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는 담덕을 차남으로 설정하였는데 일단 기록상으로 보면 태자책봉서부터 왕위계승에 이르는 상황이 안정적이라는 면으로 본다면 차남설은 근거가 없다고 볼수 있습니다. 다만 원래 차남이었지만 장남이 일찍 사망할수도 있죠.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광개토왕 이전 부왕 고국양왕과 백부 소수림왕 조부 고국원왕 증조부 미천왕의 정확한 출생연대가 없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광개토왕이 장남인지 차남인지도 미스테리가 될수 있습니다.
전왕들의 출생연대에 대해서 추측을 해본다면 미천왕부터 시작해서 미천왕이 즉위한 300년에 그의 나이를 최소한 10대후반이상으로 보고 정황상 왕위에 오르기전에는 미혼상태였다라고 가정한다면 왕위에 오른직후내지 늦어도 2~3년내에 혼인을 하였슬것입니다.
미혼의 왕이 20세가 넘어가도록 혼인을 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당시 사회적 상황으로 본다면 납득하기가 어렵겠죠.
그리하여 장남 고국원왕이 대략 305년전후나 그 이전에 출생했슬 가능성으로 볼수 있는데 태자책봉시기가 313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아마도 305년 이전에 출생했슬 것입니다.
그 다음 소수림왕의 경우 부왕의 출생연대를 그렇게 잡을 경우 부왕이 즉위한 331년 이전에 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죠.
20대 후반에 고국원왕이 즉위했다면 당시 상황으로는 당연히 그 이전에 아들 구부의 출생을 보았을 것이니.
그런데 좀 이상한것은 구부의 태자책봉이 355년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시기면 부왕 즉위해에 출생을 했다고 할 경우 25세에 태자책봉이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서 특별히 우여곡절이 존재하지 않는한 그 나이에 태자책봉이 이루어질리가 만무합니다.
331년 출생역시도 아주 늦춰잡아서 그렇다는 것이고 빠르면 320년대 전반출생일 가능성도 적지않습니다.
부자간 20세차이정도도 당시로써는 무리하게 일찍 잡은것이 아니죠. 조선왕조에서도 부자간 20세차이가 적지 않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심지어 소수림왕은 30세전후에 태자책봉을 받았슬 가능성도 큽니다.
장남이면서 어떻게 20대 후반~30세전후시기에 태자책봉이 이루어질수 있는지 이 대목에서 의문이 증폭됩니다.
거기다가 다음왕 고국양왕으로의 승계는 형제상속이므로 고국양왕역시 고령의 나이로 왕위에 즉위했다라는 뜻이 되죠.
소수림왕이 320년대에 출생해서 30세 전후(적어도 20대후반이상)에서 태자책봉이 되었다면 동생 이련이 형과 나이차이가 2~3살정도일수도 있고 많으면 10세가 될수도 있는데 일단 기록상 차남이므로 10세정도까지 갈 가능성은 적을것입니다.
형제간 나이차가 많지 않다면 이련역시 부왕 즉위전에 출생했슬가능성이 틉니다.
부왕 고국원왕이 20대 후반에 즉위했다면 그 나이에 아들2명은 충분히 출산할수가 있죠.
그리 추측한다면 이련은 왕위에 즉위했슬때 이미 50대 중반의 나이가 됩니다.
그리고 아들 담덕을 40대에 출산했다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만일 그랬다면 담덕은 장남이 아닌 차남이나 그 이후의 아들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계산추증을 할 경우 고국양왕과 광개토왕간의 연령차는 당시로써는 조부간 세대차이도 충분히 가능하고 반면에 당시 부자간 세대차이를 20~25년정도로 볼 경우 고국원왕과 소수림왕/고국양왕간 나이차이가 조부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구부의 태자책봉시기인 355년에서 어느정도 단서를 잡을수 있는데 특별히 태자를 교체한다거나 원 태자가 사망하여 차순위 왕자를 태자로 책봉하지 않은 이상 20대후반~30세전후시기에 태자책봉을 받을리는 만무합니다.
보통 태자책봉 특별한 사유가 없는한 늦어도 15세전에는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그렇게 계산한다면 구부의 출생연대는 340년 이후일 가능성이 큽니다.
헌데 구부가 340년 이후 출생이라고 하면 고국원왕은 구부를 40세정도나 그 이후에 출생했다라는 말이 되는데 막내도 아닌 장자를 그렇게 출생한다라는 것도 좀 믿기지가 않죠.
그리고 또 여기서도 담덕의 차남설에 대해서 연관시켜 본다면 담덕의 부왕 이련역시도 340년대 출생했다면 담덕을 30세전후에 출산했는데 이 역시도 그 나이면 당시로써는 아들 2명이나 그이상도 볼수 있는 나이입니다.
담덕이 장남이면 특별히 딸만 계속낳다가 늦게 아들을 보는 경우가 아닌이상 부왕 이련의 출생연대가 350년전후에서 그렇게 더 오래되지는 않았슬 것입니다.
이련이 350년전후 출생이면 그의 형 구부를 대략 345년전후로 보고 10세전후에서 태자책봉이 되었다라고 가정하면 일단 태자책봉과정과 시기상으로는 적정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허면 혹시 고국원왕-소수림왕/고국양왕-광개토왕으로 이어지는 왕계가 부자간 세대가 아닌 혹시 중간에 한세대가 누락되었슬 가능성은?
구부의 태자책봉시기문제와 관련하면 고국원왕과 소수림왕/고국양왕간은 부자관계가 아닌 조손관계일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구부와 이련의 출생시기를 340년대 이후로 설정하면 고국원왕과 40세 이상 차이가 나므로 당시사정상 조손관계가 충분하죠.
355년 구부의 태자책봉이라는 기록을 볼적에 많으면 이미 그 당시에 30이 넘은 구부를 그때서야 태자책봉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황상 이해가 안갑니다.
구부와 이련을 사유가 왕위에 오르기전에 보았다면 둘다 당시로써는 적지 않은 나이가 되고 담덕역시도 374년생이 아닌 350년대에 출생해야 정황상 타당합니다.
또 이렇게도 생각해보는데 고국원왕이 371년 전사를 한것에 대해서 거의 70세정도 나이에 전장에 나간다는 것도 좀 납득하기가 곤란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그정도까지 살았다라는 것도 엄청난 장수이죠.
물론 후에 장수왕이 98세까지 산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혹시 고국원왕이 아니라 고국원왕과 소수림왕 사이에 한 세대의 왕이 더 있었는데 기록상 누락되어 그냥 고국원왕에 갖다 부쳤슬 가능성도 생각합니다.
그렇게 늙은나이에 전장에 나간다라는 것도 그러하고, 그래서 고국원왕이 전사한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고국원왕은 사망하고 그 아들이 왕에 있다가 전장에서 전사를 하여 소수림왕으로 교체되었슬 가능성도 세대차연령상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대사회처럼 부자간 나이차를 30세정도 한다면야 미천왕은 즉위후 한 10년후쯤에야 사유를 출생하고 그로부터 30년후에 구부가 출생하고 구부의 조카 담덕이 30여년후에 출생한다라고 계산하면 담덕의 출생시기가 들어맞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현대사회보다 한세대차이가 빨랐기에 담덕의 출생시기가 정황상 의문이 가죠.
백제의 경우 후대인 위덕왕~법왕~무왕간 계승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 견해가 많은데 그렇다면 고구려역시도 이 시기에 그렇게 의문을 가져볼수 있습니다.
첫댓글 소수림왕 태자 책봉 이전에 세자(태자)의 기록이 있습니다..이 세자를 고구려의 태자로 본다면 이상할 것이 없죠..그 세자(태자)가 장남 소수림왕이 차남 고국양왕이 3남이 되는 거죠..소수림왕의 활동시기로 보면 출생시기는 아버지 즉위 이후가 아닐까 싶습니다..그리고 고국양왕과 광개토왕의 거리가 있어서 고국양왕은 고국원왕이 늦게 가진 아들로 봅니다..앞세대의 끝자리만 동일하게 하면 미천왕 285년생 고국원왕 305년생 소수림왕 335년생 고국양왕 346년생 광개토왕 374년생으로 봅니다..여기서 광개토왕은 차남이 되어도 큰 무리는 없겠죠..큰 무리가 없는 이상은 왕계는 의심하지 않는 편이 좋을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