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가 2년만에 다시 가을잔치 초대권을 손에 넣었습니다. 세대교체에 중점을 두고 치른 시즌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있는 포스트시즌 진출입니다. 성적과 리빌딩,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 LG가 이제 부담없이 가을의 축제를 즐기려 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올 시즌 LG 트윈스가 하위권에 머물 것이라 예상했다. 시즌 초반 '설마'하는 시기가 있었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그 예상은 '역시나' 하는 확신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LG는 엄청난 반전 드라마를 써냈다. 8위까지 처지며 꼴찌를 걱정하던 상황에서 파죽의 9연승을 달리는 등 조금씩 순위를 끌어올렸다. 그 결과는 4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 진출. '-14'까지 까먹었던 승패마진은 적자 폭을 모두 만회, 결국 5할 승률(71승1무71패)도 회복했다.
누군가에게는 반전이 아니기도 했다. 세대교체의 물결 속에 베테랑으로서 변함없는 존재감을 발휘하며 팀의 중심을 잡아준 박용택은 팀의 가을야구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는 와일드카드 결정전 미디어데이를 앞두고 "누가 우리를 꼴찌로 예상했느냐"며 "개인적으로 어린 친구들이 기대대로 해주면 충분히 4강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전이건 아니건, 중요한 것은 LG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는 점이다. 2014년 이후 2년 만. 이제 LG는 10일 KIA 타이거즈와의 와일드카드 결정 1차전을 통해 준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린다. 1차전에서 패해도 11일 2차전에서 승리하면 가을야구의 다음 관문으로 나아갈 수 있다.
◆ 최근 4년 중 3회 진출, 다시 가을잔치 단골로
올 시즌 LG의 주장 류제국은 팀의 가을야구 상징인 '유광점퍼'를 두고 "내가 입단한 뒤 4년 동안 3번 포스트시즌에 올라 유광점퍼가 어색하지 않다"고 말했다. 류제국은 2013년 LG에 입단, 올 시즌까지 4년 째 뛰고 있다. 그의 말대로 LG는 류제국의 입단 후 2013년과 2014년, 그리고 올 시즌까지 총 3차례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2012년까지 10년 간 긴 암흑기를 겪기 전까지 LG는 가을야구의 단골손님이었다. 1990년부터 2002년까지 13년 동안 8차례 포스트시즌에 올랐고, 그 중 한국시리즈에 5차례 진출했다. 구단 역사상 2차례 밖에 경험해보지 못한 한국시리즈 우승도 모두 1990년대에 나왔다.
LG의 첫 가을야구는 전신인 MBC 청룡 시절이던 1983년이었다. 당시 MBC는 후기리그 우승을 차지해 전기리그 우승팀 해태 타이거즈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어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후 팀명을 LG 트윈스로 바꿨고, 그 첫 시즌이던 1990년 정규시즌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해 통합우승에 성공했다. 이후 LG는 1994년 두 번째 통합우승을 비롯해 꾸준히 가을야구에 나서며 강팀으로 군림했다.
2013년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하며 암흑기에 종지부를 찍은 LG는 2014년에도 꼴찌에서 4위까지 오르는 저력을 과시했다. 지난해에는 9위에 머물며 실망감을 안겼지만, 올 시즌 다시 4위를 차지해 오래 전 잃어버렸던 가을야구 단골손님으로서의 명성을 서서히 되찾아가고 있다.
◆ 2002년과 비슷한 분위기, 2016년의 박용택과 이동현은?
올 시즌 LG는 마지막 한국시리즈 진출로 남아 있는 2002년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14년 전 LG 역시 전반기까지는 하위권에 처져 있다 후반기부터 급격한 상승세를 타며 정규시즌을 4위로 마쳤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모두 통과하며 한국시리즈 무대까지 밟았던 당시의 행보는 현재의 LG가 반복하고 싶은 부분이다.
후반기부터 좌완 에이스가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는 점도 2002년과의 공통점. 2002년에는 '야생마' 이상훈이 후반기부터 팀에 합류, 마무리 역할을 맡으며 '불펜 에이스'로 뛰었다. 올 시즌에는 외국인 데이비드 허프가 '선발 에이스'로서 후반기에만 7승을 수확, 팀의 상승세를 견인했다.
젊은 선수들의 활약이 동반됐다는 것 또한 닮아 있다. 2002년에는 대졸 신인 박용택, 고졸 2년차 이동현이 핵심 역할을 해냈다. 특히 KIA 타이거즈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 승부에서는 박용택, 이동현이 정규시즌을 뛰어넘는 활약을 펼치며 팀을 한국시리즈로 인도했다.
박용택은 5경기에서 타율 3할5푼(20타수 7안타) 2홈런 4타점을 쓸어담으며 시리즈 MVP에 등극했다. 이동현은 5차전 승리투수가 되는 등 5경기에 모두 등판해 2승 1홀드 평균자책점 1.32(13.2이닝 2자책)를 기록했다. 두 선수의 활약이 LG를 한국시리즈까지 진출시켰다.
박용택은 "가을야구는 아무것도 모르는 선수가 튀어나와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 2002년 박용택처럼"이라며 '셀프칭찬'을 한 뒤 "올 시즌 우리 선수들은 거의 다 초짜들이다. 그 중 하나 안나오겠나"라고 경험이 적은 선수들 중 일을 낼 선수가 등장하기를 기대했다. 14년 전 자신처럼 말이다.
9일 발표된 KIA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엔트리에는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고 처음 포스트시즌에 나서는 9명의 선수가 이름을 올렸다. 진해수, 김지용(이상 투수), 유강남(포수), 윤진호, 양석환, 서상우(이상 내야수), 안익훈, 이천웅, 이형종(이상 외야수) 등이다.
임정우(투수)와 문선재, 채은성(이상 외야수)도 경험만 있다뿐이지 가을야구에서 팀의 주축으로 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 가운데 2016년 버전의 박용택과 이동현이 나와주는 것이 LG의 바람이다.
◆ 가을의 기운을 불어넣은 레전드 3인방
LG는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한 뒤 다양한 이벤트를 실시했다. '가을야구의 상징'인 유광점퍼를 입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이벤트, 추억의 검정색 유니폼인 '클래식 유니폼'을 선보인 것 등이다. 그 중 압권은 '야생마' 이상훈 코치의 8일 최종전 시구였다.
이상훈 코치는 불펜에서 몸을 푼 뒤 현역 시절을 연상케 하는 빠른 속도로 마운드를 향해 뛰어나갔다. 이어 1루수 정성훈에게 견제구를 던지는 '쇼맨십'을 발휘한 뒤 힘차게 포수 유강남을 향해 공을 던졌다. 그리고는 마운드 아래로 몇걸음 내려가더니 특유의 '어퍼컷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머리카락만 짧아졌을 뿐, KBO리그를 평정했던 야생마의 모습 그대로였다. 마지막 우승으로 남아 있는 1994년의 주장이었던 노찬엽 코치의 시타도 이상훈 코치의 시구에 의미를 더했다. 스탠드를 가득 메운 LG팬들은 물론, 덕아웃의 후배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긴 이벤트였다.
올 시즌 팬들 사이에 '갑론을박'을 일으켰던 9번 이병규도 시즌 첫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두산의 에이스 니퍼트를 상대로 대타 출전한 이병규는 깨끗한 좌전안타를 때려내며 건재를 과시했다. 이병규의 등장에 LG 팬들은 목청껏 그의 응원가를 부르며 그동안 쌓인 그리움을 씻어냈다.
9일 미디어데이에서 주장 류제국은 "레전드들을 지켜보며 선수들은 '고참이 되고 은퇴를 하면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어제 세 분의 존재만으로도 좋은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LG 선수들은 레전드들의 기를 받아 가을야구에서 선전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 즐기는 가을야구, LG의 올 시즌은 이미 성공적
올 시즌 LG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극한 상황에까지 몰렸다 살아남았기 때문. 시즌 중에는 안방에서 이기고 있는 가운데 사령탑의 퇴진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외야 관중석에 걸리기도 했다. 양상문 감독은 물론, 선수단 전체에 굴욕적인 장면이었다.
그러나 LG는 힘든 시간을 극복하고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뤄냈다. 특히나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성적을 끌어올렸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팀으로 변모한 것. 그런 점에서 이번 포스트시즌은 LG가 강팀으로 자리를 잡기 위한 밑거름이 될 전망이다.
팀이 위기에 빠져 있을 때, '주장' 류제국이 젊은 선수들을 독려하며 꺼냈던 단어가 바로 '가을야구'다. 그리고 그 가을야구의 핵심은 '즐거움'이다. 류제국은 후배들에게 가을야구가 얼마나 즐거운 일인 지를 알려주고자 했다.
이제 즐거움을 느낄 시간이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2경기만에 끝날 수도,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통과해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할 수도 있다. 이번 포스트시즌이 LG의 젊은 선수들에게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란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미 LG의 선수들은 값진 시즌을 보냈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뤄낸 것. 양상문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스스로 해냈다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라며 "후반기부터 분발해 순위를 끌어올린 경험도 나중에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올 시즌에 의미를 부여했다.
많은 지도자들은 승리하는 과정에서 선수도 커나갈 수 있다고, 단순히 출전 기회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선수가 성장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올 시즌 LG는 리빌딩의 모범답안을 제공했다.
박용택은 "올 시즌 LG는 충분히 잘해왔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재밌는 경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용택의 말처럼 LG의 올 시즌은 이미 성공적이라 할 만하다. 그런 LG에게 이번 가을야구는 부담없이 한 단계 더 높은 경험을 쌓을 좋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