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를 끝나고 가면서 기도를 빡세게 하러가자는 말에 어이가 없었던 적이 있었다. 말씀을 어떻게 듣고 배우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는 현상이다. 영으로 듣고 배워야 되는데 혼으로 듣고 배우기 때문에 이미 옛 사람, 겉 사람의 신앙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악과를 따먹고 벗은 것을 나중에 깨달은 것과 같다.
이렇게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가장 기뻐하고 박수치는 존재가 바로 마귀사탄인 것이다. 창세기 3장에 나타난 ‘뱀’은 하나님의 말씀을 땅의 진리로 해석하는 존재를 의미하고 있다. 아무리 귀한 말씀을 영적으로 전해줘도 받아들이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혼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장담해서 안 되는 이유가 옛 자아와 겉 사람의 속성이 숨어서 계속 자라나고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내면에서 용트림하듯이 분노와 미움이 쏟아져 나오고 억제할 수 없는 감정과 연민이 깃들어 외부에서 영향력을 줄 때마다 거침없이 흘러나올 때마다 주체할 수 없다.
이런 요소들이 내면에서 흘러나오고 하는 근본 원인을 잘 모르기 때문에 여러 대안들을 찾아보고 있지만 방황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흑암 속에 들어가면 앞뒤좌우를 분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옛 자아를 부추기는 놈은 다름이 아닌 흑암의 권세로서 우리 내면에 빨대를 꽂아 끊임없이 공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근본적으로 잘라내지 않으면 안 되는데 우리 내면에 연결된 흑암을 잘라내지 않은 채 계속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고 있는 양상을 발견해야 한다. 내 안에서 슬픔과 연민이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으로 인해 흑암으로부터 계속 공급되고 있다. 또한 겉 사람의 본성이 계속 솟아 올라오도록 자극하고 있는 흑암을 말씀으로 잘라야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담임목사를 비롯하여 부교역자들에게 상담을 받아보고 놀라운 예언을 하는 사역자를 찾아 기도를 받아보고 한다. 이것도 안 되면 기도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작정을 위해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까지 특별기도에 돌입한다. 또한 믿음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최선을 다한다.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이 동원해서 안 되면 체념하듯이 마치 불교신자처럼 흘러가는 대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평안을 찾고자 관상기도, 명상기도 등, 갖가지 기도의 형태 찾아 나선다. 현재 교인들을 나무라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진정 하나님의 방법을 찾지 못하고 사람의 방법을 동원해서 실천하는 열심을 낸다는 것이다.
옛 자아의 옛 생각으로 정리한다고 하면서 쓸데없는 생각으로 가득 한 채 기도하면 주님의 반응은 과연 어떨까? 우리의 기도에 대해서 전혀 응답이 없다는 것이다. 기도의 응답에 따른 사람들의 반응 속에 좌절과 실망을 몰려오면 반듯이 자기 자신이 잘 되려고 한 기도일 수밖에 없다.
기도하면 응답이 올까 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 속에 기도하는 것이 바로 흑암 중에서 기도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빨대로 빨면 줄어들어야 되는데 걱정 근심과 좌절과 실망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혹을 떼려고 했다가 오히려 혹이 더 늘어난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근본적으로 믿음의 원형과 본질을 모르면서 영적인 목적이 없으면서 기도의 방법만 추구하는 것은 취급할 가치가 없다. 기도의 가장 필요한 응답은 하나님의 임재가 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응답의 절실함이 없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할수록 응답이 없고 좌절과 낙심만 커질 뿐이다.
옛 자아의 상태에서 기도하면 전혀 응답이 없으며 신앙생활이 잘 안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천사가 기도에 대해 수종하려고 왔지만 똥자루 난쟁이 상태로 있어 도와줄 수 없는 상태가 바로 저주의 상태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기도해도 응답을 못 받고 저주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데도 그 저주와 죄에서 벗어난 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기도하면 할수록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아야 된다. 근본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원인분석도 해야 되지만 함부로 하나님 앞에 문제를 놓고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하나님의 긍휼하심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야 하며 내면에 연결된 흑암의 근원을 주님의 손으로 제거해주셔야만 된다.
흑암의 문제가 해결되고 난 뒤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아야만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옛 자아의 본성에 해당되는 불순물을 씻어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이 내 안에서 붙어있는 겉 사람의 흔적들을 다 씻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인 주님과 한 몸이 되어 살아가야 된다.
제 주변에 어느 목회자 가정에 아들이 의경으로 근무하다가 구타를 당하여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제대한 후 기물을 부수고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방안에서만 틀어박혀 있는 생활로 고충을 안고 있었다. 문제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눈물을 흘렸으며 여러 가지 방법의 기도를 동원했으며 여러 경로를 통해 상담을 받았지만 해결되지 못했다.
문제를 놓고 기도하기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기도를 택했으며 당면된 기도의 제목을 갖고 기도하기보다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는 방언을 택했다. 어떻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자신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옛 자아의 본성들에 속한 요소를 제거하는 작업으로 불순물을 소멸하는 기도를 택했다.
그렇게 기도하기를 3개월 뒤 아들과 관계가 급격하게 전환되어 대화를 시작했으며 함께 식사하며 과거와 다르게 달라진 모습이 되었다. 폭행도 없으며 언어폭력도 사라졌고 집 안에 분위기 전혀 달라진 것은 목적을 위한 기도가 아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긍휼의 기도로 겉 사람으로 인해 더러워진 독을 제거하는 기도를 시도한 것이다.
기도하면 할수록 평안과 위로가 오기보다 불안과 초조가 엄습해 온다. 이럴 때마다 마귀사탄과 대적해야 하는 기도가 필요하다. 또 다시 옛 자아를 부추기는 흑암의 권세가 내 속 내면에 연결하여 훼방을 놓고 있다. 이럴 때마다 대적해야 하며 그들의 계획과 행동을 다스릴 수 있는 통치의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전통 종교에 속한 샤마니즘 식의 기도로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식의 기도에서 벗어나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면서 떼를 쓰는 기도도 잠시 하는 것은 몰라도 계속 추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른 기도자의 도움이나 은사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직접 명령을 해야 되는 기도를 해야 된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항상 하는 기도 중에 주기도문은 하나님을 향하야 명령형의 기도문인 것을 원어에 담긴 문법 때문이다.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라고 해야 하며 ‘나라가 임하옵시며’도 “나라가 임하는 것이 너무나 마땅합니다.” 라고 해야 된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리이다.’는 내용도 “~땅에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해야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마치 종 부리듯이 함부로 대하는 기도가 아니다. 또한 문제에 대한 기도로 따지듯이 기도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며 바탕을 두고 하는 기도를 해야 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기록된 것처럼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래야만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너무나 마땅하지 않습니까?” 라는 식의 기도를 예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것이다.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서 기도를 강화하며 기도를 빡세게 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 특별 기도를 시도하는 방법을 취해서 안 된다. 부흥회나 컨퍼런스에 가서 뒤집어지면서 하나님께 떼를 쓰는 기도를 해서는 안 된다. 진정 기도의 원형과 본질을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무엇을 달라고 하며 떼를 쓰는 기도는 ‘막 달라 말이야’ 식의 기도나 ‘더 달란 말이야’ 식의 간구가 아니다. 이미 주신 것, 로마서 8장 32절의 약속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은사를 주셨다”고 되어 있다면 “이미 받은 것을 올바르게 잘 사용해야 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하는 기도를 해야만 된다.
기도에 해당되는 원어가 구약과 신약 각각 30여 개의 단어가 있는 그 중에 어느 단어는 ‘결단하다, 다짐하다, 맹세하다, 충성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어 이루어진 단어가 있다. 이런 단어를 비추어 볼 때 기도는 무엇을 달라고 하는 기도보다는 이미 받은 내용을 올바르게 사용하겠다고 하는 결단과 충성과 맹세를 다짐하는 기도를 해야 된다.
그래서 기도를 빡세게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에 올바른 개념을 파악하고 정리하여 하나님 앞에 결단하고 다짐하며 맹세하고 충성을 다하겠다고 하는 기도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성숙한 기도로 온전한 믿음의 자리로 올라서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달인이 되는 비결이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