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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놀과 정수 카페가 유명해졌어요. 지난번 나주시청의 초청을 받았고 이번엔 남도의 아름다운 고향 장흥에서 모놀가족을 초청했습니다. 초겨울 을씨년스런 남해바다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랍니다. 이번 초청인원은 40명이랍니다. 그래서 1인당 1명만 신청을 받고 아이들은 신청을 받지 않습니다. 이점 양해해주십시요. 지난 나주 답사에 참여했다고 망설이지 말고....후회없이 신청하십시요. 기회는 단 한번! 금년에도 숨가프게 달려왔습니다. 충청도 부여를 필두로 강릉, 완도,상주,선자령, 분주령, 영천, 정선, 나주....중국의 산동성, 백두산까지...12번의 답사중 마지막 피날레를 서울에서 가장 남쪽인 장흥에서 하렵니다. 지금부터 선착순 접수를 받습니다. 1인당 1명만 신청받습니다.
모놀과 정수 제 41차 정기 답사(안) 12/17-18 (1박2일) (장흥 천관산 문학공원, 방촌유물박물관, 정남진, 보림사, 장흥댐, 친환경 농산물 체험여행) (장흥 천관산) 1. 답사일시 : 2005년 12월 17일-18일 (1박 2일). 압구정역 공용주차장 7시출발 2. 답사 인원: 40명 (버스 1대로 진행. 버스 개별차량 구분 없이 40명만 받습니다.) 2. 답사신청: 선착순 (정회원 이상 1인당 1명만 신청할 수 있습니다.) 3. 여행장소: 장흥 천관산 문학공원, 방촌유물박물관, 정남진, 보림사, 장흥댐, 농산물 체험여행 4. 여행일정
1. 답사인원: 총 40명 2. 회 비: 20,000원 (개별이나 버스나 회비는 동일합니다. 행사비용은 장흥군청에서 부담합니다. 대신 2만원에는 장흥별미인 바지락회값, 자료집비, 퀴즈상품, 여행자보험료, 간식비, 행사 준비하신 분들 선물대로 쓰입니다.) 3. 입금은행 : 신한은행 (366-02-366884) 이종원 4. 답사 신청방법 - 아래의 답사신청양식에 의해
'42차 전남 장흥답사 여행'게시판에 신청합니다. (답사신청만 하고 입금하지 않는 분은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사정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닉네임/이름/e-메일주소/ 성별/주민등록번호(멜요망)/주소/연락처(핸드폰)/ 출발지(예 서울 OR 광주)/버스/자가차량/차량제공여부/답사에 임하는 글/답사 참여했었던 장소 (예 영월답사) - 이번에는 아이들을 받지 않습니다. 1인당 1명만 신청받습니다. - 실명과 주민번호를 게시판에 올리면 곤란합니다. 메일로 보내주세요. (여행자보험 가입 위해 반드시 필요) - 한 번이라도 답사 참가하신 분은 신청양식을 생략해도 좋습니다. 대신 꼭
참가했던 답사지를 말씀 주세요. 찾기가 너무 힘들더군요. - 이메일 주소 3Dljhkhs44@hanmail.net">ljhkhs44@hanmail.net 다. 우선 '42차 전남 장흥답사 여행' 게시판에 먼저 답사 신청을 하시고 신청자 중에서 입금자 순서에 따라 선착순 마감합니다. 답사 신청은 답사신청자 중에서 입금 순서에 따라 선착순 마감합니다. 라. 입금은 신청자 이름으로 해야합니다. 입금자가 상이할 경우 게시판에 반드시 글을 남겨 주셔야 합니다. 계좌번호 잘 확인해 주세요. 신한은행 (366-02-366884) 이종원 마. 입금후 답사신청게시판에 "입금완료"라는 머리말을 표시하여 게시판에 올려야 합니다. 개별차량 집결지와 시간은 추후공지합니다. 바. 답사 신청은 공지가 올라가는 때부터 선착순으로
받겠습니다. 인원이 부족할 경우에는 전체메일을 보내겠습니다.
8. 환불 12월 7일까지 취소자: 전액
환불 -취소벌금은 퀴즈 선물대금으로
사용하거나, 기타 행사비용으로 충당합니다.
9. 이번 답사여행의 특징 -이렇게 저렴하게 남도여행을 가기는 처음일 겁니다. 평소 카페 '모놀과 정수'가 쌓아 놓은 덕이 커서 전남도청과 장흥군의 특별 초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모놀카페엔 귀한 정보와 주옥같은 글이 많지 않습니까? 내나라 여행박람회 활동상도 보고.... -방울토마토 및 파프리카 생산체험도 합니다. 친환경 농산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져봅니다. - 이청준, 한승원의 고향이 장흥이랍니다. 그의 문학적 뿌리는 장흥의 찰진 바다가 아닐까요? 천관산문학공원, 방촌유물박물관, 정남진 조형물까지...방촌마을처럼 잘 보존 된 마을은 없을 겁니다. -구산선문의 보림사...보물인 가득하지요. 보림사의 철불, 삼층석탑, 부도등 타임머신을 타고 1000년전 미를 찾아 떠납니다. -이번엔 문학기행도 겸합니다. 시간이 남으면 영랑생가도 들를 예정입니다. -지난 나주화순답사때 최순희님이 수고 했듯이 이번엔 모놀회원인 최예숙님이 가이드를 해주실겁니다. .모놀에는 이렇게 재주꾼들이 많습니다. 제가 특별히 부탁드렸습니다. -저녁때 바지락 회도 맛 볼 수 있는 시간도 가지겠습니다.
천관산 문학공원 ■전남 장흥으로 떠나는 가을 문학기행 ‘찰진 바다’와 억새 가득한 산들
소설가 이청준·한승원 작품의 ‘원천’을 보다 장흥에는 기름진 햇살이 내려앉는 찰진 바다가 있고 억새가 만발한 산이 있다.또한 장흥은 내로라 하는 ‘글쟁이’들이 나고 자란 곳이다.소설가 이청준·한승원·송기숙·서종택·이승우가 장흥 출신이고, 시인 김영남과 이대흠도 이곳에 태를 묻었다.장흥의 무엇이 많은 사람을 문학인으로 키워낸 것일까. 이왕 가는 길, 글쟁이들의 소설 한 단락, 시 몇 구절을 미리 읽고 가는 것은 어떨까. 때로는 반짝거리는 글 한 줄이 여행을 풍성하게 만든다. 장흥 회진은 문학도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고만고만한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는 포구의 모습은 평화롭고 한적하다.소설가 공지영은 회진을 이렇게 묘사했다. ‘초등학교 동창녀가 운영하는 선창가 횟집이 있고, 할미꽃 군락이 있고, 분갑처럼 앉아 있는 친구의 노모가 있고, 나무라기보다 하늘로 오르는 용 같은 태고송이 있고, 억장이 무너지는 동백꽃 군락지 너머 바닷가에 ‘오징어가 순이의 팬티처럼 나부끼는 빨랫줄’ 걸린 항구가 있다.’ 회진에서 삭금마을 쪽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가면 진목리다.소설가 이청준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이청준은 진목리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했다.진목마을에서의 경험을 이청준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았다.‘큰 산 꼭대기 구룡봉에서 바라본 세상은 끝없이 넓었다.작은 동산 같은 마을 뒷산 너머로 남해의 푸른 바다가 아득히 하늘로 이어져가고 북으로는 수많은 산들이 부연 연무 속으로 겹겹이 멀어져가고 있었다.’ 이청준이 그의 소설 <무소작씨>에서 진목리를 묘사한 대목. 진목마을은 묘사한 그대로다.마을 앞쪽 작은 동산 같은 산 너머에는 회진 앞바다가 펼쳐지고, 마을 뒤쪽으로는 천관산(720m)이 버티고 있다. 진목에서 나와 삭금마을로 향한다.삭금은 사진작가들이 알음알음 찾아가는 낙조 명소다.작은 어선들 너머로 시뻘겋게 떨어지는 일몰은 가슴이 저릴 정도로 아름답다.소설가 한승원이 그의 소설 <불의 딸>에서 묘사한 대목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그 바다는 은빛으로 번쩍거렸고, 금빛 칠을 해놓은 것 같았고, 허연 눈이 덮여 있는 것 같았고, 회칠을 해놓은 것 같았고, 흰 옥양목 천을 깔아놓은 것 같았고, 쪽빛 물을 들여놓은 것 같았다.’ 천관산에는 문학공원도 있다.이청준·한승원·차범석 등 국내 유명 문인 4명의 육필 원고가 새겨진 문학비들이 서 있다.문학공원에서는 장흥의 진산인 천관산이 아련히 보인다.면류관을 쓴 듯 기암괴석을 봉우리에 삐죽이 두른 산. 지금 산 정상에는 억새가 한창이다. 장흥을 떠나기가 못내 아쉽다면 보림사에 들러보라. 우리 나라에서 선종이 제일 먼저 들어 온 절이다.가지산 자락에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가 그윽하다.김영남 시인은 보림사의 범종 소리를 듣고 <참빗>이라는 시를 썼다.‘먼 보림사 범종 소리 속에/가지산 계곡 예쁜 솔새가 살고 있고,/그 계곡 대숲의 적막함이 있다./저녁 햇살도 비스듬하게 세운./난 이 범종 소리를 만날 때마다/이곳에서 참빗을 꺼내/엉클어진 내 생각을 빗곤 한다.’
영화축제 촬영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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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탓에 천혜의 자연이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개발과 발전만이 최고의 가치였던 산업화 시대를 거쳐오면서, 하루가 다르게 모든것이 변해 버리는 지역에서 살아온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면 장흥의 느린 변화속도가 이곳 사람들은 소외감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장흥이 원작자 이청준의 고향이어서가 아니라,임권택 감독의 1996년 영화<축제>가 이곳에서 촬영된 것은, 그래서 정말로 적절한 일이다. 영화가 촬영된지도 오랜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남포항은 영화 속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고향마을이 여전하다는 것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 일인가. 노심초사 자식을 기다릴 노모는 이제 더이상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곳이 세상 돌아가는 속도에 멎춰 변화지는 않았던 것처럼 <축제>에서 망자를 보내는 ?차 또한 예전의 모습을 간직 하고 있었다.
방촌마을 ![]() 방촌문화마을이 단정하게 조성되어 있 고, 마을 입구에는 박물관 건립공사가 한창으로 이 마을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관산읍에만 국가 지정 보물 1, 민속자료 1, 천연기념물 1개가 있고 전남도지정 문화재는 유 형문화재 4, 민속자료 2, 기념물 1개 등이 산재해 있어 교육적 체험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런가하면 천관산을 둘러싸고 갖가지 유물과 유적지, 관광지가 즐비해 단순한 농촌체험에 서 벗어나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 등을 두루두루 접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관산의 표고버섯과 천산의 딸기와 천산방울토마토가 주요 작물로 자그마한 것들이 손에 쏙 쏙 들어와 따는 재미가 그 어느 것과도 비길 수 없을 정도이다. 여기에 어린이 물놀이장마 저 신설되어 있어 다양한 체험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정남진 한국의 최남단 ‘정남진’바다 수줍은 듯 자태을 드러낸 한국의 명소 세파에 지친 사람들은 휴식을 원한다. 하지만 어디하나 편하게 쉴 곳이 없다. 어린 시절 아스라이 잊혀져가는 추억을 회상하며 맨발로 무작정 활보하고 싶지만 깨진 병조각이 무서워 이내 아쉬워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더 자연의 그대로 살아있는 오지로 그 쉼의 발길을 돌리곤 한다. 아마 한국의 오지가 점점 사라져 가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영화감독 임권택씨는 영화 ‘축제’를 촬영하기 위해 오지를 찾아 헤매었다. 그리고 원시자연을 갈망하는 예술의 혼이 명작 ‘축제’를 탄생시킨 것이다. 태어나서 이런 오지는 처음 봤다고 임 감독이 회고하는 그 곳. 전라남도 장흥에 ‘정남진’바다.
정남진은 지명이 아니다. 해돋이로 유명한 정동진이 동쪽 끝자락에 있다는데 착안, 광화문의 경도 126도 59분의 선을 남쪽으로 내려 그으면 닿는 곳이 전남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 시금마을이다(국립지리원). 그 후 장흥군의 행보가 바빠졌다. 이곳을 정동진 이상의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굳은 의지로 개발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정남진은 주변 경관이 빼어나다. 해안도로를 따라 볼 수 있는 그림 같은 풍경들과 바다 위 안개 사이로 보이는 고흥반도 소록도를 비롯한 완도의 꽃섬,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눈시울이 적셔지는 가슴앓이 섬 등.
도립공원 천관산에 이르면 문학공원을 볼 수 있다. 한때 밤을 새워 읽었던 ‘샘섬’의 작가 이승우씨를 비롯해 수많은 문인들이 나온 이곳에 문학공원이 있다는 것은 아마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정남진은 갯벌이 찰져 바지락, 꼬막 등 도심에 찌든 피곤한 몸만큼이나 지친 입맛도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전통 낚시기법인 ‘개매기’로 숭어, 게, 낙지 등을 엮어 올리는 것도 신선한 추억거리로 충분하다.
오지는 오지로 남아야 그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곳 정남진은 개발이 한창이다. 하지만 이름은 유명해질지라도 그 땅과 바다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듯 끝없이 오지로 남길 바란다. 영원한 행복은 돈의 부피가 아니라 발상의 전환에 있듯이... <사진 : 장흥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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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신부는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을 각각 한돌(一石)로 하고 탑의 몸에는 우주(隅柱)를 각출(刻出)하였으며 옥개석 받침은 각층 5단이다. 이 탑은 1933년 겨울 사리장치(舍利藏置)를 도취할 목적으로 파괴하였으나 미수에 그쳤고 그 다음해 가을 양탑을 복원하였는데 당시 초층탑신(初層塔身) 상면 중앙에 사리공(舍利孔)을 마련하고 장치한 사리와 함께 탑지가 발견되었다. 건립에 관련된 북탑지 명문은「탑을 조성한 때는 함통 11년 경인 5월 어느 날이다. 그 때가 경문왕이 된 지 10년이었다. 즉 헌안왕의 왕생(往生)을 위하여 삼가 만든 탑이다. 서원부 소윤 나말 김수종이 아뢰었고 칙명을 받들어(탑을 조성한) 우두머리는 급간 진뉴이다」(造塔時, 咸通十一年, 庚寅五月日, 時, 凝王卽位, 十年矣, 所由者, 憲王往生, 慶造之塔, 西原部小尹奈末, 金遂宗聞秦 奉, 勅伯士及珍紐)라는 내용이다. 이 명문으로 보아 양탑의 건립이 신라 경문왕 10년(870년, 咸通11)의 일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891년(진성여왕5, 大順2) 1층 탑신석 상면 중앙에 사리 7과를 봉안하였고 1478년(성종9, 성화14), 1535년(중종30, 嘉靖14), 1684년(숙종 10, 崇禎 기원후 57)에 각각 증수(重修)되었다. 또 석등은 석탑과 함께 완전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상하의 각부는 팔각으로 기본형을 삼았고 지대석(地臺石)만은 방형(方形)으로 상면 중앙에 팔각괴임이 돌출(彫出)하여 하대석을 받고 있다. 하대석 8각 각면에는 안상(眼象)이 조각되고 그위에 귀꽃이 붙은 우뚝한 복련석(伏蓮石)을 얹었다. 8각 간석(竿石)은 비교적 짧고 앙련석(仰蓮石)에는 중판단엽(重瓣單葉)의 연화(蓮花)를 새겼는데 판내에 다시 화형(花形)을 넣었다. 화사석(火舍石)은 높직하고 4면에 화창이 뚫렸으며 그 위에 팔각개석을 얹고 다시 연화가 양각된 보주(寶珠)가 있다. 이 석등이 손상없이 완존한 점은 매우 희귀한 일이며 각부의 비례가 알맞아 조화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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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해는 반도 못가네요...ㅠ.ㅠ 때아닌 철에 친구들 결혼식은 왜이리 많은지...버섶형 결혼할때도 못뵈었는데....17일에는 예산에서 결혼한다네요... 일찍가서 추사고택하고 수덕사나 들렀다 가야겠습니다... 아무쪼록 잘 다녀오세요.. 보림사 가고싶네요 흐흐흑
개인적으로 전에 가보았던 유치자연휴양림이 좋았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