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타 : 성훈의 <제법실상초>에 ‘남녀를 가리지 말지니라 -어서 1360’고 있습니다. 7백년 전부터 대성인은 명확하게 남녀평등의 원리를 지표로 해 주셨습니다. 굉장한 일입니다.
다카야나기 : 정말로 연조(蓮祖)는 7백년 전에 남녀의 평등성을 주창하셨습니다. 그 선견성 있는 통찰은 ‘삼세(三世)를 아는 자를 성인이라고 하느니라 - 어서 287’고 있습니다만, 저희들은 경탄하는 심정으로 이 말씀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아키야 : 지난번 세이부 돔에서 3만 5천 명의 청년부문화대총회는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과연 어느 단체가 이러한 하나의 ‘이상’과 ‘신념’ ‘철학’으로 이 정도의 청년을 규합하고 있는가. 사람을 위해, 법을 위해, 나라를 위해, 평화를 위해 진력하고 있는 단체가 어디에 있는가. 단연코 창가학회밖에 없습니다.
사토 : 감사합니다. 당일, 이케다 선생님은 소카대학 신본부동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도코로자와돔의 지붕을 보면서 대성공을 기원해 주셨습니다.
오실 수 있었는데도 일부러 ‘제자들의 힘으로 제자들의 역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홀로 서기 위해 둥지를 떠나게 해야 한다.’며 참석하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키야 : 맞습니다.
사토 : 올 여름, 청년부는 아키타, 야마가타, 홋카이도, 니가타, 후쿠오카 등 각지에서 대회를 열었습니다. 선생님의 만감의 기대를 가슴에 품고 욱일의 기세로 출발했습니다.
다니가와 : 먼저 이번 좌담회는 지금까지의 중요한 역사에 대해 총괄하고 미래 21세기를 향한 창가학회의 전망을 함께 이야기해 가고자 합니다.
사토 : 그럼, 중요한 하나하나의 회합, 사건, 그리고 에피소드 등을 추려봅시다.
아키야 : 도다 선생님은 “1백년 앞을 위해 진실된 역사를 남겨두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질투와 책략, 감정으로 학회의 진실과 이케다 선생님의 진실을 왜곡했습니다. 일본은 죄인이 낳은 나라라고 대성인이 말씀하셨지만, 그야말로 나쁜 근성이 있습니다. 질투로 가득 찬 나라입니다.
1930년 12월 18일
이즈미 : 마키구치 선생님의 시대에는 ‘문하삼천’이라고 했는데 실제는 천 명 정도, 이니, 천 수백 명 정도였던가, 쓰지씨. 그렇지 않습니까?
쓰지 : 예. 마키구치 선생님은 선두에 서서 좌담회 또 좌담회로 사자분신의 싸움을 하셨습니다. 그 때에 도다 선생님은 가만히 마키구치 선생님을 지켜보며 당신의 때가 오기를 기다려 사업 쪽에 몰두하면서 마키구치 선생님의 활동 자금을 지원하셨습니다.
이즈미 : 훌륭한 사제불이의 모습입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의 대저작 <창가교육학체계>도 도다 선생님이 사재를 털어 원고의 편집, 구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책임을 떠맡고 발간하셨습니다.
아키야 : 스승을 선양하고 자신의 출세 따위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 깊고 아름다운 사제이셨습니다. 최고, 최대의 제자로서 출세한 무리가 경제적으로 유복해지고 사회적으로 명성과 명예를 얻자 퇴전하고 반역했습니다. 이 얼마나 쓸쓸하고도 인간으로 최악의 무리들인지 혐오스럽고 경멸하고 싶습니다.
다니가와 : 학회의 창립기념일은 1930년 11월 18일입니다. 이 날은 <창가교육학체계> 제1권의 발간일입니다. 판권에는 저자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발행 겸 인쇄자 도다 조세이로 되어있습니다. 사제 두 사람의 발간이었습니다.
사토 : 이 때, 도다 선생님은 30세였습니다. 사제일체의 청년부의 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쓰지 : 창가교육학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창가학회는 한 사람의 회장과 한 사람의 이사장만으로 발족했던 것입니다.
아키야 : 창립일이 어떤 날이었는가. 일찍이 이케다 선생님이 세이쿄 신문의 기자에게 물었습니다. 기자는 놀랐습니다. 기자라는 자가 창가학회 창립일의 전모를 모른다는 것. 그런 기자는 일류라고 할 수 없다. 한심한 자기 자신이다, 그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다니가와 : 그 세이쿄 신문 기자에게 조사를 부탁했는데 11월 18일은 화요일로 도쿄는 맑게 갠 날이라고 합니다.
이게타 : 당시는 대체로 어떠한 시대였는지요.
아키야 : 상징적인 것으로는 간디가 영국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해바을 요구하며 유명한 ‘소금행진’을 실시한 것이 그 해입니다. 세계적으로는 월가의 대공황으로부터 1년. 심각한 불황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일본도 ‘쇼와 공황’이라는 대공황의 시대였습니다.
이즈미 : 그렇지. 많은 실업자가 생기고 ‘룸펜-부랑자’이라는 말이 유행한 것도 이 해입니다. 사회가 불안한 11월에는 ‘라이온 수상’이란 이름으로 친숙한 하마구치 오사치 수상이 도쿄역에서 저격당했습니다. 정확히 전쟁이 시작된 무렵입니다.
피로 피를 씻는 ‘법좌 다툼’
사토 : 종문에서는 1927년. 닛켄의 아버지 닛카이가 관장(管長) 선거에서 상대 후보와 법주 자리를 다투었는데 분쟁이 지나치게 격심하여 경찰까지 출동했습니다.
쓰지 : 닛카이는 자신의 출세욕에 방해가 된 닛추 법주를 궁지에 몰아 넣을 때도 온갖 책모를 썼습니다.
이즈미 : 그래요. 축인근행 중, 누군가 권총같은 것으로 위협한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의 추악한 내분은 신문에서도 “피로 피를 씻는 추악한 분쟁은 점점 커져 단가(檀家)도 묵시할 수 없다며 분기한 추한 싸움은 다른 종파의 웃음거리 - 시즈오카민유신문 1926년 2월 3일” 등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다니가와 : 닛카이는 선거에 이기긴 했지만, 선거에 얽힌 협박, 향응, 투표 방해 등으로 고발되어 문부성에서 정식 인가가 나오지 않는 이상한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더구나 닛카이는 횡령 등의 혐의로 고소 당해 도쿄 무코지마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사토 : 또 닛카이는 등좌한 직후에 어본존을 엉터리고 서사했습니다. 종문은 이 사실을 숨기려 했지만 전국의 신도가 1929년 1월, 도쿄에 모여 닛카이의 퇴좌를 요구했습니다. 궁지에 몰린 닛카이는 다음 달, 자신의 과실을 인정한 ‘정정문’을 써서 신도에게 사죄했습니다. 정말 이같은 추태도 없습니다.
다니가와 : 1931면, 니치렌 대성인 650원기에서는 “많은 돈을 기부한 자에게는 대만다라를 주겠다.”고 떠들며 공양을 탐냈습니다. 그것도 어본존에게 등급을 매겨 공양한 금액에 따라 ‘구분하여 사용한다’는 악랄함으로 말입니다.
사토 : ‘법등연면’이라며 달콤한 말만을 해왔을 뿐, 현실은 무책임합니다. 단지 권력욕, 금전욕의 화신이 아닌가. 이런 비열하고 하찮은 사람이 한 종교의 법주였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대모략 ‘C작전’
쓰지 : 그 구제할 길 없는 종문을 최대로 지킥 감싸며 선양해 온 것이 학회입니다.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 이케다 선생님께 얼마나 많은 대은(大恩)을 입었던가! 특히 이케다 선생님 때는 종문이 최고로 대발전했습니다. 이것은 닛타쓰 상인도 명쾌히 선언했습니다.
아키야 : 그렇습니다. 공양만도 지금까지 몇백 억, 몇천 억을 했는지 모릅니다. 종문은 공표(公表)조차 하지 않습니다.
다니가와 : 오히려 검은 질투에서 학회를 짓누를 모략을 짝 실제로 악행을 개시했습니다.
사토 : 1990년의 저 유명한 ‘C작전’의 C란 ‘컷트한다’는 의미입니다.
다니가와 : 즉 금전을 쌓을 만큼 쌓은 끝에, 적당한 시기를 보아 ‘컷트’했습니다. 대은(大恩)의 창가학회를 이제는 돈이 모아졌기 때문에 필요 없다며 잘라 버렸던 것입니다.
이즈미 : 그것도 대석사 개창 70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학회가 200군데의 사원 건립을 추진하고 두 개의 총방을 봉납하여 청년부의 손으로 문화제를 실시했습니다. 경축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에 야마자키 마사모토 등과 극악한 책략을 꾸몄습니다.
사토 : 닛켄 등의 모의의 전모느 나중에 나온 ‘가와베 메모’ 등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해 7월 16일에 열린 ‘니시카타 회의’에서 본산 깊숙한 곳에서 가진 ‘어전회의’에서 닛켄 스스로 ‘C작전’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다니가와 : 그 후, ‘C작전’에서 꾸민 계획대로 12월 16일 학회를 힐문하는 문서를 일방적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 해 12월 27일 어처구니 없게도 이케다 선생님을 법화강총강두에서 갑자기 파면했습니다.
아키야 : 서로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전적으로 ‘몰래 불시에 친’ 것이었습니다. 그 후도 몇 번이나 이쪽에서 대화를 요청했는데도 ‘묵묵부답’으로 모두 거부했습니다.
다니가와 : 그리고 1991년 11월 7일 ‘창가학회 해산권고서’. 28일 ‘창가학회 파문통고서’를 일방적으로 보내 학회원의 분열을 꾀했습니다.
사토 : ‘파문했다’라고 뻐기듯 말하지만, 마귀나 짐승 같은 가장 잔인한 방법이며 가소롭기 짝이 없는 전략이었습니다.
아키야 : 아무튼 법주가 1천만 신도를 차버리고 광선유포의 단체를 파괴하려는 것은 불법사상 전대미문의 대방법입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닛켄을 영원히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사토 : 종문 내에서 학회파괴의 음모가 훨씬 예전부터 아주 깊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종문에서 탈퇴해 독립한 승려가 증언했습니다.
- 닛타쓰 상인이 만년일 때인가, 닛켄이 등좌한 뒤였던가, 종문에서는 이미 그 시점부터 이제 종문은 재력도 상당하고 걱정 없으니 이젠 학회를 자르자. 그리고 SGI회장을 자르자는 밀담을 몇 차례나 했습니다. 그 때 “SGI회장은 몸이 약해서 이제 곧 쓰러진다.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자.”라고까지 말하고 있었다.
아키야 : 누구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확실히 예전부터 고위급 승려들은 몇백 억, 몇천 억 모아지면 어려울 것 없으니 학회를 자르자고 자주 숙덕거렸습니다.
사토 : 무서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정도 대사건이 있는데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이케다 선생님께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즈미 : 만약 선생님이 감연히 우리들을 지도하고 지켜 주지 않았다면 학회는 붕괴했을 것입니다.
쓰지 : 아니, 닛켄의 생각대로 중들의 잔시중을 들며 닛켄에게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입니다.
아키야 : 단연코 학회는 승리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이 옳으셨습니다. 학회는 이케다 선생님이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있어 최고로 행복합니다. 상승무적의 단체입니다.
이즈미 : 마키구치 문하생으로서 참으로 기쁩니다. 그토록 난을 받으면서 이만큼 학회는 전진했습니다. 나는 눈물을 한없이 흘렸습니다. 이것으로 마키구치 선생님도 도다 선생님도 가슴을 펴고 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기쁩니다!
쓰지 : 나도 절실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참의원 의원일 당시, 어느 저명한 사람이 “이케다 회장은 젊은데도 훌륭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그 몇십 배, 몇백 배나 되는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분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각은 강해집니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아키야 : 그건 그렇다 해도, 가와베의 메모 중에서 닛켄이 대어본존을 부정했다는 놀라운 사실이 발각되었습니다. 불가사의한 계략입니다. 불법은 엄합니다.
사토 : 지금 종문은 대혼란입니다. 이탈하는 사원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후쿠오카 개신사에서는 200명이나 되는 법화강원이 집단으로 이탈했습니다. 전국에서도 몇 천 명이나 법화강을 그만두었습니다.
다니가와 : 아버지인 닛카이도 모략, 아들인 닛켄도 모략. 아버지가 어본존을 ‘장사도구’로 하고, 아들은 ‘대어본존 부정’인가.
사토 : 어떤 사람이 “역시 피라는 것은 무섭다. 닛카이와 닛켄에게는 악의 혈맥이 흐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즈미 : 맞습니다. 참으로 두파작칠분 자체가 광란하는 모습입니다.
쓰지 : 실은 닛카이가 출가하게 된 진짜 동기로 수수께끼이지요.
이즈미 : 들은 바로는 젊었을 때 아내를 동생에게 빼앗기고 집에 있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들 합니다. 이혼했는지 어떤지는 호적을 보면 명료할 것입니다.
사토 ; 닛켄의 출생도 의혹투성이입니다. 닛카이와 번화가에서 일하고 있었던 히코사카라는 여성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종호법동맹의 증언에 따르면 무슨 이유인지 닛카이는 6년 간이나 닛켄을 호적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다니가와 : 종문에서느 오히려 닛켄은 닛카이의 첫 제자인 다카노 닛신과 닮았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본산의 오래된 주지는 모두가 뭔지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사토 ; 기괴 천만한 이야기입니다. 닛켄의 엄청난 파괴성과 흉악한 야망은 어디서 왔는가. 그 자에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둠이 있습니다.
다니가와 : 고명한 정신과 의사가 분석했습니다. 요컨대 ‘미생원’이라고. 즉 어머니 태내에서 아직 태어나기 전부터 깊고 깊은 한을 품고 있습니다. 따라서 위대한 사람, 행복한 사람에 대해서는 아사세왕이나 제바달다처럼 미칠 정도로 원망합니다. 질투합니다.
아키야 : 나도 잘 압니다. 이케다 선생님처럼 신도이면서 세계적으로 저명한 분과 만나고 수 차례나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훈장을 받고 찬탄 받는 것을 보면 그것이 점점 미워져 자기 자신을 억제할 수 없는 그런 피를 갖고 있습니다.
쓰지 :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완전히 미쳤습니다. 나도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기 때문에 뼈저리게 느끼지만, 닛켄의 깊은 질투심, 깊은 의심, 강한 욕심에 대해서는 너무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본산에 많은 공양을 하며 닛켄의 이상한 품행에 대해서도 전혀 비판하지 않고 소중하게 지키며 누구한테도 소리 듣지 않도록 외호해 주신 분이 이케다 선생님이 아닌가!
아키야 : 옳은 말씀입니다! 이케다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에 이러니저러니 말도 안 듣고 안심하고 있을 수 있지 않았는가! 그렇게 최선을 다해 외호한 대지도자의 은혜를 받을 만큼 받고서 창피를 주듯이 자른다는 등 운운하는 것은 미친자의 소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쓰지 : 정말 그렇습니다!
쓰지 : 마키구치 선생님 당시 종문을 보아도 정말 법화경에 ‘후(後)의 말세에 법멸하려 할 때’라고 설해진 대로의 딱한 처지였습니다. 게다가 또 선시초에 ‘악귀가 몸에 들어간 대승(大僧)들이 국중에 충만하리라 - 어서 259’ 등을 말씀하신 그대로의 양상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학회는 탄생했던 것입니다.
이즈미 : 그 후, 1937년 가을에 정식으로 학회 발회식을 가졌습니다. 장소는 도쿄 묘가다니의 메이케이 회관. 참가자는 수십 명에 불과했습니다.
쓰지 : 지금 보면 참으로 초라한 출발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날은 영구히 학회 ‘광선유포’의 출발의 날입니다. 대성인이, 삼세시방의 불보살이 그들의 서원을 엄연히 지켜보며 힘을 부여해 주신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이케다 선생님은 늘 말씀하셨습니다.
이즈미 : 왜 학회가 오늘날과 같이 발전했는가. 학회에는 ‘사제(師弟)’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법의 근간은 ‘사제불이’입니다.
그 진실한 사제의 길을 걸으신 분이 마키구치 선생님과 도다 선생님이었고, 도다 선생님과 이케다 선생님입니다. 이 존귀하게 빛나는 규범을 우리들은 반드시 본받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쓰지 : 말뿐인 사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제란 ‘신, 행, 학’과 함께 모든 행동 속에 혈맥처럼 흐르는 것입니다. 일찍이 스승이신 마키구치 선생님께 자신이 제일의 자자같이 행동하면서 일이 터지자 겁먹고 선생님을 배신한 데라사카 요조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데라사카는 교사였는데 교활한 자였습니다.후에 이사장이 된 자입니다.
이즈미 : 그래, 그래요. 마키구치 선생님은 전시 중에 대난을 만나 감옥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때에 손바닥을 뒤집듯 ‘마키구치, 마키구치’ 하며 원망하고 경멸하여 멀리 도망친 가짜 제자가 얼마나 많았던가.
쓰지 : 데라사카도 그 중 하나입니다. 체포된 때가 43세로 도다 선생님과 같은 연배, 학회의 이사였습니다.
이즈미 : 이윽고 출옥한 도다 선생님은 피눈물을 흘리며 분노했습니다.
“위대한 스승에게 대은을 입고서 반역한 무리와 나는 생애 기필코 싸우겠다.”고 맹세하며 도다 선생님은 결연히 일어섰습니다.
아키야 : 우리들은 도다 선생님과 이케다 선생님의 이런 엄숙한 그리고 숭고한 ‘사제불이’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아 왔습니다. 단연코 이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사제의 길’을 배우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지 않으면 천추에 후회를 남기게 될 것입니다.
다니가와 : 진지하게 ‘신심이란 무엇인가.’ ‘불법이란 무엇인가.’ ‘사제란 무엇인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이해해 가야 한다고 깊게 결의합니다.
사토 : 대성인, 닛코 상인의 시대는 오노승이 사적대하고 반역했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의 법난 때는 21명의 최고 간부 가운데 19명이나 배신하여 퇴전했습니다.
현대는 자기를 위해 스승을 이용하고 은혜를 원수로 갚은 무리들이 야마자키 마사모토이고, 다케이리 요시카쓰이며 하라지마 다카시와 같은 자들입니다.
다니가와 : 하지만 천재적인 책략을 가진 천박한 자들도 작금에 와서는 거짓의 껍질이 벗겨지고 있습니다.
야마자키는 악질적인 공갈 사건으로 체포되고 다케이리는 학력 사칭이 발각되었으며 하라지마는 정신회에서도 버림받는 쓰레기입니다. 그 외에도 약간 있지만, 이들 무리의 죄업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쓰지 : 불법은 화합승입니다. 그 화합승을 파괴하는 자는 마입니다. 불법은 신심입니다. 그 신심을 이용하여 자기 중심이 되고 자기 영달만을 위해 화합승을 이용하는 자 또한 마입니다.
이즈미 : ‘광선유포’라는 ‘법’을 근본으로 하는가. ‘자기’를 근본으로 하는가. ‘법’을 중심으로 하는가. ‘자기’의 이해 타산을 근본으로 하는가.
이 일점의 차이의 준엄함을 반드시 깨닫게 하는 것이 신심지도의 근간입니다. 거기에는 학력도 사회의 신분도 관계 없습니다. 일족주의의 정실도 별개의 문제입니다.
아키야 : 진실한 행복, 즉 진실한 인생, 진실한 생명의 근본법인 ‘묘법’에 끝까지 살아가기 위해 광선유포는 있습니다. 광선유포의 지도가 있습니다.
이즈미 : 여하튼 종문에서 대성인에게 반역한 자가 닛켄입니다. 선사(先師) 닛타쓰 상인에게 반역한 것도 닛켄입니다. 이 중죄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또 우리들도 영원히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쓰지 : 대어본존을 부정한 법주 따위는 과거세의 사교(邪敎)의 중이 광선유포를 방해하기 위해 태어난 괴물인 것입니다. ‘육사(六師)의 말류(末流)가 불교 중에 출래한 것이니라 - 어서 959’ 등의 어서 말씀에 비추어 이 방정식은 명확합니다.
(2) 학회 공격은 누구의 소행인가
다니가와 : 그런데 요즘 몇 년 동안 사악한 모략의 뒤에서 언제나 거물인양 하고서 획책해 온 것이 사기꾼 야마자키 마사토모입니다.
사토 : 원래 야마자키라는 자는 경영능력도 없는 주제에 자신이 마음대로 경영한 냉동식품업에서 실패. 예상대로 45억 엔의 부채를 안고 도산했다. 게다가 그 도산 과정에서 변호사의 몸으로 악랄한 공갈사건을 일으킨 자입니다.
다니가와 : 공갈재판에서도 당연히 엄하게 단죄를 받았습니다. 판결문에도 “수없이 많은 허구의 변명을 만들어 허위의 증거를 제출하는 등 전혀 반성의 태도가 보이지 않는다.”고 분명히 있습니다.
사토 : 그렇습니다. 그 판결문에는 ‘거짓’이라는 취지의 말이 무려 40군데 이상 있습니다. 많은 변호사도 질려서 되돌아갔습니다. 최근에도 자신이 농락한 오이타의 한 여성으로부터 소송이 걸린 재판에서 ‘중요한 부분에서 모순 번복’이 있다는 등 엄한 단죄를 받았습니다.
이즈미 : 정의의 얼굴을 하고 휘젓고 다니는 것 같지만, 그 자의 본성은 누구도 알고 있다. 즉 ‘여자에 미친 사기꾼’인 것이다.
다니가와 : 그 천재적인 거짓말쟁이가 잘 이용하고 있는 것이 주간지입니다. 거짓말투성이의 학회공격이나 SGI회장에 대한 공격을 하면 주간지는 발행부수를 늘릴 수 있다. 야마자키는 고료를 듬뿍 받을 수 있다. 돈도 들어오고 세간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야마자키는 오래 전부터 그런 계산으로 해왔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간파하고 있습니다.
사토 : 그렇습니다. 매스컴을 이용하여 돈벌이를 한다. 이것은 야마자키의 상투적인 수단입니다. 그의 독특한 작전입니다. 예를 들면 야마자키는 1980년부터 1981년에 걸쳐 <주간문춘>에 무려 40회나 유언비어와 중상모략을 되풀이해 왔습니다.
아키야 : 그것도 우선 가명(假名)으로 14회, 그 뒤에 실명으로 26회. 똑같은 유언비어로 2회 반복함으로써 원고료도 2배 받았습니다.
사토 : 비열한 놈! 그자의 돈에 대한 집착에 놀랄 뿐입니다. 그가 썼다고 밝혀진 문장 등은 누구도 신용하지 않고 읽지도 않습니다.
다니가와 : ‘이렇게까지 장기간에 걸친 일방적인 편향기사의 연재는 예가 없을 것이다. 정상적인 매스컴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고 저명한 지식인들이 놀라고 있더군요.
아키야 : 야마자키는 그 중에서도 ‘SGI회장을 공격하는 기사가 가장 잘 팔린다.’고 처음부터 작정했습니다.
다니가와 : 근래 몇 년간의 책략과 모략도 전부 자신의 돈 때문입니다. 그 자는 어디까지나 돈이 전부입니다.
사기꾼의 정보조작
아키야 : 닛켄은 이전에 ‘나는 주간지는 신용하지 않는다. 절대 읽지 않는다.’고 체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야마자키에 편승되어 ‘공범자’가 되고 말았습니다.(폭소)
사토 : 닛켄이라는 비인간적인 자는 야마자키와 결탁하여 모략을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기꾼이 말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모르는 닛켄을 야마자키는 속으로 껄걸 비웃고 있습니다. ^^ 이런 바보 같은 법주는 입종 이후 700 년 간의 역사에 있어 지금껏 없었습니다. 전세계의 수치입니다.
다니가와 : 그렇군요. 닛켄을 추켜세워서 이용하는 것은 야마자키에게는 식은 죽 먹기입니다.
사토 : 그렇습니다. 닛켄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일부러 ‘매스컴 대책에 대해’라고 항목을 만들어 닛켄을 교묘하게 부추기고 있습니다.
아키야 : 이 편지는 1993년 5월경에 즉 야마자키가 ‘3억 엔 공갈 사건’에서 실형판결을 받고 도치기 현 구로바네 교도소에서 가석방된 후에 쓴 것입니다. 당치도 않게 닛켄은 야마자키에게 “그 때는 당신을 거짓말쟁이라고 하여 미안했다.”고 사죄까지 하고 접촉을 시도하였습니다. 법주가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자와 검은 결탁을 획책한다. 이런 음험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다니가와 : 그 야마자키의 편지 속에는 예를 들면 “출판사는 문예춘추를 이용하라.”든지, “광문사는 편집자에게 돈을 건네면 뭐든지 써준다.” 등도 씌어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주간지나 매스컴을 쥐고 있는 것처럼 말하여 팔아먹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