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에게서 배울 점
성경 안의 인물들 중에는 본으로 삼을 만한 이들이 많습니다. 한 예로 다니엘은 포로였지만, 느부갓네살 왕의 기이한 꿈을 해몽하여 “바빌론 모든 지방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었습니다(단 2:48).
그는 그러한 최고위직에 오른 후에도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한편 네덜란드의 개혁 신학자이자 목회자였던 아브라함 카이퍼는 5년간 총리로 재직하면서(1901-1905), 자신의 기독교적 세계관을 세상 정치에 투영시킨 본을 세웠습니다. 이 두 사례는 세상과 교회의 관계 혹은 믿는 이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말씀과 관련하여 추구해 볼 만합니다(마 5:13-16).
사실 위 아브라함 카이퍼와 달리, 다니엘은 어떤 지위를 구하거나 자신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꿔보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했고, 눈앞에 닥친 시련을 하나님께 나아가 얻은 지혜와 지식으로 대처했는데, 그 결과로 세상 지위가 주어졌을 뿐입니다.’
현인들을 죽이라는 포고령이 내려지자,
사람들이 다니엘과 그의 동반자들을 죽이려고 찾아다녔다. …
다니엘과 그 동반자들이 … 죽는 일이 없도록
이 비밀에 관하여 하늘들의 하나님 앞에 자비를 구하게 하였다(단 2:13, 18).
위 본문은 생사가 달린 긴박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바빌론의 왕이었던 느부갓네살이 자신이 꾼 꿈 내용도 말해주지 않으면서, 꿈 내용과 해몽까지 알려 주지 않으면 나라 안의 모든 현인들은 “토막이 날 것”이고, 그들의 “집은 똥 더미가 될” 것이라고 위협한 것입니다(단 2:5).
이런 상황에서 다니엘은 호위 대장 아리옥에게 “슬기롭고 분별력 있게” 대응했습니다. 우선 1) 왕에게 나아가 해몽할 시간을 확보하고, 2) 동반자들에게 상황을 알려, 3) 하나님 앞에 자비를 구하게 했고, 4) 마침내 밤의 이상 가운데 그 비밀이 다니엘에게 계시되었고, 5) 왕 앞에 나아가 그가 꾼 꿈 내용과 그 해몽을 제시하자, 6) 왕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그대들의 하나님은 신들 중에 신이신 하나님, 왕들의 주인이시며 비밀을 계시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하게 했습니다(단 2장).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왕이 꿈에서 본 내용입니다. 즉 왕이 본 것은 “거대한 형상”인데, 그 머리, 가슴과 팔, 배와 넓적다리, 다리와 발은 각각 바빌론, 메도-페르시아, 헬라, 로마제국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돌 하나가” (세상 정부 전체를 상징하는) 이 신상의 “발을 쳐서” “산산이 부수었습니다”(34절). 그러자 그 거대한 형상은 “모두 일시에 부서져서” “바람에 날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형상을 친 돌”은 “큰 산이 되어 온 땅을 채웠습니다”(35절).
이것은 역대로 있어 온 인간 정부들이 마지막 때에 ‘돌’과 ‘큰 산’으로 상징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왕국에 의해 멸망할 것임을 보여주는 큰 그림입니다. 아래 내용은 제가 이 사례를 포함하여 다니엘에게서 오늘날의 믿는 이들인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인지를 묵상하고 정리한 것입니다.
첫째, 다니엘이 바빌론 제국에서 고위직으로 종사했지만, 성경은 그가 그 나라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이것은 주님에게나 그에게 세상은 본질적으로 개선의 대상이 아니라 “큰 산” 즉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대체되어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단 2:44-45, 계 11:15). 이것은 “이 세상의 통치자”가 사탄임을 감안해 볼 때 더 분명해집니다(엡 2:2, 요 16:11). 그런 의미에서 다니엘은, ‘문화명령’ 혹은 ‘영역 주권 사상’을 토대로 세상 정치에 접근한 아브라함 카이퍼와 차별화됩니다.
둘째, 다니엘서 제2장과 4장에서의 꿈 해몽 요구나 6장에서 그의 기도가 꼬투리 잡혀 사자굴에 쳐 넣어지는 위기가 닥쳤을 때 다니엘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 결과, 자신도 위기에서 벗어났고 이방 왕까지도 “내 왕국의 통치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해야 할지니라”라고 말할 만큼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했습니다(단 6:26).
셋째, 다니엘은 위기 때뿐 아니라 평소에도 “날마다 세 번”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 했습니다(6:10). 이러한 그의 신실한 기도생활은 그가 7장부터 12장까지에서 여러 이상을 보는 데 기여했다고 봅니다.
넷째,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살아 있는 보배로운 돌이신” 주님께 나아가 우리 존재 안에 돌이신 그분 자신을 주입하시도록 허락해 드릴 때(벧전 2:4), 우리도 그분처럼 살아 있는 돌이 되어 영적인 집으로 건축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니엘이 보았던 큰 신상을 쳐서 넘어뜨릴 “큰 산”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 점은 다니엘은 갖지 못했던 우리만의 특권이 될 것입니다.
세상은 1) 하나님을 무시하고, 2) 사람을 높이며, 3) 우상을 숭배합니다. 교회는 그 반대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