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사의 저녁예불
김용례
요사채 군불 지피는 매캐한 연기가 처마 밑에 굴뚝으로 새나와 절 마당 한바
퀴 돌고 골짜기를 따라 뒷산 나뭇잎사이로 바람처럼 흩어진다.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산사의 밤은 급하게 찾아든다. 시월초여드레 달빛은 시리게
맑고 나무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순간이다. 종소리가 멀리 퍼지고 스님의
경 읽는 소리 가슴에 스미는 저녁 예불시간이다. 하루를 마무리 하며 아무도 모르게 이
산에서 죽어간 짐승들과 미물들의 극락왕생을 비는 목탁소리 들으며 경내를 돌아보았
다.
송암당 작은 암자 앞에 소나무를 감싼 바위와 그 바위를 바라보는 소나무 애처롭도록
서로를 향하고 있다.
어떤 인연의 끈이 저토록 간절하여 천년의 세월을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 되어 이곳
에 머물렀을까? 부처님의 따사로운 눈길 속에 머물고 싶어 여기에 뿌리를 내린 것일까?
내 좁은 시야로는 불가사의하고 신기하여 가슴이 두근거린다. 소나무를 꼭 끌어안고 있
는 바위와 바위의 비바람을 막아주려는 듯 잔가지를 풍성하게 뻗은 잘 생긴 소나무, 아
마도 이들은 세상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평범한 만남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
을 해본다. 그들이 있는 자리는 용이 승천하는 혈 자리라고 했다. 그렇다면 승천하기만
을 기다리던 용이 한순간의 잘 못으로 승천하지 못하여 소나무로 서있는 걸까? 소나무
껍질이 마치 용의 비닐 같으니 말이다. 그 소나무그늘에서 노닐던 꽃사슴이 바위로 환
생하여 변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는 바위와 소나무로 이생을 살아가는 것 같
다.
내겐 아주 소중한 사람이 있다. 법적 나이로 치면 일곱 살 내가 형인데 정신적 나이는
열 살쯤 그가 형이다. 마음 붙일 곳이 없을 때 서로 위안이 되었던 그녀, 처녀의 몸으로
아들 둘이 딸린 사람을 사랑했다. 지금은 유치원 애들이 장구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그의 이름은 유00인데 붙어 다니는 수식어는 열도 스물도 넘었었다. 그녀의 말로 공
중전까지 치르고 나니 세상살이에 자신이 생기더란다. 온갖 풍상을 딛고 피워낸 꽃이라
서 더 귀해 보인다. 겨우내 빈 논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태워지지 않을 것 같은
젖은 짚단 같은 여인이 피워낸 불꽃이라서 가슴까지 따뜻하고 불꽃춤사위가 고귀한 아
름다움으로 보인다.
저 소나무와 바위처럼 그들의 사랑도 천년보다 더 긴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것이
다. 저녁 예불소리 멈추니 자박자박 내 발자국소리 뿐. 하늘엔 벌써 벌이 뭉텅이로 쏟아
지고 달빛 따라 내려오는 오솔길엔 상큼한 밤바람이 기분 좋게 얼굴을 만진다. 나는 지
금 내 주위 사람들과 전생에 어떤 인연으로 이 자리에 있는 걸까? 또 다음 생에 이들과
만난다면 부끄럽지 않고 미안 하지 않게 만나고 싶다.
2005/23집
첫댓글 하늘엔 벌써 벌이 뭉텅이로 쏟아
지고 달빛 따라 내려오는 오솔길엔 상큼한 밤바람이 기분 좋게 얼굴을 만진다. 나는 지
금 내 주위 사람들과 전생에 어떤 인연으로 이 자리에 있는 걸까? 또 다음 생에 이들과
만난다면 부끄럽지 않고 미안 하지 않게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