 없었지만 선배님이 밟은 풀밭엔 라임병(Lyme disease)을 일으키는 틱이 새까맣게 깔려있으니 대문호 기분 내시다가 날벼락 맞으실까 걱정됩니다.> 나는 바로 답장을 썼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음미하는데 쪼끄맣고 까만 라임으로 흥취를 깬데 대해 분노해야 되나? 아니면 감사해야 하나? 찔끔한 건 사실이지만, 라임 그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즐거움에 잠깐 참여했다고 라임병 으로 벌을 주실까?> 다시 답장이 왔습니다. <조물주는 피조물 전체의 균형적 번성을 원하십니다. 노루도, 틱도, 라임병을 일으키는 보렐리아 부르그도르페리 (Borrelia burgdorferi)라는 균도 모두 당당한 조물주의 피조물인걸요> 나는 다음 날부터 눈물을 머금고 <맨발걷기>를 포기했습니다. 흑흑흑 (흐느껴 우는 소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