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나이를 알면 ‘내가 나이를 들었구나.’라는 자각을 한 번쯤은 해보게 되기 마련이다. 92~93 듀오가 한국 축구의 미래를 이끌 것이라는 얘기를 했던 게 엊그제 같지만, 어느덧 K리그에는 96~97년생 신예 선수들이 새롭게 프로 무대에 데뷔하며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오늘 ‘임형철의 스타우트K’에서 소개할 두 선수도 마찬가지다. 대전의 황인범, 그리고 부산의 김진규는 96, 97년생임에도 벌써 K리그와 한국 축구의 ‘18세’ 기대주로 통한다.
두 선수가 소속되어 있는 대전과 부산은 힘든 시즌을 보내고 있다. 아직 23경기에서 1승밖에 챙기지 못한 대전은 한 자릿수 승점인 8점을 기록하며 최하위에 쳐져 있고, 23경기 5승 승점 20점의 성적을 기록 중인 부산도 11위로 불안한 자리에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개막과 동시에 긴 부진을 이어왔던 두 팀은 시즌 중 조진호 감독과 윤성효 감독을 경질하는 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갖가지 노력을 동원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혜성같이 등장한 황인범과 김진규는 벌써 각 팀의 중심 선수로 입지를 다지며 서로 간의 경쟁에 돌입했다. 선제공격은 포항을 겨눈 황인범의 왼발에서 나왔다.
부산의 No.19 김진규 (사진 : 부산 아이파크)
#. 비슷하면서도 다른 황인범과 김진규의 이력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두 선수가 어떤 선수인지 간단하게 살펴보자. 1996년 9월 20일생인 대전의 No.13 황인범은 176cm의 미드필더다. 대전 유스인 유성중학교,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올해 프로 무대에 직행했다. 조진호 감독을 대신해 대전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최문식 감독과는 이미 인연이 있었는데, 2012년 최문식 감독의 선택으로 U-16 대표팀에 발탁된 이력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주로 동료 선수의 득점을 도와주는 지원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던 황인범이지만, 프로에 온 뒤로 오히려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하며 자신의 다양한 재능을 발견하는 계기를 맞게 된다.
부산의 No.19 김진규는 1997년 2월 24일생으로 177cm의 황인범과 같은 미드필더다. 부산 유스인 신라중학교, 개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올해 프로 무대에 직행했다. 프로에 올라온 김진규는 시즌 초반 쉽게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로 인해 지난봄에 열린 2015 수원 JS컵에서 U-18 대표팀에 차출됐음에도 경쟁에서 밀려 활약을 보일 수 없었다. 당시 U-18 대표팀의 안익수 감독은 “우리 팀의 유일한 프로 선수인데, 경기에 뛸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쓴맛을 보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온 김진규는 전반기의 아픔을 뒤로 한 채 새롭게 준비에 나섰다. 그리고 프로 무대에서 처음으로 맞는 특별한 ‘7월’이 그에게 다가온다.
(사진 : 대전시티즌)
#. ‘18세 8개월 10일’ 신예 황인범의 선제공격
2015년 3월 21일, 대전이 0대 5로 패배한 제주와의 원정 경기에서 황인범은 선발로 출전해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4월에 있었던 울산전과 포항전, 5월 초 전남전에서 교체로 출전한 그는 자신의 두 번째 선발 출전 경기인 포항과의 원정 경기에서 일을 냈다. 비록 대전은 후반전 내내 이어진 포항의 공세를 막지 못해 1대 2로 패했지만, 황인범은 이날 경기에서 기록한 골로 K리그 클래식 최연소 득점 기록을 18세 8개월 10일 만에 갈아치우며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포항전 볼 터치 모음 및 데뷔골 장면(1분 20초) (영상 : youtube "assabio forever")
이후 황인범의 활약은 꾸준했다. 이어서 홈에서 열린 수원전, 부산전에 연달아 선발로 출전했고, 나오는 경기마다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려 현재까지 자신이 출전한 14경기 중 무려 11경기에 선발 출전하는 진기를 발휘했다. 또한, 6월 10일 서울전, 7월 1일 성남전, 7월 5일 전북전에서 골을 터트려 득점력도 과시했는데, 특히 전북전에서 터트린 팀의 첫 번째 골은 그 장면 하나만으로 스타에 오를만한 골이었다. 보통 선수라면 바로 슈팅으로 연결하겠다는 빠른 판단과 정확한 임팩트까지 어느 하나라도 쉽지 않았을 장면이다.
전북전 볼 터치 모음 및 골 장면(1분 30초) (영상 : youtube "assabio forever")
황인범의 능력은 드리블 상황에서 두드러진다. 수비가 에워싸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볼을 몰고 전진할 줄 아는 그의 능력은 웬만한 베테랑 선수들보다도 뛰어나다.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뛰어난 강점이 있는 탓이다. 또한, 동료 선수에게 찬스를 만들어주는 지원자로서의 능력, 14경기 4골을 터트리며 검증된 슈터로서의 마무리 능력까지 그가 가지고 있는 공격적인 재능은 충분히 합격점을 받을만하다. 하지만 한창 좋은 시기를 지내오던 그에게 갑작스러운 비보가 들려왔으니, 피로 골절 부상으로 인해 올 시즌 잔여 경기에 모두 나설 수 없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 결국, 한창 좋은 시기에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된 황인범은 치료에 전념해야 했고, 이동안 경쟁팀의 동년배 기대주가 활약을 개시하면서 최연소 득점 기록을 2개월 만에 갱신 당하고 만다.
(사진 : 프로축구연맹)
#. ‘18세 5개월 2일’ 2개월 만에 찾아온 김진규의 반격
시즌 초반부터 황인범이 좋은 모습을 보이는 동안, 김진규는 기회 한 번 잡아보지 못했다. 프로 무대 데뷔전 또한 뒤늦게 찾아왔다. 부산이 5경기 연속 무승에 빠져있던 2015년 7월 4일 성남전에서 김진규는 깜짝 선발로 기용되어 데뷔전을 치렀다. 비록 팀은 0대 1로 패했지만, 당시 팀의 길어지는 부진에 질려있던 부산팬들은 김진규의 데뷔전에 신선했다는 평가를 남겼고, 이후 부산 코칭스태프에게 합격점을 받은 덕에 줄곧 경기에 나서기 시작했다.
데뷔전을 마치고 4일 간격으로 있었던 인천전, 수원전에서 연달아 선발로 기용된 김진규는 긴장하지 않고 침착하게 경기에 임했다. 중앙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패스 전개 역할을 충실히 해냈고, 그의 활약으로 침체되어있던 부산의 미드필더진이 살아나는 효과도 나타났다. 그러나 김진규의 활약 하나만으로 부산의 분위기를 뒤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인천전과 수원전에서 모두 승리를 챙기지 못한 부산은 결국 8경기 연속 무승에 시달렸고, 이로 인해 윤성효 감독이 경질되는 등 분위기는 바닥으로 치닫게 된다.
영웅은 난세에 나타났다고 했던가? 최악의 분위기에 빠진 부산을 구해낸 주인공은 아직 출생 후 18년 5개월 2일밖에 지나지 않은 신인이었다. 이제 막 네 경기째를 소화한 그는 2015년 7월 26일 교체로 투입된 대전과의 경기에서 후반 24분 팀을 구해내는 결승 골을 터트렸다. 팀의 8경기 연속 무승 기록을 깨트린 데다, 12위 대전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는 등 그 골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베테랑 선수들도 쉽게 시도하지 못할 찬스에서 오히려 골까지 성공한 김진규는 황인범이 세운 K리그 클래식 최연소 득점 기록을 2개월 만에 갱신하며 동년배 기대주의 선제공격에 반격했다.
대전전 볼 터치 모음 및 골 장면(38초) (영상 : youtube "assabio forever")
김진규의 활약과 결승 골을 지켜본 데니스 감독대행은 프로 무대에서도 전혀 긴장한 모습이 없는 그의 침착성을 인정하며 김진규의 활약으로 후반전 부산의 패스 질이 살아났다고 말했다. 자신 있게 특별한 선수라는 코멘트를 남길만한 만족스러운 활약이었다. 아직 프로 무대에서 네 경기밖에 소화하지 않은 김진규를 확실히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김진규는 짧은 시간 동안 볼을 쉽게 다룰 줄 아는 능력과 훌륭한 패스 능력을 모두에게 증명했다. 부산하면 빼놓을 수 없는 미남 스타 반열에 오를만한 빼어난 외모도 갖추고 있어 앞으로의 활약이 더욱 기대를 모으는 선수임이 틀림없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선수들이 프로 무대에 직행하는 것은 대단한 성과다. 하지만 황인범과 김진규는 프로에 입문하자마자 특별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유스 시절 오랜 시간 데뷔를 꿈꿔왔던 꿈의 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단번에 핵심 선수로까지 올라선 것이다. 새로운 무대에 대한 적응력과 도전 정신, 재능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면 절대 쉽지 않았을 일이다.
황인범이 부상으로 잔여 경기 결장이 유력해진 상황에서 올 시즌 후반기에는 김진규의 활약이 두드러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프로 첫 시즌부터 ‘최연소 득점 기록’을 두고 경쟁을 펼쳤던 두 선수의 경쟁은 앞으로도 오랜 시간 한국 축구팬들을 찾을 예정이다. 그 무대가 K리그가 됐건, K리그를 벗어나 한국 축구가 됐건 간에 두 선수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관심 있게 지켜보도록 하자.
(사진 : 대전시티즌)
#. 추가로 살펴봐야 할 대전과 부산의 기대주들
주전으로 출전이 예상된 선수들이 오랜 시간 부진을 이어온 탓에, 대전과 부산은 팀 내 어린 선수들에게도 많은 기회를 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대전은 최문식 감독이 부임한 뒤 여름 이적 시장에 활발한 영입을 펼쳐 팀 스쿼드의 절반가량을 바꿔놓으면서 많은 유망주가 새롭게 합류한 상태다. 최문식 감독의 선택을 받은 94년생 공격수 한의권과 96년생 미드필더 고민혁은 그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선수들로 꼽힌다. 본래 대전의 최대 유망주로 기대됐던 서명원은 올 시즌 부상으로 인해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2008년부터 다음 해까지 잉글랜드 포츠머스에서 유소년 생활을 마친 뒤, 지난 시즌 대전에 입단해 프로 첫해 26경기 4골 5도움의 맹활약을 보였던 그의 빈자리는 진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대전을 상대로 기록한 김진규의 첫 골은 이규성과의 멋진 콤비네이션이 이루어졌기에 가능했다. 94년생으로 올해 프로 첫해를 맞고 있는 부산의 미드필더 이규성과 동년배 수비수 김종혁은 데니스 감독대행 아래에서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이범영 골키퍼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서브 골키퍼 93년생 이창근은 최대 기대주로 통한다. 이미 연령별 대표팀을 거쳐 오며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왔던 그이기에 이러한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다. 여기에 올 시즌 새로 합류한 웨슬리와 엘리아스도 92년 4, 5월생으로 외국인 선수 중 상당히 어린 나이에 속한다. (임형철 / 페이스북 / stron1934@naver.com)
* 최근 스타플레이어 유출이 심화하고 있는 K리그에서 언론이 해야 하는 역할 중 하나는 새로운 스타플레이어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추어 축구 칼럼니스트 임형철이 ‘스타우트K’를 준비했습니다. 인재를 찾는다는 뜻의 ‘스카우트’에 K리그를 이끌 새로운‘스타’를 찾는다는 점을 접목하여 ‘스타우트K’라 이름 붙인 이번 시리즈에서는 언론과 팬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23세 이하의 어린 유망주들을 차례차례 소개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K리그 및 축구 팬분들의 많은 성원과 관심을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