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향기
다큐에 삽입된 영국 애틀리 총리의 취임사를 번역할 때 내 머리엔 쥐가 났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인용하고 있었다.
“잉글랜드의 푸른 초원 위에 새로운 예루살렘을 건설할 때까지, 내 손에선 칼이 잠들지 않을 것이며.....,”
처칠을 물리치고 집권한 애틀리는 사회보장제도를 만들고 기업 국유화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러자 처칠은 화장실에서도 애틀리 곁에서는 볼 일을 보려 하지 않았다.
“저사람은 덩치 큰 것만 보면 국유화 하려고 하니 혹시 내 걸 보고 나면.... .
사회주의 정책을 펴는 애틀리를 유머로 비꼰 처칠의 여유가 그를 거인의 풍모로 각인 시켰다.
처칠에 가려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알고보니 애틀리야말로 기억해 둘 만한 정치가였다.
그는 한국전쟁 때 미국이 원자폭탄을 사용하려 하자 워싱턴까지 날아가 극렬하게 반대했다.
취임사에서 그가 200년 전의 시인을 불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아름다움을 “비애의 미”로 표현해 식민사관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야나기 무네요시, 평전을 보니
그 역시 블레이크에 심취해 있었다.
그는 일제가 광화문을 없애거나 옮기려 할 때 온 몸으로 반대했다.
애틀리, 야나기, 모두 블레이크에게 정신적인 세례를 받았다.
“천국과 지옥의 결혼”이라는 작품으로 천국 못지않게 지옥도 중요하다고 썼던 블레이크.
타자를 자신의 기준으로 판가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던 그의 정신에 취해 둘 다 일찍 타인의 향기를 알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치자꽃 향기가 베란다를 가득 메우는 계절에, ....
글쓴이 : 박찬순 2006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자